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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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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年 太宗謂侍臣曰 帝王之業 草創與守成 孰難注+守成, 亦作, 後同.
尙書左僕射注+尙, 音常. 射, 音夜. 凡言尙書僕射, 竝同. 僕射, 秦官. 古者重武官, 有主射以督課, 取其領事之號也. 唐制, 尙書省置左‧右僕射, 掌統理, 爲令之貳. 令闕則總省事, 宰相職也.注+詳見任賢篇.對曰
天地草昧注+易屯卦彖傳曰 “天造草昧.” 草, 雜亂. 昧, 冥晦也. 群雄競起하여 攻破乃降注+下江切.하고 戰勝乃剋하니 由此言之인댄 草創爲難하니이다
魏徵對曰
帝王之起 必承衰亂이라 覆彼昏狡하고 百姓樂推注+樂, 音洛.하여 四海歸命하니 하여 乃不爲難하니이다
然旣得之後 志趣驕逸하니 百姓欲靜而徭役不休하고 百姓凋殘而侈務不息하니이다
國之衰弊 恒由此起注+恒, 胡登切, 常也.하니 以斯而言인댄 守成則難하니이다
太宗曰
玄齡 昔從我定天下하여 備嘗艱苦하고 出萬死而遇一生하니 所以見草創之難也 魏徵 與我安天下일새 慮生驕逸之端하여 必踐危亡之地하니 所以見守成之難也
今草創之難 旣已往矣하니 守成之難者 當思與公等愼之注+係十二年, 又云 “玄齡等拜曰 ‘陛下及此言, 四海之福也.’”하노라
【集論】范氏祖禹曰
自古 創業而失之者寡하고 守成而失之者多
故禍亂未嘗不生於安逸也
然非特創業之君守成爲難이요 其後嗣守成尤難也
創業之難 雖庸人이라도 亦知其然이어니와 守成之難 雖明者라도 亦有所忽이라
是以 文帝之世 하고 太宗之世 魏徵 有失於安逸之戒하니라
唐氏仲友曰
太宗之問 房魏之對 更爲本末이라
若言創業易인댄 太宗身更其難하니 此不可罔이요
若言守成易인댄 太宗必謂難者 吾猶身濟之라하여 怠忽生矣
太宗 悟二臣之意하고 加謹於守成之難하니 明哉인저
愚按 自古 人君 創業守成 鮮有身兼之者
周武漢高 創業者也 而不及守成하고 成康文景 守成者也 而不及創業이라
惟神禹 在帝位十年이요 成湯在帝位十三年이니 兼創業守成之事者也
然以書傳攷之하면 禹不以爲難하고 而以爲難하며 湯不以爲難하고 而以爲難하니 豈創業果易하고 而守成果難乎
蓋創業 逆境也 可以進德하고 守成 順境也 易以喪德이라
太宗 身兼創業守成之事하여 不以其已能者自滿하고 而以其未能者爲懼하니 其致貞觀之治也 宜哉로다


정관貞觀 10년(636)에 태종太宗이 근신에게 말하였다. “제왕帝王의 사업은 창업創業수성守成 중에 어느 것이 더 어렵소?”注+수성守成은 또한 수문守文(법도를 지킨다)으로 되어 있다. 뒤에도 같다.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注+은 음이 이고, 는 음이 이니, 상서복야尙書僕射를 말할 때에는 모두 같다. 복야僕射나라 관직이다. 옛날에 무관武官을 중시하여 활쏘기를 주로 하여 시험하였으니, 관장하는 일을 취하여 호칭으로 삼은 것이다. 나라 제도에 의하면 상서성尙書省에는 좌복야左僕射우복야右僕射를 두어 육관六官을 다스림을 관장하니 상서령尙書令의 다음 지위이다. 상서령이 결원되면 상서성의 일을 총괄하니, 재상宰相의 직책이다.房玄齡이注+방현령房玄齡은〉 본서 제3편 〈논임현論任賢〉에 자세히 보인다. 대답하였다.
