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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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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大家文抄 論例
世之論韓文者 共首稱碑誌로되 予獨以韓公碑誌하야 不得史漢序事法이라 故於 或小이라
予間亦鐫記其旁하니라
至於歐陽公碑誌之文하야는 可謂獨得史遷之髓矣 王荊公則又別出一調하니 當細繹之니라
序記書 則韓公崛起門戶矣 而論策二下 當屬之蘇氏父子兄弟니라
四六文字 予初不欲錄이나 然歐陽公之 蘇子瞻之 王荊公之深刺 於君臣上下之間 似有感動處 故錄而存之하니라
予覽子厚之文컨대하고 其紀山水處多하며 至於墓誌碑碣하야는 其爲御使及禮部員外郞時所作이라 多沿六朝之遺일새 予不錄하고 錄其貶永州司馬以後稍屬者凡若干首하야 以見其이라
然不如昌黎多矣니라
宋諸賢敍事 當以歐陽公爲最니라
何者
以其自史遷出하야 一切有法하고 而中多感慨俊逸處니라
予故往往心醉하니라
曾之大旨 近劉向이나少矣
王之結構裁翦 極多苦心處 往往矜而嚴하고 潔而則이라
然較之曾이면 特屬伯仲하니 須讓歐一格이라
至於蘇氏兄弟하야는 大略長公者 文才處多 以結構裁翦四字 非其所長이라
諸神道碑 多者 八九千言이요 少者 亦不下四五千言하니 所當詳略斂散處 殊不得史體하니라
何者
兩公於策論 千年以來絶調矣
故於此或一格하니 亦天限之也
予覽歐蘇二家論不同이라
故其論多確而不嫌於複하고 蘇氏兄弟 則本而爲文이라 故其論하야 而多之勢하니라
歐則譬引江河之水하야 而穿林麓灌하고 若蘇氏兄弟 則譬之引江河之水하야 以一瀉千里하야 湍者縈하고 逝者注하야 杳不知其所止者已니라
語曰이니 學者須自得之니라
蘇明允易詩書禮樂論 未免雜之以曲見이나 特其文이라
子瞻 似狃於佛氏之言이나 然亦以其見解하고 其間又有文旨不遠하야 稍近 故竝錄之하니라
曾南豐之文 大較本經術하고 祖劉向하야 其湛深之思 嚴密之法 自足以與古作者相雄長하니 而其光焰 或不外爍也
故於當時 稍爲蘇氏兄弟所掩이나하고 歷數百年하야 而近年하야 如渴者之飮하니라
予嘗有文評曰
以來 如長川大谷하야 深之不窮하고 攬之不竭하야 하고 司馬子長之文也 하야 西京之中 獨冠儒宗者 劉向之文也 하야 上摹子長하고 下採劉向父子하야 班固也 하야 若千里之駒 而走赤電鞭疾風하야 常者山立하고 怪者霆擊 韓愈之文也 하야 若游峻壑削壁하야 而谷風凄雨四至者 柳宗元之文也 하야 若携美人宴遊東山하야 歐陽子之文也 하야 하야 赴千里之河而注之海者 蘇長公也
嗚呼
七君子者 可謂聖於文矣 其餘若賈董相如揚雄諸君子 可謂才問炳然西京矣 而非其至者 曾鞏王安石蘇洵轍 至矣니라
鞏尤爲折衷於大道하야 而不失其正이나이라
吾聊次之如左하야者賞之하노라
八大家而下 予於本朝獨愛하노니 程朱所欲爲而不能者ᄅ새니라
卽如 條次兵情 如指諸掌이온 況其設伏出奇 先後本末 多合兵法
人特以稍屬矜功이라하야 而往往口訾之耳니라
嗟乎
公固百世殊絶人物이니 區區文章之工與否 所不暇論일새
予特附揭於此하야 以見我本朝一代之人豪하니 而後世之品文者 當自有定議云이라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의 논례論例
세상에 한공韓公(韓愈)의 문장文章을 논하는 자들은 모두 비문碑文지문誌文을 으뜸으로 치지만, 나(茅坤)는 홀로 한공의 비문과 지문은 기발奇拔하고 괴이怪異한 곳이 많아서 《사기史記》나 《한서漢書》의 서사법敍事法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멋을 부린 곳에 간혹 힘차고 자유분방한 기운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간간이 또한 나의 의견을 그 옆에 기록하였다.
