然而從成則諸侯利而진秦病하고 橫成則진秦帝而諸侯虜니라
소진蘇秦本說소진秦爲橫이라가 不合而激於연燕조趙하여 甘心於其所難爲之術이니라
而태사공太史公以爲約書入진秦에 진秦人爲之閉함곡관函谷者十五年이라하니
의논하는 바가 옳고, 문장 또한 규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다.
진秦나라는 국세國勢가 강대하고 제후諸侯들은 세력이 쇠약하니, 유담사游談士(縱橫家) 가운데 연횡連衡을 주장하는 자는 공을 이루기가 쉽고, 합종合縱을 주장하는 자는 힘을 쓰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합종合縱이 이루어지면 제후諸侯들은 이롭고 진秦나라는 병들며, 연횡連衡이 이루어지면 진秦나라는 제왕帝王 노릇을 하게 되고, 제후諸侯들은 노예 노릇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합종合縱과 연횡連衡〉 두 가지는 다 권모權謀과 궤휼詭譎에서 나온 것인데, 합종合縱이 〈연횡連衡보다〉 조금 나을 것이다.
소진蘇秦은 본래 진秦나라에 유세하여 연횡連衡을 주장하였으나 합해지지 않자, 연燕나라와 조趙나라를 격려하여 하기 어려운 합종술合縱術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1년 만에 원수洹水 위에서 삽혈歃血을 하였으니, 능수能手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입에 머금은 피가 마르기도 전에 서수犀首가 한 번 나타나자, 제齊나라와 조趙나라가 맹약盟約을 배반하니 종약從約이 모두 깨어졌다.
대개 제후諸侯들의 마음이 다른 것은, 비유하자면 끈에 묶인 닭들이 함께 홰에 앉을 수 없는 것과 같으니, 형세가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태사공太史公은 “약서約書가 진秦나라에 들어가자, 진秦나라 사람들이 그 때문에 함곡관函谷關을 닫은 지 15년이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유세객遊說客의 부랑浮浪한 말인데, 태사공太史公이 그것을 믿은 것은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