“세상이 크게 어지러울 때에는注+주역周易둔괘屯卦단전彖傳〉에 말하기를 “천운天運이 뒤섞여 어둡다.”라고 하였으니, 는 뒤섞여 어지럽다는 뜻이고, 는 어둡다는 뜻이다. 여러 영웅들이 다투어 일어나서 공격해 격파하면 항복하고注+(항복하다)은〉 의 반절이다. 싸워 이기면 복종하니, 이것으로 말한다면 창업이 더 어렵습니다.”
위징魏徵이 대답하였다.
제왕帝王이 군대를 일으킴은 반드시 쇠퇴하고 혼란한 뒤를 이어받기 때문에 어리석고 흉악한 자들을 멸망시키고 백성들이 즐겁게 추대하여注+(즐겁다)은 음이 이다. 온 세상이 귀의하니, 하늘이 주고 백성들이 주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하를 얻고 난 뒤에는 뜻이 교만 방자해지니, 백성들이 조용히 지내고 싶어도 요역徭役이 그치지 않고 백성들이 쇠약해졌는데도 과도한 공사가 그치지 않습니다.
국가의 쇠퇴가 항상 이로 말미암아 비롯되니,注+의 반절이니, 항상이라는 뜻이다. 이것으로 말한다면 수성守成이 더 어렵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방현령은 과거에 나를 따라 천하를 평정하였으므로 고생을 겪고 누차 죽을 고비를 벗어나 한 번 살 길을 만났으니 창업의 어려움을 아는 까닭이요, 위징魏徵은 나와 함께 천하를 안정시켰으므로 교만 방자의 실마리가 생겨서 반드시 위망의 처지에 이를까 우려하니 수성의 어려움을 아는 까닭이오.
현재 창업의 어려움은 이미 지나갔으니 수성守成의 어려움을 마땅히 공들과 신중히 대응해야 할 것이오.”注+살펴보면 《자치통감資治通鑑정관貞觀 12년(638)에 또 말하였다. “방현령房玄齡 등이 절하면서 ‘폐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사해四海의 복입니다.’라고 하였다.”
【集論】范祖禹가 말하였다.
“예부터 창업創業하여 잘못된 이는 적고 수성守成하여 잘못된 이는 많았다.
주공周公이 말하기를 ‘소인小人을 살펴보면 부모가 농사에 애쓰는데도 아들은 농사의 어려움을 모른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화란禍亂은 안일함에서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나 창업한 임금이 수성守成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그 후사가 수성守成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다.”
임지기林之奇가 말하였다.
창업創業의 어려움은 비록 용렬한 사람이라도 그런 이치를 알지만 수성守成의 어려움은 비록 명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소홀히 여긴다.
나라 선왕宣王은 6월에 군사를 출동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으나 말년에는 뜰에 횃불을 놓아 새벽 일찍 조회를 보는 것을 어렵게 여겼고, 나라 고제高帝(劉邦)는 계획을 좋아하고 듣기를 잘하여 간언을 따르기를 둥근 물건을 굴리듯 쉽게 하였으나 말년에는 태자太子를 바꾸려고 하여 말을 듣는 것을 매우 어렵게 여겼다.
그러므로 나라 문제文帝 시대에는 가의賈誼가 쌓아놓은 나무 밑에 불을 놓아둔 것 같이 위태롭다는 말을 하였고, 태종太宗 시대에는 위징魏徵이 안일함 때문에 잘못된다는 경계를 하였다.”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태종太宗의 질문은 화복禍福의 기틀이고, 방현령房玄齡위징魏徵의 대답은 다시 본말本末이 된다.
만일 창업이 쉽다고 말한다면 태종은 몸소 그 어려움을 겪었으니 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수성이 쉽다고 말한다면 태종은 반드시 ‘어려움을 내가 오히려 몸소 구제하였다.’라고 하여 나태한 마음이 홀연히 일어날 것이다.