구양공歐陽公(歐陽脩)의 비문과 지문은 홀로 태사太史 사마천司馬遷의 진수를 얻었다고 이를 수 있고, 왕형공王荊公(王安石)은 또 따로 한 격조格調창출創出하였으니 자세히 음미吟味해야 할 것이다.
한공韓公문호門戶를 일으켰고, 이하는 응당 소씨蘇氏 부자와 형제(소순蘇洵소식蘇軾소철蘇轍)에게 돌려야 한다.
사륙문자四六文字(騈儷文)는 내가 당초에는 수록하고자 하지 않았으나, 구양공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과 소자첨蘇子瞻(소식)의 비분강개悲憤慷慨한 것과 왕형공의 심각한 풍자諷刺가 군신 상하 사이에 감동을 줄 수 있을 것 같으므로 수록하였다.
내가 유자후柳子厚(柳宗元)의 문장을 보건대 그의 은 날카롭게 묘사한 곳이 많고, 산수기山水紀는 뜻이 깊고 문장이 활달한 곳이 많으며, 묘지墓誌비갈碑碣은 그가 어사御使예부원외禮部員外로 있을 때 지은 것이어서 육조六朝유습遺習을 답습한 변려체騈儷體가 많으므로 수록하지 않았고, 그가 영주사마永州司馬좌천左遷된 이후의 작품作品으로 의미意味가 깊은 것에 속하는 약간 을 수록하여 그의 풍도風度기개氣槪를 드러내었다.
그러나 창려昌黎의 글만큼 많이 수록하지 않았다.
나라 제현諸賢서사문敍事文구양공歐陽公을 으뜸으로 쳐야 한다.
어째서인가?
그 문장의 격조格調태사太史 사마천司馬遷에서 나와서 모든 문장에 용어用語를 선택해 배열하고[結構] 불필요한 말들을 깎아내는 데[裁翦] 법이 있고, 중간에 감개感慨가 뛰어난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따금 그 글에 심취하곤 하였다.
증공曾公(曾鞏)의 문장의 대지大旨유향劉向에 가까우나 세속을 초월超越격조格調가 부족하다.
왕형공王荊公의 문장은 용어를 선택해 배열하고 불필요한 말들을 깎아낼 때에 지나치게 깎아내어 세련되게 꾸미느라 고심한 곳이 매우 많으나, 이따금 경건하여 엄숙하고 고결하여 법도에 맞았다.
그러나 증공에 비교하면 단지 엇비슷할 뿐이니, 구양공보다는 한 이 아래이다.
소씨蘇氏 형제로 말하면 대체로 장공長公(蘇軾)은 문재文才가 서글서글하고 시원하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곳이 많으나, 용어를 선택해 배열하고 불필요한 말들을 깎아내는 것은 그의 장기長技가 아니다.
여러 신도비神道碑 중에 글자가 많은 것은 8, 9천 자에 이르고 적은 것도 4, 5천 자 이하가 아니니, 당연히 상세히 기록할 곳과 간략히 기록할 곳, 수렴收斂할 곳과 발산發散할 곳에 사서史書를 편찬하는 체제體制를 얻지 못한 것이다.
어째서인가?
의 다리는 길지 않을 수 없고, 오리의 다리는 짧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양공兩公은 천 년 이래의 뛰어난 문장이다.
그러므로 신도비神道碑에는 혹 한 이 떨어진 듯하니, 이 또한 하늘이 그 재능을 제한制限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구양공歐陽公소씨蘇氏 두 사람의 은 같지 않다.
