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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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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要窺作家爲文이면 必如此立根基
今人乃欲以句字求之하니 何哉리오
六月二十六日 愈白李生足下하노라
生之書로되
能如是 誰不欲告生以리오
抑愈所謂 焉足以知是且非邪
雖然이나 不可不爲生言之로라
抑不知生之志蘄勝於人而 蘄至於古之立言者邪
蘄勝於人而取於人이면勝於人而可取於人矣니라
將蘄至於古之立言者 則無望其速成하고 하며 하라
根之茂者 其實하고 膏之沃者 其光曄하며 其言니라
抑又有難者하니 愈之所爲 不自知其至猶未也니라
雖然이나 學之二十餘年矣
始者不敢觀하고 非聖人之志不敢存하야
如是者亦有年이로되 猶不改然後 識古書之正僞 與雖正而不至焉者 然白黑分矣로라
而務去之코야 乃徐有得也호라
當其取於心而注於手也 然來矣
如是者亦有年然後 니라
吾又懼其雜也하야 하고 平心而察之하야 其皆醇也然後 이로라
雖然이나 不可以不養也ᄅ새 行之乎仁義之途하고 游之乎詩書之源하야 無迷其途하고 無絶其源하야 終吾身而已矣니라
水大而物之浮者大小畢浮니라
氣之與言 猶是也하야 氣盛則言之短長與聲之高下者皆宜니라
雖如是라도 其敢自謂幾於成乎
雖幾於成이라도 이리오
用與舍屬諸人이니라
君子則不然하야 處心有道하고 行己有方하야 用則施諸人하고 舍則傳諸其徒하고 垂諸文而爲後世法이니라
如是者ᄂ댄 其亦足樂乎
其無足樂也
有志乎古者希矣 志乎古 必遺乎今일새니라
吾誠樂而悲之
亟稱其人 所以勸之 니라
問於愈者多矣 念生之言 不志乎利일새 聊相爲言之하노라
唐荊川曰 此文當看
纍纍然如貫珠 其此文之謂乎ᄂ저
篇中云 仁義之人 其言藹如也라하니 卽此中間又隔許多歲月階級이라


12. 이익李翊에게 답한 편지
작가作家작문법作文法을 엿보고자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은 근기根基(基礎)를 세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자구字句를 배열하는 것만으로 좋은 문장이 되기를 바라니, 어찌 될 수 있겠는가?
6월 26에 이생李生 족하足下께 고하오.
그대가 보낸 편지는 문사文辭가 매우 뛰어난데도 묻는 태도가 어쩌면 이리도 겸손하고 공손하단 말이오.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누군들 그대에게 자신의 를 일러주려 하지 않겠소.
도덕의 수양이 머지않아 성취成就[歸]될 것인데, 하물며 도덕을 밖으로 표현하는 문장이야 더 말할 게 있겠소.
그러나 나는 이른바 공자孔子문장門牆만을 바라보고 그 집안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니, 어찌 옳고 그름을 알 수 있겠소.
비록 그러나 그대를 위해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소.
그대가 바로 고어古語에 말한 ‘입언자立言者’이니, 그대의 행위와 그대의 기대가 옛날의 입언자와 매우 유사하고 근접하였소.
그러나 나는 그대의 뜻이 남보다 뛰어나서 남들의 인정을 받기를 바라는 데 있는지, 혹은 옛날 입언자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는 데 있는지 모르겠소.
남보다 뛰어나서 남의 인정을 받기를 바라는 데 있다면 그대는 이미 남보다 뛰어나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소.
혹은 옛날 입언자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는 데 있다면 빨리 성공하기를 바라지도 말고, 권세權勢(벼슬)나 이록利祿(祿俸)에 유혹誘惑당하지도 말며, 뿌리를 배양培養하여 결실結實을 기다리고 등잔에 기름을 부어 빛이 밝아지기를 기다리시오.
뿌리가 무성한 나무는 그 열매가 풍성하고 기름을 부은 등잔은 빛이 밝아지듯이, 인의仁義가 있는 사람은 그 언론言論이 따뜻하고 부드럽다오.
