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月日
에 愈聞汝喪之七日
에야 乃能銜哀致誠
하고 使建中遠具
之奠
하야 告汝十二郞之靈
하노라
嗚呼
라 吾少孤
하야 及長
에도 不省
하고 惟兄嫂是依
라
에 吾與汝俱幼
로되 從嫂歸葬河陽
하니라 旣又與汝就食江南
에 하야 未嘗一日相離也
니라
吾上有
이나 皆不幸早世
하야 承先人後者
는 在孫惟汝
요 在子惟吾
하여 兩世一身
이니 이라
汝時尤小하니 當不復記憶이어니와 吾時雖能記憶이나 亦未知其言之悲也로라
吾年十九에 始來京城하고 其後四年에 而歸視汝하니라
又二年
에 吾佐
于汴州
에 汝來省吾
하야 止一歲
라가 請歸取其孥
러니
明年에 丞相薨하야 吾去汴州하니 汝不果來하니라 是年에 吾佐戎徐州하야
使取汝者始行
이나 吾又罷去
하니 汝又不果來
하니라 吾念汝從於
이라도 東亦客也
니 不可以久
하니라
嗚呼라 孰謂汝遽去吾而歿乎아 吾與汝俱少年하니 以爲雖暫相別이나 終當久與相處호라
故捨汝而旅食京師하며 以求斗斛之祿하니라 誠知其如此면 雖萬乘之公相이라도 吾不以一日輟汝而就也라
에 往
에 吾書與汝曰 吾
에 而視茫茫
하고 而髮蒼蒼
하며 而齒牙動搖
라
念諸父與諸兄은 皆康強而早世하니 如吾之衰者가 其能久存乎아
吾不可去하고 汝不肯來하니 恐旦暮死하야 而汝抱無涯之戚也러니 孰謂少者歿而長者存하고 強者夭而病者全乎아
嗚呼라 其信然耶아 其夢耶아 其傳之非其眞耶아 信也ㄴ댄 吾兄之盛德而夭其嗣乎아
汝之純明而不克蒙其澤乎아 少者強者而夭歿하고 長者衰者而存全乎아
未可以爲信也
로다 夢也
요 傳之非其眞也
ㄴ댄 東野之書
와 가 何爲而在吾側也
아
嗚呼라 其信然矣로다 吾兄之盛德而夭其嗣矣요 汝之純明宜業其家者가 不克蒙其澤矣라
所謂天者誠難測이요 而神者誠難明矣며 所謂理者不可推요 而壽者不可知矣로다
雖然이나 吾自今年來로 蒼蒼者或化而爲白矣요 動搖者或脫而落矣라
日益衰
하고 志氣日益微
하니 不從汝而死也
리오 死而有知
면 其幾何離
아
其無知면 悲不幾時요 而不悲者無窮期矣리라 汝之子始十歲요 吾之子始五歲라
少而強者不可保어든 如此孩提者에 又可冀其成立耶아 嗚呼哀哉라 嗚呼哀哉라
汝去年書云
하야 往往而劇
이라하야늘 吾曰 是疾也
는 江南之人
은 常常有之
라하고 未始以爲憂也
로라
汝之書는 六月十七日也요 東野云 汝歿以六月二日이요 耿蘭之報는 無月日이라
蓋東野之使者는 不知問家人以月日이요 如耿蘭之報는 不知當言月日이라
東野與吾書에 乃問使者하니 使者妄稱以應之耳라하니라 其然乎아 其不然乎아
今吾使建中祭汝
하고 弔汝之孤與汝之乳母
하노라 彼有食可守以待終喪
이면 則待
而
어니와
如不能守以終喪이면 則遂取以來하고 其餘奴婢에 竝令守汝喪케호리라
吾力能改葬
이니 終葬汝於先人之兆
하리라 然後
하리라
嗚呼라 汝病吾不知時하고 汝歿吾不知日이라 生不能相養以共居하고 歿不得撫汝以盡哀라
斂不憑其棺하고 窆不臨其穴이라 吾行負神明而使汝夭하니라
不孝不慈하야 而不得與汝相養以生하고 相守以死라 一在天之涯하고 一在地之角이라
生而影不與吾形相依하고 死而魂不與吾夢相接이라 吾實爲之하니 其又何尤리오
彼蒼者天이여 曷其有極가 自今已往으로 吾其無意於人世矣니
當求數頃之田於伊潁之上
하야 以待餘年
하야 敎吾子與汝子
하야 하고 長吾女與汝女
하야 待其嫁
하리라 如此而已
라
嗚呼라 言有窮而情不可終하니 汝其知也耶아 其不知也耶아 嗚呼哀哉라 尙饗
전편에 깊은 情意를 서술한 말이 뼈를 찌를 듯하여 한없이 처절하니, 祭文 중에 千古에 드문 절묘한 문장이다.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숙부인 나는 너의 訃告를 받은 지 이레가 되어서야 비로소 비통한 심정을 품고서 너에게 정성을 전하고, 建中 편에 멀리에서 철에 맞는 祭品을 갖추어 너 십이랑의 亡靈에 고한다.
