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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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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前半瑰瑋游泳하고 後半婉孌凄切이라
七月三日 韓愈 謹奉書尙書閤下하노라
士之能享大名顯當世者 莫不有之士負天下之望者爲之前焉이요 士之能 亦莫不有後進之士負天下之望者爲之後焉이라
莫爲之前이면 雖美而不彰하고 莫爲之後 雖盛而不傳이니 是二人者
然而千百載 乃一相遇焉이니 豈上之人無可援하고 下之人無可推歟
何其相須之而相遇之
其故 在下之人負其能하야 不肯諂其上하고 上之人負其位하야 不肯顧其下ᄅ새니라
故高材多之窮하고 盛位無赫赫之光하니 是二人者之所爲皆過也
未嘗하니 不可謂上無其人이요 未嘗求之하니 不可謂下無其人이라
愈之誦此言久矣 未嘗敢以聞於人이라
閤下抱 하고 하며 하고 이라하니 豈愈所謂其人哉
抑未聞後進之士有遇知於하야 獲禮於門下者하니 豈求之而未得耶
將志存乎立功하고 而事專乎報主하야 雖遇其人이나 未暇禮耶
何其宜聞而久不聞也
愈雖不才 其自處不敢後於恒人이라
閤下將求之而未得歟
古人有言하니 라하니라
愈今者惟朝夕芻米僕賃之資是急하니 不過費閤下一朝之享而足也
如曰 吾志存乎立功하고 而事專乎報主하야 雖遇其人이라도 未暇禮焉이라하면 則非愈之所敢知也로라
世之旣不足以語之어니와 又不能聽焉이면 則信乎命之窮也
謹獻舊所爲文一十八首하노니 如賜覽觀이면 亦足以知其志之所存이리라


06. 우양양于襄陽에게 준 편지
전반부는 특이한 내용과 아름다운 문사文詞문학文學의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을 쳤고, 후반부는 그리워하는 감정이 처량하고 비통하다.
7월 3일에 장사랑將仕郞 수국자사문박사守國子四門博士 한유韓愈는 삼가 상서합하尙書閤下께 이 글을 올립니다.
선비로서 큰 명성을 누리며 당세에 현달顯達한 자는 천하의 명망을 지닌 선달先達이 앞에서 끌어주었기 때문이고, 선비로서 아름다운 광채를 전하여 후세를 밝게 비추는 자는 천하의 명망을 지닌 후진後進이 뒤에서 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끌어주는 선달이 없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덕행德行을 가졌어도 명성을 드러낼 수 없고, 뒤에서 밀어주는 후진이 없으면 아무리 성대한 공적功績이 있어도 후세에 전할 수 없으니, 이 두 부류의 사람은 서로 의존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천 년이나 백 년에 겨우[乃] 한 번 만날 뿐이니, 이것이 어찌 윗사람에게 끌어줄 만한 후진이 없고, 아랫사람에게 밀어줄 만한 선달이 없어서이겠습니까?
어째서 서로를 의존함이 이토록 간절하면서도 서로 만난 경우가 그리도 드물었습니까?
그 까닭은 아랫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믿고 윗사람에게 아첨하려 하지 않고, 윗사람은 자신의 지위를 믿고 아랫사람을 돌봐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재능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빈궁으로 우수憂愁비통悲痛 속에 지내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혁혁한 빛을 세상에 전할 수 없으니, 이 두 사람의 행위는 모두 옳지 않습니다.
벼슬을 구한 적이 없으니 윗사람 중에 후진後進을 발탁할 만한 고관高官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옳지 않고, 인재를 구한 적이 없으니 아랫사람 중에 발탁할 만한 인재가 없다고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저는 이 말을 암송暗誦한 지 오래이지만 감히 사람들에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전하는 말을 듣건대, 합하閤下께서는 세상에 드문 재능을 지닌 분으로, 뜻과 절개가 고결하여 세속을 따르지 않고, 도를 행함이 방정하고 일을 처리함이 진실하며, 진퇴進退에 법도가 있어 시속時俗을 따르지 않고 문재文才무략武略을 오직 상황에 따라 쓰신다고 하니, 어찌 제가 말한 ‘그런 분(후진을 발탁할 수 있는 분)’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후진 중에 합하께 알아줌을 받아 문하에서 예우를 받은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합하께서 인재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공을 세우는 데 뜻을 두시고, 군주에게 보답하는 일에만 전념하시어, 비록 인재를 만났어도 예우할 겨를이 없으신 것입니까?
어째서 〈인재를 천거하였다는〉 소문이 났어야 하는데도 오래도록 소문이 없는 것입니까?
제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감히 보통 사람들에 뒤진다고 자처하지 않습니다.
합하께서 인재를 구하려 하셨으나 아직 얻지 못한 것입니까?
