淋漓指畫之態가 是得記文正體요 而結局處特高라 歐公文大略有得於此하니라
異日
에 者
하야 行于其居之後
하야 丘荒之間
에 上高而望
타가 得異處焉
하니라
斬茅而嘉樹列하고 發石而淸泉激이라 輦糞壤하고 燔椔翳하야 却立而視之하니
出者突然成丘하고 陷者呀然成谷하며 窪者爲池하고 而缺者爲洞하야 若有鬼神異物陰來相之하니라
自是弘中與二人者晨往而夕忘歸焉이러니 乃立屋以避風雨寒暑하니라
旣成에 愈請名之하야 其丘曰竢德之丘라하니 蔽於古而顯於今하야 有竢之道也라
其石谷曰謙受之谷이라하고 瀑曰振鷺之瀑이라하니 谷言德이요 瀑言容也라
其土谷曰黃金之谷이라하고 瀑曰秩秩之瀑이라하니 谷言容이요 瀑言德也라
洞曰寒居之洞이라하니 志其入時也라 池曰君子之池라하니 虛以鍾其美하고 盈以出其惡也라
泉之源曰天澤之泉
이라하니 出高而施下也
라 合而名之以屋曰燕喜之亭
이라하니 取詩所謂
者
하니 頌也
라
於是州民之老가 聞而相與觀焉하고 曰吾州之山水名天下나 然而無與燕喜者比니라
於其側者相接也
로되 而
하니 凡天作而地藏之
하야 以遺其人乎
아
弘中自吏部郞貶秩而來에 次其道途所經하니 自藍田入商洛하야 涉淅湍하야 臨漢水하고 升峴首以望方城하며
出荊門
하야 下岷
하야 過洞庭
하야 上湘水
하고 行衡山之下
하야 繇郴踰嶺
하니라
蝯狖所家요 魚龍所宮이라 極幽遐瑰詭之觀하니 宜其於山水飫聞而厭見也로되
今其意乃若不足
이라 이라하니 弘中之德
이 與其所好
로 可謂協矣
로다
智以謀之
하고 仁以居之
하니 吾知其去是而
於天朝也不遠矣
로다 遂刻石以記
하노라
손가락으로 그린 듯이 기운이 넘쳐흐르는 形態가 바로 記文의 바른 격식을 얻었고, 끝을 맺은 곳이 특히 뛰어나다. 歐陽公(歐陽脩)의 문장은 대체로 이 글에서 힘을 얻었다.
太原 사람 王弘中이 連州에 있을 적에 佛法을 배우는 景常‧元慧와 交遊하였다.
하루는 두 사람을 데리고 자기가 거처하는 집 뒤쪽으로 가서 황량한 언덕 사이를 지나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다가 특이한 곳을 발견하였다.
풀을 베어내니 줄지어 선 아름다운 나무가 드러나고, 돌을 들추니 맑은 샘물이 솟았다. 그래서 수레를 사용해 더러운 흙을 실어내고 불을 놓아 말라죽은 나무들을 불태우고서 뒤로 물러나 서서 바라보니,
높이 솟은 곳은 언덕이 되고 움푹 들어간 곳은 골짜기가 되며, 우묵한 곳은 연못이 되고 뚫린 곳은 동굴이 되어, 마치 귀신이 몰래 와서 도운 것 같았다.
이로부터 王弘中은 두 사람과 함께 새벽에 가서 저녁이 되어도 돌아가기를 잊었는데, 마침내 이곳에 집을 지어 風雨와 寒暑를 피하려 하였다.
집이 완성된 뒤에 나는 그 집의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청하여 그 언덕을 “有德者를 기다린 언덕[竢德之丘]”이라 命名하였으니, 예전에는 숨어 있다가 이제 드러나서 기다림의 도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石谷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골짝[謙受之谷]”이라 명명하고, 폭포를 “백로가 群飛하는 폭포[振鷺之瀑]”라 명명하였으니, 谷은 그 德을 말한 것이고, 瀑은 그 용모(外觀)를 말한 것이다.
그 土谷을 “황금의 골짝[黃金之谷]”이라 명명하고, 폭포를 “끊임없이 흐르는 폭포[秩秩之瀑]”라 명명하였으니, 谷은 용모를 말한 것이고, 瀑은 德을 말한 것이다.
동굴을 “추울 때 거처하는 동굴[寒居之洞]”이라 명명하였으니 그 동굴로 처음 들어갈 때를 말한 것이다.
연못을 “군자의 연못[君子之池]”이라 명명하였으니, 비었을 때는 아름다운 것들을 모으고 찼을 때는 추악한 것들을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샘의 근원을 “하늘이 내리는 은택의 샘[天澤之泉]”이라 명명하였으니, 높은 곳에서 나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모두 합쳐서 이 집을 명명하기를 “즐겁게 잔치 여는 정자[燕喜之亭]”라 명명하였으니, ≪詩經≫에 말한 “노나라 임금 잔치 열어 기뻐하네.[魯侯燕喜]”라는 詩句를 취한 것이니, 頌祝의 뜻을 담은 것이다.
이에 이 고을의 年老한 백성들이 소문을 듣고 함께 와서 구경하고서 “우리 고을의 山水가 천하에 이름났지만 ‘燕喜亭’과 견줄 곳은 없다.
그런데 그 옆에서 생활[經營]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건만 이곳을 만나지(발견하지) 못하였으니,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었다가 합당한 사람에게 준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王弘中이 吏部員外郞에서 貶職되어 이곳으로 올 때에 지나온 길을 차례로 기록하였는데, 藍田縣에서 商洛縣으로 들어가 淅水와 湍水를 건너 漢水에 이르고 峴首山에 올라 方城을 바라보았으며,
荊門을 나와 岷江을 따라 내려가서 洞庭湖를 지나 湘水를 거슬러 올라가고 衡山 아래를 지나 郴縣을 거쳐 南嶺을 넘었다.
〈경과한 곳은〉 원숭이가 사는 밀림이고 魚龍이 사는 깊은 물이라 幽遐(적막하고 궁벽함)하고 瑰詭(奇異)한 구경거리를 다 보았을 것이니, 아마도 그는 山水에 대해 많이 듣고 실컷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그의 생각에는 도리어 부족하게 여기는 듯하다.
傳(≪論語≫)에 “智者는 물을 좋아하고 仁者는 산을 좋아한다.”라고 하였으니, 王弘中의 德이 그가 좋아하는 바와 부합한다고 이를 수 있다.
그는 지혜로 인해 일을 꾀함이 周密하고 인으로 인해 職位에 거처함이 편안하니, 나는 그가 이곳을 떠나 천자의 조정에서 百官의 모범[羽儀]이 될 날이 머지않을 것으로 안다. 드디어 이 글을 碑石에 새겨 〈이 정자의 來歷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