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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1)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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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8. 구양소사歐陽少師치사致仕를 축하한 계주啓奏
伏審 하여 故邑榮歸니이다
삼가 살피옵건대, 여러 번 사직서를 올려서 사직을 허락받아 고향으로 영화롭게 돌아가셨습니다.
位冠東宮하고 寵兼이니이다
직위職位동궁東宮에서 으뜸이고 은총恩寵이 더해져 이전 관직을 겸하셨습니다.
高風所振 淸議愈隆이니이다
높은 풍범風範이 떨치는 바에 맑은 의론이 더욱 높았습니다.
伏惟하니 道德在人하고 術學蓋世니이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관문전학사觀文殿學士태자소사太子少師치사致仕하셨으니, 도덕道德은 인품에 충만하고 학술學術은 세상에서 짝할 사람이 없습니다.
일찍이 시종侍從에 종사하였으니 성대하게 의론議論종주宗主가 되셨고, 만년에 묘당廟堂에 들어가니 은연隱然히 백성들의 신망信望이 되셨습니다.
之終始하여 更萬變之勤勞니이다
삼조三朝에서 시종 관직을 맡아 각종 변화에 응하는 노고를 겪으셨습니다.
臨事而安하니 莫測弛張之用이요
일을 만나면 조용히 처리하니 그 시정施政에 있어서 관대함과 엄중함을 병용하는 방법은 남들이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관직을 내놓은 지 이미 오래돼서야 나라를 진정시킨 공을 사람들이 알았습니다.
仰成績之不刋하고 信後來之難繼니이다
영원히 남긴 업적을 우러러 보고, 후세에서 그 공적을 계승하기 어려울 것을 믿습니다.
하되 始終一心이니이다
세 조정에서 내리 관직을 맡으시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음이었습니다.
老而彌壯하니 信賢達之過人이니이다
아는 일이면 말하지 않는 적이 없으니 일찍이 중앙에서나 지방에서나 의지를 바꾸지 않으셨고, 연로할수록 더욱 건장하니 현달賢達이 남보다 뛰어남을 믿습니다.
衆皆以力事君이나 公獨以道自任이니이다
여러 사람은 모두 힘으로써 임금을 섬겼지만, 은 홀로 로써 스스로 책임지셨습니다.
仕以其力者 力衰而後去 進以其道者 道高則難留니이다
힘으로써 벼슬하는 자는 힘이 쇠한 뒤에 물러가지만, 로써 진출하는 자는 가 높으면 머물러 있기 어렵습니다.
在禮則然이니이다
그러므로 70세에 치사致仕하니 에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니 此志久矣니이다
육일六一’로 스스로 명명하였으니, 이 뜻을 지킨 지 오래였습니다.
築室淸潁하니 琴書足以忘憂
청초淸楚영주潁州에 집을 지었으니, 거문고와 책으로 걱정을 잊기에 족합니다.
遺名四方하니 蓋已外物이니이다
이름을 사방에 드날렸으니, 관직官職은 이미 신외身外의 물건이 되었습니다.
治國이리잇가
누구와 더불어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能就問以質疑니이다
에게 가서 의심스런 일을 물을 것입니다.
惟是 尙不拒其來學이니이다
오직 집사執事께서는 부디 배우러 오는 사람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轍以 不獲躬詣門屛이니 謹奉啓하여 陳賀
관수官守 때문에 직접 문병門屛에 갈 수 없으므로 삼가 계주啓奏를 올려 축하드리옵니다.
역주
역주1 賀歐陽少師致仕啓 : 본 啓奏는 熙寧 4년(1071)에 쓴 것이다. 歐陽少師는 곧 歐陽修(1007~1072)를 가리킨다. 자는 永叔, 호는 醉翁‧六一居士이다. 歐陽修는 熙寧 원년(1068)부터 무려 다섯 차례나 사직서를 올려서 熙寧 4년에 太子少師로 致仕하였다.
역주2 累章得謝 : 여러 번 사직서를 올려서 사직을 허락받았음을 가리킨다.
역주3 舊職 : 宋代에는 官‧職‧差遣이 각각 있어서 이따금 官은 떨어져도 職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역주4 致政觀文少師 : 歐陽修가 致仕하기 전에 觀文殿學士가 되었다.
역주5 早遊侍從 蔚爲議論之宗 : 宋代에는 翰林學士‧給事中‧六尙書‧侍郞을 侍從이라고 하였으니, 歐陽修가 일찍이 知諫院‧翰林學士 등을 역임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역주6 晩入廟堂 隱然衆庶之望 : 歐陽修가 嘉祐 5년(1060)에는 入朝하여 樞密副使가 되고, 嘉祐 6년에는 參知政事가 되어 지위가 副相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7 三朝 : 여기서는 宋代의 仁宗‧英宗‧神宗의 3朝를 가리킨다.
역주8 釋位旣久 始知鎭靜之功 : 歐陽修가 治平 4년(1067)에 亳州知州로 나간 뒤로는 줄곧 外職만 역임하였기 때문에 여기서 말한 ‘釋位’는 參知政事의 자리를 내놓는 것을 가리킨다.
역주9 : 저본에는 ‘荐’으로 되어 있는데, 《欒城集》에 의하여 ‘薦’으로 바꾸었다.
역주10 薦歷三鎭 : 歐陽修가 外職으로 나가 맡은 三鎭 지방은 다 나라의 重鎭이었는데, 곧 靑州‧潁昌‧蔡州 같은 고을은 모두 京畿나 혹은 京城 부근에 있었다.
역주11 知無不言 曾中外而易意 : 《宋史》 〈歐陽修傳〉에 의하면 “歐陽修가 翰林에 있는 8년 동안 아는 일이면 말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歐陽修는 평생 동안 남과 말할 때에는 다 말하고 숨기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역주12 七十致仕 : 《禮記》 〈王制〉에 “50세가 되면 大夫의 爵을 받고, 60세가 되면 〈제자의 예를 갖출 수 없기 때문에〉 친히 배우지 않으며, 70세가 되면 〈직임의 노고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관직에서 물러난다.”고 하였다.
역주13 六一自名 : 歐陽修가 지은 〈六一居士傳〉에 “우리 집에는 1만 권의 책을 저장하고, 三代 이래 金石遺文 1천 권을 集錄하고, 거문고 1張과 바둑 1局을 마련해두고, 항상 술 한 병을 비치하고 …… 내 한 늙은이가 이 다섯 물건 사이에서 늙으니, 이것이 어찌 ‘六一’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역주14 珪組 : 珪玉과 印組. 곧 官爵을 가리킨다.
역주15 : 저본에는 ‘歟’로 되어 있는데, 四庫全書 《唐宋八大家文抄》에 의하여 ‘與’로 바꾸었다.
역주16 門人 : 守門人이니, 곧 상대방을 존경하는 뜻에서 상대방을 직접 칭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執事者를 칭한 것이다.
역주17 官守 : 관리의 직책을 가리킨다.
역주18 伏審累章得謝………하노이다 : 張伯行의 《唐宋八家文鈔》에서 “그 流宕한 곳은 東坡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문장 가운데 ‘여러 사람은 모두 힘으로써 임금을 섬겼지만 公은 홀로 道로써 스스로 책임졌다.’는 대문은 歐陽公의 身分에 대한 설명이 너무도 뛰어났다.[其流宕處 不及東坡 中云衆皆以力事君 公獨以道自任 說得歐陽身分高]”라고 비평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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