又論逢知讀書
하야 하고 하야 不干州縣
하고 其餘以救人之急
이라하니라
足下以
하야 不得立朝
하야 失所不自悔
하고 喜事益堅
하니 微之乎
여 子眞
로라
今逢又能
하야 하야 以
其先人事
하야 하고 하야 赫然驚人
하니 逢與其父俱當得書矣
로라
하니 夫苟能樂道人之善
이면 則天下皆去惡爲善
하고 善人得其所
ᄅ새니라
足下勉逢
하야 令終始其躬
하고 而足下年尙彊
하니 면 將
가 屢書不一書而已也
리라
문장은 부드럽고 아름다우나 감정은 강개慷慨(의분義憤이 복받쳐 한탄하고 분개憤慨함)하다.
지난해에 주신 편지를 받아보니, “견봉甄逢의 부친 견제甄濟가 안녹산安祿山이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을 알고서 즉시 벙어리가 되었다고 속이고서 안녹산을 버리고 떠났고,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황제로 호칭한 뒤에 또 견제를 위협해 부르자, 견제는 죽기로 절조節操를 지키고 소명召命에 응하지 않아, 끝내 안녹산 부자의 반란에 몸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논하시고,
또 “견봉은 독서讀書할 줄을 알아 엄격하게 몸을 관리하고 덕행을 수립하였으며, 부지런히 노력해 자급자족하고 주현州縣에 도움을 구하지 않았으며, 여분餘分이 있으면 방출放出하여 곤궁한 사람들을 구제하였다.”고 논하셨습니다.
족하는 이로 인해 그들과 교유하셨고, 견봉 부자의 이름과 사적事迹이 사서史書에 실려 영원히 보존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족하足下는 강직하여 사단事端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배척을 받아 조정에 서지 못하여 응당 있어야 할 지위를 잃고도 후회하지 않고 사단을 만들기를 좋아함이 더욱 굳건하시니, 미지微之시여, 그대는 참으로 편안히 지내시며 즐거운 마음으로 업무業務에 종사從事하는 분입니다.
족하께서 논재論載하신 것을 자세히 살피고서 사서史書를 편찬하는 법을 조사해보건대, 견제甄濟 같은 사람은 진실로 사서에 부기附記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또 지금 견봉甄逢이 몸가짐을 잘하여 지방의 대신大臣에게 사랑을 받아 그 선인先人의 일을 드러내어 천하 사람들의 귀와 눈에 기재記載하고 천자께 주달奏達하여, 부친을 4품品의 관작官爵에 추증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니, 견봉과 그 부친을 함께 사서에 기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견제甄濟와 견봉甄逢 부자父子의 사적事迹은 그대로 인해 드러났습니다.
《춘추春秋》에 군자가 남의 선행을 칭찬하기 좋아하는 것을 찬미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남의 선행을 칭찬하기 좋아한다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악행을 버리고 선행을 할 것이며, 선인善人들이 합당한 자리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견제 부자의 사적을 드러낸 족하足下의 공이 실로 크니 족하도 견제 부자와 함께 연달아 기재되는 것이 합당합니다.
족하께서는 견봉을 권면하시면서 시종 그 몸가짐을 잘하라고 하셨는데, 족하께서도 나이가 아직 젊으시니 옛 성현의 덕행을 잇는 일을 계속한다면, 장차 사관史官이 큰 글씨로 두드러지게 기록할 것이고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여러 번 기록할 것입니다.
내가 이미 족하의 명을 받았으니, 또 손에 붓을 잡고서 〈새로운 덕행이 드러나기를〉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