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月二十七日
에 韓愈謹伏
下
하야 再拜獻書
閤下
하노라
說者曰 菁菁者는 盛也요 莪는 微草也며 阿는 大陵也니
言君子之長育人材가 若大陵之長育微草하야 能使之菁菁然盛也라
說者曰 百朋은 多之之辭也니 言君子旣長育人材면 又當爵命之하고 賜之厚祿하야 以寵貴之云爾라
旣見君子하니 我心則休로다하야늘 說者曰 載는 載也요 沈浮者는 物也니 言君子之於人材에 無所不取가 若舟之於物에 浮沈皆載之云爾라
旣見君子하니 我心則休云者는 言若此則天下之心美之也라
君子之於人也에 旣長育之하고 又當爵命寵貴之하야 而於其才無所遺焉이라
孟子曰
이라 其一曰 樂得天下之英才而敎育之
라하니라
幸今天下無事
하야 小大之官
이 各守其職
하야 錢穀甲兵之問
이 不至於廟堂
하니 之暇
에 이라
矣
니 名不著於農工商賈之版
하고 其業則讀書著文歌頌堯舜之道
하야 鷄鳴而起
하야 孜孜焉亦不爲利
니라
其所讀
은 皆聖人之書
라 無所入於其心
이요 其所著
는 皆
而成文
하야 抑邪與正
하야 辨時俗之所惑
이라
居窮守約호되 亦時有感激怨懟奇怪之辭하야 以求知於天下나 亦不悖於敎化하니 妖淫諛佞譸張之說이 無所出於其中이라
四海無所歸
하고 饑不得食寒不得衣
하야 濱於死而益固
하니 得其所者爭笑之
니라
忽將棄其舊而新是圖하야 求老農老圃而爲師나 悼本志之變化하야 中夜涕泗交頤하니라
雖不足當詩人孟子之謂나 抑長育之使成材도 其亦可矣요 敎育之使成才도 其亦可矣리라
今有人生七年而學聖人之道하야 以修其身이 積二十年이어늘 不得已一朝而毁之면 是亦不獲其所矣라
伏念今有仁人在上位어늘 若不往告之而遂行이면 是果於自棄而不以古之君子之道待吾相也니 其可乎아
曰 凡厥庶民
에 有猷有爲有守
를 汝則念之
하며 不協于極
이라도 不罹于咎
어든 皇則受之
하며
抑又聞古之人有
호되 而君子
之矣
라하니 曰予攸好德
이라커든 汝則錫之福之謂也
니라
抑又聞上之設官制祿
은 必求其人而授之者
요 非苟慕其才而富貴其身也
라하니 蓋將用其能
不能
하고 用其明理不明者耳
라 下之修己立誠
은 必求其位而居之者
요 非苟
而榮於名也
라하니 蓋將
하야 以濟其不足者耳
라
苟以是而爲心
이면 則上之道不必
其下
요 下之道不必難其上
이니 可擧而擧焉
이요 不必
其
也
며 可進而進焉
이요 不必
於自進也
니라
抑又聞上之化下
에 得其道
면 則勸賞不必徧加乎天下
라도 而天下從焉
이라하니 因人之所欲爲而
之之謂也
니라
主上感傷山林之士有
者
하야 屢詔內外之臣
하야 旁求於四海
로되 而其至者蓋闕焉
하니
彼之處隱就閒者亦人耳니 其耳目鼻口之所欲과 其心之所樂과 其體之所安이 豈有異於人乎哉리오
今所以惡衣食
하고 하야 麋鹿之與處
하고 猨狖之與居
는 固自以其身不能
이라
而方聞國家之仕進者
는 必
然後
에 升於禮部吏部
하야 試之以
하고 하야 中其程式者然後
에 이라하니 雖有化俗之方
과 安邊之策
이라도 不繇是而稍進
은 萬不有一得焉
이라
彼惟恐入山之不深
하고 入林之不密
하야 하야 惟恐聞於人也
니라
今若聞有以書進宰相而求仕者어늘 而宰相不辱焉하고 而薦之天子而爵命之하고 而布其書於四方이면
此所謂勸賞不必徧加乎天下而天下從焉者也는 因人之所欲爲而遂推之之謂者也니라
伏惟覽
하고 念育才錫福之所以
하며 考古之君子相其君之道
하고 而忘
之罪
니라
思設官制祿之故하야 以誘致山林逸遺之士면 庶天下之行道者가 知所歸焉이리라
其嘗所著文
에 輒采其可者若干首
하야 錄在
하니 冀辱賜觀焉
하노라
경술經術을 인용한 것은 유향劉向과 비슷하나, 부족한 것은 서한西漢시대의 풍도風度와 운치韻致이다.
