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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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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似譽而昌이라
自幕府至鄧之北境 凡五百餘里 自庚子至甲辰 凡五日이라 手披目視하고 口詠其言하며 心惟其義하니 且恐且懼하야 忽若有忘하야 不知鞍馬之勤 道塗之遠也로라
夫澗谷之水 深不過이요 之山 高不能踰이니 人則라가
及至臨泰山之하고 窺巨海之하야는 莫不하야 이라
所觀變於前이면 易於內 亦其理宜也
閤下負超卓之奇材 畜雄剛之俊德 하야 無有하고 而又貴窮乎公相하고 威動乎하니 天子之毗 之師
故其文章言語 與事相侔하야 하고 하며 하고 하며 豐而不餘一言하고 約而不失一辭하며 其事信하고 其理切이라
孔子之言曰 이라하니 信乎其有德且有言也로다
揚子雲曰 라하니 信乎其能灝灝而且噩噩也로다
夫馬之智不賢於 農之能不聖於로되 然且 聖賢之能多하고 農馬之知專故也니라
今愈雖愚且賤이나 其從事於文 實專且久하니 則其贊王公之能하고 而稱大君子之美라도 不爲僭越也
伏惟詳察하노라


04. 등주鄧州 북쪽에서 양양襄陽 우상공于相公에게 올린 편지
상대를 기린 것 같으나, 사실은 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보내주신 〈문무순성악사文武順聖樂辭〉와 〈천보악시天保樂詩〉와 〈독채염호가사시讀蔡琰胡笳辭詩〉와 〈이족종移族從〉 및 〈여경조서與京兆書〉를 받았습니다.
막부幕府에서 등주鄧州 북경北境까지의 거리가 모두 500여 리이고, 경자일庚子日에 출발하여 갑진일甲辰日에 도착하기까지 모두 5일이 걸렸는데, 5일 동안 손으로 피봉을 뜯어 눈으로 보며 입으로 그 시문詩文을 읊조리고 마음으로 그 뜻을 생각하노라니, 황공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마치 무엇을 잊은 것처럼 황홀하여, 말을 타는 괴로움도 길이 먼 것도 몰랐습니다.
저 골짜기 물은 깊이가 한 자에 지나지 않고, 작은 토산土山은 높이가 한 길도 되지 않으니, 사람들은 가벼이 여겨 함부로 대합니다.
그러다가 태산泰山의 높은 절벽에 오르고 대해大海의 거센 파도를 목도함에 미쳐서는 벌벌 떨면서 넋이 나가 정신이 멍해지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보이는 광경이 눈앞에서 변하면 심경心境이 안에서 바뀌는 것은 이 또한 당연한 이치입니다.
합하閤下께서는 지니신 탁월한 재능과 쌓으신 웅대雄大하고 강건剛健대덕大德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끝이 없으시며, 또 고귀高貴함은 공상公相(公卿)에 이르고[窮] 위엄威嚴관할지역管轄地域에 진동하니, 천자天子보좌輔佐이고 제후諸侯사표師表이십니다.
그러므로 합하의 문장과 언론이 사적事績과 서로 부합하여, 진동하는 위엄이 천둥처럼 맹렬하고 은하銀河처럼 광대하며, 순정純正악성樂聲소호韶濩와 어울리고 강건剛健기개氣槪금석金石이 기운을 잃게 하며, 문사文辭가 풍부하되 필요 없는 말이 한마디도 없고, 간략하되 놓친 말이 한마디도 없으며, 거론하신 일은 신뢰信賴할 수 있고 말씀하신 도리는 합당하셨습니다.
공자孔子께서 “이 있는 자는 반드시 훌륭한 말을 한다.”고 하셨는데, 합하閤下야말로 참으로 덕이 있어서 훌륭한 말을 하셨다고 하겠습니다.
양자운揚子雲이 “〈상서商書〉는 호호灝灝(뜻이 광대廣大함)하고, 〈주서周書〉는 악악噩噩(논조가 엄숙嚴肅하고 절직切直함)하다.”고 하였는데, 합하의 문장이야말로 참으로 호호灝灝하고도 악악噩噩하다 하겠습니다.
옛날에 제군齊君행군行軍하다가 길을 잃자 관자管子(管仲)가 늙은 말을 풀어놓고서 그 말을 따라가기를 청하였고, 번지樊遲가 농사짓는 법을 배우기를 청하자 공자孔子는 늙은 농부에게 묻게 하셨습니다.
저 늙은 말의 지혜가 이오夷吾(管仲)보다 현능賢能하지 못하고, 늙은 농부의 재능이 이보尼父(孔子)보다 명철明哲하지 못한데도, 〈관자와 공자가〉 이와 같이 한 것은 성인과 현인은 재능이 다양하고 노농老農노마老馬는 지혜가 전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저는 비록 어리석고 비천하지만 문학에 종사한 것이 전일하고도 오래되었으니, 왕공王公의 재능을 찬양하고 대군자大君子의 미덕을 칭송하여도 분수를 넘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드리는 바이니〉 자세히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역주
역주1 鄧州北寄上襄陽于相公書 : 唐 憲宗 元和 원년(806) 6월에 韓愈는 江陵法曹參軍으로 있으면서 조정의 부름을 받고 들어와서 國子博士에 제수되었다. 한유가 돌아오는 길에 襄陽을 지나니, 山南節度使 于頔이 한유를 환대하고 자기가 지은 詩文을 보여주었다. 한유는 이 시문을 받아 가지고 오다가 鄧州 북쪽에 이르러 이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다. 우적이 이때 새로 平章事에 올랐기 때문에 ‘相公’이라 한 것이다.
