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讀先秦
하면 往往言簡而意盡
하니 固古人所不可及處
니라
及讀子由之文
하여는 往往如
之從天而下
하여 嫋娜曲折
하고 氤氳蕩漾
하여 令人讀之
에 情鬯神解而猶不止
하니 亦非今人所及處
니라
然이나 竊自惟컨대 雖其勢不當進言이나 至於報國之義엔 猶有可得言者니이다
昔仁宗親策直言之士에 臣以不識忌諱로 得罪於有司하니 仁宗이 哀其狂愚하여 力排群議하고 使臣得不遂棄於世하시니 臣之感激에 思有以報 爲日久矣니이다
今者에 陛下 以聖德으로 臨御天下하시니 將大有爲以濟斯世언마는 而臣은 材力駑下하여 無以自效나 竊聽之道路하여 得其一二하니 思致之左右니이다
苟懲創
하여 不復以聞
하시면 則其思報之誠
은 沒世而不能自達
이니이다
自其所當先者爲之면 則其後必擧어니와 自其所當後者爲之면 則先後竝廢니이다
書
에 曰
라하나이다 世未有不自下而能高
요 不自近而能遠者
니이다
然이나 世之人은 常鄙其下而厭其近하고 務先從事於高遠하니 不知其不可得也니이다
以爲田甫田而力不給이면 則田茀而不治니 不若不田也니이다 思遠人而德不足이면 則心勞而無獲이니 不若不思也니이다
欲田甫田인댄 則必自其小者始니 小者之有餘면 而甫田可啓矣니이다
欲來遠人인댄 則必自其近者始니 近者之旣服이면 而遠人自至矣니이다
苟由其道면 其勢可以自得이요 苟不由其道면 雖彊求而不獲也니이다
臣愚不肖하여 蓋嘗試妄論今世先後之宜하되 而竊觀陛下設施之萬一하니 以爲所當先者는 失在於不爲하고 而所當後者는 失在於太早니이다
伏惟 陛下는 卽位以來로 躬親庶政하사 聰明睿智하고 博達宏辯하시며 文足以經治하고 武足以制斷하시며
凡古之帝王이 曠世而不能有一焉者를 陛下는 一旦兼而有之矣니이다
夫以天縱之姿로 濟之以求治之心하며 施之於事하시니 宜無爲而不成이요 無欲而不遂니이다
今也爲國歷年於玆나 而治不加進이요 天下之弊 日益於前世하니 天下之人이 未知所以適治之路니이다
災變橫生하고 川原震裂하고 江河湧沸하고 人民流離하고 災火繼作하되
此臣所以日夜思念而不曉하여 疑其先後之次에 有所未得者也니이다
財者는 爲國之命而萬事之本이니 國之所以存亡과 事之所以成敗가 常必由之니이다
昔趙充國
은 論備邊之計
하되 以爲湟中穀斛八錢
이니 糴
百萬斛
이면 羌人
이 라하고
諸葛亮은 用兵如神하되 而以糧道不繼로 屢出無功이니이다
由是觀之컨대 苟無其財면 雖有聖賢이라도 不能自致於跬步요 苟有其財면 雖庸人이라도 可以一日而千里니이다
陛下頃以西夏不臣
으로 赫然發憤
하사 建用兵之策
하고 招來
之民
하여 將奪其險阻
하고 破壞其國而後已
니이다
方是之時
엔 夏人
이 殘虐失衆
하니 橫山之民
이 厭苦思
하고 而又乘其荐饑
하여 苟加之以兵
이면 此非計之失者也
니이다
然而沿邊엔 無數月之糧이요 關中엔 無終歲之儲로되 而所興之役에 有莫大之費어늘 陛下方且泰然不以爲憂하고 以爲萬擧而有萬全之功이시니이다
旣而
이 失律
하여 하고 亦旣入踐其國
하여 係虜其民矣
니이다
然而陛下는 得其地而不敢收하고 獲其人而不敢臣하시니 雖有成功이나 而不能繼也니이다
夫陛下謀之於期年之前하고 而罷之於旣發之後하니 豈以爲是失當而悔之哉리잇가
至於鞭笞四夷하고 臣服異類는 是極治之餘功이요 而太平之粉飾也니이다
然이나 今且先之하시니 此臣所以知其先後之次에 有所未得者也니이다
今者
에 陛下懲前事之失
하사 出
之財
하고 徙
之租賦
하여 督
之吏
하여 使備沿邊三歲之畜
하시니 臣以此疑陛下之有意乎財矣
니이다
何者오 秘府之財는 不可多取요 而內郡之民은 不可重困이니
蓋善爲國者는 不然하니 知財之最急이요 而萬事賴焉이니이다
載物者는 常使馬輕其車하고 車輕其物하여 馬有餘力하고 車有餘量이라야 然後에 可以涉塗泥하되 而車不僨이요 登坂險하되 而馬不躓이니이다
今也엔 四方之財를 莫不盡取하여 民力屈矣로되 而上用不足하고 平居惴惴하여 僅能以自完이나 而事變之生을 復不可料니이다
譬如弊車羸馬로 而引丘山之載니 幸而無虞라도 猶恐不能勝이요 不幸而有陰雨之變과 陵谷之險이면 其患必有不可知者니이다
然이나 臣所謂豊財者는 非求財而益之也요 去事之所以害財者而已矣니이다
夫使事之害財者未去면 雖求財而益之라도 財愈不足이요 使事之害財者盡去면 雖不求豊財나 然而求財之不豊도 亦不得也니이다
故로 臣謹爲陛下言事之害財者三이니 一曰冗吏요 二曰冗兵이요 三曰冗費니이다
有是民也하고 而後에 有是官이요 有是官也하고 而後에 有是吏라 量民而置官하고 量官而求吏니 其本은 凡以爲民而已니이다
郡縣之職缺
이어든 而取之於民
하고 之屬缺
이어든 而取之於郡縣
이니이다
出以爲守令
하고 入以爲卿相
하니 出入
하고 中外
하며 一人去之
어든 一人補之
하니 其勢不容有冗食之吏
니이다
近世以來
론 取人不由其官
하니 士之來者無窮
하고 而官有限極
이라 於是
에 之法
이 生
하여 而
이 始壞
하고 浸淫分散
하여 不復其舊
니이다
是以로 吏多於上하고 而士多於下하여 上下相窒이 譬如決水於不流之澤이니이다
前者未盡에 來者已至하니 塡咽充滿하여 一陷於其中而不能出이니이다
故
로 는 多方以求官
하고 已仕之吏
는 多方以求進
이니이다
下慕其上하고 後慕其前하며 不愧詐僞하고 不恥爭奪하니 禮義消亡하고 風俗敗壞하여 勢之窮極이 遂至於此니이다
夫人情은 紓則樂易하고 樂易則有所不爲하며 窘則懣亂하고 懣亂則無所不至니이다
今使衆人
으로 皆出於隘
하여 足履相躡
하고 肩肘相逮
하여 傍徨而不得進
하며 又將禁其奔走而爭先者
니 苟將禁之
인댄 則莫如止來者而闢其隘
니이다
今也엔 驅市人而納之라가 不勝其多也라 設險於中塗而艱難之하나이다
是以로 法愈設而爭愈甚하니 惟陛下는 以時救之하시되 下哀痛之書하여 明告天下하시고 以吏多之故로 與之更立三法하소서
故
로 不敢輕爲
하고 爲士者
는 皆其修潔之人也
니이다
今世之取人은 誦文書하고 習程課하면 未有不可爲吏者也니이다
擧今世所謂居家不事生産하여 仰不養父母하고 俯不恤妻子하며 浮游四方하고 侵擾州縣하며 造作誹謗者면 農工商賈不與也니이다
然
이나 其
하고 하며 功業卓然
하여 見於後世
하니 今世之士
는 不敢望其萬一也
니이다
取之至少면 則人不敢輕爲士니 其所取者는 皆州郡之選人也니이다
故로 爲是法하여 使人知上意之所向이면 十年之後에는 無實之士가 將不黜而自減이니이다
且夫設科以待天下之士는 蓋將使其才者得之하고 不才者不可得也라 吾則取之나 而彼則不能得이언마는
猶曰雖不能得이나 而累擧多者를 必取無棄면 則是는 以官徇人也니이다
且累擧之士는 類非少年矣라 耳目昏塞하고 筋力疲倦而後得之니 數日而計之하여 知其不能有所及也면 則其爲政에 無所賴矣리이다
今有人畜牛羊而求牧에 旣取其壯者하고 又取其老者하되 取其壯者曰 吾取其力也라하고
取其老者曰 吾憐其老也라하니 如憐其老而已면 則曷爲以累牛羊哉리잇가
以爲有遺才焉
이면 則今所謂遺逸之書
에 有以收之矣
리이다
任其子之爲後者
하여 世世
於朝
하고 襲
而守祭祀
하면 可以無憾矣
리이다
百司
를 臣不得而盡詳也
니 請言其尤甚者
는 莫如
니이다
三司之吏
를 世以爲多而不可損
은 何也
오하면 重而
衆也
라하나 臣以爲不然
이니이다
主大計者는 必執簡以御繁하되 以簡自處하고 而以繁寄人이니 以簡自處면 則心不可亂이요 心不可亂이면 則利至而必知하고 害至而必察이니이다
以繁寄人이면 則事有所分하고 事有所分이면 則毫末不遺하고 而情僞必見이니이다
今則不然하여 擧四海之大로되 而一毫之用도 必會於三司라
案牘旣積이면 則吏不得不多요 案牘積而吏多면 則欺之者衆이니 雖有大利害라도 不能察也니이다
夫天下之財
를 下自郡縣
으로 而至於
히 轉相
면 足以爲不失矣
니이다
夫苟轉運使之不可獨信이요 而必三司之可任이면 則三司未有不責成於吏者니 豈三司之吏가 則重於轉運使歟잇가
故
로 臣以爲天下之財
는 其
可分於轉運使
요 而使三司歲攬其綱目
이니 旣使之得優游以治財貨之源
이면 又可頗損其吏
하여 以絶亂法之弊
니이다
然이나 此三法者는 皆世之謂拂世戾俗하여 召怨而速謗者也니이다
今且將行之인댄 臣非敢犯衆人之怒而行此危事也라 以爲有可行之道焉이니이다
自
은 而任一人
하고 自
以上
은 一歲而任一人
은 此祖宗百年之法
으로 相承而不變者也
로되
而仁宗之世에는 則損之하고 三載而考績하여 無罪者遷其官은 自唐以來로 亦未始有變者也로되 而英宗之世에는 則增之니이다
而欲損者는 天下之公議요 其不欲者는 天下之私計也니 以私計而怨公議면 其爲怨也不直矣니이다
士之
爲吏者
는 捐其生業
하고 棄其田里
하여 以盡力於
나 而今也