정월 27일에 전향공진사前鄕貢進士 한유韓愈는 삼가 광범문光範門 아래에 엎드려 두 번 절하고서 상공합하相公閤下께 글을 올립니다.
《시경詩經》의 소서小序에 “〈정정자아菁菁者莪〉는 인재人材를 기른 것을 즐거워한 시詩이다.
군자君子가 인재를 기르면 천하 사람이 모두 즐거워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관작을 받고 군자를 알현하니 마음이 즐거운데 또 예의로써 접대하시네.[菁菁者莪 在彼中阿 旣見君子 樂且有儀]”라고 하였는데,
이를 해설解說한 자는 “정정菁菁은 무성함이고, 아莪는 작은 풀이고, 아阿는 큰 언덕이니,
군자가 인재를 기르는 것이 마치 큰 언덕이 작은 풀을 길러 무성하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미 군자를 알현하니 마음이 즐거운데 또 예의로써 접대하기까지 하시네.’라고 한 것은 천하天下 사람이 군자를 찬미한 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의 제3장에 “이미 군자를 알현하니 나에게 백붕百朋을 주시네.[旣見君子 錫我百朋]”라고 하였는데,
이를 해설한 자는 “백붕百朋은 봉록俸祿이 많음을 표현한 말이니, 군자가 이미 인재를 육성하였으면 또 반드시 그에게 작위와 관직을 주고 많은 봉록을 주어 총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졸장卒章에 “두둥실 떠가는 버드나무 배여!
이미 군자를 알현하니 내 마음속으로 찬미하였네.[汎汎楊舟 載沈載浮 旣見君子 我心則休]”라고 하였는데, 이를 해설한 자는 “재載는 실음이고, 잠기는 것과 뜨는 것은 물건이니, 군자가 취하지 않는 인재가 없는 것이 마치 배가 뜨는 물건이나 잠기는 물건을 모두 싣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미 군자를 알현하니 내 마음속으로 찬미한다.’는 말은 이와 같이 하면 천하 사람들이 진심으로 군자를 찬미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군자가 사람들에 대해 이미 인재로 육성하였으면 또 작위와 관직을 주어 총애하고 빠뜨리는 인재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맹자孟子가 “군자君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에 왕자王者가 되는 것은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세 가지 즐거움 중의 하나는 “천하의 영재英才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성인聖人과 현사賢士가 힘을 다해 말한 지당한 언론言論이니 예나 지금이나 본받아야 할 바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하의 인재를 육성할 수 있습니까?
어찌 우리 임금님과 우리 재상宰相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우리 임금님과 우리 재상이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지금 천하가 무사하여 높고 낮은 관원들이 각각 자기의 직무를 충실히 지켜, 전곡錢穀이나 갑병甲兵에 관한 문제가 묘당廟堂에 이르지 않으니, 치국治國의 방도를 논의하고 국가를 경영하는 여가에 이 일 말고는 아마도 더 큰 일이 없을 성싶습니다.
지금 여기에 태어난 지 28년이 된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농공상고農工商賈의 명부名簿에 올라 있지 않고, 오직 글을 읽고 문장을 지어 요순堯舜의 도를 가송歌頌하는 것만을 직업으로 삼아 새벽닭이 울면 일어나서 이 일만을 부지런히 하고 이익은 꾀하지 않습니다.
