愈少
하야 於
都不通曉
나 家貧不足以自活
일새 應擧覓官
이 凡二十年矣
로라
性本好
일새 因困厄悲愁
를 無所告語
하야 遂得
於經傳史記百家之說
하야 하고 反復乎句讀
하고 하야 而奮發乎文章
이라
凡自
已來
로 編簡所存
이 大之爲河海
요 高之爲山嶽
이며 明之爲日月
이요 幽之爲鬼神
이며 纖之爲
이요 變之爲雷霆風雨
어늘 奇辭奧旨
를 靡不通達
이나
伏以閤下內仁而外義
하고 行高而德鉅
하며 尙賢而
하고 哀窮而悼屈
하니 自江而西
가 旣化而行矣
라
當天子新卽位
하야 汲汲於理化之日
하니 出言擧事
가 宜必
이리라
旣有聽之之明
하고 又有振之之力
하니 甯戚之歌
와 明之言
을 不發於
면 則後而失其時矣
리라
雜以瓌怪之言하니 時俗之好라 所以諷於口而聽於耳也리라
이 글 안에 자신의 처지를 비탄悲嘆한 말과 아울러 자신을 칭찬한 말이 많다.
저는 젊어서부터 견문見聞이 좁고 식견識見이 부족한데다가 어리석고 둔하기까지 하여 세상일에 전혀 아는 것이 없는데도, 집이 가난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할 수 없으므로 과거에 응시해 벼슬을 구한 지가 대체로 2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이 기박하고 불행하여 번번이 참소와 비방을 만나, 한 걸음 나아갔다가 열 걸음 물러났으니, 끝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습니다.
저는 천성이 본래 문학文學을 좋아하므로 곤궁困窮과 비수悲愁를 호소할 곳이 없음으로 인해 드디어 경전經傳과 사기史記와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학설學說을 연구하여 문사文辭의 뜻을 깊이 탐구하고 구두句讀를 떼는 일을 반복해 점검點檢하며, 사업事業에 심신을 단련하고 문장을 짓는 일에 분발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로 당우唐虞(堯舜) 이래로 편간編簡(書籍)에 실려 있는 문헌文獻은 광대廣大하기가 하해河海 같고 높기가 산악山岳 같고 밝기가 일월日月 같고 유심幽深(深奧)하기가 귀신鬼神 같고 섬세纖細하기가 주기珠璣‧화실華實 같고 변화가 뇌정雷霆‧풍우風雨 같은데, 저는 그 기묘한 문사文辭와 심오한 뜻을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루淺陋하고 우둔愚鈍하여 세상일에 밝지 못한 탓에, 학문이 이루어졌으나 도道(學問)는 더욱 펼 길이 없고 나이는 들었으나 지혜는 더욱 줄어듭니다.
스스로 가여워하고 슬퍼하면서 당초에 이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을 후회하니, 이는 머리가 벗겨지고 이가 빠져 늙은이가 되도록 저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저 영척甯戚이 쇠뿔을 두드리며 부른 노래는 가사歌辭가 비루하고 뜻이 졸렬하며, 종명鬷明이 당하堂下에서 한 말은 전기傳記(《春秋左氏傳》)에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제齊 환공桓公은 영척을 등용해 상국相國으로 삼았고, 숙향叔向은 종명의 손을 이끌고서 당상堂上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렇다면 말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듣고서 알아주는 이를 만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합하閤下께서는 내심內心이 인자하고 외행外行이 의로우시며, 행실이 고상하고 덕이 크시며, 현자賢者를 높이고 유능한 자를 천거薦擧하시며, 곤궁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억울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시니, 강남江南 서도西道의 백성들이 이미 감화되어 도의道義를 행합니다.
이제 합하께서 조정으로 들어가 내직內職을 맡으시어 조정의 대신大臣이 되셨습니다.
천자天子께서 새로 즉위하시어 정치와 교화를 서두르시는 때를 당하였으니, 의견을 제시한 말과 거행하시려는 일이 반드시 실시될 것입니다.
이미 남의 말을 들으시는 밝은 지혜가 있으시고, 또 사람을 발탁할 수 있는 힘이 있으시니, 영척의 노래와 종명의 말을 합하[左右]께 말씀드리지 않는다면 늦어서 때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가 지난날에 지었던 문장 한 권을 올리오니, 〈이 문장을 읽어보시면〉 교화와 도의를 붙잡아 세우는 일에 대해 밝게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행시南行詩》 한 권은 근심을 풀고 슬픔을 달랠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세속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괴한 말들을 섞었으니, 입으로 읊조리고 귀로 들을 만합니다.
가령 이 시詩를 보신다면 그중에 채택採擇할 만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존엄하신 합하를 범하였으니 더욱 황공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