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也聞之
컨대 曰軍敗
에 死之
하고 에 死之
라하야늘
君若來면 將待刑以快君志요 君若不來면 將獨伐秦하야 不得君이면 必死之니
公至於
하야 聞
하고 使家僕徒召之
하야 曰鄭也有罪
어늘 猶在乎
아 慶鄭曰
臣怨君始入而報德
이면 이오 이면 不戰
이오 이면 不敗
호이다
且戰不勝
하고 而報之以賊
은 不武
요 不克
하고 은 不知
며 는 不信
이요 은 不威
니이다
不聞命而擅進退
는 犯政也
요 快意
喪君
은 犯刑也
니이다
且戰而自退
하고 退而自殺
이면 臣得其志
요 君失其刑
이라 니이다하니 君
刑之
하다
曰失次犯令
이면 死
요 면 死
요 僞言誤衆
이면 死
라하니라
今鄭失次犯令하니 而罪一也요 鄭擅進退하니 而罪二也요 女誤梁由靡하야 使失秦公하니 而罪三也요 君親止어늘 女不面夷하니 而罪四也니
秦乃召重耳於楚하야 而納之러니 晉人殺懷公於高梁하고 而授重耳하니 實爲文公이니라
【大義】惠公이 포로에서 풀려나 돌아오자마자 벌인 慶鄭의 처벌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정의 丈夫다운 氣槪와 惠公의 좁은 소견.
혜공惠公이 아직 이르지 않았을 때, 아석蛾晳이 경정慶鄭에게 말하기를 “군주께서 포로로 잡힌 것은 그대의 잘못 때문입니다.
지금 군주가 곧 들어오는데 그대는 뭘 기다리고 있습니까?” 하니, 경정이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군대가 전쟁에서 지면 죽어야 하고, 장군將軍이 포로로 붙잡히면 죽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일을 실행하지 못하였습니다.
또 거듭 남까지 그르쳐 임금님을 붙잡혀 가게 하였습니다.
임금님이 만약 들어오신다면 임금님이 내리는 형벌을 기다려서 임금님의 뜻을 통쾌하게 해 드릴 것이요, 임금님이 만약 들어오시지 못한다면 앞으로 혼자서라도 진秦나라를 정벌하여, 임금님을 구해 돌아오지 못하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내가 나 하고 싶은 대로 외국으로 도망쳐서 임금님이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은 역적죄逆賊罪를 범하는 행위입니다.
군주가 이러한 죄를 범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나라를 잃을 일인데 하물며 신하이겠습니까!”
혜공惠公이 강도絳都의 교외郊外에 이르러서 경정慶鄭이 나라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복도家僕徒를 보내 경정을 불러서 말하기를 “경정은 저지른 죄가 있는 터인데 아직까지 머물러 있었더냐?” 하니, 경정이 말하였다.
“신은 원망스럽습니다. 임금님이 처음 들어오셨을 적에 은덕恩德에 보답했으면 다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다툼이 발생하였더라도 간언諫言하는 말을 들으셨다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싸우면서도 훌륭한 사람을 썼더라면 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쟁에 지고서 죄를 다스리는 데에 또다시 죄 있는 사람을 놓친다면 나라는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은 이런 까닭에서 형벌刑罰에 나아가기를 기다려, 임금님께서 정치를 이루시도록 하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처형하라!” 하니, 경정이 말하였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바른말을 하는 것은 신하의 도리이고, 군주가 바른 형벌을 시행하는 것은 군주의 영명英明함입니다.
신하가 정도를 행하고 군주가 영명하게 형벌을 시행하는 것은 나라의 이로움입니다.
임금님께서 형벌을 내리지 않으시더라도 반드시 제 자신이 죽을 것입니다.”
아석蛾晳이 간諫하여 말하기를 “신은 듣건대 형벌을 흔쾌히 나가 받으려는 신하는 사면赦免하여 원수를 갚게 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어찌 그를 사면시켜서 진秦나라에 보복토록 하지 않으십니까?” 하니, 양유미梁由靡가 말하였다.
우리가 그런 짓을 행할 수 있다면 진秦나라라고 왜 그런 짓을 못하겠습니까?
싸워 이기지 못하고서 손상 입히는 것으로 보복하려 하는 것은 씩씩함일 수 없고, 나가 싸워 이기지 못하고서 들어와 머무르며 보복의 일로 조용히 지내지 못하는 것은 지혜로움일 수 없고, 화친하고서 뒤집는 것은 신의信義일 수 없고, 형벌의 기준을 잃고 정치를 혼란시키는 것은 위엄威嚴일 수 없습니다.
또 전쟁에 나가서 마음대로 부려 쓰지 못하고 나라에 들어와 잘못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나라를 무너뜨리는 일이자 〈진秦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는〉 태자를 죽이는 일입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정을 참살하여 제 손으로 죽지 못하게 하라.” 하니, 가복도家僕徒가 말하였다.
“임금님이 사사로운 원망을 생각하지 않고 신하가 스스로 형벌에 나아가 죽는다면, 그 소문이 형벌을 내리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양유미梁由靡가 말하기를 “임금은 정령政令과 형법刑法을 주관합니다.
임금의 명령을 듣지 않고 멋대로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은 정령政令을 범한 것이고, 자신의 감정을 쾌하게 하려 임금을 포로로 붙잡혀 가게 한 것은 형법刑法을 범한 행위입니다.
경정이 정령政令을 손상시키고 나라를 어지럽혔으니 정령과 형법을 둔 의미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전쟁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후퇴하고, 후퇴하여서는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끊는다면 신하는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는 것이고, 임금은 형법을 둔 뜻을 잃는 것이어서 이후 아무것도 수행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사마司馬열說에게 명령하여 처형하게 하였다.
사마司馬열說이 3군의 군사를 소집시키고 경정의 죄를 열거하기를 “한원韓原의 전투에서 이렇게 맹세하였다.
‘군대의 대오隊伍를 잃거나 군령을 어기면 죽이고, 장수가 잡혔는데 얼굴에 상처 한 곳 없으면 죽이고, 거짓말로 대중을 오도誤導하면 죽인다.’고 하였다.
경정慶鄭 너는 대오를 잃고 군령을 어겼으니, 너의 첫 번째 죄요, 경정 너는 진격과 후퇴를 네 멋대로 하였으니 너의 두 번째 죄요, 네가 양유미를 오도誤導하여 진목공秦穆公을 포로로 잡을 수 없게 하였으니 너의 세 번째 죄요, 군주가 붙잡혔는데도 너의 얼굴에 상처 하나 없었으니 너의 네 번째 죄다.
경정은 형벌을 받도록 하라.” 하니, 경정이 말하였다.
사람이 앉아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것이 얼굴에 상처 하나도 없는 것이냐?
어서 형벌을 집행하도록 하라!” 정축일丁丑日에 경정을 참형斬刑하고서야 혜공惠公이 강도絳都에 들어왔다.
15년에 혜공惠公이 죽고, 회공懷公이 등극하였다.
진秦나라가 초楚나라에서 중이重耳를 불러서 들여보내자, 진晉나라 사람들이 고량高梁 땅에서 회공懷公을 시해하고 중이重耳에게 정권을 넘겨주니 바로 문공文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