그가 읽은 글은 모두 성인聖人의 글이라서 양楊‧묵墨이나 석釋‧노老의 학설은 그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그가 지은 글들은 모두 육경六經의 뜻에 의거하여 문장을 엮어 사악邪惡을 억지抑止하고 정도正道를 도와 세속 사람들이 의혹하는 것들을 변론한 것입니다.
곤궁하게 생활하고 검약儉約을 지키면서도 때로 감격하기도 하고 원한怨恨하기도 하는 기괴奇怪한 언사言辭를 토로하여 천하에 알려지기를 구하였으나 교화에 어긋나는 말이 없으니, 그 속에 요괴하고 음란하며 아첨하고 남을 속이는 말들이 나온 것이 없습니다.
주군州郡의 천거를 받아 예부禮部에서 실시하는 진사시進士試에 네 차례 응시應試하여 겨우 한 차례 급제及第하였고, 이부吏部에서 실시하는 선거選擧에 세 차례 응시하였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으니, 9품品의 관위官位인들 어찌 바랄 수 있으며, 1묘畝의 궁실宮室(家屋)인들 어찌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해四海 안에 돌아갈 곳이 없어서 사정이 다급해 허둥대고,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고 추워도 입을 것이 없어서 죽음이 가까이 닥친 근심 속에 있으면서도 뜻은 더욱 굳건하니, 벼슬을 얻은 자들은 앞다투어 그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문득 구업舊業을 버리고 새로운 직업을 꾀하여 노농老農과 노포老圃를 찾아 스승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본래의 뜻을 바꾸는 것이 슬퍼서 밤중에 눈물과 콧물이 번갈아 얼굴을 적셨습니다.
그가 비록 시인詩人과 맹자孟子가 말한 ‘인재人才’에 해당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를 양육養育한다면 쓸모 있는 재목감(人材)으로 만드는 것도 아마 가능할 것이고, 교육한다면 뛰어난 재사才士(英才)로 만드는 것도 아마 가능할 것입니다.
또 듣건대 옛날에 군자는 임금을 도와 나라를 다스릴 때, 한 사람이라도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를 밀쳐 구렁텅이에 빠뜨린 것처럼 여겼다고 합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7세 때부터 성인聖人의 도道를 학습하여 그 몸을 수양한 지가 20년이 되었는데, 부득이 하루아침에 그동안 해오던 일을 버려야 한다면 이 또한 편안히 생활할 수 있는 처소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삼가 ‘지금 어지신 분이 윗자리에 계시는데도 찾아가서 나의 뜻을 고하지 않고 지레 떠난다면, 이는 자신을 포기抛棄하는 데 과감하여 옛날 군자의 도리로써 우리 재상을 대우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그리해서야 되겠는가?
가령 뜻을 얻지 못한다면 이는 운명이니 그때에 떠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홍범洪範〉에 “모든 서민庶民 중에 계모計謀가 있고 시위施爲할 만한 재능才能이 있고 조수操守가 있는 사람을 그대는 생각할 것이며, 극極(中)에는 맞지 않더라도 악惡에 빠지지 않았거든 임금은 그를 받아들일 것이며,
그대는 그대의 얼굴빛을 편안하게 갖고서 〈어떤 자가 그대에게〉 ‘내가 좋아하는 바는 덕이다.’라고 하거든 그대는 그에게 복福(爵祿)을 주라.”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 선善을 행하도록 권면한 말입니다.
또 듣건대 옛사람 중에 천거薦擧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벼슬에 나아가기를 꾀한 자가 있었으나 군자가 그를 거절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는 앞에서 말한 “ ‘내가 좋아하는 바는 덕이다.’라고 하거든 그대는 그에게 복을 주라.”고 한 뜻입니다.
또 듣건대 임금이 관직官職을 설치하고 봉록俸祿을 제정한 것은 반드시 적임자를 찾아서 그에게 주기 위함이고 구차하게 그 사람의 재능만을 사모하여 그 사람을 부귀富貴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하니, 이는 장차 그 사람의 능력을 이용해 무능한 사람들을 다스리고, 그 사람의 총명을 이용해 총명하지 못한 자들을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며, 아랫사람이 자신을 수양하고 성실한 뜻을 세우는 것은 반드시 벼슬을 구하여 그 직무를 담당하기 위함이고, 구차하게 이익을 탐하여 영화로운 명예를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하니, 이는 장차 자기의 넉넉한 것을 널리 전파하여 부족한 사람을 돕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윗사람이 인재를 구하는 것과 아랫사람이 벼슬을 구하는 것이 서로 구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 목표는 하나일 뿐입니다.
