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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2)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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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文僅百餘字 而感慨古今 若與燕趙豪儁之士 相爲叱咤嗚咽하며 其間一涕一笑하니 其味不窮이라 昌黎序文當屬第一首
古稱多하니라 董生擧進士 連不得志於하야
懷抱하고 鬱鬱適玆土하니 吾知其必有合也 董生勉乎哉ㄴ저
夫以子之不遇時 苟慕義彊仁者皆愛惜焉이어든 矧燕趙之士出乎其性者哉
然吾嘗聞風俗與化移易이라하니 吾惡知其今不異於古所云耶 聊以吾子之行卜之也호리라 董生勉乎哉ㄴ저
吾因子有所感矣로니 爲我弔之墓하고 而觀於其市復有昔時ㄴ저
爲我曰 明天子在上하시니 可以出而仕矣라하라


02. 董邵南을 전송한
문장은 겨우 백여 자에 지나지 않으나, 古今에 대한 감탄과 憤慨가 마치 의 호걸스런 선비들과 더불어 서로 叱咤하고 오열하며 간간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듯하니, 그 의미가 無窮하다. 昌黎序文 중에 응당 으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방에는 예로부터 感慨悲歌하는 호걸[]이 많다고 일컬어졌다. 董生進士試應試하였으나, 연달아 有司(考官)에게 뜻을 얻지 못하여,
탁월한 재능[利器]을 가슴에 품고서 답답한 심정[鬱鬱]으로 그 지방()으로 가니, 나는 그곳에 반드시 뜻이 맞는 자가 있을 것으로 아네. 董生이시여! 노력하시게나.
그대가 때를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진실로 를 사모하고 을 행하는 자들이 모두 그대를 애석해하는데, 하물며 義憤이 천성에 나오는 의 호걸이겠는가?
그러나 내 일찍이 듣건대, 풍속은 敎化에 따라 바뀐다고 하니, 그곳의 오늘날 〈풍속이〉 옛사람이 말하던 바와 달라지지 않았는지를 내 어찌 알겠는가? 우선[] 그대의 이번 걸음으로 〈풍속이 변했는지의 여부를〉 점쳐보겠네. 董生이시여! 노력하시게나.
나는 그대의 〈이번 걸음으로〉 인해 느낀 바가 있으니, 그대는 나를 대신해 望諸君(樂毅)의 墓所弔問하고, 그 저잣거리에 다시 옛날처럼 개잡는 자가 있는지를 살펴보시게나.
〈만약 있거든〉 나를 대신해 “밝으신 천자가 위에 계시니 나와서 벼슬할 만하다.”고 말해주게나.


역주
역주1 送董邵南序 : 이 序는 韓愈가 四門博士로 있던 貞元 19년(803)에, 進士試에 누차 낙방하고서 우울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벗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董邵南은 壽州 安豐 사람으로 韓愈와 交分이 두터웠다.
역주2 燕趙 : 戰國時代의 諸侯國으로 燕은 지금의 河北省 북부와 遼寧省 서단에 있었고, 趙는 지금의 山西省 중부와 하북성 남부에 있었다.
역주3 感慨悲歌之士 : 세상의 不義에 감정이 복받쳐 悲壯한 노래를 부르는 호걸로, 곧 燕의 荊軻와 趙의 高漸離 같은 사람을 이른다.
역주4 有司 : 여기서는 考試官을 이른다.
역주5 利器 : 예리한 兵器인데, 뛰어난 재능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6 望諸君 : 바로 樂毅이다. 戰國 때 燕나라의 名將 樂毅가 趙나라로 亡命하니, 趙王이 악의를 觀津에 封하고서 望諸君이라 호칭하였다.
역주7 屠狗者 : 荊軻와 高漸離 등을 이른다. ≪史記≫ 〈刺客列傳〉에 의하면 荊軻는 술을 즐겨 날마다 屠狗(개백정) 및 高漸離와 어울려 燕나라 저잣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하면 고점리는 筑을 치고 형가는 노래를 부르며 서로 즐기다가 이내 서로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한다.
역주8 : 말을 전함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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