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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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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大較昌黎與崔群相知深이라
故篇中情悃 與諸篇不同이라
自足下離東都 凡兩度이러니 니라
仁賢하고 雖抱之念이나 亦且可以度日이리라
하야 之所以禦外物者也 況足下度越此等하니 豈以으로
宣州雖稱이나 然皆大江之南이라 風土以北하니
之道 當先理其心이라
心閒無事然後 外患不入이니 可以審備 亦當自不至矣리라
足下之賢으로 雖在窮約이라도 猶能不改其樂이온 況地至近하고 官榮祿厚하며 親愛盡在左右者耶
所以如此云云者 以爲足下賢者 宜在上位 託於 則不爲得其所니라
乃相親重之道耳 非所以待足下者也니라
僕自少至今 從事於往還朋友間一十七年矣 日月不爲不久 所與交往相識者千百人이니 非不多니라
其相與如骨肉兄弟者亦且不少하야 或以事同하고 하고 或慕其一善하고 或以其久故하고 或初不甚知而與之已密 其後無大惡하야 因不復하고 或其人雖不皆入善이나 而於己已厚하야 雖欲悔之不可니라
凡諸淺者 固不足道어니와 深者止如此하니 至於心所하야 考之言行而無瑕尤하고 하며 明白純粹하야 惟吾崔君一人이라
僕愚陋無所知曉 然聖人之書 無所不讀하고
巨細 雖不盡識이나者也니라
以此而推之하고 以此而度之하야 誠知足下하니 無謂僕何從而得之也하라
與足下情義 寧須言而後自明耶
所以言者 懼足下以爲吾所與深者多 不置於胸中耳일새니라
旣謂能麤知足下오도 而復懼足下之不我知하니 亦過也로다
亦有人說足下誠盡善盡美 抑猶有可疑者라하야늘 僕謂之曰 何疑 疑者曰 君子當有所好惡 好惡不可不明이어늘
人無賢愚 無不其善하야 伏其爲人하니 以是而疑之耳로라
僕應之曰 鳳皇芝草 賢愚皆以爲美瑞 靑天白日 奴隷亦知其淸明이라
譬之食物컨대 至於遐方異味하야는 則有嗜者有不嗜者어니와 至於稻也粱也膾也䏑也하야는 豈聞有不嗜者哉 疑者乃解하니라
自古賢者少하고 不肖者多하니라
已來 又見賢者恒不遇어늘 不賢者하고 賢者恒無以自存이어늘 不賢者하며 賢者雖得卑位而死어늘 不賢者或至하니라
不知造物者意竟如何 無乃所好惡與人異心哉
又不知無乃都不하야 任其死生壽夭耶
未可知也로라
人固有薄卿相之官 千乘之位하고 而甘菜羹者하니
同是人也로되 猶有好惡如此之異者어든 況天之與人
當必異其所好惡無疑也
況又
崔君崔君이여
無怠
無怠하라
僕無以自全活者
於此 困窮甚하야於伊潁之上하니 當亦終得之리라
近者 尤衰憊하야 第二牙 無故動搖脫去하고 하야 便不分人顔色하며 兩鬢半白하고 頭髮五分亦白其一하며 鬚亦有一莖兩莖白者니라
僕家不幸하야 하니 如僕者又可以圖於久長哉
以此하야 思與足下相見하야 一道其懷하노라
小兒女滿前하니 能不顧念
足下何由得歸北來리오
僕不樂江南하니 官滿便終老嵩下하리니
足下可相就 僕不可去矣
珍重自愛하야 愼飮食少思慮하라
惟此之望하노라


04. 최군崔群에게 준 편지
대체로 창려昌黎최군崔群은 서로 마음을 깊이 아는 벗이었다.
그러므로 이 편지에 간절한 정을 표현한 것이 다른 편지와 같지 않다.
