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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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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太常卿注+唐制, 掌禮樂‧郊廟‧社稷之事.韋挺 嘗上疏陳得失한대 太宗賜書曰
태상경太常卿注+태상경太常卿은〉 나라 제도에 의하면 예악禮樂, 교묘郊廟, 사직社稷의 일을 관장하였다.위정韋挺이 일찍이 를 올려 잘잘못에 대해 논하였는데, 태종太宗조서詔書를 내렸다.
所上意見 極是讜言이요 辭理可觀하여 甚以爲慰
“건의한 의견意見은 매우 올바른 말이고 논리가 훌륭해서 매우 위안이 되오.
齊境之難注+去聲. 夷吾有射鉤之罪
하고 로되 而小白不以爲疑하고 重耳待之若舊注+重, 平聲. 夷吾射鉤事, 見任賢篇注. 勃鞮, 晉寺人披也. 重耳, 晉文公名. 晉獻公使勃鞮殺重耳, 重耳踰垣, 勃鞮遂斬其衣袪, 重耳奔狄. 後重耳歸晉, 即位爲晉君. 懷公之黨欲弑之, 勃鞮欲以告, 求見解前罪, 文公使人讓之. 勃鞮曰 “臣不能以二心事君, 故得罪, 君已反國, 其無蒲‧狄乎.” 於是見之.하니 豈非各吠非主注+漢書 “桀犬吠堯, 堯非不仁, 特吠非其主耳.” 志在無二
옛날 나라 경내에서 난이 발생했을 때注+(혼란)은〉 거성去聲이다.이오夷吾(管仲)가 소백小白(齊 환공桓公)의 대구帶鉤(허리띠 쇠고리)를 맞히는 잘못을 범하였고, 포성蒲城의 싸움에 발제勃鞮중이重耳(晉 문공文公)의 옷소매를 벤 원수였음에도, 소백은 이오를 의심하지 않고 중이는 발제를 예전처럼 대우했으니,注+(거듭)은 평성平聲이다. 관이오管夷吾(管仲)가 화살로 대구帶鉤를 맞힌 일은 본서의 〈논임현論任賢〉편 주석에 보인다. 발제勃鞮나라 시인寺人(환관) 이다. 중이重耳 문공文公의 이름이다. 헌공獻公이 발제에게 중이重耳를 살해토록 했는데, 중이가 담장을 넘을 때 발제가 중이의 옷소매를 베었고 중이는 으로 도망갔다. 뒤에 중이가 나라로 돌아와 즉위하여 나라 임금이 되자, 회공懷公의 무리들이 그를 시해하고자 했다. 발제가 이 사실을 알리고 만나서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받고자 하였는데, 문공이 사람을 시켜 그를 꾸짖으니, 발제가 “신은 감히 두 가지 태도로 임금을 섬기지 않아 죄를 얻은 것입니다. 임금께서 이미 귀국하셨지만 포읍蒲邑적국狄國에서처럼 고초를 겪을 일이 더 이상 없겠습니까.”라고 하자, 결국 그를 만나주었다. 이 어찌 주인이 아닌 자를 보고 개가 제각기 짖는 격이고,注+한서漢書》 〈추양열전鄒陽列傳〉에 의하면 “걸왕桀王의 개가 임금을 보고 짖는 것은 요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주인이 아닌 자를 보고 짖을 뿐이다.”라고 했다.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데에 뜻을 둔 것이 아니겠소.
卿之深誠 見於斯矣 若能克全此節이면 則永保令名이어니와 如其怠之 可不惜也
경의 깊은 정성을 여기에서 볼 수 있으니, 만일 이러한 절의를 온전히 한다면 훌륭한 명성을 영원히 보존할 것이지만, 만일 태만히 한다면 애석하지 않겠소.
勉勵終始하여 垂範將來하여 當使後之視今 亦猶今之視古하면 不亦美乎
시종일관 권면하여 후세에 모범을 보여, 후대에서 지금을 보기를 지금에서 옛날을 보는 것처럼 한다면 또한 아름답지 않겠소.
