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 越王句踐命諸稽郢行成於吳
[大義]戰力의 劣勢를 극복하기 위하여 屈從을 감내하며 外交의 수단을 이용하여 상대의 마음을 교만하도록 조장하여 승리를 쟁취하려는 외교술 전개. 대의>
夫謀必素見成事焉하고 而後履之니 不可以授命이니이다
王不如設戎하고 約辭行成하야 以喜其民하고 以廣侈吳王之心이니이다
吾以卜之於天이니 天若棄吳면 必許吾成而不吾足也하야 將必寬然이오 有伯諸侯之心焉하리이다
旣罷弊其民하고 而天奪之食이면 安受其燼이니 乃無有命矣리이다
寡君句踐
이 使下臣郢
으로 不敢顯然布幣行禮
하고 敢私告於
曰
昔者
에 越國見禍
하야하니 天王親趨玉趾
는 以心孤句踐
이어늘 而又宥赦之
하니 君王之於越也
에 繄起死人而肉白骨也
니이다
今句踐申禍無良
이나 草鄙之人
이 敢忘天王之大德
하고 而思
之小怨
하야 以重得罪於下執事
리잇가
句踐用帥二三之
하고 親委重罪
하야 頓顙於邊
이로소이다
越國
은 固貢獻之邑也
어늘 君王不以鞭箠使之
하시고 而辱軍士使
焉
하시니이다
句踐請
하야 一
嫡女
로 執箕箒以
於王宮
하고 一个嫡男
으로 奉槃匜以隨諸御
하며 春秋貢獻
하야 不解於王府
하노니
今天王旣封
越國
하야 以明聞於天下
어늘 而又刈
之
면 是天王之無成勞也
니이다
국어國語 제19권
오어吳語
오吳나라는 희성姬姓으로 주周나라의 선조先祖고공단보古公亶父태왕太王의 맏아들이고 주문왕周文王의 백부伯父인 태백泰伯후손後孫의 나라이다. 태왕太王의 셋째 아들 계력季歷이 어질고 그의 아들 문왕文王에게 성덕聖德이 있자 태왕太王은 계력季歷을 후계자로 삼아 문왕文王에게 전위傳位되기를 희망하였다. 이런 아버지 태왕太王의 의중을 알아차린 태백泰伯은 태왕太王의 맏아들이었음에도 후계자의 자리를 계력季歷에게 양보하고 형만荊蠻 지역으로 달아났다. 당시 형만荊蠻 지역의 풍속은 몸에 문신文身을 하고 머리를 짧게 깎았는데, 태백泰伯도 몸에 문신文身을 하고 머리를 짧게 깎아 다시는 쓰일 수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 바로 구오句吳로서 구오句吳는 국호國號라 하기도 하고 태백泰伯이 살던 땅이라 하기도 하는데, 형만荊蠻 사람들이 의롭게 여겨 1천여의 집이 귀부하였다 한다.
태백泰伯이 죽은 뒤 함께 왔던 아우 중옹仲雍이 뒤를 이었고, 중옹仲雍의 아들 계간季簡이 숙달叔達에게 전하여 이후 주장周章‧웅수熊遂 등 15대를 거쳐 수몽壽夢에 이르러 왕王이라 일컬었다. 다시 6대를 지나 부차夫差가 월왕越王구천句踐에게 멸망당하였다.
오吳나라의 영토는 현재 상해시上海市를 비롯하여 강소성江蘇省 전체와 절강성浙江省‧안휘성安徽省 일부에 걸쳐 있었으며, 도성都城은 오吳(현재의 소주시蘇州市)에 있었다.
225. 월왕越王구천句踐이 제계영諸稽郢에게 명하여 오吳나라와 강화를 체결하다
오왕吳王부차夫差가 군대를 출동하여 월越나라를 치자, 월왕越王구천句踐이 군대를 일으켜 장강長江 지역에서 맞아 싸우게 되었다.
“저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의 운명은 하늘이 정해 주는 대로 될 것이니, 왕王께서는 전쟁을 하지 마십시오.
신서申胥와 화등華登이 오吳나라 용사勇士를 일반 갑병甲兵 중에서 선발하여 잘 훈련시킴으로써 종래에 한 번도 패전敗戰한 적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활을 잘 쏘면 백 사람이 활깍지와 활팔찌를 끼고 나서서 그를 본받는 것이니, 우리가 전쟁을 해도 승리를 기필할 수가 없습니다.
