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에 君問臣事君於我어늘 我對以忠貞한대 君曰 何謂也오하야늘
葬死者
하고 養生者
에 하고 生人不愧
는 貞也
니이다호라
吾言旣往矣
니 豈能欲行吾言而又愛吾身乎
아 雖死
나 焉
之
리오
子將何如오 丕鄭曰 荀息謂何오 對曰 荀息曰死之라하더이다
克聞之컨대 夫義者는 利之足也요 貪者는 怨之本也라하니
殺無罪以爲諸侯笑하야 使百姓莫不有藏惡於其心中하니
是故將殺奚齊하고 而立公子之在外者하야 以定民弭憂니
於諸侯且爲援이면 庶幾曰諸侯義而撫之요 百姓欣而奉之면 國可以固니라
賴富而民怨하고 亂國而身殆면 懼爲諸侯載니 不可常也니라 丕鄭許諾하다
旣殺奚齊‧卓子
하고 里克及丕鄭
이 使
告公子重耳於翟
하야
重耳曰 非喪이면 誰代며 非亂이면 誰納我오 舅犯曰
聞之
컨대 喪亂有小大
하니 大喪大亂之剡也
는 不可犯也
니
曰子惠顧亡人重耳
나 父生
에 不得供備
하고 死又不敢莅喪
하야 以重其罪
어늘
苟衆所利
요 鄰國
所立
이요 大夫其從之
면 重耳不敢違
리라
方亂以擾하니 孰適禦我며 大夫無常하니 苟衆所置면 孰能勿從이리잇가
曰天降禍於晉國
하야 讒言繁興
하야 延及寡君
하야 之紹續昆裔
로 隱悼播越
하야 託在草莽
하야 未有所依
하고
以君之靈
과 鬼神降衷
으로 克伏其辜
나 羣臣莫敢寧處
일새 將待君命
하노이다
君若惠顧社稷
하고 不忘先君之好
하야 辱收其逋遷裔冑而建立之
하야 以主其祭祀
하고 且
撫其國家及其民人
이면
雖四鄰諸侯之聞之也라도 其誰不儆懼於君之威하고 而欣喜於君之德이리잇가
反使者
하고 乃告大夫
하야 曰夫晉國之亂
에 吾誰使先
하야 夫二公子而立之
하야 以爲
가 大夫子明曰
父死在堂而求利
면 人孰仁我
며 어늘 我以徼
이면 人孰信我
리오
公子重耳出見使者
하고 曰君惠吊亡臣
하고 又重
하시나 重耳身亡
하야 父死不得與於哭泣之位
하니
又何敢有
하야 以辱君義
리오하고 再拜不
하고 하고 退而
하다
公子縶退하야 吊公子夷吾於梁호대 如吊公子重耳之命한대
公子夷吾出見使者하고 再拜稽首하고 起而不哭하고 退而私於公子縶하야 曰
中大夫里克與我矣
라 吾命之以
하고 嬖大夫丕鄭與我矣
라 吾命之以負
之田七十萬
호라
亡人苟入이면 掃除宗廟하고 定社稷이니 亡人何國之與有리오
亦爲君之東游津梁之上
에 無有難急也
니 으로 以望君之
者
요
黃金四十鎰
과 六雙
은 不敢當公子
요 請納之左右
하노라
公子縶反하야 致命穆公한대 穆公曰 吾與公子重耳하노라
再拜不稽首
하니 爲後也
오 起而哭
하니 愛其
요 退而不私
하니 不
於利也
니라 公子縶曰
君若求置晉君以成名於天下
인댄 則不如置不仁
하야 以滑其中
하야 且可以
니이다
95. 이극里克이 해제奚齊를 시해弑害하자 진秦나라가 혜공惠公을 진晉나라의 군주로 세우다
【大義】晉獻公이 죽은 뒤 승계 문제를 둘러싼 晉나라 안의 세력, 망명 중인 公子들의 쟁탈, 주도권을 쥐고 있는 秦나라의 속셈이 相衝하는 속에 利權에 눈이 먼 추악한 현실 정치.
활滑 : 사부비요본四部備要本에는 ‘활猾’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왈曰〉 : 사부비요본四部備要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이극里克이 해제奚齊를 시해弑害하려면서 먼저 순식荀息에게 고하기를 “세 공자公子를 따르는 무리가 유자孺子(奚齊)를 시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앞으로 어떻게 하겠소?” 하니, 순식이 대답하였다.