족하足下동도東都(洛陽)를 떠난 뒤로 모두 두 차례나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오래지 않아 이미 선주宣州에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주인主人은 인자하고 현명하며 동료들은 모두 군자이니, 비록 나그네의 외로운 심정은 있겠지만 그런대로 세월을 보내실 만할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쾌족快足하지 않음이 없어, 천도天道법칙法則을 따르고 생명生命시종始終을 알아 자연의 이치에 일임一任하는 것은 본래 전현前賢들이 외물外物의 유혹을 막던 방법이었는데, 더구나 이들 백천인百千人보다 월등한 족하께서 어찌 출처出處원근遠近으로 마음을 괴롭히겠습니까?
선주宣州가 비록 기후가 서늘하고 상쾌한 곳이라고 하지만 모두 강남江南이어서 풍토風土강북江北과는 같지 않습니다.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먼저 마음부터 다스려야 합니다.
마음이 한가로워 일이 없은 뒤에야 외부의 병환病患이 침입할 수 없으니, 그곳의 풍토風土기후氣候에 적응하는 방법을 세심히 살펴 대비한다면 작은 질병이 저절로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현명하신 족하는 아무리 빈궁 속에 있어도 를 추구하는 즐거움을 바꾸지 않을 터인데, 더구나 가까운 지역에 계시고 영예로운 관직과 많은 복록을 누리며 친애하는 사람들이 모두 신변身邊에 있는 데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족하는 현자賢者이니 높은 관직에 계셔야 하고, 막부幕府에 의탁해 계시는 것은 알맞은 자리를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주관찰사宣州觀察使가 족하를 판관判官에 임명한 것은 바로 족하를 친애하고 존중하는 도리일 뿐이고 족하를 대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나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벗 사이를 왕래한 지가 17년이 되었으니 세월이 오래지 않은 것이 아니며, 교유交遊하여 서로 알고 지내는 벗이 천백인千百人이니 많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중에는 골육骨肉을 나눈 형제처럼 지내는 자도 적지 않은데, 혹은 하는 일이 같음으로 인해 벗으로 삼은 자도 있고, 혹은 기예技藝가 뛰어나서 벗으로 취한 자도 있고, 혹은 한 가지 일에 능한 점을 흠모하여 벗으로 삼은 자도 있고, 혹은 사귄 지가 오램으로 인해 벗으로 삼은 자도 있고, 혹은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그와 교분이 친밀해진 뒤에 그에게 큰 잘못이 없어서 교유를 단절하지 않은 자도 있으며, 혹은 그 사람이 비록 모든 일에 뛰어나지는 않으나 나를 후하게 대해줌으로 인해 벗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고서 벗을 무르고 싶어도 무를 수 없어서 관계를 유지한 자도 있습니다.
교분이 얕은 자는 본래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교분이 깊은 자라 해도 이와 같을 뿐이니, 내가 진심으로 존경해 탄복하는 벗으로, 언행을 살펴보면 결점이나 과오過誤가 없고, 심오한 학문을 엿보면 한계限界가 없으며, 깨끗하고 순수하여 광휘光輝가 날로 새로워지는 사람은 오직 우리 최군崔君 한 사람뿐입니다.
나는 어리석고 고루하여 아는 것이 없으나, 성인의 글을 읽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글 속에 담긴 정조精粗거세巨細(大小), 출입出入명회明晦(明暗)의 이치를 다 인식認識하지는 못하였으나, 그 글을 섭렵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로써 미루고 이로써 헤아려 족하足下가 참으로 출중出衆한 분임을 알게 된 것이니, 족하는 나에게 어디에서 이런 말을 들었느냐고 말하지 마십시오.
족하와 나 사이의 정의情誼가 어찌 말을 기다린 뒤에 명백해지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말하는 것은 족하께서 나에게 깊이 사귀는 사람이 많은 것이 마음속에 선악善惡을 분변하는 생각을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기실까 두려워서일 뿐입니다.
