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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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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獨以目盲一節 感慨悲憤이라
月日前某官某 謹東向再拜하고 寓書浙東觀察使中丞李公閤下하노라
籍聞議論者皆云 方今居古之職하야 坐一方得專制於其境內者 惟閤下心事하야 與俗輩不同이라하니라
籍固以藏之胸中矣러니
近者 閤下到京師하니 籍於李君友也 不見六七年이러니
聞其至하고 馳往省之하야 問無恙外 不暇出一言하고 且先賀其得賢主人하니
李君曰 子豈盡知之乎
吾將盡言之호리라
籍益聞所不聞하고 籍私獨喜하야 常以爲自今已後 不復有如古人者러니 於今忽有之라호라
退自悲不幸하야 兩目不見物하니 無用於天下
胸中雖有知識이나 家無錢財하야 寸步不能自致어늘
今去李中丞 五千里 何由致其身於其人之側하야 開口一吐出胸中之奇乎아하고 因飮泣不能語호라
旣數日 復自奮曰 無所能人 乃宜以盲廢어니와 有所能人 雖盲當廢於俗輩 不當廢於行古人之道者
浙水東七州 하니 不盲者何限이리오
李中丞取人 固當問其賢不賢이요 不當計其盲與不盲也
當今盲于心者皆是로되 若籍 自謂獨盲於目爾이요 其心則能別是非하니 若賜之坐而問之 其口固能言也
幸未死 實欲一吐出心中平生所知見이니 閤下能信而致之於門邪
籍又善於古詩하니 使其心不以憂衣食亂하고 閤下無事時 一致之座側하야 使跪進其하고 閤下憑几而聽之 未必不如聽리라
夫盲者 業專하야 於藝必精이라
故樂工皆盲이니可與此輩比竝乎ᄂ저
使籍誠不以畜妻子憂饑寒亂心하고 有錢財以이면 其盲未甚하니 其復見天地日月이리라
因得不廢 則自今至死之年 皆閤下之賜
閤下하고 賜之以旣盲之視 籍宜如何報也리오
閤下하라


09. 장적張籍을 대신해 이절동李浙東에게 준 편지
눈이 먼 한 가지 일로 복받치는 슬픔과 분함을 토로하였다.
모월某月 모일某日 모관某官 는 동쪽을 향해 삼가 두 번 절하고서 절동관찰사浙東觀察使 중승中丞 이공李公 합하閤下께 글을 올립니다.
제가 의논하는 자들의 말을 듣건대, 모두 “오늘날 옛 방백方伯연수連帥직위職位에 있으면서 한 지방에 앉아 그 경내境內전제專制하는 사람 중에 오직 합하만이 심중에 생각하는 일이 뛰어나시어 세속의 무리와 같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근자에 합하의 종사從事협률랑協律郞 이고李翶경사京師에 왔는데, 그는 저의 벗으로 서로 만나지 못한 지가 6, 7년이 되었습니다.
그가 왔다는 말을 듣고는 달려가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은 뒤에 한마디 말도 할 겨를 없이 먼저 그가 어진 주인을 만난 것을 축하하였습니다.
그러자 이군李君이 “그대가 어찌 그분에 대해 자세히 알겠는가?
내 그대에게 자세히 말해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지낸 며칠 동안 전에 듣지 못했던 합하의 사적事績을 더욱 많이 듣고는, 저는 홀로 기뻐하면서 마음속으로 항상 “오늘 이후로는 다시 옛사람 같은 분을 볼 수 없을 것으로 여겼는데, 지금 갑자기 그런 분이 출현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물러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스스로 저의 불행을 슬퍼하면서 “두 눈이 사물을 볼 수 없으니 천하에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다.
가슴속에 아무리 품은 지식이 있다 한들 집안에 재산이 없어서 자력으로는 한 발짝도 갈 수 없는데,
지금 이중승께서 계시는 곳과의 거리가 5천 리이니, 무슨 수로 이중승 곁으로 가서 가슴속에 품은 기책奇策을 토로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는 눈물을 삼키며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에 다시 스스로 분발하여 말하기를 “재능이 없는 사람은 소경이 되었으면 버림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은 비록 소경이 되었더라도 세속의 무리에게 버림을 받는 것은 마땅하고, 옛사람의 를 행하는 분에게 버림을 받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절수浙水 이동 일곱 가호家戶가 수십만 호 이상인데, 〈그중에〉 소경이 아닌 자가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
이중승李中丞께서 사람을 취함에 본래 현능賢能하냐 현능하지 못하냐를 물어야 하고, 소경이냐 소경이 아니냐를 따져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마음이 소경인 자가 대부분인데, 나로 말하면 ‘눈만 멀었을 뿐, 마음은 옳고 그름을 분변할 수 있다.’고 자부하니, 만약 나에게 자리를 주어 앉혀놓고서 묻는다면 입은 본래 말을 할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죽기 전에 실로 평소 마음속에 쌓인 지식과 견해를 한 번 토로하고자 하니, 합하閤下께서 믿고서 저를 문하로 불러주시겠는지요.
