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齊宣王이 問曰 人皆謂我毁明堂이라니 毁諸아(잇가) 已乎아(잇가)
集註
趙氏曰 明堂은 泰山明堂이니 周天子東巡守朝諸侯之處라하니 漢時遺址尙在니라 人欲毁之者는 蓋以天子不復巡守고 諸侯又不當居之也라 王問 當毁之乎아 且止乎아
孟子ㅣ 對曰 夫明堂者 王者之堂也ㅣ니 王欲行王政(이어시든) 則勿毁之矣쇼셔
集註
明堂은 王者所居以出政令之所也라 能行王政이면 則亦可以王矣니 何必毁哉리오
王曰 王政을 可得聞與잇가 對曰 昔者文王之治岐也애 耕者[를] 九一며 仕者[를] 世祿며 關市[를] 譏而不征며 澤梁[을] 無禁며 罪人[을] 不孥더시니(ㅣ러시니) 老而無妻曰鰥이오 老而無夫曰寡ㅣ오 老而無子曰獨이오 幼而無父曰孤ㅣ니 此四者 天下之窮民而無告者ㅣ어늘(ㅣ라) 文王이 發政施仁샤 必先斯四者시니(ㅣ러시니) 詩云 哿矣富人이어니와 哀此煢獨이라니이다
集註
岐는 周之舊國也라 九一者는 井田之制也라 方一里爲一井이니 其田九百畝라 中畫井字여 界爲九區여 一區之中에 爲田百畝여 中百畝는 爲公田고 外八百畝는 爲私田여 八家各受私田百畝고 而同養公田니 是九分而稅其一也라 世祿者는 先王之世에 仕者之子孫을 皆敎之여 敎之而成材면 則官之고 如不足用이어든 亦使之不失其祿니 蓋其先世嘗有功德於民이라 故로 報之如此니 忠厚之至也라 關은 謂道路之關이요 市는 謂都邑之市라 譏는 察也요 征은 稅也니 關市之吏가 察異服異言之人고 而不征商賈之稅也라 澤은 謂瀦水요 梁은 謂魚梁이니 與民同利여 不設禁也라 孥는 妻子也니 惡惡이 止其身이요 不及妻子也라 先王養民之政은 導其妻子여 使之養其老而恤其幼나니 不幸而有鰥寡孤獨之人여 無父母妻子之養이면 則尤宜憐恤이라 故로 必以爲先也라 詩는 小雅正月之篇이라 哿는 可也라 煢은 困悴貌라
王曰 善哉[라] 言乎ㅣ여 曰 王如善之(댄) 則何爲不行이니잇고(이시니잇고) 王曰 寡人이(은) 有疾호니 寡人(이) 好貨노이다 對曰 昔者[애] 公劉ㅣ 好貨하더시니 詩云 乃積乃倉이어늘(이어) 乃裹餱糧을(호) 于橐于囊이오사(이오) 思戢用光야(샤) 弓矢斯張며 干戈戚揚으로 爰方啓行이라니 故[로] 居者ㅣ 有積倉며 行者ㅣ 有裹糧也(ㅣ라사) 然後[에] 可以爰方啓行이니 王如好貨ㅣ어시든 與百姓同之시면 於王[애] 何有ㅣ리잇고
集註
王自以爲好貨라 故로 取民無制여 而不能行此王政이라하니라 公劉는 后稷之曾孫也라 詩는 大雅公劉之篇이라 積은 露積也요 餱는 乾糧也라 無底曰 橐이요 有底曰 囊이니 皆所以盛餱糧也라 戢은 安集也니 言思安集其民人여 以光大其國家也라 戚은 斧也요 揚은 鉞也라 爰은 於也라 啓行은 言往遷于豳也라 何有는 言不難也라 孟子言 公劉之民이 富足如此니 是는 公劉好貨而能推己之心여 以及民也라 今王이 好貨어시든 亦能如此면 則其於王天下也에 何難之有리오하시니라
王曰 寡人이(은) 有疾호니 寡人(이) 好色노이다 對曰 昔者[애] 大王이 好色샤 愛厥妃더시니(러시니) 詩云 古公亶父ㅣ 來朝走馬샤 率西水滸야(샤) 至于岐下야(샤) 爰及姜女로 聿來胥宇ㅣ라니 當是時也야 內無怨女며 外無曠夫니(더니) 王如好色이어시든 與百姓同之시면 於王[애] 何有ㅣ리잇고
集註