이미 족하를 대략 이해한다고 말해놓고서 다시 족하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실까 걱정하니, 이 또한 나의 허물입니다.
근자에 또 어떤 사람이 “족하는 더할 수 없이 완전무결하지만 오히려 의심쩍은 점이 있다.”고 하기에, 내가 “무엇이 의심쩍으냐?”고 물었더니, 그자가 “군자는 응당 좋아하고 싫어함이 있어야 하니, 좋아하고 싫어함을 분명히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청하淸河(최군崔群을 이름)의 경우는 현자賢者우자愚者 할 것 없이 모두 그의 선행을 좋아하여 그 사람됨에 탄복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나는 이로 인해 그를 의심쩍어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봉황鳳皇지초芝草는 현자나 우자나 모두 아름다운 상서로 여기고, 맑은 하늘과 밝은 해는 노예들도 그것이 맑고 밝다는 것을 안다.
음식에 비유하면 먼 지방에서 생산된 기이奇異식품食品은 즐기는 자도 있고 즐기지 않는 자도 있지만, 쌀과 기장과 육회肉膾와 불고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라고 대답해주었더니, 의심하던 자가 비로소 의심을 풀었습니다.
그러나 남들의 의심이 풀렸건 풀리지 않았건 우리 최군崔君의 명성에는 손익損益되는 바가 없습니다.
예로부터 현자賢者는 적고 하지 못한 자는 많았습니다.
나는 철든 뒤로 또 현자는 항상 불우不遇한데 현하지 못한 자는 높은 관직에 오른 자가 많으며, 현자는 항상 자력으로 생존할 수조차 없는데 현하지 못한 자는 뜻을 이루어 기세가 등등하며, 현자는 낮은 관직을 얻더라도 이내 죽는데 현하지 못한 자는 더러 장수를 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물주造物主의 생각이 끝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조물주의 좋아하고 싫어함이 사람들의 마음과 다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알 수 없습니다만 〈조물주가 사람들의 선악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서 죽든 살든 장수하든 요절하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 중에는 본래 경상卿相의 관직과 천승千乘(諸侯)의 지위를 하찮게 여기고 누추한 골목에 살면서 나물국을 먹는 것을 달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인데도 좋아하고 싫어함이 이처럼 다른데, 하물며 하늘과 사람이겠습니까?
반드시 좋아하고 싫어함이 틀림없이 다를 것입니다.
천도天道에 부합하였으면 사람의 욕구欲求에 어긋나더라도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하물며 때로는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은 이가 있었음에야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최군崔君이시여! 최군이시여!
부디 태만하지 마십시오.
태만하지 마십시오.
나는 자력으로 생활을 보전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곳에서 한 관직官職을 맡으면서부터 곤궁이 도리어 심하여, 이수伊水영수潁水 가로 가서 자유롭게 생활하기를 생각하고 있으니, 끝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근자에는 몸이 더욱 쇠약해져서, 왼쪽 아래턱의 두 번째 어금니가 까닭없이 흔들려 빠졌고, 눈이 침침하여 가까운 거리에서도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고, 양쪽 귀밑머리는 반백半白이 되었고, 머리카락도 5분의 1이 세었으며, 수염에도 흰 털이 한두 가닥 생겼습니다.
우리 집안은 불행하여 여러 백숙부伯叔父님과 여러 님들이 모두 건강하고 강장强壯하였는데도 일찍 세상을 뜨셨으니, 나처럼 쇠약한 자가 어찌 오래 살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음이 불안하여 족하와 서로 만나 가슴속에 품은 생각을 한번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린 자식들이 앞에 가득하니 어찌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족하足下가 북쪽으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나는 강남을 좋아하지 않으니 임기任期가 차면 이내 숭산嵩山 밑으로 가서 노년老年을 보낼 것입니다.
족하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오실 수는 있어도, 내가 족하가 계신 곳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몸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시어 음식을 삼가고 생각을 적게 하십시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이것뿐입니다.


