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범례 |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太宗手詔答曰 非慮無以臨下 非言無以述慮 比有談論注+⑫ 比有談論:比, 音鼻.하여 遂至煩多하니
輕物驕人 恐由玆道 形神心氣 非此爲勞 今聞讜言하니 虛懷以改注+⑬ 貞觀十六年……虛懷以改:按通鑑係十八年, 上好文學而辯敏, 群臣言事者, 多引古今以折之, 多不能對. 洎上書云云. 上答之.라하더라
【集論】張氏九成曰 君子以謹密成德하고 而疎直致患이어늘 而況處重之地 可不戒哉
洎每剛直敢言 始以受知라가 終以速禍하니 蓋太宗英明剛武 以取天下하여 挾振矜之態일새니라
雖議論及於群臣이나 而是正之語 或不容下하고 或往復詰難하고 或面折其短하며 才辯自逞하여 氣驕於人이라
夫以 生殺在手하니 非剛直之徒 孰與抗哉
而洎遠引聖人不言 大辯若訥하여 深爲勸戒하니 所以恢寬厚之德하고 獎進言之路
觀其所陳하면 若有優柔樂易之性矣 及其發言處身하여는 或不自慮
夫以太宗之明으로도 竟不深察하니 何知之不審하여 始卒有異乎 抑疑似之詰 有以啓之也
唐氏仲友曰 上執其謙하고 下輸其直하니 此議論之體也 以鯀之不才 堯獨知之 然從之論하니 則人君之言 豈務求勝이리오
太宗以智辯自居하고 往復窮詰하니 此最足以害從諫之美 洎兩言之 切中其病이니 孟子所謂者也
答詔猶有反覆是非之言하니 則太宗自聖之病 頗亦難瘳 賴洎言之不已하여 使太宗許以能改하니 不然其去德豈遠乎哉
獨洎能出하니 此言 不亦賢乎
愚按 劉洎諫疏 想見太宗以英雄之姿 逞神機하고 縱天辯하여 未免有輕物驕人之失이라
儻非能剋己自勵하고 勉强從諫하면 則所謂 由此乎生矣
今聞讜言하니 虛懷以改라하니 其得爲賢君也 宜哉로다


태종太宗이 친히 조서를 써서 답하였다. “생각지 않는다면 아래의 백성을 다스릴 수가 없고 말이 아니면 생각을 표현할 수가 없소. 근래에 담론이 있어注+(근래)는 이다. 마침내 번거로움이 많았소.
사람을 경시하고 교만하게 대하는 것은 아마도 이 말에서 연유된 듯하니, 육체와 정신, 심기心氣가 이처럼 수고롭게 해서는 아니되오. 이제 경의 직언直言을 들었으니 마음을 비워서 고치겠소.”注+살펴보면 《자치통감資治通鑑정관貞觀 18년에 태종太宗문학文學을 좋아하고 말을 민첩하게 잘하여 여러 신하들이 일을 말하는 것에 대부분 고금의 일을 인용하여 꺾으니 신하들이 대부분 대답할 수 없었다. 유계劉洎가 글을 올려 운운하자, 태종이 비백서飛白書로 답하였다.
장구성張九成이 말하였다. “군자는 신중함과 치밀함으로 덕을 이루고 경솔하고 솔직함으로 근심에 이르게 되거늘 하물며 중요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계가 매번 강직하고 과감하게 말할 때마다 처음에는 알아줌을 받다가 끝에는 재앙을 자초하게 되었다. 이는 태종太宗이 영명함과 강한 무용으로 천하를 취하여 오만한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비록 여러 신하에게 의론하게 하였으나, 바로잡는 말을 하면 혹은 아랫사람을 용납하지 않고, 혹은 반복하여 힐난하고, 혹은 면전에서 단점을 꺾었으며, 교묘한 말솜씨를 마음껏 구사하여 남에게 교만한 기운이 있었다.
