仕以其力者는 力衰而後去나 進以其道者는 道高則難留니이다
08. 구양소사歐陽少師의 치사致仕를 축하한 계주啓奏
삼가 살피옵건대, 여러 번 사직서를 올려서 사직을 허락받아 고향으로 영화롭게 돌아가셨습니다.
직위職位는 동궁東宮에서 으뜸이고 은총恩寵이 더해져 이전 관직을 겸하셨습니다.
높은 풍범風範이 떨치는 바에 맑은 의론이 더욱 높았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관문전학사觀文殿學士와 태자소사太子少師로 치사致仕하셨으니, 도덕道德은 인품에 충만하고 학술學術은 세상에서 짝할 사람이 없습니다.
일찍이 시종侍從에 종사하였으니 성대하게 의론議論의 종주宗主가 되셨고, 만년에 묘당廟堂에 들어가니 은연隱然히 백성들의 신망信望이 되셨습니다.
삼조三朝에서 시종 관직을 맡아 각종 변화에 응하는 노고를 겪으셨습니다.
일을 만나면 조용히 처리하니 그 시정施政에 있어서 관대함과 엄중함을 병용하는 방법은 남들이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관직을 내놓은 지 이미 오래돼서야 나라를 진정시킨 공을 사람들이 알았습니다.
영원히 남긴 업적을 우러러 보고, 후세에서 그 공적을 계승하기 어려울 것을 믿습니다.
세 조정에서 내리 관직을 맡으시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음이었습니다.
아는 일이면 말하지 않는 적이 없으니 일찍이 중앙에서나 지방에서나 의지를 바꾸지 않으셨고, 연로할수록 더욱 건장하니 현달賢達이 남보다 뛰어남을 믿습니다.
여러 사람은 모두 힘으로써 임금을 섬겼지만, 공公은 홀로 도道로써 스스로 책임지셨습니다.
힘으로써 벼슬하는 자는 힘이 쇠한 뒤에 물러가지만, 도道로써 진출하는 자는 도道가 높으면 머물러 있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70세에 치사致仕하니 예禮에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육일六一’로 스스로 명명하였으니, 이 뜻을 지킨 지 오래였습니다.
청초淸楚한 영주潁州에 집을 지었으니, 거문고와 책으로 걱정을 잊기에 족합니다.
이름을 사방에 드날렸으니, 관직官職은 이미 신외身外의 물건이 되었습니다.
오직 집사執事께서는 부디 배우러 오는 사람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철轍은 관수官守 때문에 직접 문병門屛에 갈 수 없으므로 삼가 계주啓奏를 올려 축하드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