옛사람의 말에 “곽외郭隗로부터 시작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 아침저녁으로 말에게 먹일 꼴과 밥 지을 쌀과, 종복從僕에게 노임勞賃으로 줄 돈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니, 합하閤下께서 드시는 하루아침의 식사비용에 불과한 돈만 내어주셔도 충분하겠습니다.
그런데 가령 “나는 공을 세우는 데 뜻이 있고, 임금께 보답하는 일에 전념하느라, 비록 인재를 만나도 예우할 겨를이 없다.”고 하신다면 제가 감히 알 바가 아닙니다.
세상에 작은 일에 얽매이는 자들에게는 이런 말을 할 가치도 없지만, 뜻이 커서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는 비범非凡한 분마저 저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저의 운명은 참으로 곤궁해질 것입니다.
삼가 전에 지었던 문장 18편을 올리오니 보아주신다면 저의 뜻이 있는 곳을 아시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역주
역주1 與于襄陽書 : 이 편지는 貞元 18년(802) 가을에 쓴 것이다. 이때 韓愈는 國子監 四門博士였으나, 벼슬이 낮고 봉록이 박하여 생활이 곤궁하였다. 그러므로 于襄陽에게 이 편지를 올려 도움을 청한 것이다. 우양양은 于頔이다. 우적은 이때 工部尙書로 山南節度使로 나아가 襄陽에 머물고 있었다.
역주2 將仕郞守國子四門博士 : 將仕郞은 文官의 散職이다. 國子四門博士는 國子監 四門博士를 이른다. 唐代에는 國子監 밑에 國子學, 太學, 四門館 등의 官學이 있었는데, 그곳에 모두 博士가 있었다. 守는 品階는 낮은데 職責이 높은 것을 이른다. 장사랑은 종9품이고, 사문박사는 종7품이기 때문이 ‘守’라고 한 것이다.
역주3 先達 : 덕행과 학문이 높은 선배를 이르는데, 여기서는 仕路에 먼저 진출하여 榮達한 사람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4 垂休光照後世者 : 아름다운 광채를 전하여 후세를 밝게 비춘다는 말인데, 아름다운 명성을 후세에 전한다는 뜻이다.
역주5 未始不相須 : 未始는 未嘗과 같고, 相須는 서로 필요로 함이니, 곧 서로 필요로 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말이다.
역주6 : 간절함이다.
역주7 : 드묾이다.
역주8 戚戚 :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역주9 : 벼슬을 구함이다.
역주10 側聞 : 옆에서 들었다는 말로, 일찍이 들어 알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謙辭이다.
역주11 不世之材 : 세상에 흔치 않은 非凡한 人才를 이른다.
역주12 特立而獨行 : 志向과 節操가 高潔하여 세속을 따르지 않고 자기 意志대로 행동함을 이른다.
역주13 道方而事實 : 道方은 도를 행함이 방정하여 구차히 영합함이 없는 것이고, 事實은 일을 처리함이 진실하여 과장함이 없는 것이다.
역주14 卷舒不隨乎時 : 卷은 걷는 것이고, 舒는 펴는 것이니, 곧 用捨를 뜻한다. 人才를 등용하거나 버림에는 시속을 따르지 않고 오직 능력만을 보았다는 말이다.
역주15 文武惟其所用 : 文才와 武略을 오직 상황에 따라 알맞게 사용한다는 말이다.
역주16 左右 : 상대방에 대한 敬稱이다. 書信 등에 상대방을 직접 指稱하지 않고 ‘執事’ 또는 ‘左右’로 지칭하여 尊敬을 표한다.
역주17 請自隗始 : 이것은 郭隗가 燕 昭王에게 答한 말로 《史記》 〈燕昭公世家〉에 보인다. 《사기》에 의하면 연 소왕은 燕나라가 齊나라에게 격파된 뒤에 임금의 자리에 올라, 제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몸을 낮추고 후한 폐백으로 賢者를 招聘하였다. 연 소왕이 곽외에게 말하기를 “제나라가 우리나라의 혼란을 틈타 우리나라를 습격해 격파하였다. 나는 우리나라가 작고 힘이 약하여 보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진실로 賢士를 얻어 함께 나라를 다스려 先王의 치욕을 씻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그러니 先生은 可合한 자를 보거든 〈나에게 말하라〉 내 몸소 그를 섬기겠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곽외가 말하기를 “왕께서 반드시 賢士를 초치하고자 하신다면, 먼저 곽외로부터 시작하시면 저 곽외보다 어진 자들이 어찌 천릿길을 멀다고 여기겠습니까?”라고 하니, 소왕은 곽외를 위해 宮殿을 新築하고서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고 한다. 韓愈는 ‘나부터 등용하면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올 것’이라는 뜻으로 곽외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역주18 齪齪者 : 성질이 급하고 속이 좁은 자이다.
역주19 磊落奇偉之人 : 뜻이 커서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는 非凡한 사람을 이른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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