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定分別之中
에 猶以調停爲說
하니 此所以元祐之政
이 失之弱
하여 而
之黨
이 復起矣
니라
臣竊觀 元祐以來
로 朝廷改更
하고 屛逐
하여 上有忠厚之政
하고 下無
之怨
하니 天下雖未大治
나 而經今五年
에 中外帖然
하여 莫以爲非者
니이다
惟姦邪失職居外하여 日夜窺伺便利하고 規求復進하여 不免百端游說로 動搖貴近하니 臣愚竊深憂之니이다
若陛下不察其實하시고 大臣惑其邪說하여 遂使忠邪雜進於朝하여 以示廣大無所不容之意면 則氷炭同處하여 必至交爭하고 薰蕕共器하여 久當遺臭하리니 朝廷之患이 自此始矣리이다
但當置之於外하여 每加安存하고 使無失其所하며 不至憤恨無聊하여 謀害君子면 則泰卦之本意也니이다
及溫死
에 謝安代之爲政
하여 以三桓分涖三州
하니 彼此無怨
하여 遂安
이니이다
然이나 臣竊謂謝安之於桓氏에 亦用之於外而已요 未嘗引之於內하여 與之共政也니이다
向使安
桓氏而寘諸朝
하여 人懷異心
하여 各欲自行其志
면 則謝安將不能保其身
이온 而況安朝廷乎
잇가
旣小人內有所主
라 故
로 蔡確邢恕之流
가 敢出
하여 以欺愚惑衆
이니이다
盧秉何正臣
은 皆身爲待制
로되 而
薦子
하니 止得選人
이니이다
蒲宗孟曾布所犯은 明有典法이나 而降官褫職하되 唯恐不甚이니이다
明立
하여 以示異同
은 爲朝廷斂怨
이니 此二者
는 皆過矣
니이다
寵祿恩賜를 常使彼此如一하여 無迹可指니 此朝廷之至計也니이다
하여 指爲邪黨
하고 以謂小人必由此彙進
이라하나이다
臣嘗論溫伯之爲人
은 요 無他大惡
이나 但性本柔弱
하여 委曲從人
이니이다
方王珪蔡確用事
엔 則
하고 及司馬光呂公著當國
에도 亦
其間
이니이다
若以其
하여 이요 遇流便轉
하여 不可保
면 誠信不爲過也
나 若謂其懷挾姦詐
하여 能首爲亂階
면 則甚矣
니이다
蓋臺諫之言溫伯則過요 至爲朝廷遠慮는 則未爲過也니이다
故
로 臣願陛下
는 謹守
하여 久而彌堅
하시고 愼用左右之近臣
하여 無雜邪正
하소서
至於在外臣子
하여는 以恩意待之
하여 使嫌隙無自而生
하고 愛戴以忘其死
면 則
無爲
하고 安意爲善
하여 愈久而愈無患矣
리이다
伏乞宣諭大臣하여 共敦斯義하고 勿謂不預改更之政하여 輒懷異同之心하소서
01. 사邪와 정正을 분별할 것을 청한 차자箚子
문정文定이 분별하는 문장 중에서 오히려 ‘조정調停’이란 것으로 말을 하였으니, 이것은 원우元祐의 정치가 나약한 데서 실패하여 채확蔡確과 형서邢恕의 당黨이 다시 일어났기 때문이다.
소신이 가만히 보옵건대, 원우元祐 이래로 조정에서 해로운 일을 개혁하고 여러 간신奸臣을 축출하여 위에는 충후忠厚한 정사를 행하기 위한 노력이 있고, 아래에는 취렴聚斂에 시달리는 원망이 없으니, 천하가 비록 크게 다스려지지는 못했지만, 5년이 지난 오늘날에 중앙과 지방이 안정되어 그릇되게 여기는 자가 없습니다.
오직 간사한 무리만이 실직하고 조정에서 쫓겨나 밖에 있으면서 밤낮으로 편리한 틈을 엿보고 다시 조정에 진출하기를 구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한 유세遊說로 현귀顯貴한 근신近臣이 생각을 바꾸도록 노력하고 있으니, 어리석은 소신은 몰래 깊이 걱정하는 바입니다.
만일 폐하陛下께서는 그 실상을 살피지 않으시고, 대신大臣은 그 사설邪說에 의혹되어 드디어 충忠과 사邪가 뒤섞여서 진출하게 함으로써, 제덕帝德이 광대廣大하여 포용하지 못할 바가 없다는 뜻을 보이신다면 얼음과 숯이 한 곳에 있어서 반드시 서로 다투게 될 것이고, 향내 나는 풀과 냄새나는 풀이 한 그릇에 담겨 있어서 오래되면 응당 썩은 냄새를 풍길 것이니, 조정의 걱정이 이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옛날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을 때에, 양陽이 안에 있고 음陰이 밖에 있으며 군자君子가 안에 있고 소인小人이 밖에 있으면 이를 ‘태泰’라 이르고, 음陰이 안에 있고 양陽이 밖에 있으며 소인小人이 안에 있고 군자君子가 밖에 있으면 이를 ‘비否’라 일렀습니다.
