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史伯爲桓公論興衰
[大義]국가 건립에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이고, 역사에서 어떤 정치가 있었는지 거론하면서, 건국의 틀을 잡기 위해 고려해야 할 조건들에 관해서 논의한 내용이다. 대의>
其何所可以逃死오 史伯對曰 王室將卑면 戎‧狄必昌이니
君若以周難之故로 寄孥與賄焉이면 不敢不許요 周亂而弊면 是驕而貪이라 必將背君하리니
若前莘後河
하며 右洛左濟
하고而
하고 修典刑以守之
면是可以少固
리이다
이 逃難於濮而蠻
하니 季紃是立
이러니라가 禍又不克
하니 是
요
夫成天地之
功者 其子孫未嘗不章
하니 虞‧夏‧商‧周
가 是也
니이다
其後
이 於周未有
하고 佐制物於前代者
는요요 當周未有
니이다
羋姓
에은 不足命也
요는 蠻矣
요 唯荊
이 實有昭德
하니 若周衰
면 其必興矣
리이다
伯夷는 能禮於神하야 以佐堯者也요 伯翳는 能議百物하야 以佐舜者也니
이 棄高明昭顯
하고 而好讒慝暗昧
하며 惡
하고 而近
하니
是以和五味以調口
하고 剛四支以衛體
하고 和六律以聰耳
하고 正
以役心
하고 平
以成人
하고 建
以立純德
하고하며
故王者居
하야 收經入
하고 周訓而能用之
하야 龢樂如一
하니
於是乎先王
이 聘后於異姓
하고 求財於有方
하며 擇臣取
하야 而講以多物
하니 務和同也
니이다
聲一無聽이요 物一無文이요 味一無果요 物一不講이어늘
府之小妾生女하니 而非王子也라 懼而棄之하니 此人也收以奔襃러니
夏之衰也에 襃人之神이 化爲二龍하야 以同于王庭하야 而言曰余는 襃之二君也라 夏后卜殺之與去之與止之하니莫吉이오
及殷周莫之發也오 及厲王之末하야 發而觀之할새 漦流於庭하야 不可除也라
王使婦人不幃而譟之하니 化爲玄黿하야 以入于王府러니
府之童妾
이而遭之
하야而孕
하야而生
하니 不夫而育
이라 故懼而棄之
하니이다
襃人襃姁有獄하야 而以爲入于王하니 王이 遂置之하고 而嬖是女也하야 使至於爲后而生伯服하니
其爲毒也大矣
어늘 將
德而加之焉
하니 毒之
者
는 其殺也滋
이니이다
方强
하고 王室方騷
어늘 將以縱欲
하니 不亦難乎
잇가
申人弗畀면 必殺之니 若伐申하야 而繒與西戎이 會以伐周면 周不守矣니이다
繒與西戎이 方將德申하고 申呂方彊하니 其隩愛太子를 亦必可知也니
王師若在면 其救之亦必然矣요 王心怒矣면 虢公從矣니 凡周存亡은 不三稔矣니이다
君若欲避其難인댄 速規所矣니 時至而求用이면 恐無及也리이다
夫國大而有德者近興
이니는 姜嬴之儁也
오 且大
하니 其將興乎
인저
公
이 說
하야 乃東寄孥與賄
하니 虢鄶受之
하고도 皆有寄地
하다
幽王八年
에 而桓公爲司徒
러니 九年
에 而王室
이하야 十一年
에 而
하니라
국어國語 제16권
정어鄭語
정鄭나라는 희성姬姓의 나라이다. 시조는 주여왕周厲王의 아들이자 선왕宣王의 동모제同母弟인 환공桓公우友다. 형兄선왕宣王이 기원전 806년에 아우 우友를 함림咸林, 지금의 섬서성陝西省화현華縣에 봉한 것이 곧 정나라의 시작이다. 그 뒤 유왕幽王이 무도한 짓을 행하자 환공桓公이 처자를 괵虢과 회鄶나라 사이에 이사시켜 살게 하였다. 기원전 771년 서주西周가 망할 때 환공이 난에 휩싸여 죽자 아들 무공武公이 동괵東虢과 회鄶나라를 멸망시키고서 신정新鄭을 수도로 정하여 나라를 이어 갔다. 늘 약소국으로 강대국의 그늘에 가려 지내다가 자산子産이라는 춘추시대를 통틀어 걸출한 인재로 손꼽히는 집정자가 나타나 잠시 대국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외교력을 보였다. 전국시대에 한韓나라에 의해 멸망되었다.
