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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2)

정관정요집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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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十一年 太宗 謂侍臣曰
狄人 殺衛懿公注+ 狄人 殺衛懿公:衛懿公, 名赤.하여 盡食其肉하고 獨留其肝한대
懿公之臣 呼天大哭하고 自出其肝하여 而內懿公之肝於其腹中注+ 內懿公之肝於其腹中:內, 讀曰納.하니
今覓此人하면 恐不可得이로다
特進魏徵 對曰 昔注+ 昔豫讓 爲智伯報仇:爲, 去聲. 後同. 豫讓, 智伯之臣. 智伯, 名瑤, 號襄子, 晉智宣子之後, 爲韓趙魏所滅.하여 欲刺趙襄子注+ 欲刺趙襄子:趙襄子, 名無恤, 晉趙簡子之後.한대 襄子 執而獲之하여 謂之曰
子昔事范中行氏乎注+ 中行氏乎:春秋之世, 晉有范氏中行氏, 與智氏韓氏魏氏趙氏, 爲六卿. 春秋之末, 晉公室卑, 六卿强, 各據采地, 更相攻伐. 貞定王十一年, 智氏魏氏趙氏韓氏, 共伐范氏中行氏滅之, 而分其地. 智伯 盡滅之어늘 子乃委質智伯하여 不爲報仇하고 今卽爲智伯報仇 何也
答曰 臣 昔事范中行할새 范中行 以衆人遇我하니 我以衆人報之하고 智伯 以國士遇我어늘 我以國士報之注+ 我以國士報之:事見史記趙世家.
在君禮之而已 亦何謂無人焉이리오
【集論】愚按 夫子曰 이라하고
夫子之言 涵容하고 孟子之言 激切이라
大槪忠臣義士 何代無之리오마는 在上之人 有以感召之하면 則在下之人 興起矣
太宗 嘉古之忠臣하여 以爲今覓此人하면 恐不可得이라하니
斯言 固所以激勸天下忠義之士
而謂世無其人이면 則不可 宜魏徵引智伯豫讓之事하여 以爲譬也
雖然이나 爲人臣者之分 君之待我者 或有未至라도 而我之所以事君者 其可不盡心乎


정관貞觀 11년(637)에 태종太宗시신侍臣에게 말하였다.
이적夷狄위 의공衛 懿公注+위 의공衛 懿公은 이름이 이다. 살해한 뒤 그 살을 모두 먹고 간만 남겨두었는데,
위 의공의 신하 홍연弘演이 하늘을 우러러보고 크게 통곡을 한 뒤 자신의 간을 적출하고 그 뱃속에 위 의공의 간을 집어넣었소.注+(들이다)은 읽기를 으로 한다.
지금 이런 사람을 찾는다면 아마 만날 수 없지 않을까 싶소.”
특진特進 위징魏徵이 대답하였다. “옛날에 예양豫讓지백智伯의 원수를 갚기 위해注+(위하다, 때문에)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예양豫讓지백智伯의 신하이다. 지백智伯은 이름이 이며 양자襄子라 불린다. 나라 지선자智宣子의 후예인데, 에게 멸망당했다. 조양자趙襄子를 죽이려 했는데注+조양자趙襄子는 이름이 무휼無恤이며, 나라 조간자趙簡子의 후예이다., 조양자趙襄子가 그를 붙잡은 뒤 이르기를,
‘그대가 지난날 범씨范氏중항씨中行氏를 섬기지 않았는가.注+춘추시대春秋時代나라에 범씨范氏중항씨中行氏가 있었는데 지씨智氏한씨韓氏위씨魏氏조씨趙氏와 함께 육경六卿이 되었다. 춘추 말기에 나라의 공실公室은 힘이 약해지고 육경은 힘이 강해져서 제각기 채지采地를 근거로 삼아 서로 공격했다. 정정왕貞定王 11년(B.C.458)에 지씨智氏한씨韓氏조씨趙氏위씨魏氏가 함께 범씨范氏중항씨中行氏를 공격해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눠 가졌다. 지백이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는데, 그대가 지백에게 몸을 바쳐서는 그들의 원수를 갚지 않고, 지금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자,
예양이 대답하기를, ‘신이 지난날 범씨와 중항씨를 모실 때 범씨와 중항씨가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우해서 나도 보통 사람으로 보답한 것이고, 지백은 국사國士로 나를 대우해서 나도 국사로 보답한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注+관련 내용이 《사기史記》 〈조세가趙世家〉에 보인다.
임금의 예우에 달려 있을 뿐이니, 어찌 사람이 없다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살펴보건대, 공자孔子께서 말하기를 “임금은 신하를 로 부리고 신하는 임금을 충성으로 섬겨야 한다.” 라고 하고,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임금이 신하를 수족처럼 대하면 신하는 임금을 복심腹心처럼 대한다.” 라고 했으니,
공자의 말은 함축적이고 맹자의 말은 격렬하며 절실하다.
충신忠臣의사義士가 어느 시대인들 없으랴마는 위에 있는 사람이 감동으로 부르면 아래에 있는 사람이 일어나게 된다.
태종이 “옛 충신을 가상히 여기며, 지금 이런 사람을 찾으면 아마 만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은 본디 세상에 충성스럽고 의로운 인물을 격려하고 권장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하면 안 되니, 위징魏徵지백智伯예양豫讓의 고사를 인용하여 비유로 든 것은 마땅한 것이다.
비록 그러나 신하의 분수에 있어서는 임금이 나를 대한 것이 더러 미진한 바가 있다고 해도 내가 임금을 섬기는 것에 있어서는 마음을 극진히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역주
역주1 弘演 : 春秋時代 衛 懿公의 忠臣으로, 그가 타국에 사신으로 가 있는 동안 狄人이 쳐들어와서 毅公을 살해하고는 살을 다 먹어버리고 肝만 남겨놓았다. 홍연이 돌아와서 의공의 간을 향해 復命한 다음, 자신의 배를 갈라 뱃속을 모두 비우고는 의공의 간을 자기 뱃속에 넣고 죽었다고 한다. 《呂氏春秋》 권11 〈忠廉〉 참조.
역주2 豫讓 爲智伯報仇 : 豫讓이 원수 갚은 일은 《史記》 〈刺客列傳〉에 보인다.
역주3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 《論語》 〈八佾〉에 보인다.
역주4 君之視臣如手足 則臣視君如腹心 : 《孟子》 〈離婁 下〉에 보인다.

정관정요집론(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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