구양공은 사실을 서술함에 있어 핵심을 정확히 집어 자세히 말하였다.
그러므로 그 논의論議가 대체로 정확하여 중복을 피하지 않았고, 소씨 형제는 《전국책戰國策》의 종횡縱橫의 뜻에 근거하여 문장을 지었기 때문에 그 논의가 솔직하고 유창하여 서글서글하고 시원하며 힘차고 자유분방한 기세가 많다.
구양공의 문장은 비교하자면 강하江河의 물을 끌어와 산림山林을 뚫고 농수로農水路로 흘려보내는 것 같고, 소씨 형제의 문장은 비교하자면 강하의 물을 끌어와 세차게 흘려보내다가 소용돌이치는 물은 빙빙 돌고, 흐르는 물은 흘러 멈출 곳을 알 수 없이 아득히 흘러가는 것 같다.
말하자면 ‘작자는 서로 다르나 정교한 솜씨는 동일하다.’ 하겠으니, 학자들은 반드시 스스로 터득해야 할 것이다.
소명윤蘇明允(蘇洵)의 〈역론易論〉‧〈시론詩論〉‧〈서론書論〉‧〈예론禮論〉‧〈악론樂論〉은 편견偏見을 난잡하게 배열排列함을 면치 못하였으나, 단지 그 문장이 힘이 있기 때문에 수록하였을 뿐이다.
자첨子瞻대비각大悲閣 기문記文십팔아라한十八阿羅漢 등의 은 부처의 말에 미혹迷惑[狃]한 것 같으나, 그 견해가 뛰어나게 명확하고, 그 사이에 또 문장의 뜻이 깊지 않아 거자업擧子業에 가까운 것이 있으므로 아울러 수록收錄하였다.
증남풍曾南豐(曾鞏)의 문장은 대체로 경술經術(經學)에 근거하고 유향劉向을 본받아, 깊은 사고思考와 엄밀한 이 옛 작자들과 서로 우열을 다투기에 충분하니, 그 광채가 외부의 작용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에 소씨蘇氏 형제에 의해 빛이 가려졌으나, 유독 주회암朱晦庵(朱熹)은 그의 문장을 매우 칭찬하였고, 수백 년이 지나 근년에 와서는 왕도사王道思(王愼中)가 비로소 남풍의 문장을 알아보고서 읽어보고는 마치 목마른 자가 금경로金莖露를 마신 것처럼 좋아하였다.
내 일찍이 문평文評을 지어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굴원屈原송옥宋玉 이후로 문장이 심후深厚하고 엄밀嚴密하기가 마치 장강長江 대곡大谷과 같아 아무리 깊이 들어가도 끝이 보이지 않고 아무리 채취하여도 자원資源이 고갈되지 않아, 백가百家를 함축하고 만대萬代를 포괄한 것은 사마자장司馬子長(司馬遷)의 문장이고, 규모가 광대廣大하고 뜻이 심오하며 문사文辭전거典據가 있고 고아高雅하여 서한西漢의 문인 중에 유학儒學종사宗師 자리를 독점한 것은 유향劉向의 문장이고, 경위經緯를 따져 위로 사마자장의 문장을 본받고 아래로 유향父子의 문장을 채용하여 일가一家의 문장을 이룬 이는 반고班固이고,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도 하며 힘차게 달리기도 하고 정지하기도 하여 마치 천리마千里馬가 번개처럼 달리고 질풍疾風처럼 달리는 것 같으며, 평범한 문장은 산이 서 있는 것처럼 장중莊重하고, 괴기怪奇한 문장은 벼락을 치듯이 맹렬한 것은 한유韓愈의 문장이고, 험준한 암산巖山과 높이 솟은 봉우리처럼 시문詩文이 웅장하고 뛰어나서 마치 깊은 골짜기의 절벽 아래서 노는데 골짜기 바람과 싸늘한 비가 사방에서 이르는 것 같은 것은 유종원柳宗元의 문장이고, 힘이 있고 아름다우며 틀에 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여, 마치 미인美人을 대동하고 동산東山에서 잔치를 열어 즐겁게 노는 것 같아, 풍류風流문물文物강좌江左에 비춘 것은 구양자歐陽子의 문장이고, 글을 엮어 의사를 표출해야 할 것은 글을 엮고, 붓을 멈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붓을 멈추어서, 기세가 한없이 성대하여 천 리를 달려온 하수河水가 바다로 흘러드는 것 같은 것은 소장공蘇長公의 문장이다.
