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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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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太宗笑曰
태종太宗이 웃으며 말하였다.
外人意見 或當如此
“외부인들의 생각은 그럴 수도 있을 것이오.
然朕之所言 未能使人必信이로다
하지만 짐이 말한 것을 사람들에게 반드시 믿게 할 수는 없을 것이오.”
乃出勅曰
마침내 칙서를 내려 말하였다.
今聞鄭氏之女 先已受人禮聘이요
“지금 들으니 정씨鄭氏의 딸이 앞서 이미 다른 사람의 빙례聘禮(혼인례)을 받았다고 한다.
前出文書之日 事不詳審하니 此乃朕之不是 亦爲有司之過
앞서 문서를 낼 때 그 사실을 상세히 살피지 못하였으니 이는 짐의 잘못이기도 하고 또한 유사有司의 과오이기도 하다.
授充華者宜停하라하니
충화充華를 임명하도록 한 일을 멈추도록 하라.”
時莫不稱歎하다
그러자 당시 칭찬하고 찬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集論】朱氏黼曰
【集論】朱黼가 말하였다.
人主 以改過爲德하고 而以恥過作非爲戒하며 人臣 以格非爲職하고 而以順非逢惡爲罪
“임금은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으로 삼고 허물을 부끄러워하여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경계로 삼으며, 신하는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직분으로 삼고 잘못에 순응하여 악행에 영합하는 것을 죄로 삼는다.
태종太宗이 일찍이 말하기를 ‘지난 세대의 제왕들이 간언을 거부한 경우가 많아서 혹은 「이미 했다.」라고 하거나, 「이미 허락했다.」라 하고 끝내 잘못을 고치지 않았으니, 이렇게 하고도 위태롭고 망하지 않으려 한다면 가능하겠는가.’라고 하였다.
是以終身導人使諫하고 從善如流하여 未嘗少有靳吝也
이 때문에 일생 동안 사람들에게 간언하도록 유도하고 을 따르기를 물이 흐르듯이 하여 일찍이 조금도 아끼거나 인색해 한 적이 없었다.
聘陸氏已聘之女 是誠不知而作也 聞魏徵一言하고 遂罪己停冊 可謂更也 人皆仰之矣
이미 빙례聘禮를 치른 육씨陸氏의 딸을 맞이하려 한 것은 참으로 모르고 한 것이고, 위징魏徵의 한마디 말을 듣고 결국 자신을 꾸짖고 책례冊禮를 멈추도록 한 것은 고친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이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이를 우러러 본 것이다.
玄齡輩 一時名臣이나 宜有以將順其美하고 正救其惡하여 有以格君心之非 可也어늘
방현령房玄齡 등은 한 시대의 명신들이었으나 의당 임금의 아름다운 점을 받들어 따르고 임금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구제하여 임금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아야 옳은데도
乃曰大禮旣行이라 不可中止라하니
대례大禮가 이미 시행되었으니 멈출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으니,
雖妾婦所以愛主라도 不當如是어든 況大臣乎
군주를 사랑하는 첩부인妾婦人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대신大臣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太宗 有改過之德하되 而玄齡輩 不免有逢惡之罪하니 若魏徵 其賢矣哉인저
태종은 잘못을 바로잡는 이 있었지만 방현령 등은 악에 영합하는 죄를 면하지 못했으니, 위징이야말로 훌륭한 인물일 것이다.”
愚按 古者 天子 一后 三夫人 九嬪 二十七世婦 八十一御妻 蓋天子所娶之國嫡爲正后하고 庶爲娣媵하여 正后旣終이면 則其娣媵攝行后職이라
내가 살펴보건대, 옛날에 천자天子 1인, 부인夫人 3인, 9인, 세부世婦 27인, 어처御妻 81인을 두었으니, 천자가 아내로 맞은 나라의 적녀嫡女정후正后가 되고 서녀庶女제잉娣媵[媵妾]이 되어 정후가 세상을 떠나면 그 제잉이 정후의 을 대행한다.
故曰 라하니라
그래서 “천자와 제후諸侯는 두 번 장가들지 않는다.”라고 했다.
大抵六宮之職 一定이면 則不可改移 不可增益也어늘
무릇 육궁六宮(皇后의 침궁寢宮)의 직책은 한 번 정해지면 다시 바꿀 수 없고 늘릴 수도 없다.
後世 正家之道 不明하여 正后之立 亦多以色而擧어늘 況妃嬪乎
후세엔 집안을 바르게 하는 가 분명치 않아 정후正后책립冊立도 대부분 용모에 의해 거행되거늘 비빈妃嬪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故姝麗之所在 不遠千里求之하고 雖有夫之婦라도 有不暇恤하니
그래서 아리따운 여인이 있는 곳이면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찾았으며, 비록 남편이 있는 부인이라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以太宗之爲君 文德之爲后로도 亦不能免하고 魏徵之諫 勉强從之而已
태종太宗 같은 임금과 문덕황후文德皇后 같은 이도 이를 면치 못하고, 위징魏徵의 간언을 애써 따를 뿐이었다.
厥後 亦以色選하니 孰知 已兆於此乎리오
그 뒤에 무사확武士彠의 딸이 또한 미모로 선발되었는데, 암탉이 새벽에 우는 재앙이 이미 여기에서 싹틀 줄을 누가 알았으랴.
益之戒舜曰 罔淫於樂이라하고 仲虺之稱湯曰 不邇聲色이라하니 後之人君 亦法乎此而已矣
임금에게 경계하기를 “쾌락에 탐닉하지 마소서.”라 하였고, 중훼仲虺임금에게 일컫기를 “여색을 가까이하지 마소서.”라고 했으니, 훗날 임금들은 이를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역주
역주1 前世帝王拒諫者……欲無危亡 得乎 : 《資治通鑑》 권196 唐紀 12 太宗 貞觀 17년에 보인다.
역주2 天子諸侯不再娶 : 天子不再娶는 《綱目續麟》 권8 延熙 元年에 보이고, 諸侯不再娶는 《春秋公羊傳》 莊公 18년에 보인다.
역주3 士彠(획)之女 : 則天武后를 말한 것이다. 武后는 武士彠의 딸이다.
역주4 牝晨之禍 : 암탉이 새벽에 운다는 뜻이다. 이는 여자가 바깥일을 간섭함을 비유한 것으로 상서롭지 못한 징조를 말한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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