저는 또 고시古詩를 잘 지으니, 의식衣食 걱정으로 마음을 어지럽지 않게 하고서 합하께서 일이 없는 한가할 때에 곁으로 불러들여 저로 하여금 꿇어앉아 낭송朗誦해 올리게 하여, 합하께서 에 기대어 들으신다면 반드시 관악管樂현악絃樂타악打樂 등의 소리를 듣는 것만 못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체로 소경은 하는 일에만 마음을 오로지 쓰기 때문에 기예技藝에 반드시 정통精通합니다.
그러므로 악공樂工들은 모두 소경이니, 저도 혹 이 무리와 같을 수 있습니다.
가령 제가 처자妻子를 먹이는 일과 기한飢寒의 근심으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돈과 재물이 있어서 의약醫藥을 살 수 있다면, 저의 맹증盲症이 아직 심하지 않으니 다시 천지天地일월日月을 볼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버림을 받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죽는 날까지의 생명은 모두 합하閤下께서 주신 것입니다.
합하께서 이미 끊어진 생명을 이어주시고 이미 소경이 된 시력視力을 회복시켜 주신다면 그 중대한 은혜를 제가 어찌 갚아야 하겠습니까?
합하께서는 헤아리소서.


역주
역주1 代張籍與李浙東書 : 張籍은 字가 文昌이다. 저명한 詩人으로 韓愈의 벗이면서 제자이다. 이 글은 唐 憲宗 元和 5년(810)에 한유가 장적을 대신해 쓴 것이다. 장적은 長安에서 太常寺大祝으로 있었으나, 祿俸이 박하여 빈궁한데다가 눈병마저 앓아 거의 失明의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장안으로 돌아온 그의 벗 李翶를 통해 浙東都團練使 兼 御史中丞 李遜에 대해 듣고는 그에게 의탁하고자 하여, 한유에게 대신 편지를 써주기를 부탁하였다.
역주2 方伯連帥 : 周나라 때에 한 지방의 諸侯의 長을 ‘方伯’이라 하고, 十國의 長을 ‘連帥’라 하였는데, 후대에는 觀察使‧節度使 등 地方長官을 이르는 말로 쓰였다. 《禮記》 〈王制〉에 “10국을 連으로 삼으니 連에는 帥가 있다.[十國爲連 連有帥]”라 하였다.
역주3 犖犖 : 卓越함이다.
역주4 從事李協律翶 : 從事는 官名이다. 唐나라 때는 州長官의 輔佐官들을 모두 ‘從事’라 하였다. 協律은 協律郞이다. 太常寺의 屬官으로 樂律의 校正을 담당하였다. 李翶는 字가 習之로 韓愈學派의 古文家이다. 이고는 이때 浙東觀察使의 判官이었다. 협률랑은 그가 兼任한 職銜이다.
역주5 數日 : 李翶과 함께 지낸 며칠을 이른다.
역주6 戶不下數十萬 : 《元和郡縣圖志》에 의하면 浙江東道 管轄의 越州, 婺州, 處州, 溫州, 台州, 明州 등 7개 州의 家戶가 17만 4천 367호이다.
역주7 所有 : 가진 것, 곧 지어 가지고 있는 詩를 이른다.
역주8 吹竹彈絲敲金擊石 : 竹은 管樂이고, 絲는 絃樂이고, 金石은 鐘磬 등 打樂이다.
역주9 : 或是이다.
역주10 濟醫藥 : 濟는 購買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11 庶幾 : 希望이다.
역주12 濟之以已絶之年 : 濟는 도움이고, 年은 年歲이니, 곧 壽命의 뜻이다. 이미 끊어진 수명을 연장하도록 도왔다는 말이다.
역주13 其恩輕重大小 : 重大한 恩德을 이른다.
역주14 裁之度之 : 잘 헤아려 取捨를 결정함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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