但力爲之
면 古人不難到
어니와 但不知
이라도 亦何得於今人也
리오
小稱意는 人亦小怪之하고 大稱意는 卽人必大怪之也니라
小慙者는 亦蒙謂之小好하고 大慙者는 卽必以爲大好矣니라 不知古文直何用於今世也리오
昔
에 人皆笑之
하니 子雲之言曰 世不我知
는 無害也
라
後世復有揚子雲이면 必好之矣리라 子雲死近千載로되 竟未有揚子雲하니 可歎也로다
其弟子侯芭(葩)頗知之하야 以爲其師之書勝周易이라하니라
而亦學於僕이라 其文與翶相上下하니 一二年業之면 庶幾乎至也리라
10. 문장文章을 논하여 풍숙馮宿에게 준 편지
편지 안에 문장文章을 논한 뜻은 또한 명언名言에 가깝다.
보내주신 〈초서부初筮賦〉를 받아보니 실로 고문古文에 의사가 있으십니다.
노력해서 고문古文을 배운다면 고인古人의 경지에 이르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만, 마침내 고인의 문장과 같아졌다 하더라도 지금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문장을 지어온 지 오래인데, 매양 내 마음에 들어 좋은 문장으로 여기는 것이면 사람들은 반드시 조악粗惡한 문장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에 조금 드는 문장은 사람들도 조금 괴이하게 여기고, 마음에 크게 흡족한 문장은 사람들이 반드시 크게 괴이하게 여겼습니다.
때때로 사무事務를 처리하느라 세속에 유행하는 문장을 짓기도 하였으나 붓을 들고 글을 쓸 때마다 나를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은 좋은 문장이라 하였습니다.
조금 부끄러운 것은 조금 좋다고 하고, 크게 부끄러운 것은 반드시 크게 좋다고 하였으니, 고문이 지금 세상에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문장을 아는 자가 나와서 알아주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옛날에 양자운揚子雲(揚雄)이 《태현太玄》을 짓자, 사람들이 모두 비웃으니, 자운子雲이 말하기를 “지금 세상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은 해로울 것이 없다.
후세에 다시 양자운이 나오면 반드시 이 글을 좋아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자운이 죽은 지 거의 천 년이 되었는데도 끝내 양자운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한탄스럽습니다.
그 당시에 환담桓譚도 “양웅揚雄의 글이 노자老子의 글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노자의 글은 말할 가치도 없지만, 자운의 글이 어찌 단지 노자의 글과 우열優劣을 다룰 정도일 뿐이겠습니까?
환담은 양웅을 제대로 안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양웅의 제자 후파侯葩는 자못 양웅을 알고서 스승의 글이 《주역周易》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후파의 다른 글이 세상에 전해지지 않으니 그의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없을 뿐입니다.
이로써 말하면 작자作者는 남이 알아주기를 기구祈求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니, 단지 백세 뒤에 성인이 나와서 알아주기를 기다리며 당혹해하지 않고, 귀신에게 평가評價를 맡기고서 의심하지 않을 뿐입니다.
족하足下 또한 어찌 그렇다고 여기지 않겠습니까?
근자에 이고李翶가 나에게 와서 고문古文을 배워 자못 터득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집이 가난하고 일이 많아서 학업을 마치지 못하였습니다.
장적張籍이란 자가 있는데 나이는 이고보다 많습니다.
그 또한 나에게 고문을 배웠는데, 그 문장이 이고와 비슷하니 1, 2년 동안 학업을 계속하면 거의 고인古人의 경지에 이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세속에서 숭상하는 것을 버리고서 아무도 가지 않는 적막한 길을 가면서, 이로써 지금 세상에서 명성을 다투는 것이 가엾습니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였더니, 족하足下의 문장이 스스로 이런 경지에 진보進步한 것에 애오라지(조금은) 감동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