태종이 두 명 신하의 뜻을 알아차리고 수성의 어려움에 더욱 신중하였으니 명철하구나.”
내가 살펴보건대 예부터 임금 중에 창업創業수성守成을 몸소 겸한 이는 적었다.
나라 무왕武王나라 고조高祖는 창업한 사람이지만 수성에는 미치지 못하였고, 나라 성왕成王강왕康王나라 문제文帝경제景帝는 수성한 사람이지만 창업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신우神禹(禹의 존칭尊稱)는 재위 기간이 10년이었고, 성탕成湯은 재위 기간이 13년이었으니, 창업과 수성의 일을 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서경書經》 〈하서夏書 우공禹貢〉으로 살펴보면 임금은 물을 다스리며 땅을 구획하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고 근본이 견고해야 나라가 편안한 일을 어려워하였으며, 임금은 로부터 올라가 걸왕桀王을 정벌하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고 이에 성실하게 해야 또한 잘 끝맺을 수 있는 일을 어려워하였으니, 어찌 창업이 과연 쉬운 일이며 수성이 과연 어려운 일이겠는가.
창업은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지만 을 진취시킬 수 있고, 수성은 순리를 따르는 일이지만 을 잃기 쉽다.
태종太宗은 자신이 창업과 수성의 일을 겸하여 이미 이룬 것을 스스로 만족해하지 않고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였으니 정관貞觀의 치적을 이룬 것이 마땅하구나.


역주
역주1 房玄齡 : 578~648. 李世民의 측근으로서 太子 李建成을 제거하는 玄武門의 變을 획책하여 성공하였다. 이세민이 즉위하자 中書令이 되고 뒤에 梁國公이 되었다. 재상을 10여 년 동안 맡아보면서 큰 업적을 남겨, 杜如晦와 함께 房杜로 불렸다. 太宗의 신임이 지극하여 고구려 정벌 때는 長安에 남아 성을 지켰다. 시호는 文昭이다.
역주2 天授人與 : 천하의 소유는 하늘이 주고 백성들이 주는 것을 말한다. 萬章이 孟子에게 천하는 누가 주는 것이냐고 묻자, 맹자가 “하늘이 주고 백성들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天子가 天下를 남에게 주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天與之 人與之 故曰天子不能以天下與人]”라고 하였다. 《孟子 萬章 上》 ‘天授’는 《孟子》의 ‘天與’를 바꾸어 쓴 것이다.
역주3 守文 : 본서 72쪽 역주38) 참조.
역주4 六官 : 六部 尙書의 總稱이고, 六部는 吏部‧戶部‧禮部‧兵部‧刑部‧工部이다.
역주5 通鑑 : 《資治通鑑》 권195 唐紀 11 太宗에 보인다.
역주6 相小人……稼穡之艱難 : 부모의 고통을 모르고 안일한 것을 말한다. 《書經》 〈周書 無逸〉에 “小人들을 살펴보면 그 父母가 농사에 애쓰는데도 그 자식들은 농사의 어려움을 모르고 안일하게 지내며 속된 말이나 하며 허탄하다.[相小人 厥父母勤勞稼穡 厥子乃不知稼穡之艱難 乃逸 乃諺 旣誕]”라고 하였다.
역주7 林氏之奇 : 1112~1176. 林之奇는 宋나라 사람으로, 進士 출신이다. 관직이 校書郞에 이르렀으며, 王安石의 《三經義》를 邪說이라고 반박했다. 呂祖謙의 스승이며, 시호는 文昭이다.
역주8 周宣王 六月出師 : 周나라 宣王 때 玁狁이 침략하여 宣王이 尹吉甫에게 명하여 6월에 군사를 출동한 일을 말한다. 《詩經》 〈小雅 六月〉에 “6월에 서둘러서 戎車를 이미 정돈하여……王이 이에 출정하여 王國을 바로잡으라 하니라.[六月棲棲 戎車既飭……王于出征 以匡王國]”라고 하였다.
