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曹共公不禮重耳 而觀其骿脅
[大義]曹共公이 重耳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고 목욕을 할 때 통갈비뼈를 훔쳐보아 임금의 본분을 잃자 僖負羈가 중이의 미래를 예견하고 공공에게 예를 갖추어 대하도록 권면함. 대의>
僖負之妻言於負羇曰 吾觀晉公子
는 賢人也
요 其從者
도 皆國相也
니
以相一人
이면 必得晉國
이요 得晉國而討無禮
하면 曹其首誅也
리니 子盍蚤自
焉
가하니라
負羇言於曹伯曰 夫晉公子在此
하니 君之匹也
라不亦禮焉
이니이가 曹伯
이 曰 諸侯之亡公子其多矣
니 誰不過此
리오
對曰 臣聞之
컨대 愛親明賢
은 政之榦也
요 禮賓矜窮
은 禮之宗也
요 禮以
政
은 國之常也
니 失常
은 君所知也
니이다
先君
은 出自文王
하고 晉祖唐叔
은 出自武王
하니 文武之功
이 實建諸姬
라
故
로 二王之嗣
는 世不廢親
이어늘 今君
이 棄之
면不愛親也
요 晉公子生十七年而亡
이나 卿材
이 從之
하니 可謂賢矣
어늘 而君
이 蔑之
면 是不明賢也
니이다
晉公子之亡
이면 不可不憐也
요 比之賓客
이면 不可不禮也
라
守天之聚
인댄 將施於
니 宜而不施
면 聚必有闕
하리이다
은 猶糞土也
어늘 愛糞土
하야 以毁
常
이면 失位而闕聚
하리니
109. 조공공曹共公이 중이重耳를 예로 대하지 않고 그 통갈비뼈를 훔쳐보다
〈중이重耳가〉 위衛나라에서 떠나 조曹나라를 지나가는데 조공공曹共公 역시 예로 대하지 아니하였다.
〈공공共公은 공자公子중이重耳가〉 통갈비뼈라는 소문을 듣고 그 모습을 보고자 하여, 그의 객사에 머물게 하면서 그가 장차 목욕하는 것을 살펴서 가리개를 설치해 놓고 다가가서 보았다.
희부기僖負羇의 아내가 희부기에게 말하기를 “제가 보건대 진晉나라 공자公子중이重耳는 어진 사람이고 그를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모두 나라의 재상감들입니다.
그들이 한 사람 중이를 도와준다면 반드시 진晉나라를 얻을 것이고, 진나라를 얻어서 무례한 이들을 토벌한다면 조나라가 맨 먼저 주륙당할 것이니, 당신은 어찌 일찍 스스로 그에게 특별히 하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희부기가 저녁밥을 줄 때 구슬을 밥과 함께 놓았는데 공자가 밥은 받고 구슬은 되돌려 주었다.
희부기가 조백曹伯에게 말하기를 “진晉나라 공자公子가 여기에 있는데 임금의 상대자인지라, 임금께서는 또한 그를 예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니, 조백이 말하기를 “제후들의 망명한 공자들이 많은데 누가 여기를 지나지 않겠는가?
망명한 자는 모두 무례한 자들이니, 내가 어찌 예를 다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희부기가 대답하기를 “신은 듣건대 친척을 사랑하며 어진 이를 드러내 줌은 정무政務의 기간基幹이고, 손님을 예로 대하며 궁색한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예禮의 근본이고, 예로 정치를 다스리는 것은 국가의 떳떳한 도리이니, 떳떳한 도리를 잃으면 정치가 확립되지 않는 것은 임금께서도 아실 것입니다.
나라 임금은 친할 이가 없고 나라로 친합니다.
우리 선군先君숙진叔振은 문왕文王에게서 나왔고 진晉나라 조상 당숙唐叔은 무왕武王에게서 나왔으니, 문왕과 무왕의 공이 실로 여러 희성姬姓국가國家를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두 임금의 자손들이 대대로 친함을 폐하지 않았는데 이제 임금께서 버리신다면 이는 친척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진晉나라 공자가 태어나서 17년 동안이나 망명하고 있으나 경卿의 재목 세 사람이 따라다니고 있으니 어질다고 이를 만하거늘 임금께서 멸시하신다면 이는 어진 이를 드러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진나라 공자가 망명한다고 생각한다면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없고 빈객에 견준다면 예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를 그르친다면 이것은 빈객을 예우하지 않는 것이고 곤궁한 이를 가엾이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이 주는 재물과 백성을 지키려고 할진대 옳은 데에 베풀어야 할 것이니, 옳은데도 베풀지 않는다면 재물과 백성에 반드시 손실이 있을 것입니다.
구슬과 비단, 술과 음식은 썩은 흙과 같거늘 썩은 흙을 아껴서 세 가지 떳떳한 것을 해친다면 지위도 잃고 재물과 백성도 손실될 것입니다.
이를 재난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임금께서는 생각하십시오.”라고 했으나, 공공共公은 따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