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郵無正諫趙簡子無殺尹鐸
[大義]反面敎師가 되는 시설물의 존폐를 두고 君臣間에 오간 대화. 대의>
吾將往焉하야 若見壘培면 是見寅與吉射也니라하야늘
曰
니라이 進
하야 曰昔先主
於難
하야 從
於公宮
이라니
有孝德以出在
하고 有恭德以升在位
하고 有武德以
하고 有溫德以成其名譽
하니
失趙氏之典刑
하고 而去其
호대 基於其身
하야 以克復其所
니이다
及
長於公宮
하야 未及敎訓而嗣立矣
호대 亦能纂脩其身以受先業
하야 無謗於國
하고 順德以學子
하고 擇言以敎子
하고 擇師保以相子
하니이다
今吾子嗣位에 有文之典刑하고 有景之敎訓하며 重之以師保하고 加之以父兄이어늘
臣何望矣
리잇가 簡子說曰 微子
런들 吾幾不爲人矣
라하고 以
으로 賞尹鐸
하다
以其賞
으로伯樂氏
하야 曰子免吾死
하니 敢不
가한대 辭曰 吾爲主圖
요 非爲子也
니
193. 우무정郵無正이 조간자趙簡子에게 윤탁尹鐸을 죽이지 말도록 간하다
조간자趙簡子가 윤탁尹鐸을 시켜서 진양晉陽을 다스리게 하고서 말하기를, “반드시 〈순인荀寅과 사길석士吉射가 쌓았던〉 그 성벽을 헐어 버리도록 하라.
내가 장차 그곳에 가서 만약 그 성벽을 보게 된다면, 이는 순인과 사길사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윤탁이 그곳에 부임해 가서는 성벽을 더 높이 쌓아 올렸다.
조간자가 진양에 가서 더 높다랗게 쌓아 올린 성벽을 보고서는, 성내어 말하기를, “반드시 윤탁을 죽이도록 하라.
그런 뒤에 내가 들어가겠다.” 하자, 대부들이 용서를 청했으나 수긍하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이는 나의 원수였던 자들을 드러내서 나를 욕보이고자 해서이다.” 하니, 우무정郵無正이 나아와 말하기를, “옛날 돌아가신 우리 주군 문자文子는 어렸을 적에 난難을 만나 어머니 장희莊姬를 따라서 공궁公宮에 들어가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효순한 덕이 있어 벼슬길에 나아가 공족대부公族大夫가 되었고, 공손한 덕이 있어 승진하여 경卿의 자리에 나아갔고, 군사를 다스리는 덕이 있어 정경正卿에 올랐고, 온화한 덕이 있어 그 명예를 성취하였습니다.
조씨 집안의 물려 온 전형典刑을 익힐 기회를 잃었고, 가르쳐 주거나 보호해 주는 사람[사보師保]이 없는 데도 그 자신 맨몸으로 시작하여 능히 선대에 가졌던 것들을 회복하셨습니다.
경자景子에 미쳐서는 공궁公宮에서 자라 미처 교훈을 받지 못한 채로 이어받으셨으나, 역시 능히 몸소 선대의 덕을 이어 닦아 선대의 공업을 계승함으로써 나라에 험담 듣는 일이 없었으며, 순리順理의 덕으로 아들을 가르치고, 좋은 말을 가려서 아들을 가르치고, 좋은 스승을 가려서 아들을 돕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당신께서 위位를 이어받으셔서는 문자文子가 세운 전형典刑이 있고, 경자景子가 남긴 교훈이 있으며, 거듭하여 사보師保가 있고 부형父兄들이 더하여 계십니다.
그런데도 당신께서는 이들을 모두 멀리하다가 이번의 환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 윤탁尹鐸은 ‘즐거운 일을 생각하면 기뻐지고, 환란을 생각하면 두려워지는 것은 사람의 특성이다.
흙을 쌓아 올리면 사보師保로 삼을 수 있는데, 어찌하여 내가 증축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을 거울삼아서 조씨趙氏의 종족宗族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아마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벌을 내린다면 이는 선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며, 선한 사람에게 벌을 내리게 되면 반드시 악한 사람에게 상을 내리게 됩니다.
신臣들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조간자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그대가 아니었던들 내가 거의 사람 노릇 하지 못할 뻔하였구나.” 하고서, 군주의 환란을 모면시킨 자에게 내리는 상을 윤탁에게 상으로 내렸다.
지난날 백락伯樂(우무정郵無正)이 윤탁尹鐸과 원한이 있었다.
〈윤탁이〉 받은 상을 들고 백락에게 찾아가서 말하기를, “그대가 나의 죽음을 면하게 해 주었으니, 어찌 감히 상을 그대에게 돌려 주지 않겠는가?” 하니, 백락이 거절하며 말하기를, “나의 일은 주군을 위한 도모였지 그대를 위해서 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