王又言此者는 好色이면 則心志蠱惑고 用度奢侈여 而不能行王政也라 大王은 公劉九世孫이라 詩는 大雅緜之篇也라 古公은 大王之本號니 後乃追尊爲大王也라 亶父는 大王名也라 來朝走馬는 避狄人之難也라 率은 循也라 滸는 水厓也라 岐下는 岐山之下也라 姜女는 大王之妃也라 胥는 相也요 宇는 居也라 曠은 空也니 無怨曠者는 是大王好色而能推己之心여 以及民也라 ○ 楊氏曰 孟子與人君言에 皆所以擴充其善心여 而格其非心이요 不止就事論事시니 若使爲人臣者 論事를 每如此면 豈不能堯舜其君乎아 愚謂 此篇은 自首章至此히 大意皆同니 蓋鍾鼓, 苑囿, 遊觀之樂과 與夫好勇, 好貨, 好色之心은 皆天理之所有요 而人情之所不能無者라 然이나 天理人欲이 同行異情니 循理而公於天下者는 聖賢之所以盡其性也요 縱欲而私於一己者는 衆人之所以滅其天也라 二者之間이 不能以髮이로되 而其是非得失之歸는 相去遠矣라 故로 孟子因時君之問사 而剖析於幾微之際시니 皆所以遏人欲而存天理라 其法似疏而實密고 其事似易而實難니 學者以身體之면 則有以識其非曲學阿世之言이요 而知所以克己復禮之端矣리라
5. 제나라 선왕이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더러 천자가 제후들에게 조회받는 명당(明堂)을 부수라 하니, 부수어야 합니까? 부수지 말아야 합니까?”
[James Legge] The king Hsüan of Ch'î said, 'People all tell me to pull down and remove the Hall of Distinction. Shall I pull it down, or stop the movement for that object?'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명당이란 천자의 집이니, 왕께서 왕도정치를 행하고자 하신다면 부수지 마십시오.”
[James Legge] Mencius replied, 'The Hall of Distinction is a Hall appropriate to the sovereigns. If your Majesty wishes to practise the true royal government, then do not pull it down.'
“왕도정치에 대하여 들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문왕(文王)께서 기주(岐周)를 다스리실 때에 경작하는 자들에게는 9분의 1의 세금을 받으셨으며, 벼슬하는 자들에게는 대대로 녹(祿)을 주셨으며, 관문(關門)과 시장(市場)을 순찰하기만 하시고 세금을 징수하지 않으셨으며, 못에서 고기 잡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으며, 죄인을 처벌하시되 처자식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늙고 아내가 없는 것을 ‘홀아비[鰥]’라 하고, 늙고 남편이 없는 것을 ‘과부[寡]’라 하고, 늙고 자식이 없는 것을 ‘무의탁자[獨]’라 하고, 어리고 부모가 없는 것을 ‘고아[孤]’라 하니, 이 네 부류는 세상에서 가장 곤궁한 백성으로서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들입니다. 문왕은 선정(善政)을 펴고 인정(仁政)을 베푸시되,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 가장 먼저 배려하셨습니다. 《시경》 〈정월(正月)〉에 이르기를 ‘부자(富者)들은 괜찮지만 이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이 가엾다.’ 하였습니다.”