정어鄭語는 환공이 주周나라의 어지러움을 피부로 느끼며 후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으로의 피난지를 살피는 과정에서 주周나라의 사백史伯에게 자문 받은 내용을 한 편으로 구성하여 싣고 있다. 사백이 주나라가 쇠퇴하고 제후들의 전국시대가 도래하려는 여명黎明의 시대에서의 건국은 어떠한 것을 먼저 살펴야 하고 앞으로 어떠한 나라나 누구의 후손이 흥성할 것인지 주나라가 왜 망할 수밖에 없는지 등을 밝게 지적하고 있는 점들은 그의 해박한 역사 지식과 현실 판단력들을 살펴볼 수 있는 진귀한 글이라 할 수 있다. 또 여기에서 언급된 초楚나라의 조상들에 대한 해박한 논리는 오히려 초어楚語에 실려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정교하다.
《국어國語》를 편집한 좌구명左丘明이 머릿속에 그리는 중국 역사 서술의 교직交織은 그의 큰 역량을 살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글맛이라 할 것이다.
206. 사백史伯이 환공桓公에게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해 논하다
환공桓公이 사도司徒가 되어, 서주西周 지역의 민중들과 동쪽 지역 백성들의 마음을 깊이 샀다.
사백史伯에게 묻기를, “왕실에 재난이 빈번하여, 내가 연루될까 두렵습니다.
어느 지역에 〈나라를 세워야〉 죽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사백이 대답하기를, “왕실이 쇠미해지게 되면, 서융西戎과 북적北狄의 오랑캐들이 반드시 번창할 것입니다.
현재의 성주成周는 남쪽으로는 형만荊蠻‧신申‧여呂‧응應‧등鄧‧진陳‧채蔡‧수隨‧당唐나라가 있고,
북쪽으로는 위衛‧연燕‧적翟‧선우鮮虞‧노路‧낙洛‧천泉‧서徐‧포蒲나라가 있고,
서쪽으로는 우虞‧괵虢‧진晉‧외隗‧곽霍‧양楊‧위魏‧예芮나라가 있고,
동쪽으로는 제齊‧노魯‧조曹‧송宋‧등滕‧설薛‧추鄒‧거莒나라가 있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주周나라 왕실의 지차支次 아들이거나 동복同腹의 아우이거나 왕실과 혼인 관계에 있는 나라가 아니면, 모두 만蠻‧형荊‧융戎‧적翟의 국가입니다.
친족이 아니면 완악한 나라들이어서 들어갈 수 없으니, 제수濟水‧낙수洛水‧황하黃河‧영수潁水의 중간 지역이 나라를 세울 만한 곳이 될 것입니다.
이곳 지역은 자작子爵과 남작男爵들의 나라들로 그중 괵虢과 회鄶가 큰 나라입니다.
그러나 〈괵虢의〉 괵숙虢叔은 지세地勢를 믿고, 〈회鄶의〉 회중鄶仲은 지형의 험준함을 믿고서 덕을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교만하고 사치스럽고 태만한 마음을 지닌 데다가 탐욕스럽기까지 합니다.
주군께서 주周나라의 환란을 구실 삼아 처자식과 재물을 두 나라에 맡기시면, 감히 그들은 허락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주나라에 환란이 일어나 주나라가 피폐해지면, 이들은 본래 교만하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이니 반드시 주군主君을 배반할 것입니다.
주군께서 만일 성주成周의 민중을 거느리고서 정당한 명분을 내세워 죄악을 정벌하시면 이기지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두 나라를 이긴다면 언鄢‧폐蔽‧보補‧단丹‧의依‧유㽥‧역歷‧신莘나라들은 주군의 영토가 될 것입니다.