계책을 세운 일은 반드시 그 일이 성공할 수 있음을 예견하고 난 뒤에 실행해야 하니, 모험을 하여 목숨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왕王께서는 군대를 설치하여 지키고, 사람을 오吳나라에 파견하여 겸손한 말로 화친하기를 요청하여 오吳나라 국민의 마음을 기뻐 들뜨게 하고, 오왕吳王의 야심을 크게 하도록 하는 것만 못합니다.
우리는 이번 일을 하늘에 점占을 쳐서 물어볼 수 있으니, 하늘이 만일 오吳나라를 버린다면 반드시 우리와 화친하는 일을 허락할 것이고, 우리 월越나라는 두려워할 만한 상대가 못 된다고 생각하여 장차 반드시 경계심을 늦추며 제후諸侯의 패자霸者가 되려는 마음을 두게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그 오吳나라 국민이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하늘이 재앙을 내려 그들의 식량을 탈취해 가면 우리나라는 오吳나라의 불탄 잿더미를 수습할 수 있으니, 오나라는 천명天命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월왕越王이 그가 말한 계책을 시행하기로 허락하고 곧 제계영諸稽郢에게 오吳나라와 화친하기를 요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였다.
“우리 임금 구천句踐이 하신下臣제계영諸稽郢을 시켜 감히 공개적으로 폐백幣帛을 진열하는 등의 예절禮節을 행하지 못하고 감히 사적으로 왕王의 하집사下執事에게 고告하여 대신 말씀을 전달하여 올리게 하였습니다.
옛날 월越나라가 하늘이 내리는 재앙을 받아 천왕天王에게 죄를 얻으니, 천왕天王의 귀한 발걸음이 여기까지 나와 친정親征하신 것은 구천句踐을 죽여 없애려고 마음을 먹은 것인데, 또 너그럽게 용서하여 사면해 주셨으니, 군왕君王께서 우리 월越나라에 베푸신 은덕은 바로 죽은 사람을 살려 주고 백골白骨에 살을 붙여 준 것과 같습니다.
고孤가 하늘이 내린 재앙도 잊지 않은 터인데, 감히 군왕君王께서 주신 큰 은혜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구천句踐이 거듭 화란禍亂을 당한 것은 선량한 덕행德行이 없어서 당하는 것이지만 멀리 초야草野에 사는 사람이 감히 천왕天王의 큰 은덕을 입고는 〈오吳나라가 우리 변경에 들어와 벌인〉 전쟁의 작은 원한을 생각하여 거듭 천왕天王의 하집사下執事에게 죄를 얻겠습니까?
구천句踐은 두세 명의 가신家臣을 거느리고 직접 저에게 무거운 죄를 돌려서 변경에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청하고 있습니다.
지금 군왕君王께서 저희들의 이런 정황을 살피지 않으시고 크게 노怒하여 군사를 모아 장차 월越나라를 잔인하게 쳐 없애려고 하십니다.
월越나라는 본디 오吳나라에 공물貢物을 바치는 고을인데, 군왕君王께서 채찍으로 쳐서 꾸짖으며 부리지 않으시고 귀국貴國의 군사를 굴욕스럽게 하여 침입하는 적군을 막으라고 호령하시는 듯합니다.
구천句踐은 맹약盟約의 체결을 요청하면서 본처本妻가 낳은 한 명의 딸을 보내어 키와 비를 잡고 왕궁王宮에서 시중드는 여러 성姓 가운데 채우고, 본처本妻가 낳은 한 명의 아들로 쟁반과 대야를 받들어 여러 근시近侍의 뒤를 따르게 하겠으며, 또 봄가을에 공물貢物을 바쳐서 천왕天王의 창고에 도착하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천왕天王께서는 어찌 존귀尊貴하신 체면이 굴욕스럽게도 군사를 거느리고 우리를 제재하려 하십니까?
우리가 바치는 공물貢物은 천자天子가 제후諸侯에게 세금을 부과賦課하는 예禮에 해당합니다.
저 속담에 ‘여우가 물건을 묻어 두었다가 여우가 다시 파내니, 이 때문에 공功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천왕天王께서 이미 월越나라를 북돋아 길러 준 일은 천하 사람들에게 밝게 알려졌는데, 다시 그것을 베어 죽여 없앤다면 천왕天王께서는 월越나라를 북돋아 길러 준 공로는 이룸이 없게 될 것입니다.
설령 사방의 제후諸侯일지라도 무엇을 진실로 믿고 오吳나라를 섬기겠습니까?
감히 하신下臣을 시켜 제가 할 말씀을 다 드리게 하였으니, 천왕天王께서는 이利와 의義에 근거하여 이익을 잡고 의義를 헤아려 행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