역주2 : 상대의 書信이나 詩文에 대한 敬稱이다. 상대의 서신이나 시문을 ‘來示’, ‘示諭’, ‘所示’ 등으로, 상대의 答書를 ‘回示’, ‘復示’ 등으로 표현한다.
역주3 文武順聖樂辭 : 皇室의 功德을 贊頌한 歌舞樂의 歌辭이다. 唐나라는 德宗 이후로 方鎭에서 樂舞를 지어 올리는 일이 많았다.
역주4 天保樂詩 : 保는 ‘寶’와 通用이다. 이 역시 皇室의 공덕을 찬송한 詩歌이다.
역주5 讀蔡琰胡笳辭詩 : 于頔이 蔡琰의 〈胡笳辭〉를 읽고서 지은 詩이다. 《後漢書》 〈烈女傳 董祀妻〉에 의하면, 채염은 東漢 때 학자 蔡邕의 딸로 字가 文姬인데, 그녀는 학문이 해박하고 音律에도 뛰어났다. 獻帝 때 凶奴에게 잡혀 南匈奴 左賢王의 後宮이 되어 12년 동안 살면서 아들 형제를 낳았다. 뒤에 曹操가 채옹의 後嗣가 없는 것을 가엾게 여겨 흉노에게 많은 財貨를 주고서 문희를 되찾아와서 董祀의 아내로 주었다고 한다. 〈胡笳十八拍(章)〉은 《樂府詩集》 59에 보이는데, 채염의 作品이라 한다.
역주6 移族從 : 朱子의 《韓文考異》에 의하면, ‘移’는 移居의 ‘移’가 아니라 移書(편지를 보냄)의 ‘移’이다. 于頔이 오래간만에 비로소 고향에 가기 때문에 편지를 보내어 그 同族과 從兄弟들에게 알린 것이라고 하였다.
역주7 與京兆書 : 于頔이 京兆尹 李實에게 보낸 편지이다.
역주8 咫尺 : 咫는 8寸이고, 尺은 10寸이다.
역주9 丘垤 : 작은 土山이다.
역주10 尋丈 : 尋은 8尺이고, 丈은 10尺이다.
역주11 狎而翫之 : 《春秋左氏傳》 昭公 20년에 “물은 柔弱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輕視하여 함부로 대한다. 그러므로 빠져죽는 자가 많다.[水懦弱 民狎而翫之 則多死焉]”란 말이 보인다.
역주12 懸崖 : 높이 솟은 절벽이다.
역주13 驚瀾 : 무섭게 밀려오는 거센 파도이다.
역주14 戰掉悼慄 : 戰掉와 悼慄은 同意辭로, 두려워서 벌벌 떪이다.
역주15 眩惑而自失 : 넋이 나가 정신이 멍해짐이다.
역주16 所守 : 마음이다.
역주17 渾然天成 : 이루어진 모습이 자연스러워 人爲의 흔적이 없음이다.
역주18 畔岸 : 가장자리로, 곧 끝이나 限界를 이른다.
역주19 區極 : 管轄地域을 이른다.
역주20 諸侯 : 兵權을 장악하고서 한 지방을 鎭守하는 節度使 등을 이른다.
역주21 憚赫若雷霆 : 憚赫은 명성과 위엄이 진동함이니, 곧 진동하는 위엄이 천둥처럼 맹렬하여 사람들을 두렵게 한다는 말이다.
역주22 浩汗若河漢 : 浩汗은 廣大이고, 河漢은 銀河이니, 곧 위엄이 미치는 범위가 은하처럼 광대하여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역주23 正聲諧韶濩 : 正聲은 순정한 樂聲이고, 諧는 어울림(조회)이고, 韶는 虞舜의 樂이고, 濩는 商湯의 樂이니, 곧 于頔이 지은 〈文武順聖樂辭〉의 聲調가 韶濩와 어울린다는 말이다.
역주24 勁氣沮金石 :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문장의 剛健한 氣槪가 金石을 凌駕[沮]한다.’로 해석할 수도 있고, 하나는 ‘문장의 강건하고 정직한 기개가 金聲(鐘)이나 石聲(磬)을 능가한다.’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 두 가지 뜻을 다 포함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勁氣는 剛健한 氣槪이고, 沮는 沮喪(기세가 꺾여 기운을 잃게 함)이니, 金石으로 하여금 기세가 꺾여 기운을 잃게 한다는 말이다. 대체로 아름다운 문장을, 소리가 크고 맑아 餘韻이 은은하게 오래 지속되는 金聲(鍾)과 石聲(磬)에 비유하니, 곧 文辭가 아름답고 聲調가 맑다는 말이다.
역주25 有德者必有言 : 《論語》 〈憲問〉에 보인다.
역주26 商書灝灝爾 周書噩噩爾 : 《法言》 〈問神〉에 보인다. 灝灝는 끝없이 광대한 모양이고, 噩噩은 엄숙하고 切直(간절하고 솔직함)한 모양이다.
역주27 齊君行而失道 管子請釋老馬而隨之 : 《韓非子》 〈說林〉에 의하면, 管仲이 齊 桓公을 모시고 孤竹國을 정벌하고서 돌아올 때 중도에서 길을 잃자, 늙은 말을 풀어놓고서 그 뒤를 따라가 길을 찾았다고 한다.
역주28 樊遲請學稼 孔子使問之老農 : 《論語》 〈子路〉에 보인다.
역주29 夷吾 : 管仲의 이름이다.
역주30 尼父 : 孔子에 대한 존칭이다. 孔子의 字가 仲尼이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父는 남자에 대한 미칭으로 甫와 같이 쓰였다.
역주31 云爾 : 如此와 같으니, 管仲이 老馬의 뒤를 따라 길을 찾고, 孔子가 樊遲로 하여금 老農에게 묻게 한 것을 이른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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