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觀射父論絶地天通
[大義]사람과 神의 관계를 설명하고 그 역사 발전의 사실을 기록하여 춘추시대 天人 觀念과 惟神論 사상을 반영하다. 대의>
古者
엔 民神不雜
하니民之精爽不
貳者
요 而又能齊肅衷正
하야 其知能上下比義
하고 其聖能光遠宣朗
하며 其明能光照之
하고 其聰能聽徹之
하야
而後
에 使先聖之後之有光烈
하야 而能知山川之號
와 高祖之主
와 宗廟之事
와之世
와齊敬之勤
과 禮節之宜
와 威儀之則
과 容貌之
과 忠信之質
과 禋潔之服
하고
而敬恭明神者
로 以爲之祝
하고 使名姓之後
로 能知四時之生
과 犧牲之物
과 玉帛之類
와 采服之儀
와之量
과와와 壇場之所
와 上下之神
와 氏姓之
出
하고 而心率舊典者
를 爲之
하니이다
於是乎 有天地神民類物之官
하니이라 各司其序
하야 不相亂也
하니
民神異業
하야 敬而不瀆
이라 故神降之
하고 民以物享
하야 禍災不至
하고 求用不匱
러니이다
民匱于祀호대 而不知其福하며 烝享無度하야 民神同位하며 民瀆齊盟하야 無有嚴威하며
神狎民則하야 不蠲其爲하며 嘉生不降하야 無物以享하며 禍災荐臻하야 莫盡其氣하니이다
受之
하야 乃命
하야 司天以屬神
하고 命
正黎
하야 司地以屬民
하야 使復舊常
하야 無相侵瀆
하니 是謂絶地天通
이니이다
其後
에復九黎之德
이어늘 堯復育重黎之後
하야 不忘舊者
로 使復典之
하시니
以至于夏商이라 故重黎氏 世叙天地하고 而別其分主者也니이다
其在周
에其後也
니 當宣王時
하야 失其官守
하야 而爲司馬氏
러니
寵神其祖하야 以取威於民하야 曰重實上天하고 黎實下地라하더니 遭世之亂하야 而莫之能禦也하니이다
216. 관사보觀射父가 땅과 하늘이 통하는 것을 끊었다는 데 대하여 논하다
“〈주서周書〉에서 이른바 ‘중重‧여黎가 실제로 하늘과 땅을 막아 통하지 않도록 했다.’는 것은 어떻게 한 말이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백성들이 혹 하늘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옛날에는 백성을 맡은 벼슬과 신神을 맡은 벼슬이 뒤섞이지 않았으니, 백성 중에서 정일精一고명高明하고 전일專一한 자이고, 또 한결같이 경건하며 중정中正하여 그 지혜는 위아래의 천지가 마땅함을 얻게 하는데 가깝고, 성철聖哲함은 밝은 광채를 멀리 쏘아 밝게 비추게 하며, 밝은 눈은 밝게 사물을 비추고, 밝은 귀는 사방의 일을 들어 통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명신明神이 그 사람의 몸에 내려오니, 남자에 있어서는 격覡이라 하고, 여자에 있어서는 무巫라 합니다.
이들에게 신神의 위치位置와 신주神主의 존비尊卑를 배치하는 일을 제정하고, 희생犧牲과 제기祭器와 사시四時에 맞는 복색服色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그 뒤에 선성先聖의 후예로서 밝은 지혜를 가진 자에게, 산천山川의 명칭과 고조高祖 사당의 신주神主와 종묘宗廟의 일과 소목昭穆의 세계世系와 엄숙하고 경건함을 힘쓰는 일과 예절의 적절함과 척의戚儀의 준칙과 용모의 꾸밈과 충신忠信의 성실함과 깨끗한 제복祭服을 마련할 줄 알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명神明에게 경건하고 공경하는 자를 태축太祝으로 삼고, 명족名族의 후예로서 능히 사시四時의 좋은 곡식과 희생犧牲의 제물祭物과 옥백玉帛의 종류와 제복祭服의 표준과 제기祭器의 수량과 신주神主를 안배하는 도수度數와 병풍‧요선要扇의 위치와 제단祭壇의 처소와 천지상하天地上下의 신神과 종족宗族성씨姓氏의 유래를 알고 마음으로 옛 법도를 따르는 자를 종백宗伯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이에 천天‧지地‧신神‧민民과 만물을 유별類別하는 관원을 두었는데, 이를 오관五官이라 하며, 각자 자기의 직무를 담당하여 서로 혼란하지 않았습니다.
백성은 이 때문에 충신忠信이 있고, 신神은 이 때문에 명덕明德이 있게 되었습니다.
백성과 신神을 맡은 관원官員이 서로 일을 달리하여 공경하면서 모독하지 않았으므로 신神이 좋은 곡물을 내려 주고 백성은 그 곡물로 제사를 받들어 재앙이 내리지 않았으며, 필요한 재용財用이 결핍되지 않았습니다.
소호씨少皞氏가 쇠락하게 되자 구려九黎가 덕정德政을 어지럽혀 백성과 신神을 맡은 관원官員의 일이 뒤섞여 명물名物을 구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신神에게 제사를 드리고 집집마다 무巫와 사史가 되어 약속과 성신誠信이 없게 되었습니다.
백성은 각자 지내는 제사 때문에 재물이 결핍되었는데도 복福이 내려지는지 알지 못하였고 제사를 지내는 데에 법도法度가 없어서 백성과 신神이 지위가 같게 되었으며, 백성은 함께 약속한 일을 모독하여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신神은 백성의 규범에 익숙해져서 제사 지내는 행위를 정결하게 여기지 않았고, 좋은 곡식을 내려 주지 않아 제사 지낼 물품이 없게 되고, 재앙이 거듭 닥쳐서 받은 기운을 다 누리는 자가 없게 되었습니다.
전욱顓頊이 이를 이어받아 남정南正인 중重을 명하여 하늘의 중신衆神을 모아 제사하는 일을 주관하게 하고, 북정北正인 여黎를 명하여 땅의 민중民衆을 모아 그 일을 주관하게 하여, 옛 법을 회복시켜 천신天神과 민중民衆이 서로 침해함이 없게 하니, 이것을 ‘땅과 하늘이 서로 통하던 것을 끊었다.[절지천통絶地天通]’고 하는 것입니다.
그 뒤에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의 어지러운 덕德을 답습하였는데, 요堯가 다시 중重‧여黎의 후손을 육성하여 그 가운데 그들 선인先人의 일을 잊지 않은 자로 다시 천지天地의 일을 맡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夏나라‧상商나라에 이르렀기 때문에 중重‧여씨黎氏가 대대로 천지天地의 질서를 세우고 천신天神과 민중民衆의 제위祭位 등을 분별했던 것입니다.
주周나라에서는 정백程伯휴보休父가 그 후손이었는데, 선왕宣王 때를 당하여 천지天地를 주관하던 관직을 잃어 사마씨司馬氏가 되었습니다.
정백程伯휴보休父의 후손이 그의 선조先祖를 높이고 신격화神格化하여 백성에게 위엄을 세우고 말하기를, ‘중重은 진실로 하늘을 높아지게 하였고 여黎는 진실로 땅을 억눌러 낮아지게 하였다.’라 하였는데, 〈유왕幽王‧평왕平王〉의 난세亂世를 만나서 그의 말을 중지시킬 수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천지天地가 형성된 뒤에 다시 변하지 않았는데, 어찌 서로 접근한 일이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