역주9 庭燎鄉晨以視朝 : 이는 《詩經》 〈小雅 庭燎〉에 보이는데, 그 小序에 “庭燎는 宣王을 찬미한 것이고, 이어서 경계시킨 것이다.[庭燎 美宣王也 因以箴之]”라고 하였다. 그리고 小序의 鄭玄 箋에 “美는 선왕이 정무에 스스로 근면함을 찬미한 것이다. 因以箴은 선왕이 鷄人(궁중의 시간을 알리는 사람)의 관원을 두어 모든 국가 일에 시기가 되면 시간을 고하였는데 선왕은 관원을 바로잡아 다스리지 않고 밤 시간이 이른지 늦은지를 물었던 것이다.[美者 美其能自勤以政事 因以箴者 王有鷄人之官 凡國事為期 則告之以時 王不正其官而問夜早晚]”라고 하고, 그 孔穎達 疏에 “因以箴之는 왕이 훌륭하기는 하지만 실수가 있으니, 이 실수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병을 치료할 때에 針이 필요한 것과 같음을 말한다.[因以箴之者 言王雖可美 猶有所失 此失須治 若病之須箴]”라고 하여, 근면한 훌륭함은 있으나 관원을 올바르게 다스리지 않은 실수가 있다고 하였다.
역주10 漢高帝……從諫若轉圜之易 : 《漢書》 〈梅福列傳〉에 “高祖는 좋은 말을 받아들이기를 마치 부족한 듯이 하였고, 간언을 따르기를 둥근 물건을 굴리듯 쉽게 하였으며 말을 듣는 데에 능함을 구하지 않고, 공이 있는 이를 등용하는 데에는 지난 과거를 따지지 않았다.[高祖納善若不及 從諫若轉圜 聽言不求其能 舉功不考其素]”라고 하였다.
역주11 欲易太子 以聽言爲甚難 : 漢 高祖가 태자를 바꾸려 하자 張良이 계책을 내어 商山四皓를 불러들여 태자를 侍衛하게 하였다. 고조는 “내가 태자를 바꾸려 하였으나 저 네 사람이 보좌하여 날개가 이미 갖추어졌으니 동요하기 어렵다.[我欲易之 彼四人輔之 羽翼已成 難動矣]”라고 하고서 바꾸려는 뜻을 접었다. 《史記 留侯世家》
역주12 賈生有厝火積薪之言 : 《漢書》 〈賈誼列傳〉에 “불을 안아다가 쌓아놓은 나무 섶 아래에 놓아두고 그 위에서 자면서 불이 미처 타오르기 전에 그것이 편안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지금의 형세가 무엇이 이와 다르겠습니까.[夫抱火厝之積薪之下 而寢其上 火未及燃 因謂之安 方今之勢 何以異此]”라고 하였다.
역주13 禍福之機 : 機는 쇠뇌의 격발장치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契機(기틀)를 의미한다. ‘禍福의 기틀’은 화와 복이 일어나는 기틀을 의미한다.
역주14 治水敷土 : 禹가 물을 다스리고 토지를 구획한 것을 말한다. 《書經 夏書 禹貢》
역주15 本固邦寧 :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든든해야 나라가 편안함을 말한다. 《書經 夏書 五子之歌》
역주16 升陑(이)伐桀 : 《書經》 〈商書 湯誓〉의 小序에 “伊尹이 湯을 보좌하여 桀을 정벌할 적에 陑로부터 올라갔다.[伊尹相湯伐桀 升自陑]”라고 하였다. 陑는 河曲 남쪽에 있는 땅 이름이다.
역주17 時忱克終 : 《書經》 〈商書 湯誥〉에 “부디 능히 이에 성실하게 해야 또한 잘 끝맺음이 있을 것이다.[尙克時忱 乃亦有終]”라고 하였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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