엔 以吏多之故
로 積勞者久而不得遷
하고 去官者久而不得
하며 又多爲條約以沮格之
하니이다
減罷其
하고 破壞其次第
하여 使之窮窘無聊
일새 求進而不遂
하니 此其爲怨
이 豈減於布衣之士哉
리잇가
然이나 使新進之士日益多하여 國力匱竭而不能支하니 十年之後에 其患必有不可勝言者리이다
苟日增之吏 漸以衰少
어든 則臣又將有以治其舊吏
하여 使諸道
는 每歲終任其所部
하고 은 各任其屬
하고 曰
自今以前
에는 未有以
至某
와 已至若干者
니라 二者
는 皆自上鈞其輕重而裁之
니라
已而以他事發커든 則與之同罪하되 雖去官與赦라도 不降也라하리이다
夫以私罪至某하고 贓罪正入已至若干하여 其爲惡也著矣로되 而上不察이면 則上之不明을 亦可知矣니이다
今世之法은 任人者는 任其終身하고 苟其有罪어든 終身鈞坐之니이다
夫任人之終身은 任其未然之不可知者也요 任人之歲終而無過는 任其已然之可知者也니이다
臣請得以較之면 任其未然之不可知는 雖聖人이라도 有所不能이요 任其已然之可知는 雖衆人이라도 能之니이다
今也엔 任之以聖人之所不能이로되 旣不敢辭矣온 而況任之以衆人之所能은 顧不可哉리잇가
且
는 則亦不患其不知也
요 患其知而未必皆按
하며 曰 是無損於我
요 而徒以爲怨云爾
라하나이다
陛下誠能擇奉公疾惡之臣而使行之
하시고 陛下厲精而察之
하사 去民之患
을 如除腹心之疾
이시면 則其以私罪至某
와 贓罪正入已至若干者
는 非復過誤
요 適陷於
者也
니 苟遂放歸
하여 終身不齒
하여 使姦吏有所懲
이면 則冗吏之弊
를 可去矣
리이다
臣聞 國朝創業之初엔 四方割據하여 中國地狹하고 兵革至少라가
之間
에 天下之兵
이 僅三十萬
이나 方此之時
에 屯戍征討
하여 百役竝作
이로되 而兵力不屈
하니
每有警急에 將帥不問得失하고 輒請益兵이라 於是에 召募日增하여 而兵額之多 遂倍前世니이다
其後
之間
에 竊發
로 復使諸道 點民爲兵
하니 而沿邊所屯
이 至七八十萬
이라 自是天下 遂以百萬爲額
이니이다
雖復近歲無事나 而關中之兵이 至於二十八萬이니이다
擧雍熙天下之衆하여 適以備方今關中一隅之用하니 兵多之甚을 於此見矣리이다
然이나 臣聞 方今宿邊之兵은 分隷堡障하고 戰兵統於將帥者 其實無幾라
每一見賊에 賊兵常多하고 我兵常少하여 衆寡不敵으로 每戰輒敗하니
往者에 將帥失利하고 未有不以此自解者也라하니이다
夫祖宗之兵은 至少로되 而常若有餘하고 今世之兵은 至多로되 而常患於不足하니 此二者는 不可不察也니이다
兵法有之曰 興師十萬하여 出征千里하면 百姓之費와 公家之奉이 日費千金하고 內外騷動하며 怠於道路者 七十萬家어늘 而愛爵祿百金하고 不能知敵之情者는 不仁之至也라
故로 三軍之事는 莫親於間이요 賞莫重於間이라하니 間者는 三軍之司命也니이다
臣竊惟컨대 祖宗用兵은 至於以少爲多하고 而今世用兵은 至於以多爲少하니 得失之原은 皆出於此니이다
何以言之오 臣聞 太祖는 用李漢超馬仁瑀韓令坤賀惟忠何繼筠等五人하여 使備契丹하고
用趙贊姚內斌董遵誨王彦升馮繼業等五人하여 使備西羌하시되
故로 此十四人者는 皆富厚有餘하여 其視棄財如棄糞土하고 賙人之急을 如恐不及이니이다 是以로 死力之士가 貪其金錢하여 捐軀命冒患難하고 深入敵國하여 刺其陰計而效之니이다
至於飮食動靜에도 無不畢見하니 每有入寇면 輒先知之라 故로 其所備者寡하되 而兵力不分하니 敵之至者는 擧皆無得而有喪이니이다
是以로 當此之時에 備邊之兵이 多者는 不過萬人이요 少者는 五六千人이니이다
今則不然하여 一錢以上은 皆籍於三司하고 有敢擅用이면 謂之自盜하며
至於用
하여는 則曰 官給
라하나 夫百餠之茶
와 數束之綵
는 其不足以易人之死也明矣
니이다
是以
로 今之爲間者
는 皆不足恃
니 聽傳聞之言
하고 採疑似之事
하며 其行
은 不過於出境
이요 而所問
은 不過於
니 得有
하여 以欺其將帥則止矣
요 非有能知敵之
者也
니이다
敵之至情을 旣不可得而知라 故로 常多屯兵하여 以備不意之患이니 以百萬之衆으로도 而常患於不足은 由此故也니이다
夫關市之征은 比於茶綵則多나 而三十萬人之奉은 比於百萬則約이니이다
平居에 不忍棄關市之征以與人하고 至於百萬하여는 則恬而不知怪니이다
昔太祖起於布衣하사 百戰以定天下軍旅之事하시니 其思之也詳하고 其計之也熟矣니이다
故로 臣願陛下復修其成法하사 擇任將帥하여 而厚之以財하고 使多養間諜之士하여 以爲耳目하소서
耳目旣明이면 雖有彊敵이라도 而不敢輒近이니 則雖雍熙之兵이라도 可以足用於今世리이다
何者
오 今世之彊兵
은 莫如
이요 而今世之惰兵
은 莫如內郡之
니이다
其名愈高하면 其廩愈厚하며 其廩愈厚하면 其材愈薄하니이다
往者에 西邊用兵하니 禁軍不堪其役하여 死者不可勝計니이다
羌人每出에 聞多禁軍하면 輒擧手相賀하고 聞多土兵하면 輒相戒不敢輕犯이니이다
以實較之면 土兵一人은 其材力이 足以當禁軍三人이요 禁軍一人은 其廩給이 足以贍土兵三人이니이다
使禁軍萬人在邊하면 其用不能當三千人하고 而常耗三萬人之畜하니 邊郡之儲 比於內郡에 其價不啻數倍니이다
以此權之면 則土兵可益이요 而禁軍可損이니 雖三尺童子라도 知其無疑也니이다
陛下誠聽臣之謀하시면 臣請使禁軍之在內郡者로 勿復以戍邊하고 因其老死與亡而勿復補하여 使足以爲內郡之備而止리이다
去之以漸하고 而行之以十年이면 而冗兵之弊를 可去矣리이다
臣聞 事有所必至하고 恩有所必窮하니 事至而後謀면 則害於事하고 恩窮而後遷이면 則傷於恩이라하니이다
昔者
에 太祖太宗
은 하여 以先天下
하시니 方此之時
엔 之衆
이 無幾也
라 是以
로 合族於京師
하여 久而不別
하니 世歷
而太平百年矣
라 宗室之盛
이 未有過於此時者也
니이다
之費
는 多於百官
하고 而子孫之衆
은 宮室
이 不能受
로되 無親疏之差
하고 無貴賤之等
하며 自
以上
은 皆養於縣官
하고 長而爵之
하며 嫁娶喪葬
을 無不仰給於上
이니이다
日引月長하여 未有知其所止者니 此亦事之所必至요 而恩之所必窮者也로되 然而未聞所以謀而遷之니이다
以人子之愛其親으로 推而上之하여 至於其祖하고 由祖而上하여 至於百世히 宜無所不愛니 (無所不愛면) 則宜無所不廟니이다
苟推其無窮之心
이면 則百世之祖
를 皆廟而後爲
也
니이다
聖人
이 知其不可
라 故
로 爲之制
하여 七廟之外
엔 非有功德
이면 則迭毁
하고 니이다
莫貴於天子하고 莫尊於天子之祖로되 而廟不加於七은 何者오 恩之所不能及也니이다
蓋有去而爲民者하고 有自爲民而復仕於朝者하니 至唐亦然하니이다
故로 臣以爲 凡今宗室은 宜以親疏貴賤爲差하여 以次出之하고 使得從仕를 比於異姓하여 擇其可用而試之以漸이라하니이다
凡其祿秩
之數
와 之等
과 之制
와 을 與異姓均
하고 臨之以按察
하며 持之以
하며 威之以刑禁
하며 以時察之
하여 使其不才者
로 不至於害民
하고 其賢者有以
하며 而其不任爲吏者
는 則出之於
하여 官爲廬舍而廩給之
하며 使得占田治生
을 與
比
니이다
今聚而養之하되 厚之以不訾之祿하고 尊之以莫貴之爵하여 使其賢者로 老死鬱鬱而無所施하고 不賢者로 居處隘陋하여 戚戚而無以爲樂하니 甚非計之得也니이다
封德彝曰 爵命崇則
多
하니 以天下爲私奉
은 非至公之法也
라하니
夫自王而爲公은 非人情之所樂也로되 而猶且行之하니이다
今使之爵祿如故而獲治民
하면 雖有
之異
나 宜無有怨者
니이다
古之帝王
은 好疑而多防
이라 雖父子兄弟
라도 不得尺寸之柄
하고 禁錮
하여 者
는 莫如秦魏
니이다
然
이나 秦魏
는 이니 其所以亡者
는 요 而非其宗室也
니이다
故
로 爲國者
가 苟失其道
면 雖
之人
이라도 皆得謀之
요 苟無其釁
이면 雖宗室
이라도 誰敢覬者
리오
惟陛下
는 蕩然與之無疑
하고 使得以次居外
를 하소서
臣聞 漢唐以來
론 分於四方
하니 雖有
大之憂
라도 而
之勞
가 不至於太甚
이라하니이다
하사 懲其大患而略其
하여 斂重兵而聚之京師
하니이다
凡今東南之米
가 每歲
하되 以石計者
는 至五六百萬
이니이다
山林之木
은 盡於舟楫
하고 州郡之卒
은 於道路
하니 月廩歲給之奉
을 不可勝計
니이다
往返數千里
에 饑寒困迫
하며 每每
하고 하니 米之至京師者
는 皆非完物矣
니이다
由此觀之컨대 今世之法은 直以其力致之하고 而不計其患하니 非法之良者也니이다
臣願更爲之法
하여 擧今每歲所運之數而四分之
하되 其二
는 卽用舊法
하여 官出船與兵而漕之
를 凡皆如舊
하고 其一
은 募
之富人
하여 使以其船及人漕之
하되 而所過
에 免其商稅
하고 能以若干至京師
하되 而無所欺盜敗失者
는 以今三司軍大將之賞與之
하소서
方今濱江之民
이 以其船爲官運者
는 不求
하고 蓋取官之所入而不覆較者
는 得其贏以自潤
하며 而富民之欲仕者