지척咫尺에 뵈옵는 위엄으로 죽이고 살리는 것을 수중에서 마음대로 하였으니 강직한 무리가 아니면 누가 상대하여 대들겠는가.
그러나 유계는 멀리 ‘성인이 말하지 않는다.’는 것과 ‘대단한 언변은 어눌한 것 같다.’는 것을 인용하여 깊이 권장하고 경계시켰으니 관후한 덕을 넓히고 진언하는 길을 장려한 것이었다.
그 진술한 것을 보면 마치 여유로우며 화락한 성품이 있는 듯하지만, 말을 하고 처신하는 데에 미쳐서는 조금도 자신을 우려하지 않았다.
태종의 명철함으로도 끝내 이를 깊이 살피지 못하였으니, 어찌 아는 것이 자세하지 않아서 처음과 끝에 다름이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반신반의하는 힐난이 그 길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위에서 겸손함을 지니고 아래에서 직언을 바치니 이것은 논의의 대체이다. 이 재주가 없음을 임금은 홀로 알았으나 이 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그만두게 해야 한다는 논의를 따랐으니 임금의 말이 어찌 힘써 이기기를 구하겠는가.
태종太宗이 지혜로움과 언변을 자처하고 반복하여 끝까지 물었으니, 이는 간언의 아름다움을 따르는 데에 가장 해로운 것이다. 유계의 두 가지 말은 태종의 결점을 잘 지적한 것이니 맹자孟子가 말한 ‘천리의 밖에서 사람을 막는다.’라는 것이다.
답변 조서에 오히려 옳고 그름에 대한 말을 반복한 것이 있으니 태종의 성인聖人을 자처하는 병통은 매우 고치기 어려운 것이다. 유계가 끊임없이 간언하였기 때문에 태종이 고치겠다고 허락하게 되었으니 그렇지 않으면 덕과 거리가 어찌 멀어지지 않겠는가.
거울 하나(위징魏徵)가 떠나가자 홀로 유계가 나왔으니 이 말이 또한 어질지 않은가.”
내가 살펴보건대, 유계劉洎의 상소에서 태종太宗이 영웅의 자태를 가지고도 신묘한 기지를 발휘하고 타고난 말재주를 마음껏 구사하여 남을 경시하고 교만하게 대하는 실수를 면하지 못함을 상상해보게 된다.
진실로 사욕을 극복하여 스스로 힘쓰고 노력하여 간언을 따르지 않으면, 이른바 지혜는 간언을 막기에 충분하며 말은 잘못을 꾸미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이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태종이 ‘지금 직언을 들었으니 마음을 비워서 고치겠다.’라고 하였으니, 태종이 어진 임금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역주
역주1 飛白 : 서체의 하나로 筆勢가 나는 듯하고 붓 자국이 비로 쓴 자리같이 보이는 서체이다.
역주2 咫尺之威 : 매우 가까이 있는 임금의 위엄을 말한다. 《春秋左氏傳》 僖公 9년의 “임금의 위엄이 얼굴에서 咫尺도 떨어져 있지 않다.[天威不違顏咫尺]”에서 변형한 것이다.
역주3 試可乃已 : 《書經》 〈虞書 堯典〉에 홍수를 다스릴 자로 四岳이 鯤을 추천하였는데, 堯임금이 하지 못할 것이라고 반대하자 사악이 “그만두더라도 할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고 그만두어야 합니다.[异哉 試可乃已]”라고 하였다.
역주4 拒人於千里外 : 《孟子》 〈告子 下〉에 보인다.
역주5 一鑑旣往 : 諫官 魏徵의 죽음을 말한다. 위징이 죽자 3개 거울 중에서 人鑑을 잃었다고 하여 “지금 위징이 죽고 없으니 하나의 거울이 없어졌다.[今魏徵逝 一鑑亡矣]”라고 하였다. 《舊唐書 魏徵傳》
역주6 智足以拒諫 辯足以飾非 : 《史記》 〈殷本紀〉에 “知足以距諫 言足以飾非”라고 하였다.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