역주
역주1 與崔群書 : 崔群은 字가 惇詩이다. 韓愈와 同榜進士이며, 이때 宣州觀察判官으로 있었다. 이 편지는 한유가 四門博士로 있던 貞元 18년(802)에 보낸 것이다.
역주2 枉問 : 남이 보낸 문안편지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역주3 尋承已達宣州 : 尋承은 오래지 않아 받음이니, 곧 오래지 않아 그대가 이미 宣州에 도달하였다는 소식을 받았다는 말이다.
역주4 主人 : 宣‧歙‧池觀察使 崔衍을 이른다.
역주5 同列皆君子 : 이때 李博도 崔衍의 幕僚로 있었다. 崔群과 李博은 모두 韓愈와 同榜進士이다.
역주6 羈旅 : 나그네이다.
역주7 無入而不自得 : 군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기의 도리를 행하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스스로 快足하지 않음이 없다는 뜻이다. 《中庸》
역주8 樂天知命 : 《周易》 〈繫辭傳 上〉에 보이는데, 孔潁達의 疏에는 “천도의 常數(法則)을 따르고, 性命(生命)의 시종을 알아 자연의 이치에 일임하는 것[順天道之常數 知性命之始終 任自然之理]”으로 풀었고, 朱子는 “천리를 즐기고 또 천명을 아는 것[樂天理而又知天命]”으로 풀었다. 바꾸어 말하면 하늘이 賦與한 貧富貴賤과 壽命의 長短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운명을 거역해가며 부귀공명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주9 前修 : 前賢을 이른다.
역주10 百千輩 : 方崧卿의 內閣本에는 이 세 자를 삭제하였으나, 杭本과 蜀本에는 이 세 자가 있다. 《韓文考異》에서 朱子는 “方崧卿本에는 ‘百千輩’ 세 자가 없으나, 지금 여러 板本과 文勢를 살펴보면 이 세 자가 있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단지 어떤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인지 알 수 없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역주11 出處近遠 : 出世와 隱遁, 任地가 가깝고 멂을 이른다.
역주12 累其靈臺 : 累는 괴롭힘이고, 靈臺는 마음이니, 곧 출처와 원근으로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역주13 淸涼高爽 : 기후가 서늘하고 상쾌함이다.
역주14 不幷 : 不同과 같다.
역주15 將息 : 건강을 돕기 위해 몸을 보살핌이다.
역주16 風氣所宜 : 그 고장의 풍토와 기후에 適應하는 방법을 이른다.
역주17 小小者 : 작은 질병을 이른다.
역주18 幕府 : 원래는 군대가 出征하였을 때 宿營하는 軍幕을 이르는데, 후세에는 觀察使나 節度使가 駐在하는 官府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역주19 是以及之 : 이 한 句만을 놓고 보면 ‘그러므로 言及하였다.’로 번역하는 것이 옳겠으나, 위에 이미 ‘所以如此云云者’란 말이 있으니, 이 句를 다시 언급으로 번역하면 말이 중복될 뿐 아니라 다음 말과도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 ‘是’를 崔衍의 指示代詞로, ‘以’를 判官의 지시대사로, ‘及’을 給與로, ‘之’를 崔群의 지시대사로 보아 위와 같이 번역하였다.
역주20 或以藝取 : 技藝가 뛰어나서 벗으로 취한 자도 있다는 말이다.
역주21 決捨 : 斷絶과 같다.
역주22 仰服 : 尊敬해 歎服함이다.
역주23 窺之閫奧而不見畛域 : 閫奧는 깊숙한 內室로 深奧한 학문의 경지를 비유하고, 畛域은 田地의 경계로 限界를 뜻하니, 곧 심오한 학문은 한계가 없이 깊고 넓다는 말이다.