그러나 더욱 어려운 것이 있으니, 내가 지은 글이 입언자立言者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아직 이르지 못하였는지를 나 자신이 모른다는 점이오.
비록 그렇다 해도 내가 문장을 학습學習한 지가 이미 20여 년이 되었소.
처음에는 삼대三代양한兩漢의 글이 아니면 감히 보지 않고, 성인의 뜻이 아니면 감히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소.
집에 있을 때는 다른 일은 모두 잊은 것 같았고 길을 갈 때는 다른 생각은 모두 잊은 것 같았으며, 엄숙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멍청하게 미로를 헤매는 것 같기도 하였소.
마음속의 생각을 끄집어내어 손으로 글을 쓸 때는 오직 진부陳腐한 말을 제거하기만을 힘썼으니 참으로 어려웠고, 이 글을 남에게 보여줄 때는 남의 비난과 비웃음을 비난과 비웃음으로 알지 않았소.
몇 해를 이렇게 하면서 여전히 나의 생각을 바꾸지 않은 뒤에 비로소 고서古書 중에 순정純正한 것과 순정하지 못한 것, 비록 순정하지만 지극하지 못한 것이 흑백黑白처럼 분명하게 판별되었소.
순정하지 못한 것과 순정하지만 지극하지 못한 것들을 힘써 제거하고서야 서서히 터득되는 것이 있었소.
마음속의 생각을 끄집어내어 손으로 글을 쓸 때 마치 물 흐르듯이 글이 내려갔소.
그러나 남들에게 보여줄 때에 남들이 비웃으면 나는 기뻐하고 남들이 칭찬하면 나는 근심하였으니, 이는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문時文색채色彩가〉 남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오.
또 이렇게 몇 년을 계속한 뒤에 비로소 문장의 기세가 큰물처럼 세차게 흘러나왔소.
나는 또 문장이 난잡하게 될까 두려워, 잘못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평정한 마음으로 살펴서 모두 순정한 뒤에야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갔소.
비록 그렇다 해도 도덕과 학문을 함양涵養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인의仁義의 길을 걷고 시서詩書의 근원에서 헤엄치면서 이 목숨이 다하도록 그 길을 헤매지 않고 그 원류源流가 끊이지 않게 할 뿐이오.
는 물과 같고 (文章)은 물 위에 떠 있는 부물浮物과 같으니, 물이 크면 크고 작은 부물이 모두 뜬다오.
의 관계도 이와 같아, 가 성대하면 (語句)의 장단長短성운聲韻고하高下가 모두 알맞게 된다오.
비록 이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어찌 감히 스스로 완성의 단계에 근접하였다고 할 수 있겠소.
비록 완성의 단계에 근접했다 하더라도 이 문장이 사람을 등용하는 자에게 어찌 인정을 받을 수 있겠소.
비록 그러나 남에게 쓰이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찌 쓰이기를 기다리는 용기用器와 같지 않겠소.
쓰고 버리는 것이 사람의 손에 달렸으니 말이오.
군자는 그렇지 않아서, 용심用心도의道義가 있고 처신處身준칙準則[方]이 있어서, 쓰임을 받으면 를 사람들에게 베풀고, 버림을 받으면 문도門徒에게 전하고, 문장文章으로 전하여 후세에 이 되게 한다오.
이와 같다면 즐거워할 만하겠소.
즐거워할 만하지 않겠소.
고문古文에 뜻을 둔 자가 드무니, 이는 고문에 뜻을 두면 반드시 지금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기 때문이오.
〈나는 고문에 뜻을 둔 사람을 만나면〉 참으로 기뻐하면서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슬퍼하였소.
그런데도 자주 그런 사람을 칭찬한 것은 그 사람을 권면하기 위한 것이었지, 감히 칭찬할 만하면 칭찬하고 비난할 만하면 비난한 것이 아니었소.
내게 묻는 자가 많았으나, 〈대답해준 경우가 없었는데,〉 그대의 말은 공리功利에 뜻을 두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되므로, 애오라지(부족하나마) 그대를 위해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오.
당형천唐荊川(唐順之)이 말하기를 “이 문장은 억양抑揚하여 전환轉換한 곳을 보아야 한다.
