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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3)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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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讀此等文章 如看하여 愈入細愈入玄하니 不忍釋手니라
王道之至於民也 其亦深矣니이다
賢人君子 自潔於上이나 而民不免爲小人하고 朝廷之間 揖讓如禮 而民不免爲盜賊하며 禮行於上이나 而淫僻邪放之風 起於下而不能止하니 此猶未免爲王道之未成也니이다
王道之本 始於民之自喜하고 而成於民之相愛니이다
而王者之所以求之於民者 其粗始於力田하고 而其精極於孝悌廉恥之際니이다
力田者 民之最勞 而孝悌廉恥者 匹夫匹婦之所不悅이니이다
强所最勞하여 而使之有自喜之心하고 勸所不悅하여 而使之有相愛之意니이다 夫王道之成 而及其至於民 其亦深矣니이다
古者天下之災 水旱相仍하여 而上下不相保하니 此其禍起於民之不自喜於力田하고
天下之亂 盜賊放恣하고 兵革不息하여 而民不樂業하니 此其禍起於民之不相愛하여 而棄其孝悌廉恥之節이니이다
夫自喜則雖有太勞 而其事不遷하고 相愛則雖有强狠之心이나 而顧其親戚之樂하여 以不忍自棄於不義니이다
此二者 王道之大權也니이다
方今天下之人 狃於工商之利하여 而不喜於農하고 惟其最愚下之人 自知其無能然後 安於田畝而不去니이다
山林飢餓之民 皆有도척盜跖趑趄之心하고 而閨門之內 父子交忿而不知反하며 朝廷之上 雖有賢人이나 而其敎不逮於下니이다
是故 士大夫之間 莫不以爲王道之遠而難成也니이다
이나 臣竊觀三代之遺文 至於시경하여 而以爲王道之成 有所易而不難者니이다
夫人之不喜乎此 是未得爲此之味也니이다
聖人之爲詩 道其耕耨播種之勤하고 而述其歲終倉廩豐實 婦子喜樂之際하여 以感動其意니이다
故曰 畟畟良耜 俶載南畝하여 播厥百穀하니 實函斯活이로다
或來瞻女하니 載筐及筥로다 其饟伊黍
當此時也 民旣勞矣 爲之言其室家來饁而慰勞之者하여 以勉卒其事니이다
而其終章曰 荼蓼朽止하니 黍稷茂止로다
穫之挃挃하며 積之栗栗하니 其崇如墉이로다 其比如櫛하니 以開百室이로다
百室盈止하니 婦子寧止로다
殺時犉牡하니 有捄其角이로다
이로다하니이다
當此之時 歲功旣畢하니 民之勞者 得以與其婦子 皆樂於此하여 休息閑暇하고 飮酒食肉하여 以自快於一歲 則夫勤者 有以自忘其勤하고 盡力者 有以輕用其力하며 而狼戾無親之人 有所慕悅而自改其操니이다
此非獨於詩云爾 導之使獲其利하고 而敎之使知其樂이면 亦如是也니이다
且民之性 固安於所樂而悅於所利하니 此臣所以爲王道之無難者也니이다
蓋臣聞之하니 誘民之勢 遠莫如近하고 而近莫如其所與競이라하나이다
今行於朝廷之中이나 而田野之民 無遷善之心이니 此豈非其遠而難至者哉잇가
明擇郡縣之吏하고 而謹法律之禁하여 刑者布市 而頑民不悛이니이다
夫鄕黨之民 其視郡縣之吏 自以爲非其比肩之人하고 徒能畏其用法하니 而袒背受笞於其前이라도 不爲之愧니이다
此其勢可以及民之明罪 而不可以及其隱慝이니 此豈非其近而無所與競者耶잇가
惟其里巷親戚之間 幼之所與同戱하고 而壯之所與共事 此其所與競者也니이다
臣愚以謂 古者郡縣有삼로三老嗇夫하니
今可使推擇民之孝悌無過하고 力田不惰하여 爲民之素所服者爲之하여
無使治事하고 而使譏誚敎誨其民之怠惰而無良者니이다
郡縣頗置禮焉하여 以風天下하여 使慕悅其事하고 使民皆有愧恥하여 勉强不服之心이니이다
今不從民之所與競而敎之하고 而從其所素畏니이다
夫其所素畏者 彼不自以爲伍 而何敢求望其萬一이리잇가
敎天下自所與競者始 而王道可以漸至於下矣리이다
競之一字爲號則不可니라
特曰삼로三老嗇夫 閭里之耳目이니 其爲敎易行耳니라


01. 백성을 위하는 정치에 대한 책문策文 1
삼로三老에 대한 논술이다.
이와 같은 문장을 읽는 기분은 마치 이용면李龍眠(李公麟)의 백묘화白描畵를 보는 것 같아서 볼수록 더욱 세밀하고 현묘한 경지로 들어가니, 차마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왕도王道가 백성에게 이르는 거리는 또한 멀고도 깊습니다.
