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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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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3. 문제文帝에 대한
此等見解 子由晩年還潁上하니 歷世故多 能爲論如此니라
이와 같은 견해見解자유子由만년晩年영상潁上으로 돌아오니 세고世故를 겪은 것이 많았으므로 이와 같은 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老子曰 이라하니라
노자老子》에 이르기를 “유한 것이 억센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하였다.
漢文帝하니 剛彊者 皆하니라
문제文帝가 유한 마음으로 천하를 통치하니, 굳세고 강한 자들이 모두 바람을 따라 쓰러지듯이 감화되었다.
위타尉佗남월南越에서 참람하게 ‘제호帝號’를 칭하자, 문제文帝가 그 부모의 분묘墳墓를 잘 보살펴주고, 그 형제들을 불러서 높은 벼슬을 시키니, 위타尉佗제호帝號를 제거하고 부복俯伏하여 ‘’이라 칭하였다.
이나이나 兵革之禍 比武帝世十一二耳니라
흉노匈奴가 사납고 드세어 중국中國능가陵駕하자, 문제文帝는 몸을 낮추어 서신書信을 보내고 증서繒絮(비단과 솜)를 후하게 주었으니, 비록 그들을 항복시키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병혁兵革무제武帝 세대에 비하여 10분의 1, 2밖에 안 되었다.
吳王濞包藏禍心하고 稱病不朝한대 帝賜之几杖하니 濞無所發怒하고 이니라
오왕吳王 화심禍心을 품고 을 핑계로 조회하러 오지 않자, 문제文帝가 그에게 궤장几杖을 하사하였더니, 는 화를 내지 않았고, 따라서 이 일어나지 않았다.
가사 문제文帝가 아직 살아 있고 10년을 넘기지 않아 또한 이미 늙어 죽었더라면 동남東南은 말미암아 일어날 길이 없었을 것이다.
경제景帝에 이르러 능히 인내忍耐하지 못하고 조조鼂錯의 계책을 써서 제후諸侯의 땅을 삭탈削奪하니, 가 7을 불러서 서쪽으로 향하여 관중關中에 들어갔다.
漢遣三十六將軍하고 竭天下之力하여 僅乃破之니라
나라가 36명의 장군將軍을 파견하고 천하天下의 힘을 다 기울여서 겨우 격파하였다.
錯言諸侯彊大하니 削之亦反이요 不削亦反이나 削之則反疾而禍小하고 不削則反遲而禍大라하니 世皆以其言爲信이나 吾以爲不然이니라
조조鼂錯가 말하기를 “제후諸侯강대强大하니 삭탈削奪해도 배반하고, 삭탈削奪하지 않아도 배반할 것이지만, 삭탈削奪하면 배반은 빨라지는 대신 는 작을 것이고, 삭탈削奪하지 않으면 배반은 더딘 대신 는 클 것이다.”라고 하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말을 믿을 만한 말이라고 하였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誠如文帝 忍而不削이면 濞必未反이니라
참으로 문제文帝처럼 꾹 참고 삭탈削奪하지 않았더라면 는 반드시 배반하지 못했을 것이다.
遷延數歲之後 變故不一이니 徐因其變而爲之備 所以制之者 固多術矣니라
몇 해를 미루어온 뒤에 변고變故가 일어남이 하나뿐이 아니었으니, 서서히 그 변고를 인하여 준비를 하였더라면 제어할 방책은 얼마든지 많았을 것이다.
猛虎在山하여 日食牛羊하면 人不能堪하여 荷戈而往刺之니라
맹호猛虎가 산에 있어 날마다 우양牛羊을 잡아먹으면 사람들은 견딜 수 없어서 창을 메고 가서 찌를 것이다.
幸則虎斃하고 不幸則人死하니 其爲害亟矣니라
다행히 〈성사할 경우는〉 범이 죽을 것이고, 불행히 〈성사하지 못할 경우는〉 사람이 죽을 것이니, 그 는 빨리 결판이 날 것이다.
