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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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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婉媚感慨
하노라
祿山反하야 하니하야 卒不汙祿山父子事라하고
又論逢知讀書하야 하고 하야 不干州縣하고 其餘以救人之急이라하니라
足下繇是與之交하고 欲令逢父子하니라
足下以하야 不得立朝하야 失所不自悔하고 喜事益堅하니 微之乎 子眞로라
謹詳足下所하고 컨대 若濟者 固當得附書로라
今逢又能하야 하야其先人事하야 하고 하야 赫然驚人하니 逢與其父俱當得書矣로라
濟逢父子自하니라
하니 夫苟能樂道人之善이면 則天下皆去惡爲善하고 善人得其所ᄅ새니라
其功實大하니 足下與濟父子俱宜得書로다
足下勉逢하야 令終始其躬하고 而足下年尙彊하니 屢書不一書而已也리라
愈旣承命하니리라


04. 원시어元侍御에게 답한 편지
문장은 부드럽고 아름다우나 감정은 강개慷慨(의분義憤이 복받쳐 한탄하고 분개憤慨함)하다.
미지微之 족하足下합니다.
지난해에 주신 편지를 받아보니, “견봉甄逢의 부친 견제甄濟안녹산安祿山이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을 알고서 즉시 벙어리가 되었다고 속이고서 안녹산을 버리고 떠났고,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황제로 호칭한 뒤에 또 견제를 위협해 부르자, 견제는 죽기로 절조節操를 지키고 소명召命에 응하지 않아, 끝내 안녹산 부자의 반란에 몸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논하시고,
또 “견봉은 독서讀書할 줄을 알아 엄격하게 몸을 관리하고 덕행을 수립하였으며, 부지런히 노력해 자급자족하고 주현州縣에 도움을 구하지 않았으며, 여분餘分이 있으면 방출放出하여 곤궁한 사람들을 구제하였다.”고 논하셨습니다.
족하는 이로 인해 그들과 교유하셨고, 견봉 부자의 이름과 사적事迹사서史書에 실려 영원히 보존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족하足下는 강직하여 사단事端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배척을 받아 조정에 서지 못하여 응당 있어야 할 지위를 잃고도 후회하지 않고 사단을 만들기를 좋아함이 더욱 굳건하시니, 미지微之시여, 그대는 참으로 편안히 지내시며 즐거운 마음으로 업무業務종사從事하는 분입니다.
족하께서 논재論載하신 것을 자세히 살피고서 사서史書를 편찬하는 법을 조사해보건대, 견제甄濟 같은 사람은 진실로 사서에 부기附記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또 지금 견봉甄逢이 몸가짐을 잘하여 지방의 대신大臣에게 사랑을 받아 그 선인先人의 일을 드러내어 천하 사람들의 귀와 눈에 기재記載하고 천자께 주달奏達하여, 부친을 4관작官爵에 추증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니, 견봉과 그 부친을 함께 사서에 기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견제甄濟견봉甄逢 부자父子사적事迹은 그대로 인해 드러났습니다.
춘추春秋》에 군자가 남의 선행을 칭찬하기 좋아하는 것을 찬미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남의 선행을 칭찬하기 좋아한다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악행을 버리고 선행을 할 것이며, 선인善人들이 합당한 자리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견제 부자의 사적을 드러낸 족하足下의 공이 실로 크니 족하도 견제 부자와 함께 연달아 기재되는 것이 합당합니다.
족하께서는 견봉을 권면하시면서 시종 그 몸가짐을 잘하라고 하셨는데, 족하께서도 나이가 아직 젊으시니 옛 성현의 덕행을 잇는 일을 계속한다면, 장차 사관史官이 큰 글씨로 두드러지게 기록할 것이고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여러 번 기록할 것입니다.
내가 이미 족하의 명을 받았으니, 또 손에 붓을 잡고서 〈새로운 덕행이 드러나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역주
역주1 答元侍御書 : 元侍御는 元稹을 가리킨다. 그의 字는 微之이다. 白居易와 名聲을 나란히 하였던 中唐의 詩人이다. 明經科에 及第하여 官職이 監察御史에 이르렀으나, 바른말을 잘함으로 인해 元和 5년(810)에 江州士曹參軍으로 左遷되었다. 원화 8년에 韓愈가 史館의 修撰에 임명되었다는 말을 듣고서 한유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의 벗 甄逢의 부친 甄濟의 節義와 견봉의 德行을 서술하고서 史書에 記載하기를 요청하였으므로, 원화 9년에 한유가 이 答信을 보낸 것이다. 감찰어사를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侍御’라 한 것이다.
역주2 微之足下 : 《五百家注昌黎文集》에는 이 句 앞에 “九月五日 愈頓首(9월 5일에 愈는 머리를 조아립니다.)”란 7자가 있다.