는 往往求爲軍大將
하니 以此推之
면 宜有應募者
리이다
其一은 官自置場하여 而買之京師하고 京師之兵이 當得米而不願者는 計其直하여 以錢償之니이다
夫物有常數하니 取之於南하면 則不足於北하고 捨之於東하면 則有餘於西하니 此數之必然하여 而不可逃者也니이다
貴甚則東南之民
이 하니 赴之者衆
이면 則將反於賤
이니이다
致賤必以貴하고 致貴必以賤이니 此亦必然之數也니이다
故로 臣願爲此二者與舊法皆立하여 試其利害而較其可否면 必將有可用者리니 然後에 擧而從之면 此又去冗費之一端也니이다
臣聞 富國有道하니 無所不卹者는 富之端也요 不足卹者는 貧之源也라하니
從其無足卹而棄之하되 無所不棄면 則其所亡者多矣리이다
然而世人之議者則不然
하여 以爲天下之富
에 而
區區之用
은 此有司之職
이요 而非帝王之事也
라하나니이다
自
以來
로 하여 而天下之吏
以上
은 再遷其官
하고 天下郡守職司 再補其親戚
이니이다
自
京師之大水
와 與去歲
之大震
으로 竝作
하니 國有至急之費
어늘 而
이니이다
自
供億之未定
과 與
流民
之未息
으로 官私乏困
하여 이어늘 而宗室之喪
은 不俟
歲月而葬
하나니이다
然이나 苟自今從其可卹而救之면 則無益之費를 猶可漸減하리니 此又去冗費之一端也니이다
臣不勝拳拳私憂過計하여 爲是三冗之說以獻하오니 伏惟陛下는 思深謀遠하고 聽斷詳盡하소서
於天下之事에 無所不矚하시니 臣之所陳이 何足言者리잇가
然이나 臣愚以爲 苟三冗未去면 要之十年之後에 天下將益衰耗하여 難以復治하니이다
陛下何不講求其原而定其方略하여 擇任賢俊而授之以成法하시고 使皆久於其官而後에 責其成績이시니잇가
今雖不能使之盡久
나 然
이나 至於諸道之職司
와 三司之官吏
와 沿邊之
하여는 此皆與天子共成事者也
니이다
天下之事 將責成之而不久其任이면 開其源者는 不見其流하고 發其謀者는 不見其成功이니 此事之所以不得成也니이다
陛下誠擇人而用之하되 使與二府로 皆久於其官하시면 人知不得苟免하고 而思長久之計하리이다
君臣同心하고 上下協力하여 磨之以歲月하리니 如此而三冗之弊를 乃可去也리이다
今世之士大夫
는 하고 疾成而喜敗
하며 事苟不出於己
하여 小有齟齬不合
이면 則群起而排之
하나이다
借如今使按察之官으로 任其屬吏하여 歲終而無過라도 此其勢必將無所不按하리니 得罪者가 必將多於其舊리이다
不幸而有一不當이면 衆將群指以罪하고 法一不當이면 不能動이리이다
不幸而至於再三하면 雖上之人이라도 亦將不免於惑이리이다
衆人이 非之於下하고 而朝廷이 疑之於上하며 攻之者衆이요 而持之者不堅이면 則法從此敗矣리이다
蓋世有耕田而以其耜殺人者어든 或者因以耕田爲可廢나 夫殺人之可誅與耕田之不可廢는 此二事也니 安得以彼而害此哉리잇가
故로 夫按人而不以其實者는 罪之可也나 而法之是非는 則不在此니이다
苟陛下誠以爲可行이면 必先能破天下之浮議하고 使良法不廢於中道하소서
三冗旣去면 天下之財 得以日生而無害하여 百姓充足하고 府庫盈溢하리니 陛下所爲而無不成이요 所欲而無不如意하리이다
擧天下之衆
하여 惟所用之
하시되 以攻則取
요 以守則固
하리이다 이니 伸縮進退
는 無不在我
니이다
今陛下不事其本하고 而先擧其末하시니 此臣所以大惑也니이다
선진先秦과 사한史漢의 고문古文을 읽어보면 이따금 말은 간략하나 뜻은 충분히 전달된 문장이 있으니, 이는 진실로 옛사람들이 다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자유子由(蘇轍)의 글을 읽어보면 이따금 마치 아지랑이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듯이 야들야들하고 한들한들하며, 포근하고 넘실거려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글을 읽어보게 하면 정신이 바짝 나게 하고도 오히려 기운이 남아도는 문장이 있으니, 이 또한 지금 사람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신종황제에게 올린 이 글은 오로지 이재理財에 관한 것만을 다루었는데, 그 중에는 명언名言들이 많이 보인다.
단, ‘용리冗吏’ 1절만은 그에 대한 정확한 논리였음이 발견되지 않는다.
소신은 벼슬이 지극히 소천疏賤하니 조정의 일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건대, 그 형세에 있어서는 마땅히 진언하지 않아야 되겠지만, 나라의 은혜를 보답하는 의리에 있어서는 오히려 진언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옛날 인종仁宗께서 친히 직언直言하는 선비를 뽑으실 때에 소신은 기휘忌諱하는 바를 몰랐기 때문에 담당관에게 죄를 얻었는데, 인종께서 소신의 광우狂愚를 애처롭게 여기어 뭇사람의 비난을 힘써 배격하고 소신이 결국 세상에서 버림받지 않게 하시었으니, 소신은 감격하여 그에 보답할 것을 생각해온 지 오래였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성덕聖德으로 천하에 임어臨御하시니, 장차 크게 다스려 이 세상을 구제하게 되실 터인데, 소신은 재질이 노둔하고 힘이 미약해서 보답할 수 없습니다마는, 도로에서 들어 한두 가지 얻은 것이 있으므로 폐하께 진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만일 소신이 저지른 전일의 일을 경계하여 다시 들으려 하지 않으신다면, 보답을 생각하는 소신의 정성은 죽을 때까지 진달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소신은 갑자기 광언狂言을 발설하여 그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소신은 듣건대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먼저 할 일과 뒤에 할 일의 차서次序를 정해둔다.”고 합니다.
먼저 해야 할 일부터 한다면 뒤에 할 일이 반드시 거행되지만, 뒤에 해야 할 일부터 한다면 먼저 할 일과 뒤에 할 일이 모두 폐지되는 것입니다.
《서경書經》에서 이르기를 “높은 곳을 오르려고 하면 반드시 아래서부터 올라가야 하고, 먼 곳을 가려고 하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야 한다.”고 하였으니, 세상에는 아래에서부터 올라가지 않고도 높은 곳을 오르는 자와,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지 않고도 먼 곳을 가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낮은 것을 비루하게 여기고 가까운 것을 싫어하여, 우선 높고 먼 것에 힘써 종사하지만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시경詩經》에서 이르기를 “큰 밭을 농사짓지 말지어다.
마음이 무척 애달프고 괴로우리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큰 밭을 농사짓되 힘이 부족하면 밭이 풀만 우거지고 가꾸어지지 못하니 아예 농사짓지 않는 것만 못하며, 멀리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되 덕이 부족하면 마음만 수고롭고 얻는 것이 없으니 아예 그리워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큰 밭을 농사지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작은 밭부터 농사를 시작해야 할 것이니, 작은 밭을 농사짓되 힘이 남아돌면 큰 밭을 개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을 오게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오게 해야 할 것이니, 가까이 있는 사람이 이미 심복하면 멀리 있는 사람은 저절로 이를 것입니다.
