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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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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澹宕自奇
裴子自城來하야 得足下一書하고 明日 又於 得足下陝州所留書하고 하야 不能自休로라
知足下不得留하고 僕又爲일새 欲致一書足下하고 幷自舒其所懷하야 일새 卒不能成就其說이로라
及得足下二書하니 凡僕之所欲進於左右者 足下皆以自得之하니
僕雖欲重累其辭 諒無居足下之意外者 故絶意不爲로라
自念컨대 遠去하야 하야 與時世不相聞이면 雖足下之思我라도 無所窺尋其이라 故不得不有書爲別이요 非復有所感發也니라
僕少好學問하야 之外 未有聞而不求하고 得而不觀者로라
然其所志 惟在其意義所歸 至於 陰陽土地星辰方藥之書하야는 로라
雖今之仕進者 然古之人未有不通此而能爲大賢君子者니라
僕雖庸愚 每讀書 輒用自愧로라
今幸不爲時所用하야 無朝夕役役之勞하니 將試學焉하노라
力不足而後止라도 猶將愈於하야 旣不得而怨天尤人者리라
此吾今之志也니라
懼足下以吾退歸 因謂我不復能自彊不息이라 故因書奉曉하노니 冀足下知吾之退未始不爲進이요 而衆人之進未始不爲退也로라
旣貨馬 卽求船東下리라
二事皆不過後月十日이니 有相問者커든 爲我謝焉하라


06. 후계侯繼에게 답한 편지
문장은 평온하고 조용하지만 자부自負범상凡常하지 않다.
성중城中에서 나온 배자裴子 편에 족하足下의 편지 한 통을 받았고, 이튿날 또 최대崔大에게서 족하가 섬주陝州에 있을 때 나에게 주려고 써두었던 편지를 받고는 반복해 읽으며 자세히 완미하는 일을 스스로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족하께서 섬주에 머물 수 없게 된 것을 알았고, 나 또한 고관考官에 의해 탈락하는 치욕을 받았으므로 한 통의 편지를 보내어 족하를 위로하고 아울러 나의 회포懷抱도 풀 겸, 품은 생각을 글로 엮으려 하였으나, 생각이 일어나려다가 다시 멈추었기 때문에 끝내 말을 다 마치지 못하였습니다.
족하께서 주신 두 통의 편지를 받아보니, 그 내용이 모두 내가 족하께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을 족하께서 모두 스스로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비록 거듭 말씀드리고 싶어도 진실로 족하의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을 것이므로 단념斷念하고 편지를 쓰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건대 장차 멀리 떠나 깊은 골짜기나 후미진 물가에 은거隱居하여 세상과 왕래를 끊고 지내면, 비록 족하가 나를 그리워해도 나의 음성과 용모를 찾을 길이 없을 것이므로 편지로 작별을 고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이 편지를 올리는 것이지〉, 다시 마음속에 느낌이 일어난 바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나는 소년少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오경五經 이외에도 제자백가諸子百家서적書籍에 대해 들으면 구하지 않은 것이 없고, 구하면 읽어보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뜻은 오직 그 글의 주지主旨를 파악하는 데 있었고, 예악禮樂명수名數음양陰陽토지土地성신星辰방약方藥 등의 학문에 대해서는 한 번도 그 문호門戶를 찾은 적이 없습니다.
비록 오늘날 출사出仕한 자들은 이 방면의 학문을 탐구探求하지 않지만, 옛사람 중에 이 방면의 학문에 정통하지 않고서 대현군자大賢君子가 된 이는 없었습니다.
내 비록 용렬하고 어리석으나 매양 글을 읽을 때마다 이로 인해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이제 다행히 세상에 버림을 받아 아침저녁으로 노고勞苦할 일이 없게 되었으니, 장차 이 방면의 학문을 한 번 배워볼까 합니다.
배우다가 능력이 부족하면 그만두더라도, 오히려 시속時俗 사람들이 경쟁하는 과거科擧에만 정신을 쏟다가 얻지 못하면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탓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지금의 뜻입니다.