‘꿰미에 구슬을 꿰어놓은 것 같다.’는 말은 아마도 이 문장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라고 하였다.
또 “이 중에 ‘인의仁義의 덕행이 있는 사람은 그 말이 따뜻하고 부드럽다.’라고 하였는데, 그 중간에 또 많은 세월의 계급階級(段階)을 거른 것이다.
단지 창려昌黎는 문장으로 도를 표현하였을 뿐이므로 그림자와 메아리처럼 모호하게 말하였으니, 이는 마음속 공부의 실제를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答李翊書答李翊書 : 李翊은 韓愈의 추천으로 진사과에 합격한 韓門弟子의 한 사람이다. 貞元 18년(802)에 한유가 副考官 陸傪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익 등 열 사람을 추천한 일이 있는데, 그해 科擧에 이익이 進士科에 급제하였다. 본서 권3에 실린 〈與祠部陸員外書〉에 자세히 보인다. 이 편지는 이익이 진사과에 급제하기 1년 전인 정원 17년에 보낸 것이다.
역주2 辭甚高 : 李翊의 文辭가 남보다 뛰어나다는 말이다.
역주3 其問何下而恭也 : 李翊이 묻는 태도가 겸손하고 공손하다는 말이다. 下는 자신을 낮춤이니, 곧 謙遜의 뜻이다.
역주4 其道 : 立言의 방법이다.
역주5 道德之歸也有日 : 歸에는 終着의 뜻이 있으므로 成就로 번역하였다.
역주6 其外之文 : 도덕을 밖으로 표현하는 문장이란 말이다. 韓愈는 문장을 도덕 표현의 수단으로 여겼다.
역주7 望孔子之門墻而不入於其宮者 : 이 말은 《論語》 〈子張〉의 “담에 비유하면 내 집의 담은 어깨 높이여서 房舍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으나, 夫子의 담은 높이가 몇 길이어서 그 대문을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아름다운 종묘와 다양한 房舍를 볼 수가 없다.[譬之宮牆 賜之牆也及肩 窺見室家之好 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라고 한 子貢의 말에 근거한 것이다. 韓愈는 이 말을 인용하여 자기는 立言의 방법에 대해 그 언저리에 이르렀을 뿐, 깊은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고 비유한 것이다.
역주8 立言 : 글을 지어 학설이나 사상의 체계를 세움이다. 《春秋左氏傳》 襄公 24년에 “최상은 德行을 樹立함이고, 그 다음은 功業을 수립함이고, 그 다음은 글을 지어 학술과 사상의 체계를 세움이다.[太上立德 其次立功 其次立言]”란 말이 보인다.
역주9 生所爲者與所期者甚似而幾矣 : 李翊의 행위와 기대가 옛날의 立言者와 매우 유사하다는 말이다.
역주10 取於人 : 남들에게 인정을 받음이다.
역주11 : ‘或(혹은)’의 訓으로 쓰였다.
역주12 : ‘已(이미)’의 訓으로 쓰였다.
역주13 無誘於勢利 : 勢利는 權勢와 俸祿을 이른다. 당시에는 과거에서 時文인 騈儷文으로 사람을 뽑았다. 古文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면 時文을 익혀 과거에 올라 俸祿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역주14 養其根而竢其實 加其膏而希其光 : 韓愈는 이곳에서 道를 뿌리와 기름에 비유하고, 文을 열매와 빛에 비유하여, 道와 文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역주15 : 生長인데, 여기서는 豊盛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16 仁義之人 : 德行이 있고, 言行이 道德의 準則에 부합하는 사람이다.
역주17 藹如 : 따뜻하고 부드러움이다.
역주18 三代兩漢之書 : 三代는 夏‧商‧周이다. 三代의 글은 《尙書》‧《詩經》‧《春秋》 등을 이른다. 兩漢은 西漢과 東漢이다. 兩漢의 글은 司馬遷‧揚雄‧司馬相如 등의 글을 이른다.
역주19 處若忘 行若遺 : 道와 文을 배울 때에 일체의 잡념을 잊어버리고 오직 도와 문을 배우는 일에만 전심한 것을 말한다.