진실로 그 길로 말미암으면 형세를 스스로 얻을 수 있거니와, 진실로 그 길로 말미암지 않는다면 비록 애써 구한다 하더라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소신은 어리석은 생각으로 시험 삼아 지금 세상에서 먼저 해야 할 일과 뒤에 해야 할 일을 망령되이 논하였사온데, 가만히 폐하께서 설시設施하시는 일의 한 측면을 보니 응당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실책이 하시지 않는 데에 있고, 응당 뒤에 해야 할 일은 그 실책이 너무 빨리 하시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소신은 감히 그것을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보는 바가 이에 가까운 것이 있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그 비슷한 것을 가지고 폐하를 위해서 깊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즉위하신 이래로 몸소 모든 정사를 살피시는데, 총명하시고 지혜로우시며, 박학하시고 통달하시며, 또한 언변이 달변이시며, 문文은 충분히 정치교화를 경영할 수 있고, 무武는 충분히 제재하고 결단할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근로勤勞까지 하시고, 또 공검恭儉까지 하십니다.
무릇 옛날의 제왕帝王이 오랜 세대를 지내도록 한 가지도 가지지 못한 것을 폐하께서는 하루아침에 여러 가지를 겸해 가지셨습니다.
폐하께서는 하늘이 부여한 아름다운 자질에다가 세상을 잘 다스려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일을 시행하고 계시니, 하시는 일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 없고, 하려고 하시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라를 다스리신 지 2년이 되었는데도 정치는 더 전진되지 못하고, 천하의 폐단은 매일 전대前代보다 늘어나고 있으니, 온 천하 사람이 치리治理에 가는 길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재변災變은 뜻밖에 발생하고, 방천은 지진으로 갈라지고, 강물은 끓어오르고, 인민은 정처 없이 떠돌고, 재화災火는 계속 일어납니다.
달이 가고 계절이 가도 재변은 그칠 줄 모르고 일어납니다.
이 일이 바로 소신이 밤낮으로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것인데, 먼저 해야 할 일과 뒤에 해야 할 일의 순서가 바뀌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게 됩니다.
지금 세상의 우환거리는 재물이 없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없습니다.
재물은 나라의 운명과 만사의 근본이 되는 것이니, 나라의 존망과 일의 성패가 항상 재물에 달려 있습니다.
옛날 조충국趙充國은 변방을 수비하는 계책에 대해 논하되 “황중湟中의 곡물 값이 1곡斛에 8전錢이 되니, 3백만 곡의 곡물을 사들이면 오랑캐가 감히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고,
제갈량諸葛亮은 용병用兵을 신神처럼 잘하였으나 군량 보급로가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번 출전했음에도 전공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재물이 없으면 아무리 성현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반걸음도 나아갈 수 없고, 재물이 있으면 아무리 용렬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전번에 서하西夏가 신복臣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끈 화를 내시어 출병出兵 대책을 세우고 횡산橫山의 백성들을 불러들여 장차 그들의 험한 지역을 점령하고 그들의 나라를 파괴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서하 사람이 잔인하고 포악하여 민심을 잃었기 때문에 횡산 백성들이 그들의 고역이 싫어서 송왕조宋王朝로 귀화할 생각을 갖고 있었고, 또 계속 흉년이 들었으니 그 기회를 타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절대 잘못된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연변沿邊에는 몇 달 먹을 식량도 없고, 관중關中에는 1년 먹을 식량도 비축되어 있지 않았는데, 전쟁을 일으키면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인데도 폐하께서는 태연히 걱정하지 않으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만전萬全의 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얼마 안 가서 변방에 주둔한 신하가 군율軍律을 어기고 먼저 일을 시작하여 경솔하게 군사를 출동하였고, 또한 그들이 이미 서하의 영토에 들어가서는 인민을 노획하였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그 땅을 얻었지만 결국 거둬들이지 못하고, 그 인민을 노획했지만 결국 신복시키지 못하셨으니, 비록 성공은 하였으나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끝내는 모신謀臣을 폐출시키고 오랑캐와 화친을 맺게 되었습니다.
폐하께서는 1년 전에 모의하게 하고 이미 출동한 뒤에 파하셨으니, 어찌 이것이 온당함을 잃고 후회하신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뒷마무리를 잘할 재정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방의 오랑캐를 매질하고 이민족을 신복臣服시키는 것은 바로 세상을 잘 다스리는 정치의 여력으로 되는 일이고, 태평성세에서의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우선으로 하시니, 이래서 소신은 그 먼저 할 일과 뒤에 할 일의 순서에 어긋남이 있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전에 있었던 일의 실수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시고 비부秘府의 재물을 꺼내고 내군內郡의 조부租賦를 옮겨다가, 전조轉漕를 담당하는 관리를 독려하여 연변에서 3년 동안 먹을 식량을 비축하도록 하시니, 소신은 이 때문에 아마도 폐하께서 재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셨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재정을 비축하는 방법이 못 됩니다.
왜냐하면 비부秘府의 재물은 많이 꺼내다 써서는 안 되고, 내군內郡의 백성은 거듭 피곤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하시는 것은 재용이 부족한 목전의 근심을 풀 수는 있으나 장구한 계책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소신은 진정한 뜻을 표출하기 위하여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으니, 재물이 가장 긴급하고 모든 일이 그것에 힘입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재물이 그 일을 이기고 일이 재물을 이기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재물은 다하지 않을 수 있고,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재물이란 거마車馬와 같은 것이고, 일이란 수레에 실린 물건과 같은 것입니다.
물건을 싣는 사람은 항상 말에게는 가벼운 수레를 채우고, 수레에는 가벼운 물건을 실어, 말에게 남은 힘이 있고 수레에 남은 공간이 있은 연후에야 진흙길을 가더라도 수레가 엎어지지 않고, 험한 비탈을 오르더라도 말이 넘어지지 않습니다.
현재는 사방의 재물을 다 가져다 써서, 백성들의 힘이 다하였지만 국가의 용도는 부족하여 항상 불안해하고, 겨우겨우 유지해가지만 언제 사변이 생길지 다시 헤아릴 수 없는 일입니다.
비유하자면 부서진 수레와 수척한 말로 구산丘山처럼 실은 짐을 끌게 하는 것과 같으니, 다행히 뜻밖의 화환禍患은 없다 하더라도 오히려 짐을 이기지 못할까 두렵고, 불행히 음우陰雨의 이변과 능곡陵谷의 험지를 만난다면 그 반드시 예측할 수 없는 화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신은 깊이 생각하여 “오늘날의 계책으로는 재물을 풍성하게 마련하는 계책만 한 것이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신이 이른바 “재물을 풍성하게 한다.”는 것은 재물을 구해서 불리는 것이 아니고, 재물을 축내는 일을 제거하는 것일 뿐입니다.
재물을 축내는 일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비록 재물을 구해서 불린다 하더라도 재물은 오히려 부족할 것이요, 재물을 축내는 일을 모두 제거한다면 비록 재물을 풍성하게 하는 것을 구하지 않더라도 또한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신은 삼가 폐하를 위하여 재물을 축내는 일 세 가지를 말씀드리오니, 첫째는 쓸데없는 관리요, 둘째는 쓸데없는 군사요, 셋째는 쓸데없는 비용입니다.
쓸데없는 관리에 대한 설명은 청컨대 옛날에 관리를 두게 된 뜻을 추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성이 있은 뒤에 관직이 있고, 관직이 있은 뒤에 관리가 있는지라, 백성을 헤아려서 관직을 두고 관직을 헤아려서 관리를 두는 것이니, 그 근본 목적은 백성을 위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관직을 감안해서 인원을 뽑았습니다.
군현郡縣의 관직에 결원이 생기면 그 인원을 백성에게서 뽑고, 부시府寺의 속관屬官에 결원이 생기면 그 인원을 군현에서 뽑았습니다.
지방으로 나가면 수령守令이 되고, 중앙으로 들어오면 경상卿相이 되었으니, 나가고 들어가며 상호 교체하고, 중앙과 지방이 상호 교통하며, 한 사람이 관직에서 떠나면 한 사람을 뽑아 그 자리에 보충하였으니, 형세상 쓸데없이 녹을 받아먹는 관리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근세 이래로는 관직을 감안하지 않고 사람을 마구 뽑으니, 몰려오는 선비들은 한이 없고 관직에는 한계가 있는지라, 이에 겸兼‧수守‧판判‧지知의 법이 생겨나 관법官法이 비로소 무너지고, 그 폐습이 만연‧분산되어 옛 법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위에는 관리들이 많고 아래에는 선비들이 많아 위와 아래가 서로 막히는 것이, 비유하자면 마치 흐르지 않는 못에다가 물을 터놓는 것과 같습니다.
앞에 있는 사람이 아직 관직에서 다 떠나지도 않았는데, 벼슬하러 온 사람들은 이미 이르니, 공간이 꽉 차 넘치므로 한번 그 속에 빠지면 도저히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평민은 여러 방면으로 벼슬을 구하고, 이미 벼슬을 한 관리는 여러 방면으로 승진의 길을 찾습니다.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은 윗자리에 있는 사람을 흠모하고, 뒷자리에 있는 사람은 앞자리에 있는 사람을 흠모하며, 사기와 허위를 행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관직을 쟁탈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예의가 소멸되고 풍속이 파괴되어 사세가 극도에 달함이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람은 형편이 펴지면 마음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면 하지 않는 일이 있으며, 형편이 군색하면 마음이 어지럽고 마음이 어지러우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지금 뭇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좁은 길로 나가서 발이 서로 밟히고 어깨가 서로 부딪쳐서 어정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며, 또 장차 빨리 달려서 선두를 다투는 것을 금하려고 하니, 장차 금하려고 한다면 오는 사람을 중지시키고 좁은 길을 확장하는 것만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자 사람들까지 몽땅 몰아서 들이밀다가 너무 많은 것을 견디지 못하는지라, 중도에 장애물을 설치하여 통래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법이 더욱 베풀어질수록 다툼이 더욱 치열해가니, 오직 폐하께서는 제때에 구제하시되 애통을 표하는 글을 내려서 온 천하에 밝게 고하시고, 관리가 많은 까닭으로 아울러 다시 세 가지 법을 세우소서.
