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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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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翻覆辨論호되 總不放倒自家地位
使至하야 辱足下書하니 歡愧來幷하야 不容于心호라
嗟乎 子之言意皆是也 僕雖이나 何能逃其責邪
然皆子之愛我多하고 重我厚하야 不酌時人待我之情하고 而以子之待我之意 使我望於時人也로다
之家本窮空이어늘 하야 衣服無所得하고 無所有어늘 三十口 携此將安所歸託乎
捨之入京 不可也 挈之而行 不可也
此一事耳니라
足下謂我入京誠有所益乎
어든 時人能知我哉
하야 日求於人하야 以度時月이나
今年加長矣어늘 復驅之使就其故地하니 是亦難矣
所貴乎京師者 不以明天子在上하고 賢公卿在下하며 談道義者多乎
以僕于其中인들
其知我者固少하고 知而相愛不相忌者又加少어늘 內無所資하고 外無所從하니 終安所爲乎
嗟乎 子之責我誠是也 愛我誠多也어니와 今天下之人 有如子者乎
自堯舜以來 士有不遇者乎
無也니라
子獨安能使我潔淸不汚하야 而處其所可樂哉
非不願爲子之所云者로되 力不足하고 勢不便故也니라
僕於此 豈以爲大相知乎
하고 하야 饑而食하고 飽而嬉者也
其所以止而不去者 以其心誠有愛於僕也
然所愛於我者少하고 不知我者猶多하니 吾豈樂於此乎哉
將亦有而求息於此也니라
嗟乎 子誠愛我矣 子之所責於我者 誠是矣
然恐子有時不暇責我而悲我하고 不暇悲我而自責且自悲也리라
及之而後知하고 履之而後難耳니라
彼人者 有聖者爲之依歸하고 而又有簞食瓢飮하야 足以不死하니 其不憂而樂也 豈不易哉
若僕 無所依歸하고 無簞食無瓢飮이로되 無所取資하니 則餓而死 ᄂ저
子之聞我言이면 亦悲矣리라
嗟乎 子亦愼其所之哉어다
離違久러니 하니 當日懽喜니라
馳此하야 候足下意하고 幷以自解하노라


03. 이고李翶에게 준 편지
반복해 변론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지위를 격하格下하지 않았다.
심부름꾼이 가지고 온 그대의 편지를 받으니 기쁨과 부끄러움이 함께 일어 마음에 용납할 수가 없었네.
아, 그대의 말과 그대의 의사意思가 모두 옳으니, 내가 아무리 궤변詭辯을 늘어놓은들 어찌 책망을 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는 모두 그대가 나를 아끼는 마음이 많고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 두터워서, 시속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마음이 어떤가는 헤아리지 않고 그대가 나를 대우하는 마음만 가지고 나로 하여금 시속 사람들에게 기대를 걸게 한 것이네.
나의 집은 본래 곤궁한데다가 거듭 반군叛軍의 공격과 약탈을 당하여 의복衣服도 건진 것이 없고, 생활용구도 남은 것이 없는데 식구는 거의 30인이나 되니, 이들을 이끌고 장차 어디로 가서 의탁하겠는가?
이들을 버리고 나 혼자 경사京師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들을 데리고 갈 수도 없으니, 그대는 나를 위해 어떤 계책을 내어주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한 가지 일일 뿐이네.
그대는 내가 경사로 가면 참으로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에게 자네 같은 벗이 있으나 자네도 오히려 나를 알지 못하는데, 시속 사람들이 어찌 나를 알 수 있겠는가?
나의 조수操守(절개와 지조)를 견지堅持하면서 그대에게 내몰려 〈경사로 가서〉 공경公卿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만나주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어 의론한다 하더라도 나의 말이 어찌 저들의 뜻에 부합할 수 있겠는가?
내가 전에 경사에 있는 8, 9년 동안 생활할 수 있는 물자를 취할 곳이 없어서 날마다 남에게 도움을 구하여 날을 보냈네.
그러나 당시에는 그렇게 살면서도 고달픈 줄을 몰랐으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마치 통증이 가라앉은 사람이 통증이 발작하였을 때를 회상하면 어떻게 스스로 대처하였는지 모르는 것처럼 그 빈곤의 세월을 어떻게 넘겼는지 모르겠네.
이제는 나이가 더 많아졌는데, 다시 나를 몰아붙여 전에 고생스럽게 살던 그곳으로 가라 하니, 이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네.
경사京師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밝으신 천자天子가 위에 계시고 어진 공경公卿이 아래에 있으며, 도의道義를 담론하는 베옷을 입고 가죽띠를 띤 선비들이 많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가 그 사이에 허둥지둥 돌아다닌들 위로 천자께 이름을 알리고 아래로 공경에게 나를 알릴 수 있겠는가?
이들 중에 나를 아는 자는 본래 적고, 알되 서로 아껴 시기하지 않는 자는 더욱 적은데, 안으로는 의지할 재물이 없고 밖으로는 종유할 벗이 없으니 끝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아, 그대가 나를 책망하는 말이 옳고 나를 아끼는 마음이 많지만 오늘날 천하 사람 중에 그대 같은 사람이 또 있겠는가?
요순堯舜 이래로 현능賢能한 선비로서 불우한 자가 있었던가?
없었다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나에게만 고결하게 행동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고서 내가 즐기는 일을 하라고 하는가?
그대의 말을 따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네만 힘이 부족하고 시대의 상황에 맞지 않기 때문이네.
내가 이곳에서 어찌 크게 인정을 받았다고 하겠는가?
늘어선 줄에 끼어 절도사節度使를 수행하며 쉬지 않고 대열을 따르면서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놀며 즐길 뿐이라네.