아! 나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어 자라서도 부모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오직 형님과 형수님께 의지해 생활하였다.
중년에 형님께서 남방에서 사망하셨을 때에 나와 너는 모두 어렸으나 형수님을 따라 형님의 靈柩를 모시고 돌아와서 河陽의 先塋에 安葬하였다. 얼마 뒤에 또 너와 함께 江南으로 가서 生計를 도모할 때에 의지할 데 없이 외롭고 쓸쓸하여 하루도 서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내 위로 세 분의 형님이 계셨으나 모두 불행하게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시어, 先人의 뒤를 이을 자라고는 손자 대에는 너뿐이고 아들 대에는 나뿐이어서 두 代에 한 사람씩만 남았으니 외롭고 처량했다.
형수님께서 항상 너를 어루만지고 나를 가리키며 “韓氏의 두 대가 오직 너희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그때 더욱 어렸으니 당연히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나는 그때를 기억하지만 그 말씀을 하실 때에 비통해하신 뜻은 알지 못하였다.
내 나이 열아홉이 되던 해에 처음 京城에 왔고, 그로부터 4년 뒤에 돌아가서 너를 보았다.
또 4년 뒤에 내가 河陽으로 가서 부모님 墳墓를 살필 적에 형수님 靈柩를 모시고 와서 安葬하는 너를 만났다.
또 2년 뒤 내가 汴州에서 董丞相(董晉) 幕下의 幕僚로 있을 적에 너는 나를 보러 와서 1년을 머물다가 돌아가서 처자를 데리고 오겠다고 청하고서 떠났다.
그런데 이듬해에 董丞相이 薨逝하여 내가 汴州를 떠나니 너는 올 수가 없었다. 그해에 나는 徐州節度使의 推官이 되어[佐戎],
너를 데려올 使者를 막 출발시키려 하였으나 내가 또 파면되어 그곳을 떠나 너는 또 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河陽에서〉 東方으로 와서 나를 따른다 해도 東方 또한 客地라서 오래 머물 수가 없으니,
長久한 계책을 도모한다면 서쪽 河陽으로 돌아가서 가정을 안정시키고 너를 오도록 부르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 네가 갑자기 나를 버리고 죽을 줄을 누가 생각이나 하였으랴? 나와 네가 모두 젊으니 비록 잠시 헤어지더라도 종당에는 오래도록 함께 지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너를 떠나 京師로 와서 客地 밥을 먹으면서 적은 봉록을 구했던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될 줄을 알았다면 비록 萬乘의 公卿이 된다 해도 나는 잠시도 너를 버리고 벼슬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에 孟東野(孟郊)가 溧陽으로 가기에 나는 그에게, “내 나이 아직 마흔도 안 되었는데, 눈이 침침하고 머리털이 희끗희끗하고 이가 흔들린다.
생각하면 숙부들과 형님들은 모두 건강하셨는데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셨으니, 나처럼 쇠약한 자가 어찌 오래 살 수 있겠느냐?
나는 갈 수가 없고 너는 오려 하지 않으니,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죽어서 너에게 끝없는 슬픔을 안기게 될까 두렵다.”는 내용의 편지를 네게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누가 생각이나 하였으랴? 젊은 너는 죽고 나이 많은 나는 살았으며, 強壯한 너는 요절하고 病弱한 나는 안전할 줄을.
아! 참으로 죽었단 말이냐? 꿈이란 말이냐? 전하는 말이 진실이 아니란 말이냐? 사실이라면 나의 형님처럼 훌륭한 德行을 지니신 분이 도리어 당신의 嗣子를 夭折시켰다는 말이냐?
너처럼 순박하고 현명한 사람이 先人의 덕택을 입지 못했다는 말이냐? 젊고 強壯한 너는 요절하고, 나이 많고 쇠약한 나는 생존했다는 말이냐?
도대체 믿을 수가 없구나. 이것이 꿈이고 전한 말이 진실이 아니라면 東野의 편지와 耿蘭의 通報가 어째서 내 곁에 있단 말이냐?