첫째는 진사進士‧제과諸科를 시행하는 연수年數의 간격을 늘려서 시험을 보이면 그 인원수가 늘어나지 않을 것이고, 여러 번 공거貢擧에 참여하여 급제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벼슬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인원수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은 너무 많이 뽑기 때문입니다.
옛날 사람은 관리를 뽑을 때 매우 정밀하게 뽑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리는 망령되이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가벼이 선비가 되지 않았고, 선비가 된 사람은 모두 깨끗하게 몸을 닦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세상에 사람을 뽑는 것을 보면 글을 외우고 과정만 익히면 관리가 되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벼슬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벼슬을 얻으면 몹시 기뻐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떼로 일어나서 〈과거 보러〉 달려가는 것입니다.
지금 농가農家‧공가工家‧상가가商賈家에서는 구업舊業을 팽개치고 선비가 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선비가 되는 자는 날로 늘어나지만, 천하는 더욱 다스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 소위 ‘집에서 생산을 일삼지 않아, 위로는 부모를 봉양하지도 않고 아래로는 처자를 돌보지도 않고, 사방을 놀러 다니며 주현州縣을 시끄럽게 하고 비방誹謗을 조작하는 자’를 든다면, 농‧공‧상고는 거기에 참여되지 않습니다.
조종祖宗의 세대에는 선비의 숫자가 오늘날에 비하면 10분의 1, 2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반란을 평정하고 법률을 제정하며 공업功業이 높이 후세에까지 나타났으니, 지금 세상의 선비는 감히 만에 하나라도 그런 공업을 바랄 수 없습니다.
선비의 숫자가 지금 세상의 선비 숫자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으나 공이 훨씬 많았던 것은 족히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선비를 뽑는 숫자가 워낙 적으면 사람들이 감히 가볍게 선비가 될 수 없으니, 뽑힌 자들은 모두 주군州郡에서 선발해온 우수한 인재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법을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성상의 뜻이 지향하는 바를 알게 하신다면, 10년 뒤에는 실제 재능이 없는 인사가 장차 퇴출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감소될 것입니다.
또 과거를 설시하여 천하의 선비를 기다리는 것은 장차 재능이 있는 자는 벼슬을 얻고, 재능이 없는 자는 벼슬을 얻을 수 없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취택한다 해도 그들은 벼슬을 얻을 수 없건마는,
오히려 “비록 벼슬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여러 번 공거에 참여하는 자를 반드시 취택하고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것은 관직으로 사람을 따르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 번 공거에 참여한 인사는 모두가 소년이 아닌지라, 눈이 어둡고 귀가 먹고 근력이 떨어진 뒤에야 벼슬을 얻으니, 날짜를 헤아려서 점검해보아 치적이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면 정사를 함에 힘입은 바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소와 양을 사육하기 위하여 목장을 구해놓고는 〈소와 양을 취택할 때에〉 이미 장성한 놈을 취택하고 또 늙은 놈을 취택하되, 장성한 놈을 취택할 때는 “나는 그 힘을 취택한다.”라고 말하고,
늙은 놈을 취택할 때는 “나는 그 늙음을 불쌍히 여긴다.”라고 말하니, 만약 그 늙음을 불쌍히 여길 뿐이라면 어떻게 수놈 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발탁되지 못한 인재가 있다고 여긴다면 지금 이른바 ‘유일遺逸을 올리는 서적’에 〈그들의 사적을〉 수록하면 될 것이지, 〈늙음을 불쌍히 여기어 관직을 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관직을 아들에게 물려주게 하는 것입니다.
뒤를 이을 아들에게 관직을 물려주어 대대로 조정에서 벼슬하며 녹을 받아먹고, 관직을 물려받아 조상의 제사를 지키게 한다면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을 제정하면 반드시 이부二府에서부터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법이 낮은 자에게만 시행되고 높은 자에게는 굴한다면 천하가 장차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하가 복종하지 않고서도 법이 시행되기를 요망한다면 그것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대개 잘못을 바로잡아 화환禍患을 구제하는 것은 반드시 과오를 저지른 바가 있는 뒤에 구제하는 것입니다.
소신은 이부가 일반 관직에 낄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셋째는 백사百司가 각각 주관하는 일을 덜어서 직무를 맡는 기간이 오래가게 하는 것입니다.
백사는 〈범위가 넓어서〉 소신이 다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 없으니, 그 중에서 더욱 심한 것은 삼사三司만 한 것이 없으므로 〈삼사를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사의 관리를 세상 사람들이 많다고들 하는데, 감원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면 “국가대계가 중대하고 부서簿書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하는데, 소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대계를 주관하는 사람은 반드시 간단한 근본의 도리를 가지고 번잡한 사무를 다스리되 자신은 한가한 위치에 처하고 번잡한 사무를 사람들에게 분배해야 할 것이니, 자신이 한가한 위치에 처하면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면 이익이 되는 일이 이름에 반드시 알게 되고, 해로운 일이 이름에 반드시 살피게 됩니다.
번잡한 사무를 사람들에게 분배하면 직무관장에 분담하는 바가 있고, 직무관장에 분담하는 바가 있으면 털끝만 한 일도 빠뜨리지 않고 실정과 거짓이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사해四海의 광대한 지역을 보더라도 아무리 적은 재용에 관한 문서도 반드시 삼사三司에 집중됩니다.
그러므로 삼사란 데는 문서가 쌓이는 장소입니다.
문서가 이미 쌓이면 관리가 많지 않을 수 없고, 문서가 쌓이고 관리가 많으면 속이는 자가 많기 마련이니, 비록 큰 이해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살필 수가 없습니다.
천하의 재물에 대해서 아래로 군현郡縣에서부터 전운轉運에 이르기까지 잘못 관리하는 일이 있는가를 상호 살펴서 확인한다면, 결코 잘못 관리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항상 전운사를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문서가〉 삼사에 이른 뒤에야 그만둡니다.
진실로 전운사를 믿을 수 없고 반드시 삼사에게 맡겨야 된다면 삼사에서는 관리에게 임무완성을 책임 지우지 않을 수 없으니, 삼사의 관리가 전운사보다 책임이 무거운가 봅니다.
그러므로 소신은 ‘천하의 재물에 대해서는 그 세목을 전운사에 분담시키고 삼사로 하여금 해마다 그 대강과 세목을 총괄하게 할 것이니, 이미 삼사로 하여금 여유 있게 재화財貨의 근원을 다스리도록 하였으면, 또 그 관리를 감원하여 관리방법을 혼란케 하는 폐단을 끊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사도 오히려 감원을 해야 되거늘, 백사의 〈감원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법은 모두 세상에서 말하는 “세속을 위배하는 것이라 원한을 부르고 비방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장차 그것을 시행하려고 한다면, 소신은 감히 뭇사람의 노여움을 사면서까지 이처럼 위험한 일을 시행하자는 것이 아니라,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여겨서입니다.
대성臺省 6품, 제사諸司 5품 이상은 3년마다 한 번씩 교사郊祀를 지내고 나서 아들 한 사람에게 벼슬을 주고, 양제兩制 이상은 1년마다 아들 한 사람에게 벼슬을 주었던 것은 바로 조종祖宗이 장구히 전하기 위해 세운 법이라, 서로 계승하고 변경하지 아니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종仁宗의 세대에서 벼슬에 들어가는 길을 줄였고, 3년마다 성적을 고사해서 죄가 없는 자는 그 벼슬을 승진시켜주었던 것은 당唐나라 이후로 역시 변경한 자가 있지 않았는데, 영종의 세대에서 〈벼슬을 승진시켜주는 연한을 6년으로〉 늘렸습니다.
〈줄이고 늘리는〉 이 두 가지 방법은 어찌 세속에 편리하게 한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감히 원망을 하지 않은 것은 관리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줄이려고 한 것은 천하의 공평한 의론이고, 줄이려 하지 않는 것은 천하의 사사로운 생각이니, 사사로운 생각으로 공평한 의론을 원망한다면 그 원망은 정당한 원망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이치만을 따르고 원망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원망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세 가지 법은 일찍이 시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온 천하가 또한 원한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선비 중에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가 관리가 된 자는 생업生業과 전리田里를 팽개치고 국사에 전력하나, 지금은 관리가 많다는 이유로 수고한 지 오래지만 아직 승진되지 못하고 있고, 벼슬에서 떠난 자는 오래도록 조용調用되지 못하고 있으며, 게다가 조약을 많이 만들어서 벼슬길을 막고 있습니다.
벼슬에 기용될 대상자를 줄이거나 없애고, 벼슬에 승진되는 차례를 파괴하여 궁색하고 무료하게 하기 때문에 아무리 승진을 구하나 이루지 못하니, 그에 대한 원한이 어찌 포의지사布衣之士만 못하겠습니까?
다같이 두 가지 원한은 모두 장차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진사류들이 날마다 늘어나 국력이 고갈되어 지탱할 수 없게 만드니, 10년 뒤에는 그 화환禍患에 반드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신은 폐하께서 결단하여 힘써 시행하시기 바랍니다.