그런데도 내가 이곳에 머물면서 떠나지 않는 것은 주인의 마음이 진실로 나를 아끼기 때문이라네.
그러나 나를 아끼는 마음은 적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은 많으니, 내 어찌 이곳에 있는 것을 즐겁게 여기겠는가?
장차 우려스러운 일이 있을 것 같아 이곳에서 잠시 쉬려는 것일 뿐이네.
아, 그대는 참으로 나를 아끼니 그대가 나를 책망하는 것은 참으로 옳네.
그러나 그대가 때로 나를 책망할 겨를도 없이 나를 가여워하고, 나를 가여워할 겨를도 없이 자신을 책망하고 자신을 가여워할까 두렵네.
그러나 내 처지가 되어보아야 나를 이해할 수 있고, 내 처지를 겪어보아야 나의 어려움을 알 것이네.
공자孔子께서 안회顔回를 칭찬하면서 “한 도시락의 밥과 한 바가지의 음료로 끼니를 때우는 것을 사람들은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셨네.
저 안회에게는 귀의歸依할 성인이 계셨고, 또 한 도시락의 밥과 한 바가지의 음료가 있어서 죽지 않을 수 있었으니, 그가 근심하지 않고 즐거움을 바꾸지 않기가 어찌 쉽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나의 경우는 귀의할 곳도, 한 도시락의 밥도, 한 바가지의 음료도 없으나 도움을 받을 곳이 없으니, 굶주려 죽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네.
그대가 내 말을 들으면 그대 또한 슬퍼질 것이네.
아, 그대 또한 부디 갈 곳을 신중히 선택하게나.
헤어진 지 오래인데, 갑자기 돌아와서 좌우에서 모시니, 그날 참으로 기뻤네.
그러므로 전사專使에게 이 편지를 보내어 그대의 의사意思를 묻고 아울러 내가 이곳에 머무는 까닭을 해명하네.


역주
역주1 與李翶書 : 李翶는 字가 習之이다. 韓愈의 제자이면서 조카사위이다. 한유는 貞元 15년(799)에 汴州의 軍亂을 피해 徐州로 와서 節度使 張建封 밑에서 節度推官이 되었다. 이때 李翶는 이곳에서 허송세월하는 한유를 책망하면서 京師로 가서 뜻을 펴기를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므로 한유가 이와 같은 答信을 보낸 것이다.
역주2 巧說 : 詭辯이다.
역주3 : 자신에 대한 謙稱이다.
역주4 重遇攻劫 : 貞元 15년 2월에 宣武節度使 董晉이 죽자, 韓愈는 동진의 靈柩를 따라 葬地로 떠났는데, 4일 뒤에 汴州의 군대가 留后 陸長源을 살해하고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汴州城 안에 있던 한유의 가족이 반군의 약탈을 당한 것을 이른다.
역주5 養生之具 : 生活用具를 이른다.
역주6 家累 : 家族을 이른다.
역주7 : 幾(거의)이다.
역주8 足下將安以爲我謀哉 : 나의 형편이 이러한데, 그대는 나를 위해 무슨 좋은 수를 내어줄 수 있기에 나를 京師로 가라고 하느냐는 뜻이다.
역주9 僕之有子 猶有不知者 : 나에게 자네 같은 벗이 있으나 자네도 오히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는 말이다.
역주10 持僕所守……其安能有以合乎 : 持는 堅持이고, 所守는 操守(節槪와 志操)이고, 驅는 내몰림이고, 使는 가령이고, 奔走는 바쁘게 오감이고, 伺候는 等待(명을 기다림)이니, 곧 나의 節操를 굳게 지키면서 그대의 책망에 몰려 公卿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면서 명을 기다렸다가 입을 열고 心中의 생각을 吐露한다 하더라도, 나의 말이 어찌 저들의 생각에 부합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역주11 在京城八九年 : 韓愈는 貞元 2년(786)에 京師로 와서 9년 만인 貞元 11년에 경사를 떠났다.
역주12 無所取資 : 생활에 필요한 物資를 취할 곳이 없다는 말이다.
역주13 行之不覺也 : 곤궁하게 살면서도 고생스러움을 몰랐다는 말이다.
역주14 今而思之……不知何能自處也 :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마치 痛症이 진정된 사람이 통증이 발작했을 때를 회상하면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모르는 것처럼, 그 빈곤의 세월을 어떻게 넘겼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역주15 布衣韋帶之士 : 出仕하지 않고 草野에 隱居한 자의 服裝을 이른다.
역주16 遑遑 : 몹시 바빠 허둥대는 모양이다.
역주17 上聞而下達 : 위로 天子께 이름을 알리고, 아래로 公卿들에게 자신을 알림이다.
역주18 累累隨行 : 累累는 연달은 모양이니, 길게 늘어선 줄에 끼어 隨行한다는 말인데, 곧 節度使의 隨行員이 된 것을 이른다.
역주19 役役逐隊 : 役役은 쉬지 않고 勞苦하는 모양이니, 쉬지 않고 隊列을 따라간다는 말이다.
역주20 所病 : 病은 憂慮이다.
역주21 一簞食……回也不改其樂 : 《論語》 〈雍也〉에 보인다.
역주22 其不亦難乎 : 其는 ‘아마도’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23 乍還侍左右 : 李翶는 韓愈의 堂姪壻이다. 이고가 갑자기 와서 함께 좌우에서 당숙모를 모셨다는 말인지, 이고가 갑자기 돌아와서 한유가 좌우(이고)를 모셨다는 말인지 未詳이다.
역주24 專使 : 편지나 물품을 보내기 위해 특별히 보내는 심부름꾼을 이른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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