鼂錯之計 何以異此리오
조조鼂錯의 계책이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若能高其垣牆하고 深其陷穽하여 時伺而謹防之 虎安能必爲害리오
만일 원장垣牆을 높이 쌓고 함정陷穽을 깊이 파서 수시로 망을 보아 조심스레 방어한다면 범이 어떻게 반드시 해가 될 수 있겠는가?
此則文帝之所以備吳也니라
이것은 바로 문제文帝나라를 방비한 방책이다.
嗚呼
아!
爲天下慮患하여 而使好名貪利小丈夫制之 其不爲鼂錯者鮮矣리라
천하天下를 위할 목적으로 우환憂患을 염려하여 이름을 좋아하고 이익을 탐하는 소장부小丈夫로 하여금 제어하게 한다면 조조鼂錯처럼 되지 않을 자가 적을 것이다.
역주
역주1 漢文帝論 : 漢 文帝는 漢 高祖의 아들 劉恒을 가리킨다. 周勃과 陳平이 呂氏들의 亂을 討平하고 그를 맞아 帝位에 앉혔다. 재위 23년 동안에 農耕을 提唱하여 농지세를 무려 12년이나 면제하였고, 淸靜無爲를 주장하여 백성과 휴식을 취하였다.
《欒城集》에는 本文의 標題가 〈漢文帝〉로 되어 있다.
역주2 柔勝剛 弱勝彊 : 《老子》 제78장에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유한 것이 억센 것을 이긴다.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으나 실천할 줄 모른다.[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라고 보인다.
역주3 以柔御天下 : 인자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국가를 통치함을 가리킨다.
역주4 乘風而靡 : 바람을 따라 쓰러진다는 말과 같으니, 곧 인자하고 너그러운 정치에 감화되어 순종함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5 尉佗稱號南越……俯伏稱臣 : 《漢書》 〈西南夷兩粤朝鮮傳〉에 의하면 “尉佗는 漢 高祖 때에 南越王이 되고, 高后 때에 참람하게 ‘帝’라 칭하였다. 文帝가 尉佗의 고향인 眞定에 있을 때 그 父母의 墳墓를 위하여 지키는 邑을 지정해두고 歲時에 奉祀하였으며, 그 從兄弟를 불러서 높은 벼슬을 주고 총애하였다. 그리고 陸賈를 사신으로 南越에 보냈더니, 陸賈가 당도하자, 尉佗는 두려워서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며 明詔를 받들어 길이 藩臣으로서 貢職을 받들기를 원하였고, 곧 令을 내려 帝制의 黃屋左纛(天子의 車服)을 제거하게 하였다.”고 한다.
尉佗는 바로 趙佗인데, 秦 二世 때에 趙佗에게 명하여 南海의 일을 행하게 하였는데, 이내 尉佗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역주6 匈奴桀敖……比武帝世十一二耳 : 《漢書》 〈匈奴傳〉에 의하면 “高后 때에 匈奴 冒頓이 점점 교만해져서 遺書의 말투가 몹시 輕慢하였는데, 文帝가 卽位해서는 먼저 匈奴의 和親을 허락하고 또 몸을 낮추어 그들을 대하였다.”고 한다.
역주7 調伏 : 降伏과 같은 말이다.
역주8 吳王濞包藏禍心……亂以不作 : 《漢書》 〈吳王濞列傳〉에 의하면 “吳나라에는 銅山과 海水의 이점이 있었기 때문에 劉濞는 銅으로 돈을 주조하고 바닷물로 소금을 달였으므로 吳나라에 賦稅가 없었지만 국가재정이 풍족하였다. 士卒이 更을 선 데에도 官에서 돈을 지출하였으며, 매년 민간에 存問을 하고 망명한 사람들을 불러들어 인심을 샀다.
文帝의 太子가 吳 太子(劉濞의 아들)를 죽인 뒤로 劉濞는 병을 핑계로 조회하러 오지 않았다. 文帝가 그것을 책망하였더니, 劉濞는 使者를 파견하여 사죄하였다. 文帝는 吳의 使者를 사면시켜 돌려보내고 吳王에게 几杖을 하사하여 吳王이 老病으로 朝拜述職하지 못한 것에 대해 표시하였다. 이 때문에 劉濞는 40여 년 동안 배반하지 않고 다만 藩臣의 禮를 약간 잃었을 뿐이다.”라고 한다.