현인賢人군자君子는 위에서 자기 몸을 깨끗이 가지나 백성들은 소인小人이 됨을 면하지 못하고, 조정朝廷 사이에선 읍양揖讓에 맞게 행해지지만 백성들은 도적盜賊이 됨을 면하지 못하며, 예절은 위에서 행해지나 음벽淫僻하고 사방邪放한 풍속이 아래에서 일어나 지식시킬 수 없으니, 이래서 오히려 왕도王道가 이루어지지 못함을 면하지 못합니다.
왕도王道의 근본은 백성들이 스스로 기뻐하는 데서 시작되고, 백성들이 서로 사랑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왕자王者가 백성들에게 구하는 것은, 그 거친 것은 역전力田(力農)에서 시작되고, 그 정세精細한 것은 효제孝悌 염치廉恥의 예절에서 끝납니다.
역전力田은 백성들에게 가장 수고로운 일이요, 효제孝悌 염치廉恥필부필부匹夫匹婦(일반 사람)에게 기쁘지 않은 것입니다.
가장 수고로운 일을 강제로 시켜 스스로 기쁜 마음을 갖게 하고, 기쁘지 않은 것을 권하여 서로 사랑하는 뜻을 갖게 하기 때문에, 왕도王道의 이루어짐이 백성에게 이르는 지경에 미치는 거리가 또한 멀고도 깊은 것입니다.
옛날 천하가 재앙을 만나 수재水災한재旱災가 서로 이어져 상하가 서로 보전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그 가 백성들이 역전力田을 스스로 기뻐하지 않는 데서 일어난 것입니다.
천하가 난리를 만나 도적이 방자하게 굴고 전쟁이 멈추지 않자 백성들이 작업하는 일을 즐겨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그 가 백성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아 그 효제孝悌 염치廉恥의 예절을 팽개친 데서 일어난 것입니다.
스스로 기뻐하면 아무리 수고스럽더라도 그 하는 일을 변경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면 아무리 강한强狠한 마음을 가졌더라도 그 친척親戚들의 즐거움을 고려하여 차마 불의不義에 스스로 버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왕도王道의 큰 권한입니다.
지금 천하의 사람들은 공상工商의 이익을 탐하여 농사짓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오직 그중에서 가장 우하愚下한 사람만이 자신의 무능함을 스스로 안 연후에 전묘田畝를 편안히 여기고 떠나지 않습니다.
산림山林에서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백성들은 모두 도척盜跖 같은 흉포한 마음을 가지고, 규문閨門 안에서는 부자父子가 교대로 분노하되 반성할 줄 모르며, 조정朝廷 상에는 비록 현인賢人이 있으나 그 가르침이 아래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사대부士大夫들 사이에는 왕도王道가 멀어서 이루기 어려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삼대三代유문遺文을 볼 때에 《시경詩經》에 이르러서 왕도王道의 이룸이 쉽고 어렵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사람이 이것(力田)을 기뻐하지 않은 것은 역전力田을 하는 재미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를 지을 때에, 밭을 갈고 김을 매고 씨를 뿌리는 일을 말하고, 연말에 창름倉廩풍실豐實함과 처자식이 희락喜樂하는 실정을 기술하여 그 뜻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예리하고 좋은 보습으로 남쪽 이랑에서 일을 하여 백곡百穀을 파종하니 열매가 기를 머금고 나오도다.
〈부인이 들밥을〉 내와 너를 보니 네모진 광주리와 둥근 광주리에 그 밥은 기장밥이로다.
가벼운 삿갓 쓰고 호미로 땅을 파서 여뀌를 제거하도다.”라고 읊었습니다.
이때에는 백성들이 이미 노력하였는지라, 그러므로 실가室家(부인)가 들밥을 내와 위로하는 광경을 말하여 그 일을 마무리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종장終章에서는 “여뀌가 썩으니 서직黍稷이 무성하도다.
서직黍稷을〉 싹둑싹둑 베고 〈서직黍稷을〉 차곡차곡 쌓으니 그 높음 담과 같고 그 즐비함 빗살과 같은데 〈백실百室이 동시에〉 백실百室의 문을 열었도다.
백실百室의 〈마당이〉 모두 가득하니 처자식들 편안하도다.
입술 검은 수소를 잡으니 뿔이 굽은 놈이로다.
계속하고 계속해서 선조를 이어 제사를 지내도다.”라고 읊었습니다.
이때에는 일 년 내내 짓던 농사가 이미 끝났으니, 노력한 백성들이 그 처자식과 더불어 모두 이를 즐겨 휴식을 취하며 한가히 지내고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으며 스스로 한 해를 상쾌하게 보내면, 근로한 자는 그로 인하여 그 근로한 피로를 스스로 잊게 되고, 힘을 다한 자는 그로 인하여 그 힘을 별로 쓰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되며, 잔포殘暴하여 친애親愛가 없는 사람은 모열慕悅하는 바가 있어서 그 조행을 스스로 고치게 됩니다.
