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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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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奇氣
愈白하노라
惠書責以不能如하니라
夫信陵 戰國公子 欲以取士聲勢而然耳니라
如僕者 自度若世無孔子 不當在弟子之列이라
以吾子始自山出하야之美意하니 恐未以世事로라
又自周後하야 百子爲書하야 各自名家하야 亂聖人之宗이어늘
後生習傳하니 이라
故設問以觀吾子하야 其已成熟乎ᄂ댄 將以爲友也 其未成熟乎ᄂ댄 將以講去其非而趨是耳 니라
方今天下入仕 惟以進士明經及니라 其人率皆習熟時俗하고 工於語言하며 識形勢하고
故天下하야 日入於衰壞하니 恐不復振起일새
하야 以爭救之耳 非謂當今公卿間無足下輩文學知識也 不得以信陵比니라
然足下衣破衣繫麻鞋하고 率然叩吾門 吾待足下雖未盡賓主之道 不可謂로라
足下行天下 得此於人蓋寡어늘 乃遂能責不足於我하니 此眞僕所汲汲求者로라
議雖未中節이나 其不肯阿曲以事人者灼灼明矣 하리라
僕之所爲하고 少安無躁하라


10. 여의산인呂醫山人에게 답한 편지
기상이 예사롭지 않다.
는 아룁니다.
주신 편지에, 신릉군信陵君이 친히 현사賢士를 위해 말고삐를 잡았던 것처럼 하지 않는다고 나를 꾸짖으셨습니다.
저 신릉군은 전국戰國나라 공자公子로 현사를 취득取得하였다는 명성名聲기세氣勢로 천하 사람들의 존경尊敬을 받기 위해 그리 했던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나로 말하면 세상에 공자孔子 같으신 성인聖人이 없다면 제자弟子의 대열에 끼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대는 비로소 산에서 나와 질박質朴하고 중후重厚한 아름다운 뜻을 지니고 있으니, 아마도 아직 세상사世上事단련鍛鍊(시달림)한 적이 없으신 듯합니다.
나라 이후로 문치文治로 인한 폐해弊害가 생겨,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자기의 주의나 사상을 글로 적어 각자 일가一家를 이루어 성인聖人종지宗旨(主旨)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런데 후생後生들은 이를 학습하고 이를 전승傳承하니, 학설이 박잡駁雜하여 하나의 이치로 전체를 관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문제를 내어 그대의 대답을 들어보고서 그대의 학문이 이미 성숙되었으면 내가 그대를 벗으로 삼고, 아직 성숙되지 않았으면 그대의 잘못을 제거하고 옳은 데로 나아가도록 돕기를 강구하고자 한 것일 뿐이니, 길에서 현사를 만나면 지극한 예우禮遇대가代價로 주고서 그를 자기 사람으로 만든 육국六國공자公子들과는 같지 않습니다.
오늘날 천하에서 조정에 들어가 벼슬하는 자들은 오직 진사과進士科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한 자들과 경대부卿大夫의 후손들뿐인데, 그들은 모두 시속時俗에 익숙하고, 말을 잘하며 형세를 알고, 임금의 비위를 잘 맞춥니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이 모두 이런 풍조風潮에 휩쓸려 풍속이 날로 쇠퇴衰頹해지고 있으니, 다시 떨쳐 일어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힘을 다해 죽음에 나아갈지언정 이해利害거취去就를 돌아보지 않는 족하 같은 분을 조정朝廷에 추천하여 간쟁諫爭해 세상을 구제하게 하려는 것일 뿐이고, 오늘날 공경公卿 사이에 족하와 같은 문학文學과 지식을 가진 이가 없다고 여겨서가 아니니, 그대는 나를 신릉군信陵君에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족하足下가 해진 옷에 미투리를 신고서 경솔히 나를 찾아왔을 적에 내가 비록 빈주賓主의 도리를 다하여 족하를 대우하지는 않았으나 족하에게 무심無心하였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족하가 천하를 돌아다닐 적에 사람들에게 이런 대우를 받은 일이 아마도 많지 않았을 터인데, 드디어 나에게 대우가 부족하다고 꾸짖으셨으니, 족하야말로 참으로 내가 간절히 찾던 분입니다.