만일 신莘 땅을 앞에, 황하黃河를 뒤에, 낙수洛水를 오른쪽에, 제수濟水를 왼쪽에 두고서, 부산芣山과 귀산騩山을 주산으로 하여서 제사 드리는 산으로 삼고, 진수溱水와 유수洧水의 물을 마시며, 전형典刑을 닦아서 지킨다면 조금은 안정될 것입니다.” 하였다.
환공桓公이 말하기를, “남방은 불가한 곳입니까?” 하니, 〈사백史伯이〉 대답하였다.
“저 형荊나라의 제후 웅엄熊嚴이 아들 네 사람을 낳으니 백상伯霜과 중설仲雪과 숙웅叔熊과 계순季紃입니다.
숙웅叔熊이 환란을 피하여 복濮 땅으로 가서 만족蠻族이 되어 버리자 계순季紃을 세웠는데, 위씨薳氏가 숙웅叔熊을 세우려다가 화를 당하고 성공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계순季紃에게 열어 준 것입니다.
또 매우 총명하고 〈신하나 백성들의 마음을〉 화합시켜 그 선왕先王의 공功을 덮을 수 있을 만큼 큰 치적을 쌓았습니다.
신臣은 들으니, ‘하늘이 열어 준 나라는 십세十世에 걸쳐서 망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그 자손들이 반드시 크게 국토를 넓힐 것입니다.
따라서 가까이 갈 수 없으며, 또 중重과 여黎의 후손들입니다.
여黎가 고신씨高辛氏의 화정火正이 되어서 하늘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질서를 크게 밝히고 땅이 가진 생육生育의 덕을 두터이 확대함으로써 사해四海에 크게 빛났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축융祝融이라 명명하였으니 그의 공功이 위대합니다.
천지에 큰 공功을 이룬 사람은 그 자손들이 일찍이 현창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우虞‧하夏‧상商‧주周가 그러한 예들입니다.
우막虞幕은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들을 수 있어서 만물이 생명을 갖고 즐겁게 생장하도록 해 준 사람이요,
하夏나라의 우禹임금은 모든 수토水土를 화평하게 하여 만물이 가진 특성을 살려 살게 해 준 사람이요,
상商나라의 선조 설契은 오교五敎를 잘 조화시켜서 백성들을 보호한 사람이요,
주周나라 선조 기棄는 온갖 곡식과 채소를 씨 뿌리고 가꾸어서 백성들을 입히고 먹인 분입니다.
그들의 후손이 모두 왕공王公이 되거나 후백侯伯이 되었습니다.
축융祝融도 천지의 광명한 덕德을 밝게 드러내어 오곡과 재목 등의 것들을 생장시켜서 윤택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들 후손 여덟 성姓이 주周나라에서는 후백侯伯의 지위에 오른 자가 있지 아니하고, 앞 하夏나라와 상商나라의 왕조시대에, 왕들의 정사 경영을 도운 자로, 곤오씨昆吾氏는 하夏나라에서 제후의 패伯이 되었고, 대팽씨大彭氏와 시위씨豕韋氏는 상商나라에서 제후의 패伯이 되었고, 주周나라 때에는 없었습니다.
기己의 성姓을 썼던 곤오昆吾‧소蘇‧고顧‧온溫나라와, 동씨董氏와 동董의 성姓을 썼던 종이鬷夷‧환룡豢龍나라는 하夏나라 때 멸망하였고,
팽彭의 성姓을 썼던 팽조彭祖‧시위豕韋‧제계諸稽나라는 상商나라 때에 멸망하였고, 독禿의 성姓을 썼던 주인舟人나라는 주周나라 때에 멸망하였고,
운妘의 성을 썼던 언鄢‧회鄶‧노路‧핍양偪陽나라와 조曹의 성姓을 썼던 추鄒와 거莒나라는 모두 채복采服과 위복衛服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 여섯 성씨들의 후손으로 어떤 이는 왕실 지역에서 살고 혹은 이적夷翟 지역에서 살아 그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훌륭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이가 없어 반드시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짐성斟姓은 후손이 없으니 축융의 후손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자는 미성羋姓 중에서 있을 것입니다.
