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兵戢而時動이니 動則威요 觀則玩이요 玩則無震이라
是故
로 에 曰 載戢干戈
하며 載櫜弓矢
하고 我求懿德
하야 肆于時夏
하니 允王保之
라하니이다
先王之於民也
에 正其德而厚其性
하며 阜其財求而利其器用
하며 明利害之鄕
하고 以文修之
하야
及夏之衰也에 棄稷弗務하야 我先王不窋이 用失其官하고
朝夕恪勤하야 守以惇篤하고 奉以忠信하야 奕世載德하야 不忝前人하니이다
至於武王하야 昭前之光明하고 而加之以慈和하야 事神保民하니 莫不欣喜하니이다
商王帝辛이 大惡於民하니 庶民이 弗忍하야 欣戴武王하야 以致戎於商牧하시니
是先王이 非務武也라 勤恤民隱하야 而除其害也니이다
夫
에 이요 邦外
이요 侯‧衛
이요 蠻‧夷
이요 戎‧翟
이라
甸服者
는 하고 侯服者
는 하며 賓服者
는 하고 要服者
는 하며 荒服者
는 하나니
有不祭則修意하고 有不祀則修言하며 有不享則修文하고 有不貢則修名하며 有不王則修德하야
於是乎 有刑不祭하며 伐不祀하며 征不享하며 讓不貢하며 告不王이니이다
於是乎 有刑罰之辟하며 有攻伐之兵하며 有征討之備하며 有威讓之令하며 有文告之辭하니이다
布令陳辭
호대 而又不至
면 則又增修於德
하고 無勤民於遠
이라
吾聞夫犬戎樹惇하야 能帥舊德하야 而守終純固하니 其有以禦我矣니이다
王이 不聽하고 遂征之하야 得四白狼과 四白鹿以歸하니
주周나라는 황제黃帝의 후예로 희성姬姓이니, 시조始祖후직后稷의 이름은 기棄이다. 기棄의 어머니 유태씨有邰氏의 딸 강원姜源이 어느 날 들에 나갔다가 대인大人의 발자국을 밟았는데 몸에 감동感動이 오는 걸 느꼈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를 상서祥瑞롭지 못하다 하여 내다 버렸는데 짐승들이 보호하므로 다시 거두어 길러 뒤에 후직后稷이 되었다 한다. 제순帝舜시대에 태邰(지금의 섬서성陝西省무공현武功縣 남서쪽에 있던 옛 나라 이름)에 봉해졌고, 후직后稷이 죽은 뒤 아들 불굴不窋이 계승하였으나 불굴不窋 말년에 하후씨夏侯氏의 정치가 쇠락衰落하여 후직后稷의 벼슬을 없애고 농업을 힘쓰지 않으므로 불굴不窋이 직위職位을 잃고 서융西戎으로 달아나 살았다.
불굴不窋이 죽은 뒤 국鞠을 거쳐 공류公劉에 이르러 서융西戎에 살면서 다시 후직后稷의 유업遺業을 닦아 농사에 힘쓰니 여기서부터 주도周道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공류公劉의 아들 경절慶節이 계승하여 도읍을 빈豳(지금의 섬서성陝西省빈현彬縣의 북동쪽)으로 옮겼다. 후직后稷의 12대 손孫태왕太王이 후직后稷과 공류公劉의 훈업勳業을 닦고 덕德을 쌓으며 도의道義를 행하자 국민들이 모두 추앙하였다. 뒤에 훈육獯鬻과 융적戎狄의 핍박을 받아 기岐(현재의 섬서성陝西省기산현岐山縣에 있는 기산岐山 아래)로 옮겼는데, 셋째 아들 계력季歷이 문왕文王을 낳았는데 성인聖人의 자질이 있었다. 계력季歷이 뒤를 계승하였고, 문왕文王이 천명天命을 받아 천하의 3분의 2를 소유하였으며,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멸망시킨 뒤 천하를 차지하였다. 목왕穆王 이후로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여왕厲王이 무도無道하니 국민의 습격을 받아 체彘(지금의 산서성山西省곽현霍縣)로 달아나서 그곳에서 죽자 선왕宣王이 중흥中興을 꾀하였다. 유왕幽王이 포사褒姒에게 빠져 폭정暴政을 하다가 견융犬戎에게 살해되자, 평왕平王이 동쪽 낙양洛陽으로 천도遷都하여 왕성王城(하남성河南省낙양현성洛陽縣城의 서쪽. 곧 낙읍洛邑)에 거주하였다. 이 이후를 동주東周라고 부르며, 평왕平王으로부터 25왕王째인 난왕赧王에 이르러 진秦나라에 멸망되었다.