논의論議가 비록 절도節度에 맞지는 않으나, 아첨하여 남을 섬기려 하지 않음은 분명하니, 나는 장차 족하를 위하여 세 차례 목욕하고 세 차례 몸에 향료香料를 바르고서 족하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하는 대로 맡겨두고서 마음을 편히 가지고 조급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역주
역주1 答呂醫山人書 : 呂醫는 어떤 사람을 이른 듯한데, 그 事迹을 상고할 수 없다. 山人은 隱士를 이른다. 呂醫山人이 紹介狀도 없이 경솔히 찾아오니, 韓愈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어, 問題를 내어 그를 떠보려 하였다. 그러자 그는 불쾌하게 여겨, 옛날 信陵君처럼 賢士를 대우하지 않는다고 꾸짖는 편지를 보냈으므로 한유가 이 答信을 보낸 것이다.
역주2 信陵執轡 : 信陵은 戰國 때 信陵君에 封해진 魏나라 公子 無忌이다. 《史記》 〈魏公子列傳〉에 의하면 그는 賢士를 禮遇하여 食客이 3천에 이르렀다. 夷門의 문지기 侯嬴이 현사란 말을 듣고는 말을 몰고 가서 후영을 말에 태우고서 자신이 직접 말고삐를 잡고 돌아왔다고 한다.
역주3 傾天下 : 傾은 傾倒(사람들의 존경과 우러름을 받음)이다.
역주4 朴茂 : 質朴(순수하여 꾸밈이 없음)하고 重厚(점잖고 너그러움)함이다.
역주5 礱磨 : 磨礪와 같은 말로 鍛鍊함이다.
역주6 文弊 : 文治(禮樂을 崇尙한 政治)가 極致에 도달한 뒤로 점차 형식과 위선으로 흐르는 폐해가 생긴 것을 이른다.
역주7 雜而不貫 : 여러 학설이 뒤섞여 하나의 이치가 전체를 관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貫은 一以貫之이다. 一以貫之는 하나의 이치가 모든 일을 꿰고 있다는 말로, 《論語》 〈里仁〉에 보인다.
역주8 不如六國公子有市於道者 : 六國公子는 齊나라 孟嘗君, 趙나라 平原君, 楚나라 春信君, 魏나라 信陵君 등을 이른다. 市는 代價를 주고 물건을 삼이니, 여기서는 禮遇를 대가로 주고서 賢士를 샀다는 뜻으로 쓰였다. 곧 六國의 공자들이 길에서 현사를 만나면 예우를 대가로 주고서 자기 사람으로 끌어들여 명성을 얻으려 한 것과는 같지 않다는 뜻이다.
역주9 卿大夫之世 : 世는 후손을 이른다. 일반인은 科擧를 통해 官職에 나아갔지만 卿大夫의 자손들은 과거를 거치지 않고도 先人의 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역주10 善候人主意 : 候는 살핌이고, 人主는 임금이니, 곧 임금의 뜻을 잘 살핀다는 말로, 임금의 비위를 잘 맞추는 것을 이른다.
역주11 靡靡 : 풀이 바람에 쏠리는 모양이니, 곧 사람들이 모두 이런 풍조에 휩쓸렸다는 뜻이다.
역주12 務欲進足下趨死不顧利害去就之人於朝 : 進은 推薦함이고, 趨死는 死地로 나아감이고, 去就는 官職을 取捨함이니, 곧 死地로 들어갈지언정 이해와 거취를 돌아보지 않는 족하를 조정에 추천하여 諫爭해 세상을 구제하게 하고자 해서라는 뜻이다.
역주13 無意 : 無心과 같다.
역주14 方將坐足下三浴而三熏之 : 坐는 ‘爲’의 訓으로 쓰였다. 《國語》 〈齊語〉에는 “三釁三浴之”로 되어 있는데, 그 注에 “香料를 몸에 바르는 것을 釁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는 春秋 때 齊 桓公이 管仲을 맞이하기에 앞서 세 차례 목욕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香料를 세 차례 발라 몸을 향기롭게 하였다는 故事에서 나온 말로, 賢士를 지극히 존경해 예우하는 것을 뜻한다.
역주15 : 聽任(맡겨둠)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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