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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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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禮部尙書江夏王道宗 從太宗征高麗할새 詔道宗與李勣爲前鋒이러니 及濟遼水하여 剋蓋牟城注+① 剋蓋(개)牟城:蓋音盍, 今爲蓋州, 隸鎭東. 逢賊兵大至하니 軍中僉欲深溝保險하여 待太宗至하여 徐進이어늘
道宗議曰 不可하다 賊赴急遠來하니 兵實疲頓이요 恃衆輕我하니 一戰可摧
注+② 昔耿弇(감)不以賊遺君父:弇, 音揜. 耿弇, 漢光武將.러니 我旣職在前軍하니 當須淸道以待輿駕라한대
李勣大然其議어늘 乃率驍勇數百騎하여 直衝賊陣하여 左右出入이어늘 勣因合擊하여 大破之하니 太宗至하여 深加賞勞注+③ 深加賞勞:勞, 去聲. 道宗在陣損足이어늘 帝親爲針灸注+④ 帝親爲針灸:灸, 音救.하고 賜以御膳注+⑤ 禮部尙書江夏王道宗……賜以御膳:按通鑑, 載此事甚詳, 辭多不錄.하다
【集論】范氏祖禹曰 太宗之伐高麗 非獨恃其四海之富 兵力之彊也 本其少時 奮於布衣하여 志氣英果하여 百戰百勝하여 以取天下
治安旣久 不能深思高拱하고 猶思所以逞志하여 扼腕踴躍하여 喜於用兵이라
하여 不能自止하니 非有禮義以養其心하고 中和以養其氣하여 始於勇敢하여 終於勇敢而已矣
記曰 貴於勇敢彊有力者 貴其敢行禮義也 天下無事 則用之於禮義하고 天下有事 則用之戰勝하나니 用之於戰勝하면 則無敵이요 用之於禮義 則順治라하니
太宗於天下無事 不知用之禮義하고 而惟以戰勝爲美也 是故以天子之尊으로 而較勝於遠夷하여 一戰而克 自以爲功하니 其器不亦小哉
愚按 漢耿弇之討張步也할새 弇爲飛矢所中이어늘 光武時在魯라가 知弇爲步所攻하고 自往救之
未至 陳俊謂弇曰 劇虜兵盛하니 可且閉營休士하여 以待上來라하니
弇曰 乘輿且到리니 臣子當擊牛釃酒하여 以待百官이어늘 反欲以賊虜遺君父邪아하고 乃出戰而破之
此與道宗敗高麗兵事正同하니 蓋臣子之義 職當如是也 若道宗者 可謂能盡臣子之義 而弇不得專美於漢矣


예부상서禮部尙書 강하왕江夏王 이도종李道宗태종太宗을 따라 고구려高句麗를 정벌할 적에 조서를 내려 이도종과 이적李勣을 선봉장으로 삼았다. 요수遼水를 건너 개모성蓋牟城(개모성)을注+으로, 지금의 개주蓋州진동鎭東에 속한다. 공격했을 때 적의 대군이 들이닥치니, 군중軍中이 모두 참호를 깊게 하고 요새를 지켜 태종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서히 진격하자고 하였다.
그러자 이도종이 말하였다. “안 되오. 적은 급박한 상황 때문에 멀리에서 왔으니, 병사들이 실제 지쳐 있고 많은 병력만을 믿고서 우리를 얕보고 있으니, 한 번의 전투로 무찌를 수 있소.
옛날에 경감耿弇은 적들을 소탕하여 군주가 무찌를 적을 남겨두지 않았는데注+(가리다)은 이다. 경감耿弇나라 광무제光武帝의 휘하 장수이다., 내가 이미 선봉장의 직임을 맡았으니, 마땅히 앞길에 있는 적을 깨끗이 소탕한 뒤에 황제를 기다릴 것이오.”
이적이 그 말에 크게 찬성하자, 수백의 날랜 기병을 이끌고 곧바로 적진을 들이쳐서 좌우로 휘저었는데, 이적이 연합공격을 하여 크게 적을 격파하니, 태종이 도착하여 특별히 상을 내리고 위로하였다.注+(위로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이도종이 진영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었는데, 태종이 친히 침을 놓고 뜸을 떠주고는注+(뜸을 뜨다)는 이다. 황제 음식을 하사하였다.注+살펴보건대, 《자치통감資治通鑑정관貞觀 19년에 이 일이 아주 자세하게 실려 있는데, 내용이 많아 기록하지 않는다.