아!
이 일곱 사람은 문장에 있어 성인聖人이라 할 수 있고, 이 밖에 가의賈誼동중서董仲舒사마상여司馬相如양웅揚雄 같은 사람들도 재능과 학문이 서경西京을 빛냈다고 할 수 있으나 문장이 극치에 도달한 이들은 아니고, 증공曾鞏왕안석王安石소순蘇洵소철蘇轍은 극치에 도달한 분들이다.
증공은 또 대도大道를 절충하여 바름을 잃지 않았으나, 그 재능이 부족하여 간혹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다.
나는 우선 이하와 같이 서술하여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감상하기를 기다린다.”
팔대가八大家 이후로 나는 우리 나라의 문장 중에 유독 왕문성공王文成公(王守仁)의 학문學問을 논한 여러 편의 글과 기학記學기존경각記尊經閣 등의 문장만을 좋아하니, 이는 정주程朱가 말하고자 하였으나 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강서江西사작소辭爵疏무전주撫田州 등의 나라 육선공陸宣公나라 이충정공李忠定公도 미치지 못할 바이다.
바로 이두浰頭용강槦岡군공軍功을 논한 는 군대의 정황을 조목별로 서술한 것이 마치 손바닥을 보는 것처럼 분명한데, 하물며 복병伏兵을 설치하여 출기出奇(奇襲)하는 선후와 본말이 대부분 병법兵法에 부합함에랴.
사람들은 단지 그의 이 소가 자신의 공을 약간 자랑한 것이라 하여 이따금 헐뜯을 뿐이다.
아!
공은 진실로 백세百世에 뛰어난 인물이니, 하찮은 문장이 정교하냐의 여부는 논할 거리가 못된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에 특별히 공을 부기附記하여 우리 나라 시대의 뛰어난 인물임을 드러내었으니, 후세에 문장을 품평品評하는 자들은 당연히 정론이 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奇崛險譎 : 奇崛은 문장이 奇拔함이고, 險譎은 怪異함이다.
역주2 風神 : 風致와 神韻으로 문장의 멋과 정신을 이른다.
역주3 遒逸 : 문장이 힘차고 자유분방함이다.
역주4 婉麗 : 문장이 부드럽고 아름다움이다.
역주5 悲慨 : 悲憤慷慨의 준말로, 의롭지 못한 일에 슬프고 분한 마음이 복받침이다.
역주6 議論處 : 《柳柳州文抄》 권8에 실린 論과 議를 이른다.
역주7 鑱畫 : 예리하게 묘사함이다.
역주8 幽邃夷曠 : 幽邃는 심오함이고, 夷曠은 평탄하고 활달함이니, 곧 뜻이 깊고 문장이 활달함이다.
역주9 雋永 : 雋은 肥肉이고, 永은 長이니, 맛이 있고 뜻이 깊은 詩文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역주10 風槪 : 風은 風度로 아름다운 태도를 이르고, 槪는 氣槪로 어떠한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는 意志를 이른다.
역주11 調 : 格調로, 格式과 聲調를 이른다. 격식은 規範이고 성조는 詩文의 節奏(리듬)이다.
역주12 結構裁翦 : 結構는 詩文을 構成할 때 用語를 선택해 排列함이고, 裁翦은 불필요한 말들을 깎아내는 것이다.
역주13 逸調 : 세속을 초월한 格調이다.
