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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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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馬周注+字賓王. 家貧嗜學, 資志曠遠. 武徳中, 補州助教, 不治事而去. 密州趙仁本高其才, 厚贈使入關. 留汴, 爲浚儀令崔賢所辱, 遂感激而西. 舍新豐逆旅, 主人不之顧, 周命酒一斗八升, 悠然獨酌, 衆異之. 餘見下文. 博州茌平人也注+茌, 士疑切. 博州, 今東昌路. 茌平, 縣名, 今仍舊, 隷山東.
마주馬周注+마주馬周는〉 빈왕賓王이다. 집이 가난했으나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자질과 포부가 크고 원대하였다. 무덕武德(618~626) 연간에 조교助教로 보임되었는데, 직책을 수행하지 않고 떠났다. 밀주密州조인본趙仁本이 그의 재주를 높이 사 재물을 넉넉히 주어 함곡관函谷關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변주汴州에 머무를 때 준의령浚儀令 최현崔賢에게 모욕을 당하자 결국 분격해 서쪽으로 갔다. 신풍新豐의 여관에 머물렀을 때 주인이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마주는 술 1말 8되를 달라고 해 혼자 유유자적하며 마시자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나머지는 아래에 보인다.박주博州 치평현茌平縣 사람이다.注+의 반절이다. 박주博州는 지금의 동창로東昌路이다. 치평茌平의 이름이니 지금 옛 지명 그대로 쓰이며, 산동山東에 속한다.
貞觀五年 至京師하여 舍於中郞將注+去聲. 唐制, 中郞將, 太子府屬, 掌校尉‧旅帥及親勲‧翊衛之屬.常何之家注+常姓, 何名. 史無傳.
정관貞觀 5년(631)에 장안長安으로 와 중랑장中郞將注+(장수)은〉 거성去聲이다. 나라 제도에 의하면 중랑장中郞將태자부太子府 소속이며, 교위校尉여수旅帥친훈親勲익위翊衛의 부류들을 관장한다.상하常何의 집에 기거하였다.注+은 성이며 는 이름이다. 사서史書에 전해지는 것이 없다.
太宗令百官으로 上書言得失注+令, 平聲, 後同.하니 周爲何하여 陳便宜二十餘事注+爲, 去聲.하여 令奏之하니 事皆合旨
당시 태종太宗이 백관들에게 정치의 득실을 글로 써서 올리라고 하자,注+(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뒤에도 같다. 마주가 상하를 위하여 국가에 편리하고 시의時宜에 적합한 일 20여 가지 항목을 지어주며 아뢰도록 하였는데,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내용이 모두 태종의 뜻에 맞았다.
太宗怪其能하여 問何하니 何對曰
태종이 상하의 유능함을 이상하게 여겨 상하에게 물으니, 상하가 대답하였다.
非臣所發意 乃臣家客馬周也라하니
“이것은 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신의 집에 식객으로 있는 마주의 생각입니다.”
太宗卽日召之호대 未至하여 間凡四度遣使催促注+使, 去聲.이라
태종이 그날로 마주를 불렀는데, 채 도착하기도 전에 네 번이나 사람을 보내 재촉하였다.注+使(사신)는 거성去聲이다.
及謁見 與語甚悅하여 令直門下省하고 授監察御史注+唐制, 掌分察百寮, 巡按州郡, 獄訟‧軍戎‧祭祀‧營作‧太府出納, 皆隷焉.하며 累除中書舍人注+唐制, 掌侍‧進奏‧參議‧表章.이라
마주가 알현하자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몹시 기뻐하여 문하성門下省에 배치하도록 하고 감찰어사監察御史에 임명하였으며,注+감찰어사監察御史는〉 나라 제도에 의하면 백관을 나누어 살피고 주군州郡을 순찰하는 일을 관장하며, 옥송獄訟, 군융軍戎, 제사祭祀, 영작營作, 태부太府의 출납이 모두 그 관할에 속한다. 여러 번 자리를 옮겨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었다.注+중서사인中書舍人은〉 나라 제도에 의하면 시봉侍奉과 진언과 논의와 표장表章에 관한 일을 관장한다.
역주
역주1 [奉] : 저본에는 ‘奉’이 없으나, 《舊唐書》 권43 〈職官志〉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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