미성羋姓 중에서도 기월蘷越은 천명天命을 받기에 부족하고 만蠻 지역에 있는 미성은 오랑캐로 변화되어 버렸고 유일하게 형荊만이 밝은 덕을 가지고 있으니 만일 주나라가 쇠미하게 된다면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강성姜姓과 영성嬴姓과 형荊 지역의 미성羋姓은 실지로 희성姬姓과 번갈아 가며 서로 넘보는 형세입니다.
강성姜姓은 백이伯夷의 후손이고, 영성嬴姓은 백예伯翳의 후손입니다.
백이는 신神들에게 예를 잘 차리는 일로써 요堯임금을 보좌하였고, 백예는 온갖 초목과 새와 짐승들이 각기의 삶을 잘 누리도록 하는 일로써 순舜임금을 보좌하였습니다.
그들 후손들이 모두 제사를 끊지 않고 지켜 오고 있으나 아직 일어나 후백侯伯이 된 자가 없습니다.
주周나라가 쇠미해진다면 그들이 후백의 자리에 진출하게 될 것입니다.”
공公이 말하기를, “사謝나라의 서쪽 아홉 주州 지역은 살 만한 곳입니까?” 하니, 〈사백이〉 대답하였다.
“그곳 백성들은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나아갈 만한 곳이 못 됩니다.
오직 사謝나라의 북쪽과 겹郟 땅의 중간 지역은 제후는 사치스럽고 교만하며, 그곳 백성들은 자신의 군주를 가볍게 여기면서 충성스럽거나 미덥지 못합니다.
만일 임금을 바꾸어서 충성스럽고 신실한 도리로 가르친다면 쉽게 차지할 수 있고, 또 오랫동안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公이 말하기를, “주周나라는 패망하겠습니까?” 하니, 〈사백史伯이〉 대답하였다. “거의 패망에 가까워져 있습니다.
〈태서泰誓〉에 이르기를, ‘백성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늘은 반드시 따른다.’라 하였습니다.
지금 왕께서는 고명高明하고 높은 덕을 가진 신하를 버리고, 참소하고 간특하며 어리석은 신하를 좋아하며, 이마가 훤칠하게 생기고 턱이 관후한 어진 신하는 미워하고, 우악스럽고 더없이 비루한 신하는 가까이하고 있습니다.
가可와 부否가 만들어 내는 조화를 버리고 부화뇌동附和雷同을 취하고 계십니다.
저 가부의 조화에서 실상 사물이 생육되고, 부화뇌동에서는 계속 이어지지 못합니다.
다른 것을 가지고 다른 것과 화평하게 하는 것을 ‘조화調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능히 풍부하게 생장시키고 사물도 그곳에서 삶을 영위합니다.
만일 동일한 것으로 동일한 것에 보태면 둘 모두를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왕先王은 흙[토土]을 금金‧목木‧수水‧화火와 버무려 온갖 사물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미五味를 조화시켜 입맛에 맞게 하고, 사지四支를 강건하게 해서 몸을 보호하게 하고, 육률六律을 조화시켜 귀가 밝아지도록 하고, 칠체七體를 바르게 해서 마음을 위해 일하게 하고, 팔색八索을 화평하게 해서 사람의 외모를 완전하게 하고, 아홉 장기臟器의 기능을 건강하게 하여 순수한 덕목德目을 확립시키고, 열 등급의 숫자를 모아 백관百官에 딸린 관속들을 가르치고 인도합니다.
여기에서 1천 자리의 벼슬이 나오며 1만 가지의 방법과 길이 갖추어지고, 억億으로 헤아려지는 일들이 계산되며 조兆 단위로 헤아려지는 사물들이 재단裁斷됩니다.
이러한 속에 왕이 일정한 수입을 거두어들여, 수치상 최대치로 헤아려지는 일들을 실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왕천하王天下한 자는 구주九州의 전답을 차지하고서, 경상經常의 수입을 거두어 뭇 관원을 먹이고, 충忠과 신실信實로써 교육하고 잘 운용하여 화락하기가 마치 한 집안 같습니다.
