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百姓承喪亂之後하여 比於隋時에 纔十分之一하여 而供官徭役이 道路相繼하고 兄去弟還하여 首尾不絶이라 遠者往來五六千里하여 春秋冬夏에 略無休時하니
陛下雖每有恩詔하사 令其減省이나 而有司作旣不廢하여 自然須人하니 徒行文書요 役之如故라
臣每訪問할새 四五年來에 百姓頗有怨嗟之言하니 以陛下不存養之라하니
昔唐堯는 茅茨土階요 夏禹는 惡衣菲食하니 如此之事는 臣知不復可行於今어니와
漢文帝惜百金之費
하여 輟露臺之役
하고 集上書囊
하여 以爲殿帷
하고 所幸夫人
注+⑧ 所幸夫人:愼夫人也.은 衣不曳地
하고
至景帝하여 以錦繡綦組妨害女工으로 特詔除之하니 所以百姓安樂이러니
至孝武帝에 雖窮奢極侈나 而承文景遺德이라 故人心不動하니 向使高祖之後에 卽有武帝면 天下必不能全하리니
此於時代
에 差近
하여 事跡
을 可見
이라 今京師及益州諸處
注+⑨ 今京師及益州諸處:益州, 今仍舊隸四川.에 營造供
注+⑩ 營造供:平聲.奉器物
과 幷諸王妃主服飾
을 議者皆不以爲儉
하니
陛下少處人間
注+⑪ 陛下少處人間:少, 去聲. 處, 上聲.하여 知百姓辛苦
하고 前代成敗
를 目所親見
이로되 尙猶如此
어든
而皇太子生長
注+⑫ 皇太子生長:長, 音掌.深宮
하여 不更
注+⑬ 不更:平聲.外事
하시니 卽萬歲之後
는 固聖慮所當憂也
니이다
지금 백성들은 혼란의 뒤를 이어 수隋나라 때에 비교하면 인구가 겨우 10분의 1 정도여서 관청의 요역徭役 가는 이가 도로에서 서로 이어지고 형이 가면 동생이 돌아와서 앞과 뒤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먼 곳은 왕복 5, 6천 리나 되어 봄‧여름‧가을‧겨울에 조금도 쉴 때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비록 은혜로운 조서를 내리실 때마다 부역을 줄이라는 명령을 하시지만 유사有司가 공사를 그만둘 수 없어서 자연히 사람들이 필요하니, 〈부역을 줄이라는 명령은〉 한갓 문서로만 시행되고 부역은 예전과 같습니다.
신이 물어볼 때마다 4, 5년간에 백성들은 꽤 원망과 탄식을 하는 말이 있으니 폐하께서 백성을 마음 써서 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옛날 당요唐堯는 띠로 이은 지붕에 흙 계단으로 된 집에서 살았고, 하夏나라 우禹임금은 소박한 의복과 변변치 않은 식사를 하였으니, 이와 같은 일은 신이 지금에 다시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문제漢 文帝는
백금百金의 비용을 아까워하여
노대露臺의 부역을 그치게 하고
상소上疏한 자루를 모아 궁전의 휘장으로 사용하고 총애한
신부인愼夫人은
注+〈부인夫人은〉 신부인愼夫人이다. 옷을 짧게 하여 땅에 끌리지 않았습니다.
경제景帝에 이르러 아름답게 수놓은 비단옷과 비단 끈이 부녀자의 길쌈을 방해함으로 특별히 조서를 내려 폐지하였으니, 백성들은 안락하게 된 까닭입니다.
효무제孝武帝에 이르러 비록 사치가 극심하게 되었으나, 문제와 경제가 남긴 덕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인심이 동요하지 않았으니, 만약 한 고조漢 高祖 이후에 바로 무제武帝가 있었다면, 천하는 반드시 온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는 지금 시대와 가까워서 일의 자취를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경사京師와
익주益州 등 여러 곳에서
注+익주益州는 지금 옛날 그대로 사천四川에 예속되었다. 만들어 왕실에 바치는
注+〈공供(제공하다)은〉 평성平聲이다. 기물과 여러 왕비와 공주의 옷을 의론하는 자들은 모두 검소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신이 듣기에 이른 새벽에 일어나 큰 업적業績을 드러내기를 생각하더라도 후대後代의 자손은 오히려 게을러질까 염려하고, 이치에 맞게 법을 만들더라도 잘못되면 어지러워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젊어서 민간에 살아서
注+소少(젊다)는 거성去聲이다. 처處(처하다)는 상성上聲이다. 백성의 고통을 알고 계시고 전대의 성공과 실패를 눈으로 친히 보셨는데도 오히려 이와 같습니다.
황태자는 깊은 궁궐에서 성장하여
注+장長(성장하다)은 음音이 장掌이다. 갱更(바꾸다)은 평성平聲이다. 궁 밖의 일을 경험하지 못하셨으니
注+〈갱更(경험하다)은〉 평성平聲이다., 만세 후의 일은 진실로 폐하께서는 근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