“우리 군주가 이제 죽었는데 그 어린 자식을 시해한다면 나에게 죽음이 있을 뿐 나로서는 결코 따를 수 없소.”
이극이 말하기를 “그대가 죽어 유자孺子가 왕위에 설 수 있다면 죽는 것도 또한 옳지 않은가?
그러나 그대가 죽더라도 유자가 폐출된다면 어찌 죽을 일이겠소?” 하니, 순식이 말하였다.
“전날에 임금께서 나에게 신하의 임금 섬기는 도리를 물으시기에, 내가 충忠과 정貞이라고 대답하였더니, 임금께서 ‘무엇을 이르는 말이냐?’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국가의 왕실王室에 이로울 수 있다면 내 힘으로 능히 할 수 있는 바를 다하는 것은 충忠이고,
죽은 자를 장사 지내고 산 사람을 봉양한 일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와도 〈부탁하고 죽었던 것을〉 후회하지 않고, 산 사람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은 정貞입니다.’ 하였소.
내가 이미 이런 말을 공표했는데 어찌 내가 한 말을 실천하고자 하면서 또한 이 몸을 아끼겠으며,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어찌 그것을 회피하겠소.”
이극里克이 비정丕鄭에게 고하기를 “세 공자公子를 따르는 무리가 유자孺子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앞으로 어떻게 하겠소?” 하니, 비정이 말하기를 “순식荀息은 뭐라 말하였소?” 하자, 대답하기를 “순식은 죽을 것이라고 하였소.” 하였다.
비정이 말하기를 “그대는 노력하도록 하십시오.
두 국사國士가 도모하는 일은 시행되지 않은 적이 없소.
칠여대부七輿大夫를 거느리고 나의 호응을 기다리도록 하십시오.
내가 적翟에 가서 군대를 동원시키고 진秦나라의 원조를 받아 해제奚齊의 무리를 흔들어 놓겠소.
그리고서 왕위 계승권에서 소원한 자를 세운다면 많은 뇌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왕위 계승권과 가까운 자들을 입국入國할 수 없게 만든다면, 나라는 누구의 국가가 되겠소?”라고 하니, 이극이 말하기를 “옳지 않소.
나는 들으니, 무릇 의로움은 이익을 발생시키는 발[足]이고, 탐욕은 원망의 근본이라 하였소.
의로움을 팽개쳐 버린다면 이익은 성립되지 않고, 너무 큰 탐욕을 부리면 원망이 생겨납니다.
무릇 유자孺子(공자公子들)가 백성에게 무슨 죄를 지은 것이 있습니까?
다만 여희驪姬가 임금의 마음을 고혹蠱惑시키고, 나라 사람들을 속였으며,
뭇 공자公子들을 참소하여 그들의 권익을 빼앗았으며,
임금으로 하여금 제정신을 잃고 혼란에 빠져 그의 말을 믿고 공자들을 망명시키도록 하였고,
죄 없는 〈신생申生〉을 죽이도록 하여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되게 하고 백성들 마음속에 악한 마음을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 없게 만들었소.
마치 큰 내를 막아놓은 것과 같아서 둑이 무너져 내려 막아낼 길이 없게 될까 두렵소.
이런 연유에서 장차 해제奚齊를 죽이고 공자들 중 외국에 나가 있는 자를 세워서 백성을 안정시키고 우환을 잠재우려는 것이오.
제후 국가 중에서 또한 원조를 해 준다면 제후들이 의롭게 여기고서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백성들이 흔쾌히 우리의 계획을 떠받들어 주어야 국가가 공고해질 것이오.
지금 임금을 시해하고 그로 인한 부귀를 이롭게 여긴다면 이는 탐욕스럽고 또한 의로움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탐욕스러우면 백성들이 원망하고, 의로움에 반하면 부귀富貴는 내게 이로움이 되지 않소.
부귀를 이롭게 여기고 백성들의 원망을 사서, 국가가 혼란에 빠지며 몸이 위태로워지는 일은 제후들의 역사책에 실릴까 두려운 일이니, 상도常道라 할 수 없소.”라고 하니, 비정丕鄭이 허락하였다.
이에 해제奚齊와 탁자卓子와 여희驪姬를 죽이고, 진秦나라에 임금 세우는 일을 도와 달라고 청하였다.