대개 소인을 조정에 있지 못하게 한 것은 예전부터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다만 밖에 두어서 매번 안무安撫하고 존휼存恤함을 가하고, 그들로 하여금 안정된 처소를 잃지 않게 하며 무료無聊함을 분한憤恨하여 군자君子를 모해謀害하는 데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 곧 태괘泰卦의 본뜻입니다.
옛날 동진東晉에서 일어난 환온桓溫의 난亂 때 제환諸桓의 친당親黨이 중앙과 지방에 그들먹하게 포진해 있었습니다.
환온桓溫이 죽자 사안謝安이 그를 대신해서 정치를 하여 세 환씨로 하여금 3주州를 지키게 하니, 피차 원망이 없어서 강좌江左가 드디어 안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사晉史에 “사안謝安은 원대한 계략으로 무사하게 만든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라고 칭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신은 가만히 생각하건대, 사안謝安이 환씨桓氏들에 대하여 또한 밖에다 썼을 뿐이고, 일찍이 안에 끌어들여서 그들과 함께 정치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사 사안謝安이 환씨桓氏들을 끌어들여 조정에 두어서, 사람들이 딴 마음을 품어 각자 그 뜻을 행하려고 했다면 사안謝安이 장차 그 몸을 보전할 수 없었을 것이거늘, 하물며 조정을 안정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지난번에 한두 대신大臣이 소인小人들을 포용하여 양육하는 일에만 오로지 힘을 써서 스스로 편안히 지낼 계책을 하였습니다.
일단 소인들은 〈조정朝廷〉 안에 자기를 지지하는 대신大臣을 확보해두었으므로, 채확蔡確과 형서邢恕 같은 무리들이 감히 망언妄言을 퍼뜨려서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고 대중을 의혹시켰습니다.
채확蔡確과 형서邢恕가 이미 죄를 받자, 담당관리가 이전의 과실을 징계하니, 밖에 있는 신료臣僚들은 으레 꺾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노병盧秉과 하정신何正臣은 대제待制 벼슬을 하였건만, 명당明堂에서 그들의 아들을 천거하니, 겨우 관리후보 자격 정도만 안겨주었을 뿐입니다.
포종맹蒲宗孟과 증포曾布가 범한 죄에 대해서는 분명 그에 해당하는 전장법규典章法規가 있을 것인데도 관직을 박탈하되 행여 더 심하게 못할까 염려하였습니다.
밝게 흔적痕迹을 내세워서 이동異同을 보이는 것은 조정이 원망을 쌓는 일이니, 이 두 가지는 모두 정도에 지나친 처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소신은 ‘소인에게는 결단코 복심腹心 역할을 하는 중요한 관직은 맡길 수 없지만,
사방 주군州郡의 장관長官이 되는 것과 여러 가지 일에 분주하게 봉사하는 관리 정도는 각각 그들의 장점에 따르고 한쪽으로 치우치게 폐기하는 바가 없어야 할 것이며,
은총恩寵‧작록爵祿‧상사賞賜 등을 항상 피차 동일하게 하여 지적할 만한 흔적이 없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오니, 이것이 바로 조정의 가장 좋은 계책입니다.
근자에 조정朝廷에서 등온백鄧溫伯을 등용하여 한림승지翰林承旨로 삼으니, 대간臺諫이 어지럽게 진언하여 사당邪黨으로 지목하고 “소인이 반드시 이로 말미암아 무리 지어 진출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소신이 일찍이 논했거니와 등온백의 사람됨은 문예文藝가 약간 있고 다른 큰 나쁜 점은 없지만, 다만 천성天性이 본래 유약柔弱하여 고분고분 남을 따를 뿐입니다.
왕규王珪와 채확蔡確이 용사用事할 때에는 그들의 뜻을 잘 따랐고, 사마광司馬光과 여공저呂公著가 국정國政을 담당했을 때에도 그 사이에서 아첨을 잘하였습니다.
만일 그가 좌우로 붙어서 손익損益하는 바가 없고, 물결을 따라 부침浮沈하므로 위급한 일이나 변고가 발생했을 때에 보전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진실로 그 말이 지나친 말이 아님을 믿겠습니다만, 만일 그가 간사한 마음을 품고 앞장서서 난계亂階를 만드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그 말은 너무 심한 말입니다.
대개 대간臺諫이 등온백鄧溫伯에 대해 말하는 측면에서는 지나치고, 조정을 위해 멀리 염려하는 측면에서는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소신은 원하옵건대, 폐하陛下께서는 원우元祐의 초정初政을 삼가 지키어 오래갈수록 더욱 견고해지게 하시고, 좌우의 근신近臣을 신중히 쓰셔서 간사한 사람과 정직한 사람이 뒤섞이지 않게 하소서.
밖에 있는 신자臣子에 대해서는 은혜로 대우하여 혐극嫌隙이 생기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떠받드는 일에 사명을 다하게 하신다면, 의상을 드리우고 손을 맞잡은 채 작위作爲하는 일이 없고, 편안한 마음과 좋은 생각을 가지고 오래 지속하면 더욱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소신은 진정을 견디지 못하여 공론을 널리 수집해서 좌우의 시중드는 사람에게 올리나이다.
삼가 비옵건대 대신大臣에게 선유宣諭하여 이와 같은 의리를 함께 다지고, 개경改更하는 정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문득 이동異同의 마음을 품는다고 이르지 마옵소서.
이와 같이 하신 뒤에야 조정이 편안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