1. 채공祭公이 견융犬戎을 정벌하려는 목왕穆王에게 간諫하다
【大義】先代의 聖德을 지닌 天子들은 德을 밝히고 武力示威를 하지 않는 것으로써 주장을 삼았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文德으로 백성들을 臣服시켜야지 武力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다.
주목왕周穆王이 장차 견융犬戎을 정벌하려고 하자, 채공祭公인 모보謀父가 간하였다.
선왕先王들은 천하에 덕德을 밝게 제시提示하였고, 열병閱兵을 하지 않았습니다.
병기兵器를 거두어 저장하였다가 때가 이르렀을 적에 썼으니, 쓰게 되면 두려워했고, 열병閱兵을 자주 하게 되면 깔보며, 깔보면 두려워함이 없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주周나라 문공文公의 송頌에 ‘방패와 창을 수장收藏하며, 궁시弓矢를 활집에 넣고 우리(武王)가 아름다운 덕을 구하여, 이 큰 악장樂章에 큰 공덕功德을 다 늘어놓았으니, 진실로 왕王이 천명天命을 잘 보존했다.’라고 했습니다.
선왕先王이 백성에 대해 그 덕德을 바르게 하여 그 성정性情을 후厚하게 하기를 힘쓰며, 재물 구하는 것을 풍부豐富하게 하여 그 기용器用을 이롭게 하며, 이롭고 해로운 방향을 밝히고 문덕文德으로 닦았습니다.
백성들에게 이利를 힘써 해로움을 피하고, 덕德에 감복感服하여 형벌刑罰의 위엄威嚴을 두려워하게 하였습니다.
때문에 〈국운國運을〉 대대로 지켜서 더욱 성대하게 발전發展했던 것입니다.
옛날 우리 선조先祖께서 대대로 후직后稷(농정農政을 주관하는 벼슬)이 되어 우虞나라와 하夏나라를 직분職分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하夏나라의 정치가 쇠퇴衰退해졌을 때, 후직后稷의 직임職任을 버리고 힘쓰지 않아 우리 선왕先王불굴不窋이 그 때문에 관직官職을 잃고,
스스로 융戎과 적翟 지방의 사이로 도망쳐서 감히 직업職業을 게을리 하지 않아
그 선대先代의 덕德을 서술敍述하고, 선대先代의 일을 계승繼承하였으며, 선대先代의 훈전訓典(교훈敎訓과 법도法度)을 닦아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고 부지런히 힘써서, 돈독敦篤함으로써 지키고, 충신忠信으로 받들어 대대로 덕德을 이루어 선인先人들의 덕德을 욕되게 하지 않았습니다.
무왕武王에 이르러 전대前代의 빛난 업적을 밝게 드날리고, 더욱 인자仁慈하고 온화溫和한 덕德을 더하여 신명神明을 섬기고 백성을 보호하니, 신명神明과 백성이 기뻐하며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상商나라 임금 제신帝辛(신辛은 주왕紂王의 이름)이 백성들에게 아주 포악한 정치를 하자, 서민庶民들이 참지 못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무왕武王을 추대推戴하고 저 상商나라 목야牧野에서 전쟁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선왕先王들이 무력武力을 힘쓰지 않은 것으로써 부지런히 백성의 고통을 염려하여 그 해害를 제거除去한 것입니다.