날로 늘어가던 관리가 점차 적어지거든 소신은 또 장차 예전부터 있어온 관리를 다스릴 생각으로 제도諸道의 각종 직무를 담당하는 관리들은 매년 관장하는 부서를 맡게 하고, 군수郡守와 감군監郡은 각자 분담한 소속을 맡게 하면서 말하기를
“오늘 이전까지는 사죄私罪로써 어떠한 불법을 범한 자와 부세의 정액수입을 탐장한 죄를 약간도 지은 자가 있지 않으니, 이 두 가지는 모두 위에서 경중을 따져서 처리하였다.
이윽고 다른 일로써 〈이상 두 가지 비리가〉 발각되거든 범법자와 동등한 죄를 적용하되 비록 관직에서 떠났거나 사면을 받은 경우라 하더라도 죄를 경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사죄로써 어떠한 불법을 범했거나 부세의 정액수입을 탐장한 죄를 약간 지어 그 악행이 드러났는데도, 위에서 살피지 않았으면 윗사람이 밝지 못함을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범법자와 동등하게 죄를 다스린다 하더라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법은 사람에게 관직을 맡길 경우 종신토록 맡기고, 죄를 짓거든 종신토록 모두 죄인으로 묶어놓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종신토록 관직을 맡기는 것은 알 수 없는 미래를 임용의 근거로 삼는 것이고, 1년 동안 과실이 없는 사람에게 벼슬을 맡기는 것은 이미 발생하여 알 수 있는 성적을 임용의 근거로 삼는 것입니다.
소신이 그것을 비교해보면, 알 수 없는 미래를 임용의 근거로 삼는 것은 아무리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능숙하게 할 수 없는 바가 있고, 이미 발생하여 알 수 있는 성적을 임용의 근거로 삼는 것은 아무리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인도 능숙하게 할 수 없는 바로써 임용하되 감히 사양하지 않거늘, 하물며 일반인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써 임용하는 것은 어찌 불가한 일이겠습니까?
안찰하는 관리는 또한 관원의 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고 알면서 반드시 다 안찰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나에게 손해될 것이 없고 한갓 원한만 살 뿐이다.”라고 합니다.
지금 그 죄가 자신에게 미치게 한다면 그 형편은 장차 관원의 비리를 문책하지 않을 바가 없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진실로 나라를 위해 힘쓰고 악을 미워하는 신하를 골라서 안찰하는 일을 행하게 하시고 폐하께서 정신을 가다듬어 살피시어 백성의 근심을 제거하기를 마치 복심腹心의 질병을 제거하듯이 하려고 하신다면, 그 사죄로써 어떠한 불법을 범한 자와 부세의 정액수입을 탐장한 죄를 약간 지은 자들은 다시 과오를 범한 것이 아니라 다만 가혹한 법조문에 빠진 자들이니, 그들을 놓아 보내 종신토록 벼슬에 등용되지 못하게 하여 간교한 관리들로 하여금 징계하는 바가 있게 하신다면, 쓸데없는 관리가 많은 폐단을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신은 듣건대 “국조國朝가 창업한 초기에는 사방에서 땅을 분할하여 웅거하였기 때문에 중국이 땅은 좁고 군대는 지극히 적었다가,
그 뒤에 여러 나라를 소탕해 멸망시켜서 개척한 땅이 이미 넓어지고 군사도 따라서 많아졌는데,
옹희雍熙 연간에 천하의 군사가 겨우 30만 명이었음에도 이때에 둔수屯戍하고 정토征討하는 등 각종 전역戰役이 아울러 일어났지만 병력이 모자라지 않았으니,
일찍이 군사가 적은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합니다.
함평咸平‧경덕景德 이후로 거란契丹이 내지를 침략하고 계천繼遷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매양 급변이 있을 때마다 장수가 득실은 따지지 않고 곧 지원병을 청하였는지라, 이에 소모병召募兵이 날로 늘어나서 병액兵額의 많음이 결국 앞 세대보다 배나 되었습니다.
그 뒤 보원寶元‧경력慶曆 연간에 원호元昊가 난을 일으키자 다시 백성을 동원하여 군사를 만들었으니, 연변에 주둔한 군사가 70~80만 명에 이르렀는지라, 이때부터 천하가 결국 백만으로 군사의 수를 삼았습니다.
근년에 와서는 비록 사변이 없으나 관중關中의 군사가 28만 명에 이릅니다.
옹희雍熙 연간의 천하 군사들을 다 들어다가 관중 한 귀퉁이에 쓰는 꼴이 되었으니, 군사가 너무도 많다는 것을 여기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신은 듣건대 “지금 변방에 주둔한 군사는 보장堡障에 나뉘어 소속되고 장수에 통솔된 전병戰兵은 기실 얼마 되지 않으므로,
매번 적을 볼 때마다 적병은 항상 많고 아군은 항상 적어서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매번 싸울 때마다 패하게 되니,
이전에 장수들이 패전하고는 이것으로 해명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합니다.
조종의 군사는 지극히 적었으나 항상 남음이 있는 것 같았고, 지금 세상의 군사는 지극히 많으나 항상 부족함을 걱정하니, 이 두 가지는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자병법孫子兵法》 〈용간用間〉에 “군사 10만을 일으켜 천리를 출정하자면 백성이 부담하는 비용과 국가가 내는 경비가 날마다 천금을 허비하고 안팎이 소동하게 되며, 도로에서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데에 동원되어 생업을〉 게을리 하는 자가 70만 가호나 있게 마련인데, 작록爵祿과 백금百金을 아까워하여 적의 실정을 능히 알지 못하는 것은 불인不仁함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므로 삼군三軍의 일은 간첩보다 더 친밀해야 할 대상은 없고, 상은 간첩보다 더 후중하게 주어야 할 대상은 없다.”고 한 말이 있으니, ‘간첩’이란 것은 바로 삼군의 운명을 맡은 것입니다.
소신은 가만히 생각하건대, 조종의 용병은 적은 숫자로써 많은 성과를 얻었고, 지금 세상의 용병은 많은 숫자로써 적은 성과를 얻으니, 득실의 근원은 모두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소신은 듣건대 “태조太祖께서는 이한초李漢超‧마인우馬仁瑀‧한령곤韓令坤‧하유충賀惟忠‧하계균何繼筠 등 5명을 써서 거란을 방비하게 하고,
곽진무郭進武‧송기宋琪‧이겸부李謙溥‧이계훈李繼勳 등 4명을 써서 하동河東을 방비하게 하고,
조찬趙贊‧요내빈姚內斌‧동준회董遵誨‧왕언승王彦升‧풍계업馮繼業 등 5명을 써서 서강西羌을 방비하게 하되,
모두 관시關市의 세금으로 후하게 대우하고, 금백金帛을 하사하여 생활을 풍부하게 해주었으며,
경사京師에 있는 그들의 가속家屬은 현관縣官에게 생활비를 지급받게 하고,
무역하느라 도로를 오가는 가속에게는 상세商稅를 묻지 않았다.” 합니다.
그러므로 이 14명은 모두 부후富厚하여 여유가 있었으므로 재물을 버리기를 마치 분토糞土를 버리듯이 하여 남의 위급함을 구호하되 행여 미치지 못할 것처럼 하였으니, 이 때문에 사력을 다하는 인사들이 그 금전을 탐하여 목숨을 버린 채 환난을 무릅쓰고 깊숙이 적국에 들어가 음계陰計를 써서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음식飮食‧동정動靜과 같은 것에 이르러서도 모두 살펴보지 않은 것이 없었으므로 매번 적군이 쳐들어오는 일이 있게 되면 먼저 알았기 때문에 준비한 바는 적었으나 병력이 분산되지 않았으니, 쳐들어온 적은 거개가 얻은 것은 없고 상실한 것만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때에는 변방을 수비하는 군사가 많은 경우는 만 명을 넘지 않았고, 적은 경우는 5, 6천 명이었습니다.
천하의 큰 나라로서도 30만의 군사만으로 만족하게 썼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 1전錢 이상은 다 삼사三司에 기록하고, 감히 마음대로 쓰는 일이 있으면 ‘자도自盜’라고 이르며,
소위 ‘공사전公使錢’이란 것은 많은 경우도 수천 꿰미에 불과하건만, 일체의 수요需要가 거기에 포함되어 있으며,
감사가 또 그 돈의 출입을 지켜보고 법으로써 규제합니다.
간첩을 이용하는 일에 있어서는 “관부에서 다병茶餠과 채단綵緞을 지급한다.”고 하지만, 백 덩어리의 다병과 몇 묶음의 채단은 사람의 목숨과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이 분명합니다.
이 때문에 지금 간첩이 된 자들은 모두 믿을 수가 없으니, 전해지는 말이나 듣고, 반신반의한 일이나 채취하며, 그 발걸음은 국경을 나가는 데에 불과하고, 묻는 대상은 숙호熟戶에 불과하니, 그의 입을 빌어 장수를 속이는 정도로 끝이지, 적의 실제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적의 실제 상황을 들어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군사를 많이 주둔시켜 뜻밖의 우환에 대비하게 되니, 백만대군을 가지고도 항상 부족함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이 때문입니다.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그 경중을 헤아리고 그 이해를 계산하지 않으십니까?
관시關市의 세금은 다병茶餠과 채단綵緞에 비하면 많으나, 30만 명의 군사에 드는 비용은 백만 명의 군사에 드는 비용에 비하면 약소합니다.
뭇사람은 목전에 닥치는 해에 대해서만 알고 일정한 세월이 경과한 후에 생기는 병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평소에 관시의 세금을 버려 사람에게 주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하고, 백만대군에 대해서는 예사로 보고 괴이하게 여길 줄을 모릅니다.
옛날 태조께서는 포의布衣로 일어나셔서 백 번 싸워 천하의 어지러운 군려軍旅의 일을 평정하셨으니, 그 생각하심이 자상하고 그 계산하심이 숙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소신은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다시 그 실정법(成法)을 닦아서 장수를 골라 임용하신 다음 재물로써 후하게 대우하시고 간첩 노릇할 인사를 많이 길러서 이목耳目을 삼게 하소서.