역주20 儼乎其若思 茫乎其若迷 : 目標에 도달하지 못하였을 때에 생각하던 모습과 昏迷했던 모습을 말한 것이다.
역주21 當其取於心而注於手也 惟陳言之務去 : 마음속의 생각을 끄집어내어 문장을 쓸 때에 진부한 말을 제거하는 데 노력하였다는 말이다.
역주22 戛戛 : 어려운 모양이다.
역주23 其觀於人 : 남에게 보여주고서 評價를 구함이다.
역주24 不知其非笑之爲非笑也 : 그 사람의 비난과 비웃음을 비난과 비웃음으로 알지 않았다는 말로, 남의 비난과 비웃음에 전혀 介意치 않았다는 뜻이다.
역주25 昭昭 : 분명한 모양이다.
역주26 汨汨 : 물이 흐르는 모양인데, 문장이 거침없이 술술 나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27 笑之則以爲喜 譽之則以爲憂 : 당시 사람들은 古文을 싫어하고 時文인 騈儷文을 좋아하였다. 韓愈는 자기의 글을 남에게 보이고서 評價를 구할 때 남들이 보고서 비웃으면 자신의 글이 순정한 고문에 근접하였다고 여겨 기뻐하고, 남들이 칭찬하면 자신의 글에 아직 時文의 色彩가 남아 있다고 여겨 근심하였다는 말이다.
역주28 以其猶有人之說(열)者存也 : 남들이 칭찬하면 근심한 것은 자기의 글에 아직 남들이 좋아하는 時文의 色彩가 남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란 말이다. ‘說’은 ‘悅’의 訓으로 쓰였다.
역주29 浩乎其沛然 : 浩乎는 물이 광대한 모양이고, 沛然은 물이 세차게 흐르는 모양이다. 문장의 기세가 雄大함을 형용한 말이다.
역주30 迎而距 : 적이 쳐들어오는 곳으로 가서 방어함인데, 여기서는 잘못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다는 뜻으로 쓰인 듯하다. 距는 ‘拒’와 通用이다.
역주31 肆焉 : 放縱(거리낌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함)이니, 생각나는 대로 문장을 썼다는 뜻이다.
역주32 氣水也 言浮物也 : 韓愈는 물과 浮物을 들어 다시 道와 文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中國文學에 있어 氣의 개념은 매우 복잡하다. 한유는 도덕의 수양이 풍부하여 어떤 사물이라도 자유로이 처리할 수 있는 힘을 ‘氣’로 본 것이다. 물이 풍부하면 모든 물건을 띄우듯이 도덕의 수양이 풍부하면 모든 사물을 자유로이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역주33 其用於人也奚取焉 : 당시 士大夫들은 古文을 싫어하였으니, 古文體로 지은 문장이 어찌 사대부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말인 듯하다. ‘其用於人也’는 ‘其於用人〈者〉也(사람을 등용하는 〈자에게〉)’의 倒置文인 듯하다. 取는 取重으로 남에게 重視됨이니, 곧 인정을 받음이다.
역주34 待用於人者 其肖於器邪 : 남에게 쓰이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찌 쓰이기를 기다리는 用器와 같지 않은가? 용기의 取捨는 오직 사람의 손에 달렸다는 말이다. 其는 ‘豈非’로 쓰였고, 肖는 같음이다.
역주35 非敢褒其可褒而貶其可貶也 : 나는 감히 잘난 체하여 함부로 남을 褒貶(칭찬과 비난)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謙讓한 말이다.
역주36 抑揚轉換 : 문장의 기세를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면서 話題를 바꿈이다.
역주37 仁義之人……非心中工夫實景所道故也 :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仁義의 덕행이 있는 사람이 되려면 많은 세월 동안 여러 단계의 공부와 수양을 거쳐야 하는데, 지금 韓愈가 많은 세월 동안 거쳐야 하는 공부의 단계를 생략하고 말하지 않은 것은, 한유는 단지 문장으로 도를 표현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림자와 메아리처럼 모호하게 말하고, 마음속에 있는 공부의 실제를 말한 것이 아니라는 말인 듯하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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