이러하므로 선왕先王은 왕후를 이성異姓의 집안에서 맞이해 오고 재물을 구하는 데에 일정한 지역이 있었으며 신하를 뽑으면서는 간관諫官을 취하여 많은 일들을 바로잡게 하니, 조화와 뇌동雷同을 구별하여 조화에 힘쓴 것입니다.
음악이 오성五聲 중의 한 소리로만 구성되어 있으면 들을 수 없고, 사물이 동일한 것들만 모아져 있으면 문채가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음식이 오미五味 중 한 가지 맛으로만 만들어져 있으면 맛이 없고, 물품이 동일한 것들만 있으면 품평할 수 없습니다.
왕께서 이러한 조화가 되는 것들을 버리고서 오로지 뇌동雷同하는 자들만 친근히 하고 있으니 하늘이 임금의 총명함을 빼앗아 가버린 것입니다.
저 괵虢나라 제후 석보石父는 참소하고 아첨하며 교묘하게 굽실거리기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를 등용하여 경사卿士로 삼고 있으니 오로지 뇌동雷同하는 자를 친근히 하는 일입니다.
육례六禮를 갖추어 맞이한 왕후를 버리고 내궁內宮의 첩을 세우고 있으니 못돼 먹은 비루한 자를 좋아하는 일이고,
난쟁이나 곱사등이 등의 배우들이 왕의 곁에서 시중들고 있으니 우악스런 이들을 가까이하는 일이고,
주周나라의 왕법을 밝히지 않고 부인네가 하는 말만 시행하고 있으니 참소하고 사특한 말을 써 주는 일이고,
경사卿士다운 덕이 있는 사람을 경卿으로 세우지 않고서 요망한 사람을 등용하고 총애하는 사람을 자리에 앉히니 어리석고 어두운 행동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나라를 오래갈 수 없게 하는 일들입니다.
선왕宣王 때에 동요童謠가 있었는데 ‘산뽕나무로 만든 활과 기箕나무로 만든 화살통이 실상 주周나라를 망칠 것이다.’는 노래였습니다.
이때 선왕宣王이 그 노랫소리를 들었는데 마침 어떤 부부가 이러한 기구들을 팔러 다녔습니다.
왕이 사람을 시켜 체포하여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때 마침 왕실王室 창고에 살던 나이 어린 계집아이가 딸을 낳았는데 왕실王室의 자식이 아니어서 두려움에 아이를 버렸는데, 이들 부부가 그 아이를 거두어서 포襃나라로 도망쳤습니다.
포나라의 군주가 천자에게 죄를 짓자 그 아이를 주나라에 들여보냈습니다.
하늘이 이러한 요물妖物을 세상에 나가도록 명한 지가 오래되었으니, 또한 어떻게 손써 볼 수 있겠습니까?
‘하夏나라가 쇠미할 적에 포襃나라 선군先君의 귀신이 두 용龍으로 화해서 왕의 뜰에 함께 머무르며 말하기를 「나는 포나라의 두 임금이다」라고 해서, 하나라의 군주(걸桀)가 그 용을 죽일 것인가, 내쫓을 것인가, 붙잡아 둘 것인가를 점쳐 보았는데 아무 것도 길吉한 것이 나오지 아니했다.
그의 정액精液을 청하여 갈무리해 두는 일로 점을 쳤더니 길하다는 점괘가 나왔다.
이에 폐백幣帛을 늘어놓고서 간책에 사유를 적어 아뢰었더니 용은 사라져 버리고 정액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궤에 갈무리하여 역마로 운반하여 교제郊祭를 지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은殷나라와 주나라에 미쳐서 열어 보지 못하였다가 여왕厲王의 말기에 이르러 열어서 보았더니 정액이 뜰에 흘러 정액의 흔적을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왕이 부인들을 시켜서 치마를 벗고서 들썩들썩 환호하게 하였더니 검은 도롱뇽으로 화하여 왕실의 창고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창고의 어린 계집아이가 아직 이빨도 다 갈지 않았을 일곱 살 나이 무렵에 도롱뇽과 마주치더니, 나이 열 다섯 살을 지내고서 임신하여, 선왕宣王 시대를 만나 아이를 낳았는데 남편이 없이 태어난 아이여서 두려움에 그 아이를 내다 버렸습니다.