아! 이것이 사실인 모양이로구나. 나의 형님처럼 훌륭한 德行을 지니신 분이 도리어 당신의 嗣子를 夭折시킨 것이고, 너처럼 순박하고 현명하여 家業을 이어야 마땅한 사람이 先人의 덕택을 입지 못한 것이로구나.
이것이 이른바 ‘하늘의 뜻이란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고 귀신의 道란 참으로 밝히기 어렵다.’는 것이며, 이른바 ‘사물의 이치란 미루어 생각해 밝힐 수 없고, 壽命이란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그러나 나도 금년 들어서부터 희끗희끗하던 頭髮이 純白으로 변하기도 하고, 흔들리던 齒牙가 빠지기도 하였다.
몸[毛血]은 날로 더욱 쇠약해지고 志氣는 날로 더욱 衰微해지니 오래지 않아 너를 따라 죽지 않겠느냐? 죽은 뒤에 知覺이 있다면 우리가 헤어져 있을 시간이 얼마나 되겠느냐?
죽은 뒤에 지각이 없다면 슬퍼할 시간은 얼마 되지 않고 슬퍼하지 않을 시간은 무궁하리라. 너의 아들은 이제 막 열 살이고, 나의 아들은 이제 막 다섯 살이다.
젊고 강장한 자도 생명을 보존하지 못하였는데, 이처럼 어린아이들에게 어찌 成長해 自立하기를 바랄 수 있겠느냐? 아! 슬프다. 아! 슬프다.
네가 작년에 내게 보낸 편지에 “근자에 腳氣病에 걸렸는데 이따금 심히 아픕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병은 江南 사람들에게 항상 있는 병이다.”라고 하고서 처음에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 끝내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단 말이냐? 아니면 다른 병이 있어서 이에 이르렀단 말이냐?
너의 편지에는 6월 17일로 쓰여 있고, 孟東野는 “네가 죽은 날이 6월 2일이다.”라고 하였고, 耿蘭의 통보에는 월‧일이 적혀 있지 않으니,
아마도 맹동야의 使者는 집안 사람에게 사망한 월‧일을 물어야 함을 몰랐던 듯하고, 耿蘭의 통보는 응당 월‧일을 말해야 함을 모른 듯하다.
맹동야가 나에게 보낸 편지에 “使者에게 〈월‧일을〉 물으니, 사자가 되는 대로 아무 날이나 끌어대어 대답한 듯하다.”라고 하였다. 그러하냐? 그러하지 않으냐?
이제야 나는 建中을 보내어 너에게 제사를 지내고, 아비 잃은 너의 아들과 너의 乳母를 慰問하게 하였다. 저들에게 守孝(부모상을 당하여 복을 입음)하며 喪期를 마칠 때까지 먹을 食糧이 있다면 喪期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데려오겠지만,
만약 守孝하며 喪期를 마칠 수 없다면 즉시 데려오게 하고, 나머지 奴婢들에게 너의 喪을 지키게 하겠다.
나는 너를 改葬할 만한 힘이 있으니 마침내 너를 先人의 墓域에 安葬하겠다. 이렇게 한 뒤에 〈노비들의 去留를〉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겠다.
아! 네가 병이 났어도 나는 네가 언제 병이 났는지조차 몰랐고, 네가 죽었어도 나는 네가 죽은 날짜조차 몰랐다. 살아서는 서로 扶養하며 함께 살지 못하였고, 죽어서는 너를 어루만지며 슬픔을 다하지 못하였다.
入斂할 때에 너의 棺에 기대어 울지 못하였고, 下棺할 때에 墓穴에 친히 가보지도 못하였다. 나의 행위가 神明을 저버려서 너를 요절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위로는 효도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慈愛롭지 못하여, 너와 더불어 서로 扶養하며 생활하지도 못했고, 서로를 守護하며 죽음에 이르지도 못하였다. 하나는 하늘 끝에 있고 하나는 땅 끝에 있게 되었구나.
살아서는 너의 그림자가 내 형체에 의지하지 않더니, 죽어서도 너의 魂이 나의 꿈에 들어와 서로 만나지 못하는구나. 〈이 모두〉 내가 만든 일이니 또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저 푸른 하늘이시여! 〈나의 悲痛함은〉 어찌 끝이 있겠는가. 오늘 이후로 나는 인간 세상에 생각이 없으니,
伊水와 潁水 가에 몇 이랑의 밭을 구해 餘生을 보내면서 내 아들과 네 아들을 교육하여 그 아이들이 쓸모 있는 人材가 되기를 바라고, 내 딸과 네 딸을 길러 그 아이들이 出稼하기를 기다리겠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뿐이다.
아! 말은 끝이 있으나 비통한 심정은 끝이 없으니,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아! 슬프다. 흠향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