범조우范祖禹가 말하였다. “태종太宗고구려高句麗를 정벌한 것은 다만 사해四海의 부유함과 병력의 강함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젊었을 때에 평민의 신분으로 떨쳐 일어나 뜻과 기운이 영명英明하고 과단성이 있어서 백 번 싸워 백 번 이겨 천하를 차지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나라가 다스려지고 편안해져 오랜 시일이 지나자, 깊이 생각하며 팔짱을 낀 채 편히 있지 못하고, 오히려 야심을 펼칠 것을 생각하여 팔뚝을 걷어붙이고 날뛰어 용병用兵을 좋아하였다.
이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던 풍부馮婦가 〈범을 잡던 옛 버릇을〉 스스로 버리지 못한 것과 같으니, 예의禮義로 마음을 기르고 중화中和로 기운을 기르지 못해서 용맹으로 시작하여 용맹으로 끝난 것일 뿐이다.
예기禮記》 〈빙의聘義〉에 이르기를 ‘용감하여 강하고 힘이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예의禮義를 용감하게 실행함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천하에 일이 없으면 이것을 예의禮義에 쓰고, 천하에 일이 있으면 이것을 전승戰勝에 쓰니, 전승戰勝에 쓰면 상대할 자가 없고, 예의禮義에 쓰면 순히 다스려진다.’라고 하였다.
태종은 천하에 일이 없을 때 이것을 예의禮義에 쓸 줄 모르고 오직 전승戰勝만을 아름답게 여겼다. 이 때문에 존귀한 천자의 몸으로 먼 지역 오랑캐와 승부를 겨루어 한 번 싸워 승리하는 것을 스스로 공이라 여겼으니, 그 그릇이 또한 작지 않은가.”
내가 살펴보건대, 나라의 경감耿弇장보張步를 토벌할 적에 경감이 날아오는 화살에 맞았는데, 광무제光武帝가 당시 나라에 있다가 장보의 경감이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직접 가서 구원하려 하였다.
광무제가 도착하기 전에 진준陳俊이 경감에게 말하기를 “극악한 오랑캐 군대가 강성하니, 우선 영문營門을 닫고 군사들을 휴식시키면서 황제가 오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라고 하자,
경감이 말하기를 “황제께서 오실 것이니, 신하로서 소를 잡고 술을 걸러 백관百官을 대접하여야 하거늘, 도리어 적들을 군주에게 남겨 드리고자 하는가.” 라고 하고는 마침내 출전하여 적을 격파하였다.
이는 이도종李道宗고구려高句麗의 군대를 격파한 일과 정말 동일하니, 신하의 의리는 직분상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이도종과 같은 경우는 신하의 의리를 다했다고 할 만하니, 오로지 한나라의 경감만 훌륭한 신하의 예라 할 수는 없다.


역주
역주1 耿弇(감)不以賊遺君父 : 耿弇은 後漢의 光武帝 휘하의 장군이다. 경감이 張步와 싸우고 있을 때 광무제가 경감이 있는 곳으로 구원하러 온다고 하였다. 이때 경감의 군사가 적보다 약하였으므로 陳俊이 경감에게 이르기를, “적병들의 기세가 몹시 왕성하니 군사들을 쉬게 하고서 황제께서 구원하러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경감은 “황제께서 오신다고 하니 신하로서는 소를 잡고 술을 걸러서 백관들을 맞이하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도리어 적들을 황제에게 남겨주려고 한단 말인가.[乘輿且到 臣子當擊牛釃酒以待百官 反欲以賊虜遺君父耶]”라고 하고는, 출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後漢書 권19 耿弇列傳》
역주2 馮婦搏虎 : 이전의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함을 말한다. 晉나라 사람 馮婦가 범을 잘 잡아서 마침내 善士가 되었는데, 어느 날 범이 나타나자 풍부가 다시 팔뚝을 걷어붙이고 수레에서 내려와 잡으려고 하자, 선비들이 그가 옛 버릇을 그칠 줄 모름을 비웃었다. 《孟子 盡心 下》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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