마침 산뽕나무 활과 기나무의 화살통을 팔러 다니던 자가 길에서 모욕을 당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부부가 아이가 밤에 흐느껴 우는 소리를 애처롭게 여기고서 거두어 달아나 포襃나라로 도망쳤습니다.
포나라의 제후 포후襃姁가 죄를 짓고서 천자에게 딸아이를 올렸더니 왕이 마침내 그 포나라 제후의 죄를 방치하고 그 딸아이를 사랑하여 왕후를 삼아 백복伯服을 낳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늘이 이 포사襃姒를 낸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그녀로 인한 해독이 클 것인데 방탕한 행동을 저지르는 유왕幽王을 기다려 그 포사가 보태어졌으니 독성이 강한 술은 사람을 죽이는 것도 더욱 빠릅니다.
신申나라와 증繒나라와 서융西戎은 한창 강성하고 왕실은 한창 소란스러운데 지금 멋대로 욕심을 부리고자 하니 나라를 유지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왕이 태자를 죽이고 백복伯服을 태자로 만들기를 원한다면 태자는 반드시 신申나라로의 도망길을 구할 것입니다.
신나라로 도망친 뒤, 신나라가 태자를 내어주지 않으면 유왕幽王은 반드시 죽이려 들 것인데, 만약 신나라를 정복하려고 하면 증繒나라와 서융西戎이 힘을 모아 주나라를 칠 것이니 주나라는 그들을 막아 내지 못할 것입니다.
증나라와 서융이 신나라를 덕스럽게 여기고 있고 신나라와 여呂나라는 한창 강성하니, 그들이 태자를 깊이 사랑할 것이란 점을 반드시 알 수 있습니다.
주周나라의 군사가 신나라에 쳐들어가게 되면 그들이 구원할 것은 또한 필연적인 일이고, 왕의 마음에 노여움이 일어나면 괵虢나라의 석보石父는 따라서 노여워할 것이니 주나라의 존망은 3년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주군主君께서 만일 유왕의 그러한 환난을 피하고자 하신다면 속히 알맞은 지역을 계획해야 할 것이니 환난이 닥쳤을 때 대비책을 구하게 되면 아마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환공桓公이 말하기를, “만일 주나라가 쇠하게 된다면 여러 희씨姬氏 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가 흥성하겠습니까?” 하니, 〈사백史伯이〉 대답하였다.
“신은 들으니 주무왕周武王은 실로 문왕文王의 공功을 밝히셨다 하였습니다.
문왕의 복록福祿이 다했으면 무왕의 자손들이 이어 갈 것입니다.
무왕 자손들의 나라에서도 응應나라와 한韓나라는 거기에 끼지 못할 것이니 아마도 진晉나라가 될 것입니다.
진나라는 험준한 지역을 차지하여 지키면서 작은 나라들을 이웃에 두고 있으니, 덕德스러운 정치를 그 위에 더한다면 크게 국토를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환공이 말하기를, “강씨姜氏(제나라)와 영씨嬴氏(진秦나라) 중에 누가 일어나겠습니까?” 하니, 〈사백이〉 대답하였다.
“나라가 크고 덕이 있는 임금이 일어날 것이니 진중秦仲과 제후齊侯는 강씨나 영씨 중에서 준걸한 자들이고 나라도 크니 머잖아 일어날 것입니다.”
공이 기뻐하여 동쪽으로 자기의 처자식과 재물을 맡겨 두려고 하니 괵虢나라와 회鄶나라가 그것을 받았고 열 나라에도 모두 맡겨 둔 땅이 있게 되었다.
유왕幽王 8년에 환공桓公이 주周나라에 들어와 사도司徒가 되었고 9년에 왕실이 소란하기 시작하여 11년에 환공이 죽었다.
평왕平王 말년에 이르러 진秦‧진晉‧제齊‧초楚가 번갈아 일어나
진경공秦景公과 양공襄公이 이때 주나라의 땅을 차지하였고,
제장공齊莊公과 희공僖公이 이때 조그만 패자가 되었고
초楚나라 분모蚡冒가 이때 비로소 복濮까지 국토를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