이목이 이미 밝으면 아무리 강한 적이라 하더라도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 비록 옹희雍熙 연간의 적은 군사라 하더라도 지금 세상에 충분히 쓸 수가 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복잡해서 시행하기 어렵다고 여기신다면 소신은 청컨대 줄일 수 있는 실제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것인가 하면,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사로는 연변의 토병土兵만 한 것이 없고, 지금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군사로는 내군內郡의 금려禁旅(禁軍)만 한 것이 없습니다.
그 이름이 더욱 높을수록 그 월급은 더욱 많으며, 그 월급이 더욱 많을수록 그 재질은 더욱 떨어집니다.
이전에 서쪽 변방에서 전쟁이 일어나니, 금군禁軍은 그 고역을 견디지 못하여 죽은 자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강인羌人이 출병할 때마다 금군이 많다는 소식을 들으면 문득 손을 들어 서로 축하하였고, 토병土兵이 많다는 소식을 들으면 문득 서로 경계하고 감히 가벼이 침범하지 못하였습니다.
실제적인 것으로 비교한다면 토병 한 사람은 그 재력材力이 족히 금군 세 사람을 당하고, 금군 한 사람은 그 봉급이 족히 토병 세 사람을 능가합니다.
가사 금군 1만 명이 변경에 있으면 그 쓰임은 3천 명을 당할 수 없으면서 항상 3만 명의 비축을 소모하니, 변군邊郡의 비축이 내군에 비하여 그 값이 몇 배 이상 높습니다.
이것으로 헤아린다면 토병은 증가해야 되고 금군은 줄여야 되니, 이에 대해서는 삼척동자도 의심할 나위가 없음을 압니다.
폐하께서 진정으로 소신의 모사를 들어주신다면, 소신은 청컨대 내군에 있는 금군으로 하여금 다시는 변경을 방수하지 말게 하고, 늙어 죽거나 도망간 사람이 발생하면 다시는 그 결원을 보충하지 말게 하고, 내군의 방비만 충족시키고 말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을 제거하는 속도는 점차로 하고, 그런 방법을 시행하기를 10년 동안만 한다면 쓸데없는 군사의 폐단을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쓸데없는 비용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그 중에서 큰 것과 소신이 아는 것을 말씀드리겠으니, 폐하께서는 유추해보소서.
소신은 듣건대 “일에는 반드시 이르는 일이 있고, 은혜에는 반드시 끝날 은혜가 있으니, 일이 이른 뒤에 다시 계획하면 성사에 지장이 있고, 은혜가 끝난 뒤에 변개하면 은혜에 손상이 간다.”고 합니다.
옛날에 태조와 태종께서는 구족九族과 돈목敦睦하여 천하 사람의 표본이 되셨는데, 이때에는 종실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족을 경사京師에 집합하여 오래도록 헤어지지 않았는데, 다섯 성군聖君의 세대를 거치는 백 년 동안은 태평성세였으므로 종실의 흥성함이 이때보다 더한 적은 없었습니다.
녹봉의 지급은 백관百官보다 많고, 자손의 많은 수는 궁실에 수용할 수가 없었으되, 친소의 차이를 두지 않고 귀천의 등급을 두지 않았으며, 어린아이 이하는 모두 현관縣官에게서 양육되고, 그들이 장성하면 벼슬을 나누어주었으며, 시집갈 때나 장가갈 때나 초상날 때나 장사지낼 때나 그 비용은 모두 위에서 지급받았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날로 신장되어가고 달로 증대되어가 그칠 줄을 몰랐으니, 이 또한 일이 반드시 이르는 바요, 은혜가 반드시 끝나는 바였지만, 그러나 다시 계획하거나 변개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옛날에 천자는 사당에 7대의 신주들을 모셨습니다.
소昭에 3위位, 목穆에 3위이고, 태조太祖의 신주와 더불어 모두 일곱이었습니다.
사람의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 올라가 할아버지에 이르고, 할아버지로 말미암아 올라가 백세百世에 이르기까지 사랑하지 않는 바가 없어야 하니, 〈사랑하지 않는 바가 없으면〉 사당에 모시지 않는 바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진실로 그 무궁한 마음을 미루어간다면 백세의 조상을 모두 사당에 모신 뒤에야 마음에 합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그 불가함을 알았기 때문에 종묘제도를 정하여 칠묘七廟 이외엔 공덕이 없으면 차례로 사당을 헐고 춘추의 제사에 참여시키지 않았습니다.
천자보다 귀한 이가 없고 천자의 조상보다 높은 이가 없는데 사당을 칠묘七廟 이상 더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은혜가 미칠 수 없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유독 종실에게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소신은 들으니 “삼대三代 때에는 공족公族 중에 아직 친親이 끊어지지 않았는데도 서인庶人에 낀 자가 있었는데,
양한兩漢의 법에서는 황제의 아들이 왕이 되고, 왕의 서자로서도 오히려 후侯가 된 자가 있었으며,
후로부터 이하는 서자가 다시 벼슬이나 토지를 갖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대개 〈경성에서〉 떠나가 평민이 된 자도 있고, 평민이 되었다가 다시 조정에서 벼슬을 한 자도 있었는데, 당唐나라 때에 와서도 역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소신은 “지금 종실을 친소, 귀천으로 차등을 정해서 차례로 경성을 내보내 〈지방에서 살게 하며,〉 벼슬에 종사하는 것은 타성他姓과 동등하게 하고, 그 중에서 쓸 만한 자를 가려서 점차로 시험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녹질祿秩의 품수와 천서遷敍의 등급과 출척黜陟의 제도와 임자任子의 법령을 타성과 동등하게 정하고서, 안찰리按察吏로써 그들을 감시하며 요리寮吏로써 그들을 견지하며 형금刑禁으로써 그들을 위협하며 수시로 그들을 살펴서, 재주가 없는 자는 백성을 해치지 못하게 하고, 어진 자는 효력을 발휘하게 하며, 관리를 맡길 수 없는 자는 경성 부근에 있는 군현으로 내보낸 다음 관에서 주택을 지어주고 녹미를 지급하며, 전토를 점유하여 생업生業을 경영하기를 사서士庶와 동등하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종실들을 경성에 모아 살게 해주되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은 녹봉으로 후대하고, 더없이 귀한 관작으로 존중하여, 어진 자는 늙어 죽도록 울적하게 지내며 포부를 베풀 바가 없게 하고, 어질지 못한 자는 좁은 곳에 거처하며 수심에 잠겨 즐거움이 없이 살게 만드니, 매우 온당하지 못한 계책입니다.
옛날 당唐나라 무덕武德 초에 종곤제자從昆弟子들을 봉하되 옷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아이 이상은 모두 군왕郡王으로 봉하였더니,
태종太宗이 즉위하여 그것은 불편한 제도일 것이라고 의심하고 대신에게 물으니,
봉덕이封德彝가 아뢰기를 “작명爵命이 높으면 역역力役을 많이 지급해야 되는데, 천하를 개인의 접대물건으로 삼는 것은 지극히 공정한 법이 아닙니다.”라고 하니,
이에 소원한 종족으로서 왕이 된 자를 강등시켜 공公으로 삼았습니다.
왕이 되었다가 공이 되는 것은 인정상 좋아할 바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행하였습니다.
지금 벼슬과 녹봉은 예전처럼 유지하면서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얻게 한다면 비록 도성과 지방의 다름은 있으나 응당 원망을 품을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신이 조정의 의론을 살펴보니, 일찍이 감히 이것에 대해 언급한 자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종실의 친족을 사방에 포진하면 간교한 사람의 마음을 열어 뜻밖의 변을 생기게 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라고 하지만, 소신은 그 의론이 옳지 못한 의론이라 생각합니다.
옛날의 제왕은 의심하기를 좋아하여 방비를 많이 하였으므로, 비록 부자‧형제라 할지라도 척촌尺寸만큼의 작은 권력도 얻지 못한 채 유수幽囚되고 금고禁錮되어 필부匹夫에 낄 정도로 〈지위가 추락한 것은〉 진秦나라와 위魏나라 때 같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나라와 위나라는 다 몇 세대 만에 망하였으니, 망하게 한 자는 유씨劉氏‧항씨項氏 및 사마씨司馬氏였고 그 종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진실로 그 도리를 잃으면 비록 호월胡越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두 도모할 수가 있고, 진실로 틈을 보이는 일이 없으면 비록 종실이라 할지라도 누가 감히 넘보겠습니까?
오직 폐하께서는 태연한 마음으로 종실을 의심 없이 대하고 그들이 차례로 지방에 나가서 살 수 있게 하기를 한당漢唐의 고사故事처럼 하소서.
이 또한 쓸데없는 비용을 제거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소신은 듣건대 “한당漢唐 이후로는 중병重兵이 사방에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록 말단의 강대한 세력에 대한 우환이 있다 하더라도 군량을 운수運輸하는 노역이 너무 심한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종祖宗께서는 천명을 받아 〈등극하셔서〉 큰 우환을 징계하고 작은 일을 생략하여 중병을 거두어서 경사에 집합시켰습니다.
그리하여 근본이 이미 강해지니 온 천하가 명령을 받고 복종하였습니다.
그런데 전조轉漕의 비용은 결국 예전보다 배나 들었습니다.
지금 동남 지역의 쌀이 매년 변하汴河를 거슬러 올라와 경성에 도달하는데, 섬으로 계산하면 5, 6백만 섬에 이릅니다.
