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범례 |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魏徵曰 禮云 戒愼乎其所不睹하며 恐懼乎其所不聞注+⑮ 恐懼乎其所不聞:中庸首章之辭.이라하고
위징魏徵이 말하였다. “《예기禮記》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며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한다.’고 하였고注+중용中庸수장首章의 말이다.,
詩云 愷悌君子 無信讒言이어다 讒言罔極하여 交亂四國注+⑯ 愷悌君子……交亂四國:詩小雅靑蠅篇之辭.이라하고
시경詩經》 〈소아小雅 청승靑蠅〉에 이르기를 ‘화락하고 단아한 군자여, 참언을 믿지 말라. 참언은 끝이 없어서, 사방의 나라를 교란시킨다.’고 하였습니다.注+시경詩經》 〈소아小雅 청승靑蠅〉의 말이다.
又孔子曰 注+⑰ 惡利口之覆邦家:惡, 烏去聲.라하시니 蓋爲此也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사악하고 그럴듯하게 꾸미는 말이 나라를 전복시킴을 미워한다.’고 하였으니注+(미워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대개 이 때문입니다.
臣嘗觀自古有國有家者하니 若曲受讒譖하여 妄害忠良이면 必宗廟丘墟하고 市朝霜露矣하니 願陛下深愼之하소서
신이 일찍이 예로부터 나라를 소유하고 집안을 소유한 자를 살펴보니 참소하는 말을 잘못 받아들여서 충성하며 선량한 자를 함부로 해쳤으면 반드시 종묘는 폐허가 되고 시장과 조정은 〈인적이 없어〉 서리와 이슬에 젖었습니다. 원하건대 폐하께서는 깊이 삼가시길 바랍니다.”
【集論】愚按 自古讒邪之爲惑 人主非有知人之明하여 不能辨也
내가 살펴보건대, 군주가 옛날부터 참소와 간사함으로 미혹된 것은 사람을 아는 밝음이 있지 못하여 제대로 분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太宗援據古今하여 以責望於其臣한대 魏徵敷述經訓하여 以致戒於其君하니 可謂極君臣之契하여 讒邪無得而間矣
태종太宗이 옛날과 지금에 근거하여 그 신하들에게 책망하자, 위징魏徵이 경서의 훈계를 진술하여 그 임금에게 경계하기를 지극히 하니, 군신간에 합치된 것이 지극히 하여 참소와 간사함이 그 사이를 이간하지 못한다고 말할 만하다.
厥後 有毁徵阿黨者하니 使溫彦博按之한대 雖足以直徵之枉이나 而左右之爲讒者 竟不聞顯正其罪하니 固非止讒之道
그 후에 위징이 아첨했다고 헐뜯은 자가 있자 온언박溫彦博에게 그것을 조사하게 하였다. 비록 위징의 억울함을 펼 수 있었으나 참소한 측근의 죄를 끝내 드러내 바로잡았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진실로 참소를 그치게 하는 방법이 아니다.
위징이 죽은 뒤에 두정륜杜正倫이 내쫓김으로 인하여 태종은 다시 위징이 아첨했는지 의심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한 번 싹트자, 위징을 참소하는 말이 대번에 들어왔다.
謂徵錄諫辭示史官하여 有賣己直彰君過之意者 遂有停婚仆碑之令하니 何不察之甚邪
태종은 생각에 위징이 간언 기록을 사관에게 보여주면서 자기의 정직을 선전하고 임금의 과실을 드러내려는 뜻이 있었다고 하여 마침내 위징의 아들과 혼인을 정지하고 위징의 비석을 쓰러뜨리라는 명령을 내렸으니, 어찌 살피지 않음이 심한 것인가.
使太宗他日無런들 尙得爲明主乎 信夫知人之難也
태종이 뒷날 요동遼東을 정벌한 후회가 없었다면 명철한 임금이 될 수 있었겠는가. 진실로 사람을 알기는 어렵다.
역주
역주1 惡利口之覆邦家 : 《論語》 〈陽貨〉에 보인다.
역주2 及徵之卒……遂有停婚仆碑之令 : 魏徵이 일찍이 中書侍郞 杜正倫과 吏部尙書 侯君集을 추천하였는데, 위징이 죽고 난 후 두정륜은 죄를 지어 축출되고 후군집은 반역죄를 범해 주벌되었다. 太宗이 이에 비로소 위징이 阿黨했다고 의심하였으며, 위징이 또 전후에 간쟁했던 내용과 주고받은 말을 기록하여 史官인 褚遂良에게 보여준 것을 알고는 더욱 기분 나빠하였다. 이전에 위징이 위독할 때 태종이 병문안 가서 자신의 딸 衡山公主와 위징의 아들 魏叔玉을 맺어주자고 약조하고 그의 사후에 손수 비문을 지어 비석을 세워주었었는데, 위징을 의심하게 되면서 이 혼사를 파기하고 비석을 쓰러뜨렸다. 《舊唐書 권71 魏徵列傳》
역주3 征遼東之悔 : 太宗이 高句麗 정벌을 실패하고 뉘우치며 魏徵을 다시 추모한 일을 말한다. 태종이 위징의 비석을 쓰러뜨리고, 얼마 뒤에 고구려 정벌을 나갔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돌아오면서 “위징이 만약 있었더라면 내가 이 출정을 하였겠는가.[魏徵若在 吾有此行邪]” 하고는 역마를 달려 보내어 少牢로 위징을 제사하고 쓰러뜨렸던 비석을 도로 세우게 하였다. 《新唐書 魏徵列傳》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