족하足下께서, 내가 물러나 동쪽으로 돌아간다 하여, 내가 다시는 자강불식自强不息하지 않을 것으로 여기실까 두려워, 이 편지로 알려드리는 바이니 족하께서는 나(君子)의 후퇴後退전진前進계기契機가 되지 않은 적이 없고 중인衆人(小人)의 전진은 후퇴의 계기가 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마필馬匹을 팔고 나면 즉시 선척船隻을 구하여 동쪽으로 내려갈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이 모두 다음 달 10일을 넘기지 않을 것이니, 내 안부를 묻는 자가 있거든 나를 대신해 작별의 인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역주
역주1 答侯繼書 : 《別本韓文考異》에 의하면, 이 答信은 韓愈가 貞元 11년(795)에 宰相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회답이 없자, 동쪽으로 돌아가려고 京師를 떠날 적에 쓴 것이다. 侯繼는 정원 8년에 한유와 함께 進士試에 及第한 자이다.
역주2 崔大 : 崔群을 이른다. 字가 敦詩로 侯繼 및 韓愈와 同年及第이다. 옛사람들은 輩行(8촌 이내 형제의 서열)으로 사람을 呼稱하였다. 崔群의 輩行이 맏이였으므로 ‘大’라고 칭한 것이다.
역주3 翫而復之 : 반복해 읽으며 翫味하는 일을 스스로 그만둘 수 없었다는 말이다.
역주4 : 오래지 않음이다.
역주5 考官所辱 : 貞元 9년부터 11년까지 세 차례 吏部試에 落榜한 것을 이른다.
역주6 : 慰勞함이다.
역주7 含意連辭 : 含意는 품은 생각이고, 連辭는 連綴文辭(문장을 엮음)이니, 곧 품은 생각을 문장으로 엮음이다. 《唐宋八大家鈔 校注集評》에 “함의는 文辭로 그 생각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이고, 連辭는 이 말을 진술하려 하면 다시 저 생각에 이끌려 합당하게 裁量할 수 없음이다.[含意 辭不能申其意也 連辭 欲陳此說 復牽彼意 裁度不能遽當也]”라고 한 曾國藩의 說을 끌어다가 註解하였으나, 이는 억지 해석에 가깝기 때문에 취하지 않고, 문맥에 따라 이상과 같이 번역하였다.
역주8 將發復已 : 편지를 보내려다가 다시 그만두었다는 말이 아니고, 생각이 일어나려다가 다시 멈추었다는 말이다.
역주9 : 저본에는 ‘行’으로 되어 있으나, 《韓文考異》에 “지금 고찰하건대 ‘行’자는 ‘復’자가 되어야 할 듯하다.[今按 行疑當作復]”라고 하였다. 이에 의거하여 ‘復’로 고쳐 번역하였다.
역주10 方當 : 장차이다.
역주11 潛深伏隩 : 깊은 산중에 숨고 후미진 물가에 蟄居한다는 말로, 隱居를 뜻한다. 隩는 후미진 물가이다.
역주12 聲光 : 音聲과 容貌이다.
역주13 五經 : 《周易》‧《尙書》‧《詩經》‧《禮記》‧《春秋》이다.
역주14 百氏之書 : 諸子百家의 書籍을 이른다.
역주15 禮樂之名數 : 名稱과 地位에 따라 適用하는 禮樂의 등급을 이른다. 《春秋左氏傳》 莊公 18년에 “王이 諸侯에게 내린 爵命은 名稱과 地位가 같지 않으니 禮遇에도 數(等級)가 다르다.[王命諸侯 名位不同 禮亦異數]”란 말이 보인다.
역주16 未嘗一得其門戶 : 한 번도 깊이 연구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論語》 〈子張〉에, 子貢이 孔子의 學問을 높은 담에 비유하면서 “부자의 담은 높이가 몇 길이어서 그 대문을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아름다운 종묘와 다양한 房舍를 볼 수가 없다.[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고 하였는데, 韓愈는 이 비유를 끌어다가 名數‧陰陽‧土地‧星辰‧方藥 등의 학문을 연구해본 적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17 不要此道 : 要는 探求이고, 此道는 名數‧陰陽‧土地‧星辰‧方藥 등의 學術을 이른다.
역주18 汲汲於時俗之所爭 : 汲汲은 오로지 그 일에만 정신을 쏟음이고, 時俗之所爭은 세상 사람들이 경쟁하는 科擧를 이르니, 곧 세상 사람들이 경쟁하는 과거에만 정신을 쏟음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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