역주14 鑱洗 : 너저분한 말을 깎아내어 문장을 간결하고 세련되게 꾸밈이다.
역주15 疎爽豪蕩 : 疎爽은 문장이 서글서글하여 시원함이고, 豪蕩은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분방함이다.
역주16 鶴脛不得不長 鳧脛不得不短 : 학의 다리가 길고 오리의 다리가 짧은 것은 하늘이 준 것이라서 사람의 힘으로 긴 것을 짧게 할 수도 없고, 짧은 것을 길게 할 수도 없다는 말로 天賦의 재능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뜻이다. 긴 학의 다리는 蘇軾과 蘇轍이 策과 論에 뛰어난 것을 비유한 것이고, 짧은 오리의 다리는 結構裁翦에 재주가 부족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17 : 쇄
역주18 次情事甚曲 : 次는 敍述이고, 情事는 事實이고, 甚은 심각으로 일의 핵심을 정확히 집는 것이고, 曲은 상세함이니, 곧 사실을 서술함에 있어 그 일의 핵심을 정확히 집어 자세히 말함이다.
역주19 戰國策縱橫以來之旨 : 以來는 未詳이다. 縱橫은 合縱連橫의 준말이기도 하지만, 문장을 논할 때의 縱橫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서슴없이 吐露한다는 뜻으로 쓰이니, 곧 《戰國策》의 自由奔放(縱橫)한 文體를 본받았다는 말인 듯하다.
역주20 直而鬯 : 내용이 솔직하고 문장이 流暢함이다.
역주21 疎逸遒宕 : 疎逸은 서글서글하고 시원함이고, 遒宕은 힘이 있고 자유분방함이다.
역주22 畎澮 : 田地 사이의 農水路이다.
역주23 同工而異曲 : 연주한 악곡은 다르지만 정교한 솜씨는 같다는 말로, 문장의 작자는 서로 다르지만 훌륭한 솜씨는 같다는 뜻이다.
역주24 遒勁 : 힘이 있음이다.
역주25 大碑閣等記 及贊羅漢等文 : 《東坡文抄》 권25에 실린 〈安國寺大悲閣記〉‧〈四菩薩閣記〉‧〈衆妙堂記〉 등과 권27에 실린 〈磨衲贊〉‧〈十八大阿羅漢頌〉 등을 이른다.
역주26 超朗 : 뛰어나게 밝음이다.
역주27 擧子業 : 科擧를 보기 위해 익히는 學業을 이른다.
역주28 朱晦庵亟稱之 : 《晦庵集》 83권의 〈跋曾南豐帖〉과 《朱子語類》 139권의 文人들을 논한 곳에 曾鞏의 문장을 높이 평가한 곳이 여러 군데 보인다.
역주29 王道思始知讀而酷好之 : 道思는 明代의 文人 王愼中의 字이고, 號는 遵巖이다. 《遵巖集》 9권의 〈曾南豐文粹序〉와 그 밖의 몇몇 곳에 曾鞏의 문장을 좋아했다는 말이 보인다.
역주30 金莖露 : 銅柱를 세우고서 받은 이슬을 이르는데, 전설에 이 이슬에 玉屑(옥가루)을 타서 마시면 神仙이 된다고 한다. 漢 武帝가 神仙說에 미혹하여 建章宮 서쪽에 銅柱를 세우고 그 위에 承露盤(이슬을 받는 소반)을 든 仙人의 銅像을 안치하고서, 이슬을 받아 마시면서 長壽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漢書 郊社志上》
역주31 屈宋 : 戰國 때 楚나라의 辭賦家인 屈原과 宋玉을 이른다.
역주32 渾渾噩噩 : 渾渾은 深厚한 모양이고, 噩噩은 嚴密한 모양이다.
역주33 蘊藉百家 : 蘊藉는 含蓄과 같으니, 諸子百家의 사상을 모두 문장 속에 含蓄하였다는 말이다.
역주34 包括萬代 : 包括은 內包의 뜻이니, 만대의 역사를 모두 문장 속에 담았다는 말이다.