산림山林의 나무는 주즙舟楫을 만드는 데에 다 들고, 주군州郡의 군사는 도로에서 피곤을 겪는데, 그들에게 지급되는 비용을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수천 리 길을 오갈 때에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매번 쌀을 빼돌리고 다른 물건을 섞어서 〈빼돌린 쌀을 충당하니,〉 경사에 도달한 쌀은 모두 온전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지금 세상의 법은 단지 힘으로만 밀어붙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화환禍患은 따지지 않게 되어 있으니, 좋은 법이 아닙니다.
소신은 원컨대 다시 법을 만들어, 지금 매년 운수하는 횟수를 네 차례로 나누되 두 차례는 곧 예전 법을 써 관부官府에서 배와 군사를 내어 수로로 운수하기를 모두 예전처럼 하도록 하며, 한 차례는 육도六道의 부유한 사람을 모집하여 그들의 배와 그들의 인부로 운수하게 하되 통과하는 곳에는 그 상세商稅를 면제해주고, 쌀을 운수하여 경사에 잘 도착되고 빼돌리거나 손실된 일이 없을 경우는 지금의 삼사군대장三司軍大將의 상을 수여하도록 합니다.
현재 빈강濱江의 백성 중에 그들의 배로 관부를 위하여 운수하는 자는 관부의 공전을 구하지 않고, 대개 관부의 경비를 취하되 따지지 않는 자는 그 남은 것을 취하여 스스로 윤택한 생활을 누리며, 부유한 백성으로서 벼슬을 하려고 하는 자는 이따금 군대장이 되기를 구하니, 이것으로 미루어본다면 응당 응모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또 한 차례는 관부에서 장소를 마련하여 경사에서 쌀을 사들이고, 경사의 군사가 마땅히 쌀을 얻어야 하나 원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 값을 계산해서 돈으로 보상하도록 합니다.
모든 사물에는 일정한 수량이 있기 때문에 남쪽에서 취하면 북쪽에서 부족하고, 동쪽에서 놓아두면 서쪽에서 남음이 있으니, 이것은 수량의 필연적인 것이어서 피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지금 관부에서 물건을 사들이려고 하니, 비로소 값이 비싸지게 됩니다.
값이 너무 비싸지면 동쪽‧남쪽의 백성들이 경성으로 달려가서 쌀을 팔게 되니, 경성으로 달려가서 쌀을 파는 자가 많으면 장차 헐값으로 되돌아옵니다.
헐해진 것은 반드시 비쌌기 때문이고, 비싸진 것은 반드시 헐했기 때문이니, 이 또한 필연적인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소신은 원컨대 이 두 가지 방법과 예전의 법을 다 존치시켜서 그 이해利害를 시험하고 그 가부可否를 비교하면 반드시 장차 쓸 수 있는 것이 있을 터이니, 그렇게 시험해본 뒤에 거행하면 이 또한 쓸데없는 비용을 제거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소신은 듣건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재물에 애착심을 가지고 아껴서 쓰는 것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길이고, 재물에 애착심을 갖지 않고 마구 낭비하는 것은 나라를 가난하게 만드는 길이다.”라고 하였으니,
애착심을 가지고 거두어들이되 거두어들이지 못할 것이 없이 다 거두어들인다면 간직되는 것이 많을 것이고,
애착심을 갖지 않고 버리되 버리지 못할 것이 없이 마구 버린다면 망실되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의논에서는 그렇게 여기지 않아 “천하가 부강한 마당에 구구한 쓰임을 고려하는 것은 바로 부문별로 주관하는 자가 할 직임이고, 제왕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이 말이 천하에 유행한 지 이에 수백 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천하(국가)의 비용(경비) 중에 지출하지 않아도 될 것이 항상 예전보다 많습니다.
소신은 감히 멀리 전대의 일을 예로 인용하지 않고 근년의 일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우嘉祐 이후로 성군이 뒤를 이어 나와서 천하(전국)의 관리에 대하여 경관京官 이상에게는 그 관직을 두 번이나 승진시키고, 천하(전국)의 군수郡守와 직사職司에 있어서는 그 친척을 두 번이나 보임補任시켰습니다.
치평治平 2년(1065)에 경사를 휩쓴 홍수와 지난해에 하삭河朔에서 일어난 대지진 이후로 각종 노역이 아울러 일어나고 있으니, 나라에는 매우 급히 조달될 경비가 있어야 하는데도 교사郊祀를 지낼 때에 백관에게 주는 상은 폐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횡산橫山의 용병用兵에 따른 수요공급이 정해지지 못하고, 경서京西의 유민流民을 계속 구호하게 됨으로부터 공사公私 간에 고달파서 하루도 한가할 겨를이 없는데도 종실의 상喪은 시간을 끌지 않고 즉시 장사를 지냅니다.
소신이 이것으로 보니 조정에서 재물에 애착심을 갖지 않는 것을 알겠습니다.
소신은 진실로 이미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재물에 애착심을 가지고 구제한다면 이익 없는 비용은 오히려 점점 줄일 수 있을 것이니, 이 또한 쓸데없는 비용을 제거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소신은 늘 마음에 두고 있는 걱정스런 생각을 견디지 못하여 이와 같은 세 가지의 쓸데없는 것에 대한 설을 지어 드리오니, 폐하께서는 깊이 생각하고 결단을 내리소서.
천하의 모든 일에 꿰뚫어보지 않은 바가 없으시니, 소신이 진술한 바가 무슨 말이 되는 소리이겠습니까?
그러나 소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진실로 이 세 가지의 쓸데없는 것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결론적으로 말씀드려 10년 뒤에는 천하가 장차 더욱 쇠모하여 다시 다스려지기 어려울 것’이라 여깁니다.
폐하께서는 왜 그 근원을 강구하고 그 방략을 정해서 현명하고 준수한 사람을 골라 맡기고 그들에게 실정법을 건네주신 다음, 그들로 하여금 모두 그 관직에 오래 있게 한 뒤에 그들이 공적을 이루도록 책임 지우지 않으십니까?
현재 천하(전국)의 관리들이 관직의 위치가 정착되지 못하여 자주 이동하므로 모두 오래 있지 않고 떠나가려는 마음을 가집니다.
시종侍從의 신하를 해를 넘기도록 그 대임자를 얻지 못한다면 황급하여 좋지 않은 기색을 띨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그들을 모두 다 관직에 오래 있게 할 수는 없으나 제도諸道의 직사職司와 삼사三司의 관리와 연변沿邊의 장좌將佐 등만은 모두 천자와 함께 일을 성취할 자들입니다.
그런데 천하의 일을 장차 이루도록 그들에게 책임 지우면서 그 직임을 오래 갖게 하지 않는다면 근원을 개발하는 자는 그 흐르는 물줄기를 보지 못하고, 꾀를 내는 자는 그 성공함을 보지 못할 것이니, 이는 일이 이루어질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성심껏 사람을 골라 쓰시되 이부二府와 함께 모두 그 관직에 오래 있게 하신다면, 사람들이 구차하게 손해를 모면할 수 없음을 알고 장구한 계책을 생각할 것입니다.
군신이 동심同心하고 상하가 협력하여 시일을 두고 연마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세 가지 쓸데없는 폐단을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하더라도 오히려 걱정할 바가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지금 세상의 사대부들은 자기와 의사가 같으면 좋아하고 자기와 의사가 다르면 미워하며, 성공하는 것을 미워하고 실패하는 것을 기뻐하며, 자기에게서 나오지 아니한 일이 조금만 저촉되어 합당하지 않으면 떼를 지어 일어나서 배격합니다.
가사 지금 안찰按察하는 관리로 하여금 그 속리屬吏를 맡게 하여 연말에 가서 과오가 없더라도 그 형세상 반드시 장차 안찰하지 않는 바가 없을 것이니, 죄를 얻는 자가 반드시 장차 예전보다 많아질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천하 사람들이 어지럽게 비난할 것입니다.
불행히도 한 가지 합당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뭇사람이 장차 떼를 지어 죄를 지적하게 되고, 법이 한번 부당하게 적용되면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일이 재삼 반복되면 비록 윗사람이라 하더라도 또한 장차 의혹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뭇사람이 아래에서 비난하고 조정이 위에서 의심하며, 공격하는 자가 여럿이고 견지하는 자가 견고하지 못하면 법은 이로부터 파괴될 것입니다.
세상에 밭을 갈다가 쟁기로 사람을 죽인 자가 있으면 혹자는 “밭 가는 일을 폐지해야 된다.”고 주장하나, 살인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과 밭 가는 일을 폐지할 수 없는 것은 두 가지 다른 일인데, 어떻게 저것으로 이것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을 안찰하되 그 실상으로써 안찰하지 않을 경우는 죄 주는 것이 옳지만, 법이 옳고 그른 것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진실로 시행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신다면 반드시 먼저 천하의 근거 없는 의론을 깨뜨리고 좋은 법이 중도에서 폐지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한 뒤에야 세 가지 쓸데없는 폐단을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가지의 쓸데없는 것이 이미 제거되면, 천하의 재물이 날로 생산되는 일에 장애받을 것이 없어서, 백성이 충족하고 부고府庫가 가득 넘칠 것이니, 폐하께서 하시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고, 하고 싶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천하의 대중을 들어 쓰시되 공격하면 취하고 지키면 견고할 것이니, 비록 서융西戎 북적北狄에 신복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 하더라도 관용을 베풀면 한漢 문제文帝가 되고, 관용을 베풀지 않으면 당唐 태종太宗이 될 것이니, 신축성 있게 진퇴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그 근본은 일삼지 않고 먼저 그 말단을 거행하시니, 이는 소신이 크게 의혹하는 바입니다.
소신은 분만憤懣을 견디지 못하여 관위官位의 서열을 뛰어넘어서 조정의 일을 말씀드리오니, 뇌정雷霆 같은 견책을 도피할 바가 없습니다.
소신 소철은 진실로 황공하와 머리를 조아리며 삼가 쓰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