[언해] 王이 샤 王政을 可가히 시러곰 들으리잇가 對야 샤 녜 文문王이 岐기를 治티심애 耕者쟈를 九구애 一일을 며 仕者쟈를 世셰로 祿록며 關관과 市시를 譏긔고 征티 아니며 澤과 梁량을 禁금홈이 업며 罪죄人을 孥노티 아니더시니 老로고 妻쳐 업슨 이 온 鰥환이오 老로고 夫부 업슨 이 온 寡과ㅣ오 老로고 子 업슨 이 온 獨독이오 幼유고 父부 업슨 이 온 孤고ㅣ니 이 四者쟈 天텬下하의 窮궁民민이오 告고 업 者쟈ㅣ어늘 文문王이 政을 發발며 仁을 施시샤 반시 이 四者쟈애 몬져 시니 詩시예 닐오 哿가 이 富부人이어니와 이 煢獨독이 哀홉다 니이다
[James Legge] The king said, 'May I hear from you what the true royal government is?' 'Formerly,' was the reply, 'king Wan's government of Ch'î was as follows:-- The husbandmen cultivated for the government one-ninth of the land; the descendants of officers were salaried; at the passes and in the markets, strangers were inspected, but goods were not taxed: there were no prohibitions respecting the ponds and weirs; the wives and children of criminals were not involved in their guilt. There were the old and wifeless, or widowers; the old and husbandless, or widows; the old and childless, or solitaries ; the young and fatherless, or orphans:-- these four classes are the most destitute of the people, and have none to whom they can tell their wants, and king Wan, in the institution of his government with its benevolent action, made them the first objects of his regard, as it is said in the Book of Poetry,
"The rich may get through life well;
But alas! for the miserable and solitary!"'
“선생의 말씀이 매우 좋습니다.” “왕께서 만일 좋게 여기신다면 어찌하여 행하시지 않습니까?” “과인은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재물(財物)을 좋아합니다.” “옛적에 후직(后稷)의 증손(曾孫)인 공유(公劉)가 재물을 좋아하였는데, 《시경》 〈공유(公劉)〉에 이르기를 ‘집에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해서는 양식을 노적가리에 쌓고 창고에 쌓으며, 길을 떠나는 자들을 위해서는 마른 양식을 싸되 전대에다 넣고 자루에다 넣고서 백성을 편안히 하여 이로써 나라를 빛낼 것을 생각하여, 활과 화살을 준비하며 창과 방패와 도끼를 갖추고서 이에 새 도읍을 개척하러 비로소 길을 떠났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집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노적가리와 창고에 쌓아놓은 양식이 있으며, 길을 떠나는 자들에게는 전대와 자루에 싼 양식이 있은 뒤에야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왕께서 만일 재물을 좋아하시면 백성과 함께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왕도정치를 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James Legge] The king said, 'O excellent words!' Mencius said, 'Since your Majesty deems them excellent, why do you not practise them?' 'I have an infirmity,' said the king; 'I am fond of wealth.' The reply was, 'Formerly, Kung-lîu was fond of wealth. It is said in the Book of Poetry,
"He reared his ricks, and filled his granaries,
He tied up dried provisions and grain,
In bottomless bags, and sacks,
That he might gather his people together, and glorify his State.
With bows and arrows all-displayed,
With shields, and spears, and battle-axes, large and small,
He commenced his march."
In this way those who remained in their old seat had their ricks and granaries, and those who marched had their bags of provisions. It was not till after this that he thought he could begin his march. If your Majesty loves wealth, give the people power to gratify the same feeling, and what difficulty will there be in your attaining the royal sway?'
“과인은 병통이 있으니, 여색(女色)을 좋아합니다.” “옛적에 공유의 9세손인 태왕(太王)께서 여색을 좋아하시어 왕비를 사랑하셨습니다. 《시경》 〈면(綿)〉에 이르기를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아침에 말을 달려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岐山) 아래에 이르러서 이에 부인인 강녀(姜女)와 함께 와서 집터를 보았다.’ 하였는데, 이때를 당하여 안으로는 원망하는 여자가 없었으며 밖으로는 홀아비가 없었습니다. 왕께서 만일 여색을 좋아하시면 백성과 함께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왕도정치를 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고공(古公)은 태왕(太王)의 본래 칭호인데 주(周)나라가 건립된 뒤에 태왕으로 추존되었으며, 단보(亶父)는 태왕의 이름이다.
[James Legge] The king said, 'I have an infirmity; I am fond of beauty.' The reply was, 'Formerly, king T'âi was fond of beauty, and loved his wife. It is said in the Book of Poetry,
"Kû-kung T'an-fû
Came in the morning, galloping his horse,
By the banks of the western waters,
As far as the foot of Ch'î hill,
Along with the lady of Chiang;
They came and together chose the site for their settlement."
At that time, in the seclusion of the house, there were no dissatisfied women, and abroad, there were no unmarried men. If your Majesty loves beauty, let the people be able to gratify the same feeling, and what difficulty will there be in your attaining the royal sway?'
1
5. 제선왕이 문왈 …
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