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賓行峻潔淸하고 其中狹隘하야 不能苞容하야 於尋常人에 不肯苟有論說이라
元賓旣沒에 其文益可貴重이나 思元賓而不見하야 見元賓之所與者면 則如元賓焉이라
今者辱惠書及文章하고 觀其姓名하니 元賓之聲容恍若相接하고 讀其文辭하니 見元賓之知人交道之不汚로라
子之言以愈所爲
가 不違孔子
하고 不以
爲工
이라하야 將相從於此
라하니 愈敢自愛其道而以辭讓爲事乎
아
然愈之所志於古者는 不惟其辭之好라 好其道焉爾로라
한유韓愈는 이수재李秀才와 안면이 없었고, 단지 원빈元賓의 시詩를 통해서 그 사람의 이름을 알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시종 원빈에 의탁하여 둘 사이의 정을 서술하였다.
고인故人이 된 벗 이관李觀 원빈元賓이 10년 전에〈별오중고인시別吳中故人詩〉6章을 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詩의 수장首章은 바로 원빈이 그대에게 준 송별시送別詩였는데, 그대를 매우 칭찬하였습니다.
원빈은 품행品行이 고결高潔하고 속이 좁아서 남을 포용하지 못하므로 평범한 사람에 대해 구차하게 논설論說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이런 시를 쓴 까닭을 추구追究하고 나서야 이에 그대가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대는 오중吳中에 있었고, 그 뒤에 나는 경사京師를 떠나 외방外方에 나와 있었으므로 인연이 닿지 않아 서로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원빈이 죽은 뒤에 그의 문장의 가치는 더욱 귀중貴重해졌으나, 나는 원빈을 생각해도 볼 수가 없어서 원빈이 사귀던 벗을 보면 마치 원빈을 보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내주신 편지와 문장을 받고서 그대의 성명姓名을 보니 마치 원빈의 음성과 용모를 접하는 것 같았고, 그대의 문장을 읽어보니 원빈이 사람을 알아보고서 벗을 사귄 방법이 저열低劣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대의 마음이 어쩌면 그리도 원빈과 같으십니까?
그대가 “나의 행위가 공자孔子의 도에 어긋나지 않고, 조탁彫琢을 공교로움으로 삼지 않는다고 하여, 장차 나에게 와서 이를 배우려 한다.”고 말씀하셨으니, 내 어찌 감히 나의 학식學識을 아껴 사양을 일삼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고문古文에 뜻을 둔 것은 그 문사文辭가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문사 속에 담긴〉 도를 좋아해서일 뿐입니다.
그대의 문장을 읽어보고서 그대가 마음을 쓰는 일이 아마도 이(彫琢)보다 깊은 데 있는 듯하여, 내가 그대와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을 알았으니, 하물며 도를 표현하는 문장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