역주35 閎深典雅 : 閎深은 문장의 규모가 크고 뜻이 깊음이고, 典雅는 문장에 사용한 말들이 典據가 있고 高雅함이다.
역주36 斟酌經緯 : 斟酌은 반복해 思索함이고, 經緯는 條理이다.
역주37 勒成一家之言 : 勒은 語氣詞이고, 一家之言은 一家의 文章을 이른다.
역주38 呑吐騁頓 : 呑吐는 삼키기도 하고 뱉기도 한다는 말로 숨기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함을 뜻하고, 騁頓은 글을 달리듯이 써내려가기도 하고, 때로 정지하기도 함이다.
역주39 巉巖崱屴 : 巉巖은 험준한 巖山으로 詩文이 힘이 있고 奇拔함을 비유하고, 崱屴도 山이 高大하고 험준한 것으로 역시 시문이 뛰어남을 비유한다.
역주40 遒麗逸宕 : 遒麗는 詩文이 힘이 있고 아름다움이고, 逸宕은 틀에 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함이다.
역주41 風流文物 照耀江左者 : 風流는 風度이고, 文物은 禮儀와 規範 등을 이른다. 江左는 江東으로 長江 하류의 東方을 이른다. 옛사람들은 東을 ‘左’, 西를 ‘右’라 하였다. 그러므로 江東을 ‘江左’라 한 것이다.
역주42 行乎其所當行 止乎其所不得不止 : 이 말은 茅坤이 蘇軾의 말을 끌어다가 소식의 문장을 評한 것이다. 《東坡文抄》 권75에 보이는 〈答謝民師推官書〉에 “대략 떠가는 구름과 흘러가는 물과 같아 애당초 정한 바탕(主題를 뜻함)이 없고, 단지 항상 行筆(글을 씀)해야 할 것은 행필하고, 붓을 멈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붓을 멈추었을 뿐이다.[如行雲流水 初無定質 但常行於所當行 止於所不可不止]”라는 말이 보인다.
역주43 浩浩洋洋 : 물의 기세가 광대한 모양인데, 여기서는 문장의 기세가 성대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44 其才或疲薾而不能副焉 : 문장을 엮는 솜씨가 부족하여 표현이 생각과 일치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疲薾는 피곤한 모양인데, 여기서는 모자람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로 쓰였다.
역주45 知音 : 《列子》 〈湯問〉에 “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그의 벗 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잘 이해하여, 백아가 높은 산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높기가 마치 태산 같구나.’라고 하고, 백아가 흐르는 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넓기가 마치 江河 같구나.’라고 하여, 백아의 생각을 종자기가 정확히 이해하였다.”는 故事에서 나온 말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역주46 王文成公 : 文成은 陽明 王守仁의 諡號이다.
역주47 論學諸書 : 《王文成全書》 권4‧5‧6에 실린 편지를 이른다. 그 편지에 학문을 논한 말이 많다.
역주48 記學記尊經閣等文 : 《王文成全書》 권7에 보이는 〈重修山陰縣學記〉‧〈稽山書院尊經閣記〉와 함께 실린 21편의 記를 이른다.
역주49 江西辭爵及撫田州等疏 : 江西는 王守仁이다. 陽明學派를 江西學派라 한다. 辭爵疏는 《王文成全書》 권11에 보이는 〈乞休致疏〉와 〈乞放歸田里疏〉를 이르고, 撫田州 등의 疏는 《王文成全書》 권14에 보이는 〈處置平復地方以圖久安疏〉를 이른다.
역주50 唐陸宣公 宋李忠定公 : 陸宣公은 唐나라의 陸贄이고, 李忠定公은 宋나라의 李綱이다. 이들은 모두 奏議文에 뛰어났다.
역주51 浰頭槦岡軍功等疏 : 《王文成全書》 권11에 보이는 〈浰頭捷音疏〉와 〈橫水槦岡捷音疏〉를 이른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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