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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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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納交之始如此하니 此其所以旣合而不爲睽也
辱書幷示表記述書辭等五篇하니라
比於東都 略見顔色하고 未得接言語 心固已相奇로라
但不敢果於이라
知人 堯舜所難이요 又嘗 故未敢決然決하고 亦不敢忽然忘也로라
到城已來 不多與人還往하니 友朋之中 所敬信者 니라
東野說足下不離口하고 不多見이나 每每說人物 亦以足下爲之秀하고 近又得李七翶書하니 亦云足下之文이라하니라
夫以平昌之賢으로 其言一人이라도 固足信矣어든 況又崔與李繼至而交說邪
故不待相見이오도 相信已熟하고 旣相見 不要約已相親하니 로라
今辱書乃云云하니 是所謂니라
然恐足下少年與僕老者이라
故具白所以하노니 而今而後 不置疑於其間可也니라
若曰長育人才 則有天子之大臣在
若僕者 守一官且不足以修理 況如是重任邪
學問有暇 幸時見臨하노라
愈白하노라


13. 양자楊子에게 답한 편지
처음 교제를 맺을 때에 이와 같이 하였으니, 이것이 교제를 맺은 뒤에 서로 사이가 벌어지지 않은 까닭이다.
편지와 함께 보내주신 등 다섯 편의 문장을 받았습니다.
근자에 동도東都에서 얼굴만 잠시 대하고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이미 기재奇才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감히 용모만 보고서 과감히 사람을 평정評定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요순堯舜도 어렵게 여긴 바이고, 또 일찍이 재여宰予를 경계하신 공자孔子의 말씀을 학습學習하였기 때문에 감히 결연히 결정하지도 않고 감히 홀연히 잊지도 않았습니다.
경성京城에 온 뒤로 사람들과 왕래하는 일이 적었으니, 벗 가운데 내가 존경해 믿는 사람으로는 오직 평창平昌 맹동야孟東野뿐입니다.
그런데 동야東野족하足下를 칭찬하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고, 최대崔大 돈시敦詩도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인물人物을 말할 때마다 역시 족하를 처사處士 중에 우수한 자라고 하였으며, 근자에 또 이칠李七 의 편지를 받아보니, 그 역시 족하의 문장이 족하 형님의 문장보다 훨씬 낫다고 하였습니다.
평창平昌현명賢明한 사람이므로 그렇게 말하는 이가 그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본래 믿기에 충분한데, 하물며 또 최대崔大이고李翶가 연이어 와서 번갈아가며 말하는 데야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서로 만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그대에 대한 믿음이 이미 깊었고, 그대를 만난 뒤에는 우정友情을 변치 말자고 약속하지 않았어도 이미 친밀해졌으니, 족하의 재능이 용모에 부합함을 잘 알았습니다.
지금 주신 편지에 이러이러하다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이른바 “황금黃金을 걸고 내기 활을 쏠 경우에 외물外物을 중시하여 마음이 혼란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족하足下소년少年이어서 늙은 나와 생각이 같지 않을 듯하니, 오히려 말로써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답신答信에 그 까닭을 구체적으로 말하였으니, 앞으로 우리 둘 사이에 의심을 두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유韓愈장자莊子의 이 비유譬喩를 인용하여, 황금을 걸고 활을 쏘는 자가 마음이 혼란해져서 과녁을 맞히지 못하는 것처럼, 문장을 배워 명예를 얻으려는 데 뜻을 두면 심지心智가 어두워져서 소기所期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니, 문장을 중시重視하지 말고 도덕을 중시해 수양하도록 양경지楊敬之를 권면한 것이다.
족하足下가 말한 ‘인재人才를 기르는 일’이라면 천자天子대신大臣이 있습니다.
나로 말하면 관직 하나를 맡아 직무를 처리하기에도 힘이 부치는데, 하물며 인재를 기르는 중책이겠습니까?
학문學問하는 여가에 때때로 왕림枉臨하시기 바랍니다.
는 아룁니다.


역주
역주1 答楊子書 : 楊子는 楊敬之이다. 그는 字가 茂孝로, 元和 初年에 進士에 及第하였다. 양경지가 韓愈에게 편지와 함께 자기가 지은 문장을 보내어 仰慕의 뜻을 보였으므로 한유가 이 답신을 보낸 것이다. 이 답신은 한유가 職方員外郞으로 있던 원화 6년(811)에 쓴 것이다.
역주2 貌定 : 사람의 용모만을 보고서 그 사람을 評定함이다.
역주3 服宰予之誡 : 服은 ‘學’의 訓으로 쓰였다. 宰予之誡는 《論語》 〈公冶長〉에 보인다. 재여가 낮잠을 자자, 공자께서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질할 수 없으니, 내 재여에게 무엇을 꾸짖겠느냐?[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 不可杇也 於予與何誅]”고 경계하신 말씀을 이른다.
역주4 平昌孟東野 : 平昌은 郡名이고, 孟東野는 孟郊이니, 곧 평창 사람 孟東野란 말이다.
역주5 吃吃 : 쉬지 않고 부지런히 말하는 모양이다.
역주6 崔大敦詩 : 崔大는 崔群을 이른다. 敦詩는 字이다. 옛사람들은 輩行으로 사람을 呼稱하였다. 崔群의 輩行이 맏이였으므로 ‘大’라고 칭한 것이다. 下文의 李七도 같은 例이니, 배행이 일곱째임을 나타낸다.
역주7 處子 : 處士(出仕하지 않은 士人)이다.
역주8 其兄 : 楊敬之의 兄 楊懷之를 이른다.
역주9 審知足下之才充其容也 : 審知는 자세히 앎이고, 充은 符合이니, 곧 뛰어난 용모에 부합하는 재능을 지녔다는 것을 잘 알았다는 뜻이다.
역주10 以黃金注 重外而內惑也 : 《莊子》 〈達生〉에 “〈활을 쏘아 과녁에 맞히는 것으로 내기를 할 때〉 瓦器를 걸고 활을 쏠 경우에는 〈아까운 마음이 없기 때문에〉 技巧를 발휘하고, 帶鉤를 걸고 활을 쏠 경우에는 마음이 떨리고, 황금을 걸고 활을 쏠 경우에는 마음이 昏亂하다. 기교는 한결같지만 귀중히 여겨 아끼는 마음이 있으면 외물을 중시하게 되니, 외물을 중시하는 자는 내심이 愚拙해진다.[以瓦注者巧 以鉤注者憚 以黃金注者殙 其巧一也 而有所矜 則重外也 凡外重者內拙]”란 말이 보이는데, 成玄英의 疏에 “注는 金品을 걸고 내기하기 위해 활을 쏘는 것이다. 瓦器 같은 천한 물건을 걸고 내기 활을 쏠 경우에는 아까운 마음이 없기 때문에 기교를 발휘해 과녁을 맞히고, 약간 값이 나가는 帶鉤를 걸고 활을 쏠 경우에는 맞히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생겨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매우 귀중한 黃金을 걸고 활을 쏠 경우에는 아까운 마음이 들기 때문에 마음이 혼란하여 과녁을 맞히지 못한다. 활솜씨는 변함이 없으나, 外物을 중시하기 때문에 아까운 마음이 생기고, 황금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마음이 愚拙해진다.”고 하였다.
역주11 不相類 尙須驗以言 : 젊은 그대와 늙은 나의 생각이 서로 같지 않을 수 있으니, 말로써 檢驗(檢證)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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