해제奚齊가 시해당하고 난 뒤, 순식荀息이 죽으려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태자의 아우를 세워서 보좌하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순식이 〈아우〉 탁자卓子를 군주로 세웠더니, 이극里克이 또 탁자를 시해하여, 순식도 죽었다.
군자들이 “그는 식언食言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해제와 탁자를 시해하고서 이극里克과 비정丕鄭이 도안이屠岸夷를 시켜서 적翟에 있는 공자 중이重耳에게 고하게 하였다.
“국가는 혼란하고 백성들은 동요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얻을 수 있는 기회도 혼란한 시기에 달려 있고,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기회도 동요動搖되고 있을 때에 달려 있습니다.
저희가 청컨대 그대를 위하여 인도하겠습니다.”
중이가 외삼촌 범[舅犯]에게 고하기를 “이극이 나를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하니, 구범舅犯이 말하였다.
처음에 근본이 굳건하지 않으면 끝내는 반드시 말라 넘어집니다.
저 나라의 군장君長이 된 자들은 오직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준칙準則을 알고 있습니다.
초상初喪을 슬퍼하지 않고 국가를 얻으려 하는 것은 재난에 빠지는 일이며, 혼란을 이용해서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위태로움에 빠지는 일입니다.
초상初喪을 이용해 나라를 얻으면 반드시 초상을 즐거워하게 되고, 초상을 즐거워하게 되면 반드시 슬픈 일이 생깁니다.
혼란한 틈을 이용해서 나라에 들어가면 반드시 혼란을 기뻐하게 되고, 혼란을 기뻐하게 되면 반드시 덕을 닦는 데 게을러집니다.
이는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준칙을 바꾸는 일입니다.
무엇으로 백성을 가르쳐 인도할 것이며 백성들이 내가 가르쳐 인도하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임금 노릇을 하겠습니까?”
중이重耳가 말하기를 “초상이 아니면 뉘라서 자리를 대신할 수 있으며, 혼란이 아니면 누가 나를 들이려 하겠습니까?” 하니, 구범이 말하였다.
“언偃은 듣건대, 초상初喪과 혼란混亂에는 크고 작은 것이 있어, 큰 초상이나 큰 혼란의 예봉銳鋒은 범할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신 것은 큰 초상에 해당하고, 참소가 형제 사이에 있는 것은 큰 혼란에 해당합니다.
공자 중이重耳가 나가서 사자를 만나 말하였다.
“그대가 망명객 중이重耳를 은혜롭게 염려해 주고 있으나,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쇄소응대灑掃應對 등의 일로 시중드는 신하 노릇을 하지 못하였고, 돌아가셔서는 또 감히 초상 마당에도 나가지 못하여 그 죄가 더욱 무겁습니다.
또 대부들에게까지 굴욕스럽게 나를 찾는 걸음을 하게 하였습니다.
국가를 공고하게 하는 길은, 백성을 가까이 사랑하고 이웃 나라와 잘 지내는 데 달렸으며, 백성들 마음에 의지해서 그들 마음에 순응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진실로 백성이 이롭게 여기는 바이고, 이웃 나라가 세워주는 바이고 대부들까지도 따른다면 중이는 감히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여생呂甥과 극칭郤稱도 역시 포성오蒲城午를 시켜서 양梁나라에 있는 공자 이오夷吾에게 고하게 하였다.
“당신은 진秦나라에 후한 뇌물을 주어서 입국入國의 길을 찾으십시오.
우리가 당신을 군주로 받드는 일을 주동하겠습니다.”
이오가 기예冀芮에게 말하기를 “여생呂甥이 나를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하니, 기예冀芮가 말하였다.
국가는 혼란하고 백성은 동요하고 있으며, 대부들은 항심恒心이 없습니다.
혼란이 아니면 어떻게 입국할 수 있으며, 위태하지 않다면 어떻게 귀국하여 편안히 안착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스럽게 임금의 아들이라서 그들이 우리를 찾아온 것입니다.
현재 혼란이 일어나 동요하고 있으니 누가 우리를 막겠으며, 대부들이 항심恒心이 없으니, 진실로 백성들이 세운 바이면 누가 능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유자孺子는 왜 국가의 모든 재물을 나라 안팎에 뇌물로 주어 국고國庫가 텅 빌지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국入國의 길을 구해보려 하지 않으십니까?
