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子常問蓄貨聚馬鬪且論其必亡
[大義]정치를 담당하여 無禮하고 백성을 돌보지 않은 채 재물을 모으면 망함을 자초함. 대의>
夫古者에 聚貨호대 不妨民衣食之利하며 聚馬호대 不害民之財用하야
夫貨馬
則闕於民
이오 民多闕則有離畔之心
이니 將何以封矣
리오
成王聞子文之朝不及夕也
하고 於是乎每朝
에 設脯一束
과 糗一筐
하야 以羞子文
하야 至于今
秩之
하니라
人謂子文曰 人生求富어늘 而子逃之는 何也오 對曰 夫從政者는 以庇民也니
民多曠者어늘 而我取富焉이면 是勤民以自封也니 死無日矣라
故莊王之世
에호대 唯
在
하야 至于今處
하야 爲楚良臣
하니
今子常
은 先大夫之後也
어늘 而相楚君
하야 無令名於四方
하고 民之羸
이어늘 四境盈壘
하고 道殣相望
하며 盜賊
하고 民無所放
이어늘
이라가하고不顧於民
하야 一國棄之
를 如遺迹焉
하니라
子常爲政하야 而無禮不顧 甚於成‧靈하니 其獨何力以待之리오
218. 자상子常이 재물을 축적하고 말을 모으는 일에 대하여 묻자, 투차鬪且가 그 사람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논하다
투차鬪且가 영윤令尹자상子常을 가서 만났는데 자상子常이 그와 더불어 말을 나누다가, 재물을 축적하고 말을 모아들이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다.
투차鬪且가 자기 집에 돌아와서 그의 아우에게 말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영윤令尹이 재난災難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내가 영윤令尹을 만났더니 영윤令尹이 재물과 보화寶貨를 긁어모으는 방법에 대해서 묻기를 마치 굶주린 승냥이나 이리 같은 모습이었다.
옛날에 재화財貨를 모아 쌓되 백성이 생활하는 의식衣食의 이익을 방해하지 않았고, 말을 징발하여 모으되 백성의 재용財用에 손해가 되지 않게 하였다.
국가에서 징발한 백성의 말은 군사를 움직이는 데 충분하였고, 국가에서 관리하는 융마戎馬는 군대軍隊를 동원하기에 충분하였으니, 이 한도에서 초과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공실公室이 보유하고 있는 재화財貨는 손님 접대와 공헌貢獻하는 용도에 충분하였고, 경卿‧대부가大夫家의 보유한 재화財貨는 자기의 용도에 충분하였으니, 이 한도에서 초과하지 아니하였다.
재화財貨와 말을 지나치게 거둬 모으면 백성의 몫이 모자라게 되고, 백성의 몫이 많이 모자라게 되면 이반離畔할 마음이 생기게 되니,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세우겠는가?
옛날 투자문鬪子文이 세 번 영윤令尹 벼슬을 역임하고 물러났으나 하루 동안 먹을거리도 축적하지 않은 것은 백성의 처지를 돌보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성왕成王은 자문子文이 아침에 미처 저녁까지 걱정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아침마다 포脯 한 묶음과 건량乾糧 한 광주리를 자문에게 보내 먹게 하여 오늘날까지 상례常例가 되었다.
성왕成王이 자문子文에게 녹봉祿俸을 내어 줄 적마다 반드시 달아났다가 성왕成王이 녹봉祿俸 주려는 일을 중지하면 돌아오곤 하였다.
사람들이 자문子文에게 말하기를 ‘인생人生은 부자가 되기를 구하는 것인데, 〈녹봉祿俸을 줄 적마다〉 당신은 어째서 달아나는 게요?’ 하니, 대답하기를,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백성은 재물이 텅 빈 자들이 많은데 내가 부富를 취한다면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여 나 자신의 재물만을 많게 하는 것이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
나는 죽음에서 달아난 것이지, 부富에서 도피한 것이 아니다.’ 하였다.
이 때문에 장왕莊王 시대에 약오씨若敖氏의 종족을 몰살하였으나 자문子文의 후손만은 남아 있게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운성鄖城에 살면서 초楚나라의 어진 신하가 되었다.
이는 백성을 구휼하는 일을 급선무로 삼고 자신의 부富는 뒷일로 여긴 결과가 아니겠느냐.
지금 자상子常은 선대부先大夫의 후손인데, 초왕楚王을 보좌하면서 사방에 훌륭한 명성이 없고, 백성들이 수척하고 굶주리는 생활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데 사방의 국경에는 성벽이 가득 차 있고 길거리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이어져 있으며, 도적들은 눈을 부릅뜨고 노리고 있고, 백성은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돌보지 않고 재물을 긁어모으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으니, 백성의 원망을 부르는 일이 많을 것이다.
쌓은 재화財貨가 많아지는 만큼 원망도 더욱 많이 쌓여 갈 것이니, 멸망하지 않고 무엇을 기대하겠느냐!
백성의 성난 마음에 대처하는 것은 큰 시냇물을 막는 것과 같아서 둑이 무너지면 반드시 큰 피해가 일어난다.
자상子常의 결말이 성왕成王‧영왕靈王보다 낫겠는가?
성왕成王은 목왕穆王에게 예禮를 준수하지 않았다가 곰 발바닥 요리를 먹고 죽기를 원했으나 먹지 못하고 죽었고, 영왕靈王은 백성의 생활을 돌보지 아니하여 온 나라 사람들이 마치 그를 길 가는 자가 발자국 버리듯이 하였다.
자상子常이 정치를 맡아 하면서 예禮를 무시하고 백성의 생활을 돌보지 않는 정도가 성왕成王과 영왕靈王보다 더 심하니 그 혼자 무슨 역량으로 환란을 막아 낼 수 있겠느냐.”
그 뒤 1년 만에 백거柏擧의 전투가 일어나 자상子常은 정鄭나라로 달아났고, 소왕昭王은 수隨나라로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