比不聞其過注+比, 音鼻.하여 未覩其闕이러니
짐이 근래 짐의 과실을 듣지 못하여注+(근래)는 음이 이다. 짐의 흠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소.
賴竭忠懇하여數進嘉言注+數, 音朔.하여하니 一何可道注+舊本, 此與上章通爲一章, 今按不同, 分爲二章.
간곡한 충심을 다하는 것에 힘입어 아름다운 말을 자주 올려注+(자주)은 음이 이다. 짐의 마음을 깨우쳐주니, 이 이상 무슨 말을 더하겠소.”注+구본舊本에는 이 글이 윗장과 한 장으로 되어 있지만, 지금 살펴보니 내용이 같지 않아 두 장으로 나누었다.
【集論】愚按 太宗賜書韋挺 示至公用人之道하여 而擧齊之管仲晉之勃鞮爲喩
【集論】내가 살펴보건대, 태종太宗위정韋挺에게 내린 조칙은 아주 공평하게 사람을 등용하는 원칙을 보여주면서 나라의 관중管仲나라의 발제勃鞮를 예로 들었다.
夫齊晉二伯主 置射鉤斬袂하여 而用二子하고 二子 亦能盡忠於其君矣
나라와 나라의 두 패주霸主대구帶鉤를 맞힌 일과 옷소매를 자른 일을 불문에 부치고 두 사람을 등용했고, 두 사람 역시 그 임금에게 충성을 다했다.
하지만 일찍이 살펴보건대, 회공懷公이 입국할 때 호돌狐突의 아들 호모狐毛호언狐偃중이重耳(文公)를 추종하여 나라에 있었는데, 진 회공이 호돌에게 명하여 그의 아들을 불러오게 하자, 호돌이 “아들이 벼슬할 때가 되면 아버지는 충성을 하도록 가르쳐야 하니, 이름을 신하 명단에 올리고 몸을 바쳤는데 두 마음을 가지면 죄입니다.”라 하고, 호돌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호모와 호언이 문공文公을 섬김에 두 마음을 품게 하지 않았다.
若以狐突之言律之하면 則管仲勃鞮 又若之何而可哉리오
만일 호돌의 말로 기준을 삼는다면 관중과 발제가 어찌 옳다 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齊境之難 夷吾有射(석)鉤之罪 : 春秋시대에 齊나라 襄公이 昏亂에 빠지자 아우인 糾는 魯나라로 달아나서 管仲과 召忽을 스승으로 삼았고, 다른 아우인 小白은 莒로 달아나 鮑叔을 스승으로 삼았다. 제 양공이 죽자 규와 소백이 서둘러 齊나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이에 관중은 병사를 이끌고 가 莒의 도로를 차단하게 했는데, 이때 관중이 소백에게 활을 쏘았고 공교롭게 그의 帶鉤(허리띠 쇠)를 맞췄다. 거짓으로 죽은 체 한 소백은 결국 규보다 앞서 齊나라로 들어가 임금이 되었다. 《史記 齊太公世家》
역주2 蒲城之役 勃鞮爲斬袂之仇 : 晉 獻公이 寺人 勃鞮(披라고도 함)를 시켜 公子 重耳(후일의 晉나라 文公)가 망명해 있는 蒲城을 치게 하였는데, 중이가 말하기를 “군부의 명령에 대항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고, 대중 앞에 선언하기를 “군부의 명령에 대항하는 자는 나의 원수이다.”라고 하고는, 담장을 넘어서 도망칠 때 발제가 칼을 휘둘러 중이의 옷소매를 끊었고[踰垣而走 披斬其袪], 중이는 그 길로 狄 땅으로 도망갔다. 그 뒤 중이가 본국 晉나라로 돌아와서는 발제를 죽이지 않고 도리어 그를 기용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 24년》
역주3 沃朕懷 : 啓는 연다는 뜻이고, 沃은 물을 대다는 뜻이다. 《書經》 〈商書 說命 上〉에 高宗이 傅說에게 명하며 “네 마음을 열어 내 마음에 퍼부어라.[啓乃心 沃朕心]”라고 하였다.
역주4 懷公入國……而毛偃事文公不二 : 《春秋左氏傳》 僖公 23년에 보인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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