입국한 뒤에 재물 모으는 일은 도모하도록 하십시오.”
공자 이오夷吾가 나가서 사자를 만나 두 번 절하고서 머리를 조아려 허락하였다.
여생呂甥이 나가서 대부들에게 고하기를 “임금께서 돌아가셨는데 우리가 스스로 임금을 감히 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빈자리로 오래 놔두면 제후들이 음모를 꾸며 마음대로 밖에서 군주를 불러들여 백성들 각자가 지지하는 사람이 생겨나 혼란이 가중될까 두렵습니다.
어찌하여 진秦나라에 임금 세우는 일을 요청해 보지 않을 일이겠습니까?” 하니, 대부들이 허락하였다.
이에 양유미梁由靡를 시켜 진목공秦穆公에게 고하게 하였다.
“하늘이 진晉나라에 화禍를 내려서 참소의 말이 분분하게 일어나더니, 급기야 우리 과군寡君에게 그 화가 번져 우리 과군寡君을 이을 태자며 공자公子들이 두려움과 근심으로 멀리 달아나도록 하여 저 초야草野에 머물면서 의지할 곳조차 없게 하였습니다.
또 거기에다 과군寡君마저 세상을 떠나 초상과 혼란이 겹쳐 있습니다.
임금님의 신령스러움과 신神이 내려 준 복록의 힘으로 죄인(驪姬)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따라 복주伏誅되었으나, 여러 신하들은 감히 편안하게 지낼 수가 없어 지금 임금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임금님께 청하오니, 사직社稷을 은혜로 돌보아 주시고 선군先君과 지내셨던 우호를 잊지 마시어 망명길에 떠도는 공자를 굴욕스러우시겠지만 거두어 군주로 세워서, 선왕先王의 제사를 주재하게 하고, 또 국가와 백성을 진무鎭撫하도록 해 주십시오.
사방 이웃의 제후들이라도 그 소문을 듣게 된다면, 뉘라서 임금님의 위엄에 경계와 두려움을 느끼지 않겠으며, 임금님의 덕행을 흔쾌히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임금님께서 그동안 진晉나라에 쏟은 중한 사랑을 마무리하시는 일이 될 것이고, 저희는 임금님의 큰 은혜를 받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뭇 신하들이 임금님의 큰 덕을 받는 일일 것이니, 진晉나라의 그 누가 임금님이 부리는 수많은 신하가 아니겠습니까?”
사자使者를 되돌려 보내고, 이내 대부 자명子明과 공손公孫지枝를 불러 말하기를 “진晉나라의 난리에 누구를 먼저 보내서, 저들 두 공자公子 중에서 한 공자를 세워 조석朝夕의 위급함을 꾸릴까?” 하니, 대부 자명子明이 말하였다.
집縶은 민첩하면서도 한편으로 예禮를 알고, 공경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기미를 짐작할 줄 압니다.
민첩하면 은밀한 계책에 능하고, 예를 알면 사신으로 부릴 수 있고, 공경스러우면 수행시킨 명령을 실추시키지 않고, 기미를 짐작할 줄 알면 일의 가부可否를 판단하게 됩니다.
이에 공자公子집縶을 사자使者로 보내어 적翟으로 가서 공자公子중이重耳를 위로하게 하였다.
“과군寡君께서 저를 시켜 공자가 망명의 근심 속에 또다시 거듭 어버이 초상을 만난 것을 위로하도록 하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과인은 들으니, 국가를 얻는 것도 항상 국상國喪 때이고, 나라를 잃는 것도 항상 국상國喪 때라 하였소.
기회의 시기를 잃어서도 안 되고, 국상 기간이 길 수도 없으니, 공자는 고려해 보도록 하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중이가 구범舅犯에게 고하자, 구범이 말하였다.
망명객에게는 친근하게 상대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신의信義와 인덕仁德이 있은 다음이라야 친근하게 상대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군주 자리에 세워진 자라야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 빈소殯所가 아직 당堂에 차려져 있는 상태에서 이익을 구하려 하면, 백성들 중 누가 우리를 인덕仁德이 있다 하겠으며, 공자公子들마다 실상 똑같은 기회를 가졌는데 우리가 요행을 바라고자 들면, 백성들 중 누가 우리를 신의 있다고 하겠습니까?
인덕仁德도 없고 신의信義도 없다면, 장차 무엇을 가지고 길이길이 이익을 누리겠습니까?”