역주9 使文帝尙在……濞亦已老死 : 吳王 劉濞가 반란을 일으킬 때는 나이 이미 64세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0 東南之亂 : 곧 7國의 亂을 가리킨다. 7國이 동남 지구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漢 景帝 때에 鼂錯의 건의를 채택하여 諸侯의 封地를 削奪하니, 吳王 劉濞는 임금 곁을 깨끗이 청소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楚‧越‧胶西‧胶東‧濟南‧菑川 등과 연합하여 무장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역주11 至景帝不能忍……西向入關 : 《史記》 〈吳王濞列傳〉에 의하면 “景帝가 太子로 있을 때 鼂錯는 바로 그 家令이었는데, 太子에게 총애를 받았다. 景帝가 즉위한 뒤에 鼂錯가 上言하기를 ‘諸侯의 영토가 너무 많으니 그 郡縣을 削奪해야 합니다. 吳王이 전에 太子의 사건이 있을 때 병을 핑계로 조회하러 오지 않았으니 옛 법에 있어서 마땅히 誅殺해야 하고, 天下의 망명한 사람을 꾀어들여 亂을 일으킬 모사를 하고 있으니 削奪해도 謀反할 것이고, 삭탈하지 않아도 모반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景帝가 豫章과 會稽 등을 삭탈하니, 7국이 모두 배반하였다. 吳王 劉濞가 친히 楚王‧淮南王 등을 이끌고 서쪽으로 長安에 들어왔다.”고 한다.
역주12 : 乾隆의 《御選唐宋文醇》에서는 “鼂錯는 吳가 반드시 배반할 것이라 하여 결국 땅을 削奪함으로써 그가 배반하도록 激動해서 멸망시켰다. 당시 비록 天下가 소란스러웠지만, 그 뒤를 이은 藩服은 衰弱하여 감히 跋扈하는 자가 없었고, 그 惡 또한 백성에게 미칠 수 없었으니, 鼂錯의 功罪는 진실로 쉽게 판정할 수 없다. 오직 聖賢만이 이를 처리할 때 반드시 별도로 措置함이 있어, 반드시 땅을 削奪하는 일을 가볍게 해서 백성들의 肝腦가 땅바닥에 쳐발라지게 하지 않을 것이다.
蘇轍이 범을 찌르는 일로 비유한 것은 참으로 타당하다. 비록 그러하나 범이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垣墉을 높게 쌓고 陷穽을 깊이 파서 수시로 망을 보아 조심스레 방어하지 않고서 ‘일이 아직 닥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일이 반드시 닥칠 줄 어찌 알겠는가? 또는 ‘事勢가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뒤에 변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과 이미 변란이 일어나서 한탄해야 소용이 없을 줄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春秋》에서는 莒나라가 〈방비하지 않다가〉 나라를 잃은 것을 죄책하게 된 것이고, 左氏는 《逸詩》에 ‘絲麻(실과 삼)가 있더라도 菅蒯(사초와 띠풀)를 버리지 말라.’고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이 편은 아마도 宋 神宗 때 王韶가 변방을 개척한 일을 위해서 지은 것인가 싶다. 그러나 시대를 상고할 수 없다.[鼂錯策吳必反 遂削以激之反而滅之 當時雖天下騷然 而嗣後藩服衰弱 無敢跋扈 其惡亦不能及於民 錯之功罪 固未易定也 獨是聖賢處此 必別有措置 必不輕於一割 而使黔黎肝腦塗地 轍刺虎之喩 誠當也 雖然虎逼人矣 而不高其垣墉 深其陷穽 時伺而謹防之 乃曰事未至也 安知其必至 或曰此未然之勢也 安知後之不變及其旣至而嗟無及焉 則春秋所以罪莒之失國 而左氏所以賦絲麻菅蒯之章也 此篇豈爲王韶開邊而作歟 然時代不可考矣]”라고 비평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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