선왕先王의 제도制度에 방내邦內는 전복甸服이고, 방기邦畿 밖은 후복侯服이며, 후복侯服과 위衛 사이는 빈복賓服이며, 만이족蠻夷族이 사는 곳은 요복要服이며, 서융西戎과 북적北翟이 사는 곳은 황복荒服이라 하였습니다.
전복甸服에 사는 사람들은 제祭를 공급하고, 후복侯服에 사는 사람들은 사祀를 바치며, 빈복賓服에 사는 사람들은 향享을 드리고, 요복要服에 사는 사람들은 공貢을 바치며, 황복荒服에 사는 사람들은 왕王을 합니다.
일제日祭와
월사月祀와
시향時享과
세공歲貢과
종왕終王이
선왕先王의
입니다.
전복甸服에 사는 사람이 제祭를 공급하지 않으면 천자天子는 마음을 수양修養하여 자책自責하고, 후복侯服이 사祀를 바치지 않으면 호령號令을 내려 바로잡으며, 빈복賓服이 향享을 드리지 않으면 법령法令을 정비하고, 요복要服이 공貢을 바치지 않으면 명분名分(존비尊卑와 직공職貢에 관한 명호名號)을 수정修正하며, 황복荒服이 왕王을 하지 않으면 문덕文德을 닦아서 오게 하였습니다.
이 〈다섯 가지〉의 차서次序가 이루어졌는데도 오지 않는 자가 있으면 형벌로 다스렸습니다.
이리하여 제祭를 공급하지 않는 자는 형벌刑罰을 시행하며, 사祀를 바치지 않는 자는 공벌攻伐하며, 향享을 드리지 않는 자는 정토征討하며, 공貢을 바치지 않는 자는 견책譴責하며, 왕王을 하지 않는 자는 문사文辭로 타일렀습니다.
이리하여, 형벌刑罰하는 법法이 있게 되고, 공벌攻伐하는 무력武力이 있게 되고, 정토征討하는 무비武備가 있게 되고, 〈세공歲貢을 바치지 않는 자에게〉 위엄威嚴을 세워 꾸짖는 호령號令이 있게 되고, 〈종왕終王하지 않는 자에게〉 문사文辭로 타이르는 글이 있게 되었습니다.
명령命令을 선포宣布하고 말로 타이르는데도 오지 않으면 또 자기의 문덕文德을 더욱 닦아서, 백성들이 먼 곳에 가서 정토征討하는 수고로움이 없게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가까이 사는 백성들은 왕명을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고, 먼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신복臣服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저 대필大畢과 백사伯仕가 죽으면서부터 〈그 뒤를 이은〉 견융犬戎의 군주君主가 자신이 행해야 할 직분職分을 가지고 와서 종왕終王하였습니다.
그런데 천자天子는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시향時享하지 않은 죄로 정토征討하겠다.’라 하시고, 또 열병閱兵을 하려고 하십니다.
혹여 선왕先王의 가르침과 법도法度를 폐기하여 〈황복荒服이 행하는 예禮인〉 종왕終王의 일이 파괴되지나 않겠습니까!
제가 듣기에 견융犬戎이 돈후敦厚한 성정性情을 수립하여, 옛 선왕先王의 덕德을 능히 따라 끝까지 전일하게 종왕終王의 직분職分을 지킨다니, 〈열병閱兵하여 견융犬戎을 정벌하면〉 그들이 우리에게 대응對應할 명분名分이 있게 될 것입니다.”
왕은 듣지 않고 끝내 정벌征伐하여 그 지방의 흰 이리 네 마리와 흰 사슴 네 마리를 잡아 돌아왔다.
이때부터 황복荒服에 사는 사람들이 주周나라에 종왕終王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