공자 중이重耳가 나가서 사자使者를 만나 말하기를 “임금님께서 은혜롭게 망명객을 위로해 주시고 또 거듭 명령의 말씀이 있으셨으나, 중이가 도망쳐 나온 신세여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곡읍哭泣의 자리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무슨 감히 다른 뜻을 두어 임금님의 은의恩義를 욕되게 하겠습니까?” 하고, 두 번 절하고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지 않았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한 차례 곡哭하고, 자리에서 물러가서는 개인적으로 〈사신을〉 만나지 않았다.
공자公子집縶이 물러나와 양梁나라로 가서 공자公子이오夷吾를 위로하기를 공자公子중이重耳에게 위로한 말과 똑같이 하였다.
이오가 기예冀芮에게 고하기를 “진秦나라 사람이 나를 돕겠답니다.” 하니, 기예가 말하였다.
망명 중인 사람은 소신所信을 고집하거나 몸을 깨끗이 가질 수 없습니다.
소신을 고집하거나 몸을 깨끗이 갖다보면 큰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많은 뇌물을 공자의 지위地位에 걸맞게 써야 할 것이니, 공자께서는 힘을 다하고 재물을 아끼지 마십시오.
공자들 모두가 실상 똑같은 기회를 가졌는데 우리가 요행으로 구할 수 있다면 또한 뇌물이라도 쓰는 것이 옳은 일 아니겠습니까?”
공자公子이오夷吾가 나와서 사자를 만나서는, 두 번 절하고서 머리를 땅에 대고 한참을 조아렸고,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곡哭하지 않았고, 자리에서 물러나왔다가는 공자公子집縶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말하였다.
“중대부中大夫이극里克이 나를 돕고 있어서, 내가 분수汾水의 북쪽 전답 1백만 묘畝를 주겠다 하였고, 선군先君에게 사랑받았던 비정丕鄭이 나를 돕고 있어서, 내가 부채負蔡의 전답 70만 묘畝를 주겠다 하였소.
임금님께서 진실로 나를 도와주신다면, 천명天命을 기다릴 것도 없이 내가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망명객이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나라에 들어가게만 된다면 종묘宗廟를 소제하고 사직社稷을 안정시킬 뿐이지 망명객이 어찌 국토까지 소유하려 들겠습니까?
임금님께서도 실로 자국自國의 군현郡縣을 소유하고 계시지만 우선 황하黃河 너머에 늘어서 있는 다섯 성城을 들여놓겠습니다.
임금님께 어찌 이러한 땅이 없어서 이겠습니까?
단지 임금님께서 동쪽으로 나루나 다리로 유람길 나오셨다가 어려움이나 군색한 일을 당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이니, 망명객이 가진 말굴레며 말뱃대끈 같은 하찮은 것들로 임금님이 달리시며 일으키는 먼지를 바라보려 하옵니다.
황금 40일鎰과 백옥白玉의 형珩 6쌍은 공자에게 감히 드린다 할 수 없으니, 좌우의 시종하는 사람들에게 들이기를 청하옵니다.”
공자公子집縶이 나라로 돌아와서 목공穆公에게 복명復命하자, 목공穆公이 말하기를 “나는 공자公子중이重耳를 도와주고 싶다.
재배再拜하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지 않았음은 후계자가 되는 것을 탐하지 않음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 차례 곡哭을 한 것은 그 아비를 사랑함에서이고, 물러간 뒤에 사사로이 공자 집縶을 만나지 않은 것은 국가를 얻는 이익을 탐하지 않은 것이다.” 하니, 공자 집縶이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만약 진晉나라의 군주를 세워 성공시키고자 하시는 일이라면, 어진 공자公子를 세우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임금님께서 만약 진나라 군주를 세우는 것으로 천하에 위명威名을 떨치시기를 구하는 것이라면, 어질지 않은 공자를 세워서 진나라의 나라 안에 혼란을 야기하여, 다시 군주를 바꿀 수 있는 길을 열어 두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신은 듣건대 ‘인의仁義롭다는 소문을 위해서 세우는 군주가 있고, 위무威武를 드날리고자 세우는 군주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의롭다는 소문을 구할 적에는 덕 있는 사람을 세우고, 위무威武를 드날리고자 할 적에는 복종하는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 먼저 공자 이오夷吾를 세우게 되니 이 사람이 바로 혜공惠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