역주3 甄逢父濟識安祿山必反……棄去 : 《舊唐書》 〈甄濟傳〉에 의하면, 甄濟는 字가 孟成이다. 天寶 中年에 衛州 靑巖山에 隱居하였는데, 安祿山이 초빙하여 僚屬으로 삼았다. 견제는 안녹산이 反逆할 줄을 알고서 안녹산에게서 벗어나기를 꾀하였다. 이에 몰래 羊의 피를 준비해두었다가 한밤중에 피를 토하여 몸을 지탱하지 못하는 것처럼 위장하고서 가마에 몸을 싣고 청암산의 옛집으로 돌아갔다. 《舊唐書》 〈安祿山傳〉에 의하면, 안녹산은 營州의 雜種胡人으로 그 어미가 무당이었다. 본래 성은 없고, 이름은 軋犖山인데, 突厥에서는 싸움을 잘하는 것을 ‘軋犖山’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이를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누차의 전공으로 玄宗의 신임을 받아 平盧‧范陽‧河北 등 세 곳의 절도사를 겸임하였다. 天寶 末年에 반란을 일으켜 長安을 함락하고서 ‘雄武皇帝’라 칭하고 國號를 ‘燕’이라 하였다. 뒤에 그 아들 慶緖에게 被殺되었다.
역주4 有名號 又逼致之 : 有名號는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雄武皇帝’라 칭하고 國號를 ‘燕’이라 한 것을 이르고, 又逼致之는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킨 뒤에 蔡希德에게 生殺의 권한을 주어 殺手 李掞을 데리고 가서, 甄濟의 병의 진위 여부를 살피고서 병을 詐稱하고서 나오지 않는 것이라면 즉시 斬殺하게 한 것을 이른다. 이때 견제는 벙어리가 된 것처럼 위장하여 왼손으로 ‘去不得(갈래야 갈 수가 없다)’이라고 썼다. 이섬이 칼을 쥐고 앞으로 나아가자, 채희덕은 그의 충절에 감탄하여 이섬을 물리치고 돌아가서 안녹산에게 견제가 진짜로 병을 앓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舊唐書》
역주5 死執不起 : 死執은 죽기로 節操를 지킴이고, 不起는 召命에 應하지 않는 것이다.
역주6 刻身立行 : 刻身은 刻己와 같은 말로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함이고, 立行은 德行을 樹立함이다.
역주7 勤己取足 : 勤己는 勤身과 같은 말로 몸을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함이다. 取足은 충분히 取得함인데, 여기서는 自給自足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역주8 : 버림이니, 곧 放出을 뜻한다.
역주9 名迹存諸史氏 : 名迹은 名聲과 事迹이고, 史氏는 史書를 이르니, 곧 그 명성과 사적이 史策에 記入되어 영원히 보존되게 함이다.
역주10 抗直喜立事斥 : 抗直은 强直함이고, 立事는 生事와 같은 말로 事端을 만들기 좋아함이고, 斥은 배척이다.
역주11 安而樂之者 : 安居樂業(편안히 지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業務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역주12 論載 : 말로 論한 것과 글로 記載한 것이다.
역주13 校之史法 : 校는 考校(비교해 조사함)이니, 史書를 편찬하는 법을 조사해보았다는 말이다.
역주14 行身 : 몸가짐이다.
역주15 幸於方州大臣 : 幸은 사랑을 받음이고, 方州는 地方 州郡을 이르고, 大臣은 襄州節度使 袁滋를 이른다.
역주16 標白 : 드러내 찬양함이다.
역주17 載之天下耳目 : 천하 사람들의 귀와 눈에 記載하였다는 말로, 곧 천하 사람들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널리 퍼뜨렸다는 뜻이다.
역주18 徹之天子 追爵其父第四品 : 徹은 奏達(임금께 아룀)함이다. 《新唐書》 〈甄濟傳〉에 의하면, 元和 中年에 襄州節度使 袁滋가 表文을 올려 甄濟의 節行이 國史에 실릴 만하다고 아뢰니, 憲宗은 詔書를 내려 견제를 秘書少監에 追增하였다. 비서소감은 從4品職이다.
역주19 吾人 : 吾子와 같은 말로 元稹을 가리킨다.
역주20 春秋美君子樂(요)道人之善 : 《春秋》에 군자가 남의 선행을 칭찬하기 좋아한 것을 찬미하였다는 말이다. 樂道人之善은 《論語》 〈季氏〉에 보인다. 《春秋公羊傳》 注에 公羊氏가 傳을 낸 이유를 설명하면서 “다시 傳을 낸 것은 군자가 남의 선행을 칭찬하기 좋아해서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春秋公羊傳》 注에 모두 네 군데 보인다.
역주21 牽連 : 連接이니, 곧 서로 잇닿음이다.
역주22 嗣德有繼 : 옛 聖賢의 덕행을 잇는 일을 계속함이다.
역주23 大書特書 : 큰 글씨로 두드러지게 기록함이다.
역주24 執筆以竢 : 붓을 잡고서 그대의 새로운 덕행이 드러나기를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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