역주24 輝光日新 : 《周易》 大畜卦의 〈彖傳〉에 ‘大畜剛健篤實輝光日新其德’이란 말이 보이는데, 《官本諺解》에는 程傳에 의거하여 “대축은 강건하고 독실하고 빛이 나서 그 덕을 날로 새롭게 한다.”로 해석하였으나, 鄭玄의 注에는 ‘日新’에서 句를 떼고, ‘其德’은 下句로 붙여 “대축은 강건하고 독실하여 빛이 날로 새로워진다.”로 해석하였다. 輝光日新은 일반적으로 도덕과 학문이 나날이 진보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25 精粗 : 천하의 일에는 所以然과 所當然이 있으니, 소이연은 形而上으로 精이고, 소당연은 形而下로 粗이다. 정과 조는 별개가 아니라, 조는 有形의 사물이고, 정은 그 사물 속에 숨어 있는 이치이다.
역주26 出入明晦 : 陰陽의 消長과 世道의 明暗을 이른 듯하다. 日月이 나오면 세상이 밝아지고 일월이 들어가면 어두워지듯이, 군자의 道(陽)가 성하면 세상이 밝아지고, 소인의 도(陰)가 성하면 세상이 어두워진다는 《周易》의 이치를 이른 듯하다.
역주27 不可謂不涉其流 : 성인의 글을 읽은 것을 물을 건너는 것에 비유한 것이니, 곧 내가 성인의 글을 섭렵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역주28 出群拔萃 : 出類拔萃와 같은 말로 뛰어나게 出衆한 사람을 이른다.
역주29 白黑 : 善惡을 이른다.
역주30 : 近者이다.
역주31 淸河 : 地名으로 崔群의 고향이다. 여기서는 최군을 가리킨다.
역주32 : 열
역주33 解不解……無所損益 : 남들의 의심이 풀렸다 하여 崔君의 명성에 이익이 될 것도 없고, 풀리지 않았다 하여 손해될 것도 없다는 말이다.
역주34 省事 : 철이 들어 사리를 가릴 줄 아는 지각이 생김이다.
역주35 比肩靑紫 : 比肩은 하나하나가 서로 이어진 것이니 많음을 형용하고, 靑紫는 公卿의 인끈의 색깔인데, 高官의 뜻으로 쓰인다.
역주36 志滿氣得 : 뜻한 바가 만족하게 이루어져서 기세가 등등함을 이른 듯하다.
역주37 : 이내이다.
역주38 眉壽 : 長壽이다.
역주39 省記 : 기억함이다.
역주40 陋巷 : 누추하고 좁은 골목인데, 가난한 생활을 뜻한다.
역주41 合於天……何害 : 合於天은 善行을 하여 天道에 부합하는 賢者를 이르고, 乖於人은 富貴功名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欲求에 어긋나서 不遇하고 貧賤함을 이르니, 곧 현자가 되었으면 부귀공명을 누리지 못하고 빈천하더라도 해로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역주42 時有兼得者 : 때로는 賢德과 富貴를 겸하여 얻은 이가 있었다는 말이다.
역주43 一官 : 四門博士가 된 것을 이른다.
역주44 : ‘도리어’이다.
역주45 自放 : 세속의 굴레를 모두 벗어던지고서 자유로이 생활함이다.
역주46 左車 : 왼쪽 아래턱이다.
역주47 目視昏花 : 눈이 침침함이다.
역주48 尋常間 : 가까운 거리를 이른다. 尋은 8尺이고, 常은 1丈 6尺이다.
역주49 諸父諸兄皆康强早世 : 諸父는 伯叔父를 이르고, 諸兄은 여러 형들을 이른다. 韓愈의 長兄 會는 42세에 죽고, 仲兄 介는 出仕하자마자 죽고, 叔父 雲卿의 아들 弇은 35세에 죽고, 숙부 仲卿의 아들 岌은 57세에 죽었다.
역주50 忽忽 : 心身이 불안한 모양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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