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所謂借聽於聾
하고 求道於盲
이라 雖其請之勤勤
하고 敎之
이라도 也
리라
愈之志 在古道
하고 又
어늘 觀足下之書
와 及十四篇之詩
컨대 亦云有志於是矣
로다
所謂病乎在己者
는 仁義存乎內
를 彼聖賢者
는 어늘 而我
爲衆人
이라
所謂順乎在天者
는 貴賤窮通之來
에 平吾心而隨順之
하야 니라
所謂待己以信者는 己果能之어든 人曰不能이라도 勿信也하고
己果不能이어든 人曰能之라도 勿信也라 孰信哉아 信乎己而已矣니라
所謂事親以誠者
는 盡其心
하고 니 先乎其質而後乎其文者也
니라
盡其心不夸於外者는 不以己之得於外者로 爲父母榮也니 名與位之謂也니라
先乎其質者는 行也요 後乎其文者는 飮食旨甘以其外物供養之道也라
誠者는 不欺之名也니 待於外而後爲養하고 薄於質而厚於文이면 斯其不類於欺歟아
果若是
면 子之汲汲於科名
하야 以不得進爲親之羞者
는 也
라
오늘날 명예를 지니고서 영달을 누리는 자 중에 고관高官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족하는 빨리 출세하는 방법을 찾으면서 그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 나에게 물으시니,
이는 이른바 ‘귀머거리에게 귀를 빌리고 소경에게 길을 묻는다.’는 꼴이라서, 아무리 간절히 청하고 아무리 자세히 일러주더라도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나는 뜻이 옛 도道를 행하는 데 있고 또 옛 문장을 매우 좋아하는데, 족하足下의 서신書信 및 14편篇의 시詩를 보건대 족하 또한 옛 도와 옛 문장에 뜻을 두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묻는 것은 명예를 구하는 방법이고, 사모하는 것은 등과登科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나 두터운 은정恩情을 대가 없이 공짜로 받을 수 없으므로 우선 족하를 위해 내가 알고 있는 도리를 서술敍述하겠습니다.
대체로 군자는 자기에게 있는 것[仁義]만을 근심하고 하늘에 달린 것[運命]은 순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을 성신誠信으로 지키고 어버이를 효성孝誠으로 섬깁니다.
이른바 ‘자기에게 있는 것을 근심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인의仁義를 저 성현들은 미루어 널리 시행하였는데 나는 우매愚昧한 범인凡人이 된 것을 근심하는 것을 이르고,
이른바 ‘하늘에 달린 것을 순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부귀富貴나 빈천貧賤, 곤궁困窮이나 영달榮達이 닥쳤을 때에 내 마음을 화평하게 지니고서 순하게 받아들여 본성本性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이르며,
이른바 ‘자신을 성신으로 지킨다.’는 것은 내가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으면 남들이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믿지 말고,
내가 과연 그 일을 할 수 없으면 남들이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는 것이니, 자기를 믿을 뿐 누구를 믿겠느냐는 말이고,
이른바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긴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다할 뿐 외부의 것으로 과시하지 않는 것이니, 실질을 앞세우고 형식을 뒤로 여기는 것을 이릅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할 뿐 외부의 것으로 과시하지 않는 것은, 자기가 외부에서 얻은 것(부귀富貴‧공명功名)을 부모의 영광으로 삼지 않는 것이니, 명예와 지위를 이릅니다.
실질을 앞세우는 것은 〈자식의〉 덕행德行이고, 형식을 뒤로 여기는 것은 맛난 음식 등 외물로써 봉양하는 도리입니다.
성실은 속이지 않는 명의名義(뜻)이니, 외부에서 얻기를 기다린 뒤에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으로 여기고, 실질을 가벼이 여기고 형식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이 어찌 속이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과연 내 말대로라면 그대가 과거에 합격하여 명예를 구하는 일에 급급하여 벼슬을 얻지 못하는 것을 어버이의 수치로 여기는 것은 미혹迷惑된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빨리 출세하는 방법은 이와 같을 뿐입니다.
옛날의 학자들은 오직 도의道義만을 물었습니다.
가령 그대가 장차 태학太學에 와서 배운다 하더라도 나는 오히려 이상에 한 말들을 굳게 지키면서 그대를 만나기를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