가령 이것을 마음에 새긴다면 윗사람이 인재를 구하는 도리는 아랫사람을 탓할 필요가 없고, 아랫사람이 벼슬을 구하는 도리는 윗사람을 탓할 필요가 없으니, 〈윗사람은〉 천거할 만하면 천거하고 〈아랫사람이〉 스스로 천거하는 것을 꾸짖을 필요가 없으며, 〈아랫사람은〉 벼슬에 나아갈 만하면 나아가고 천거도 없이 스스로 벼슬에 나아가기를 꾀하는 것을 사양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듣건대 윗사람이 천하를 교화하는 방법이 도의에 맞으면 천하에 두루 상賞을 주어 권장하지 않아도 천하 사람이 모두 따른다고 하니, 이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그 소원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널리 은혜를 베풀어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지금은 천하에 이부吏部를 경유하지 않고서 관직에 진출한 자는 거의 드뭅니다.
그러므로 주상主上께서는 조정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산림山林에 은거한 인사人士가 있는 것을 가슴 아프게 여기시어 내외內外의 신하들에게 누차 조서詔書를 내려 사해四海에 널리 찾아보게 하셨으나 나온 자가 없습니다.
그들 또한 국가가 특별한 방법으로 예우하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저 은거해 한가로이 지내는 자들 역시 사람이니, 그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원하는 바와 그 마음이 즐기는 바와 그 몸이 편안히 여기는 바가 어찌 보통 사람들과 다르겠습니까?
그런데도 지금 열악한 옷과 밥을 입고 먹으며 바싹 여윈 몸으로 사슴이나 원숭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본래 저들 스스로 세속에 영합해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꺼운 마음으로 세상과 관계를 단절하고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듣건대 국가가 관리를 임용하는 제도는 반드시 주현州縣에서 천거해 예부禮部와 이부吏部로 올려 보내어 화려한 문장으로 시험을 보이고, 성세聲勢의 역순逆順과 장구章句의 장단長短을 심사하여 격식格式에 맞은 뒤에 하급관리下級官吏에 임명한다고 하니, 비록 세속을 교화할 방법과 변경邊境을 안정시킬 책략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길을 경유하지 않고서 관직에 나아간 자는 만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오직 더 깊은 산과 더 빽빽한 숲으로 들어가지 못할까 걱정하여 그 종적을 감추어 남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들이 만약 재상께 편지를 올린 자가 있는데도 재상께서 그를 모욕하지 않고 천자께 추천하여 관직을 주고 그 편지를 사방에 공포公布하였다는 말을 듣는다면,
큰 도량과 통달通達한 재능을 가진 은사隱士들이 반드시 감동하여 관冠을 높이 쓰고 천천히 걸어 나올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천하에 두루 상賞을 주어 권장하지 않아도 천하 사람이 모두 따른다고 한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그 소원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널리 은혜를 베풀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삼가 《시경詩經》‧《서경書經》‧《맹자孟子》의 뜻을 열람閱覽하고서 인재를 육성하여 복福(爵祿)을 준 까닭을 생각하고, 옛날의 군자가 그 임금을 보좌하던 방법을 고찰하고는 자진自進과 자거自擧의 죄罪를 잊었습니다.
합하閤下께서 관직官職을 설치하고 봉록을 제정한 까닭을 생각하시어 출사出仕하지 않고 산림에 은거한 선비들이 나오도록 유인誘引한다면, 천하에 도를 행하기를 바라는 자들이 귀의歸依할 곳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전에 지은 글 중에 비교적 나은 것 몇 편을 뽑아 별지別紙에 기록하였으니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존엄尊嚴하신 합하를 범하였으니 땅에 엎드려 처분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