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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4)

정관정요집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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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四年 侯君集平高昌之後 太宗欲以其地爲州縣이어늘 魏徵曰
陛下初臨天下 高昌王先來朝謁이러니
自後數有商胡注+① 自後數有商胡:數, 音朔. 稱其遏絶貢獻하고 加之不禮大國詔使注+② 加之不禮大國詔使:使, 去聲.라하거늘 遂使王誅載加하니
若罪止文泰注+③ 若罪止文泰:高昌王, 姓麴, 名文泰. 斯亦可矣 未若因撫其民而立其子 所謂이니이다
威德被於遐外리니 爲國之善者也
今若利其土壤하여 以爲州縣하면 常須千餘人鎭守하고 數年一易이면 每來往交替 死者十有三四
遣辦衣資하며 離別親戚하여 十年之後 隴右空虛리니
陛下終不得高昌撮穀尺布하여 以助中國하리니
所謂散有用而事無用이라 臣未見其可로소이다
太宗不從하고 竟以其地置西州하고 仍以西州爲安西都護府하고 每歲調發千餘人注+④ 每歲調發千餘人:調, 去聲.하여 防遏其地하다


정관貞觀 14년(640) 후군집侯君集고창국高昌國을 평정한 후에 태종太宗이 그 땅을 주현州縣으로 삼으려 하자 위징魏徵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천하를 다스리던 초기에 고창왕이 먼저 조정에 와서 알현하였습니다.
그 후에는 자주 호상胡商들이注+(자주)은 이다. 말하기를 ‘고창왕이 조공을 가로막고 게다가 대국大國(천자)의 사신을 예우하지 않는다.’라고 하자注+使(사신)는 거성去聲이다., 마침내 천자의 정벌을 행하도록 하였습니다.
만일 죄가 고창왕 국문태麴文泰에게 그친다면注+고창왕高昌王이고, 이름은 문태文泰이다. 그것도 괜찮지만, 그로 인하여 백성들을 위무하고 그 아들을 왕으로 세우는 것만 못하니, 이른바 죄가 있는 군주를 토벌하고 백성을 위로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다면 폐하의 위엄과 덕이 멀리까지 미치게 될 것이니, 이것이 국가를 다스리는 훌륭한 방책입니다.
지금 만일 그 토지를 이롭게 여겨 주현州縣으로 삼으면 항상 1,000여 명으로 진수鎭守해야 하고, 수년에 한 번씩 교대하면 왕래하며 교대할 때마다 죽는 자가 10명에 3, 4명은 될 것입니다.
의복과 물자를 마련하여 보내고 친척과 이별해서 10년 후에는 농우隴右(농산隴山 서쪽 지역) 지방이 텅 비게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결국 고창국의 한 줌의 곡식이나 한 자의 베라도 얻어 중국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이른바 유용한 것을 흩어버리고 무용한 것을 일삼는다는 것이니, 신은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태종은 그 말을 따르지 않고, 마침내 그 땅에 서주西州를 설치하였으며, 이어서 서주에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를 두고 해마다 1,000여 명의 군사를 징발하여注+調(징발하다)는 거성去聲이다. 그 땅을 수비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伐罪弔民 : 《梁書》 〈袁昂傳〉에 보인다.

정관정요집론(4)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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