이것은 유독 에서만 그렇게 말했을 뿐이 아니라, 그들을 인도하여 그 이로운 것을 얻게 하고, 그들을 가르쳐서 그 즐거움을 알게 하면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또한 백성의 성질은 본디 즐거운 바를 편안히 여기고 이로운 바를 기뻐하니, 이래서 왕도王道는 어려움이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은 들으니 “백성을 유도하는 형세는 먼 거리가 가까운 거리만 못하고 가까운 거리가 그들끼리 서로 더불어 경쟁하는 것만 못하다.”고 합니다.
지금 조정 가운데서는 〈효제 염치 등이〉 잘 행해지고 있지만, 전야田野의 백성들은 개과천선改過遷善할 마음이 없으니, 이것은 어찌 그 거리가 멀어서 이르기 어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군현郡縣의 관리를 투명하게 선택하고 법률法律의 금지를 신중하게 적용하여 형벌을 저자에 공포하지만 완악한 백성은 허물을 고치지 않습니다.
향당鄕黨의 백성들은 군현郡縣의 관리 보기를 동등한 사람이 아니라 여기고 한갓 그들이 법을 적용하는 것만을 두려워하니, 그 앞에서 어깨를 드러내어 매를 맞는다 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 형세가 백성의 밝혀진 죄에는 미쳐 갈 수 있으나 그 숨겨진 것에는 미쳐 갈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은 어찌 그 거리는 가까우나 더불어 경쟁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직 그 이항里巷 친척親戚의 사이에서 어릴 때 서로 어울려 함께 장난치고, 장성했을 때 서로 어울려 함께 일을 하는, 바로 이것이 서로 더불어 경쟁하는 것입니다.
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옛날에는 군현郡縣삼로三老색부嗇夫를 두었으니,
지금도 백성 중에 효제孝悌하고 허물이 없으며 역전力田에 게으르지 않아 백성들이 평소 심복하는 자를 선택해서 〈삼로三老색부嗇夫로〉 삼게 하여,
그들에게 다른 일은 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그 백성 중에 게으르고 어질지 못한 자를 나무라고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세시복랍歲時伏臘의 명절마다 군현郡縣에서 예절을 갖추어서 천하를 교화하여 그 일을 모열慕悅하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부끄러워하여 신복할 마음을 갖도록 힘쓰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백성들이 더불어 경쟁하는 바를 따라서 가르치지 않고 그들이 평소에 두려워하는 바를 따릅니다.
그들이 평소에 두려워하는 바는 저들이 동반자로 여기지 않는 것이니, 어떻게 감히 만에 하나라도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을 가르치기를 그들이 서로 어울려 경쟁하는 데로부터 시작하면 왕도王道가 점점 아래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 한 글자가 명목이 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특별히 말한 ‘삼로三老색부嗇夫’가 여리閭里이목耳目이니 그들의 가르침이 쉽게 행해질 수 있을 뿐이다.


역주
역주1 民政策 一 : 《欒城應詔集》에는 篇首에 ‘臣聞’ 2字가 있다.
역주2 三老 : 嗇夫와 더불어 秦나라에서 설치하여 漢‧晉‧宋으로 이어진 향촌의 벼슬 이름이다. 三老는 敎化를 담당하고, 嗇夫는 訟獄과 賦稅를 담당하였다.
역주3 李龍眠白描 : 李龍眠은 宋代의 李公麟을 가리킨다. 그의 자는 伯時, 호는 龍眠山人이다. 詩畵에 뛰어나고, 奇字를 많이 알아 夏商 이래 鐘鼎과 尊彛의 연대를 고증하고 款識를 분변하였다. 특히 山水畵와 佛像을 잘 그려 산수화는 唐나라 李思訓과 같고, 불상은 唐나라 吳道子에 가까웠다. 뒤에 龍眠山莊에서 호를 龍眠山人이라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만년을 보냈다.
白描는 동양화 描法의 하나로, 엷고 흐릿한 곳이 없이 먹으로 진하게 線만을 그리는 일을 가리킨다. 白描畵, 線畵라고도 하는데, 吳道子와 李公麟을 白描聖手라고 추중하였다.
역주4 畟畟良耜……以薅荼蓼 : 《詩經》 〈周頌 良耜〉에 보인다.
역주5 荼蓼朽止……續古之人 : 역시 《詩經》 〈周頌 良耜〉에 보인다. 《鄭箋》에 “百室은 一族이니 一族이 동시에 곡식을 들인다.[百室一族也 一族同時納穀]”라고 풀이하였다.
역주6 歲時伏臘 : 새해, 三伏, 臘享 등을 총칭한 것이다.
역주7 <주석명/> : 孫琮은 《山曉閣選宋大家蘇潁濱全集》에서 “이 편은 크게 세 문단으로 나누어서 읽어야 한다. 前幅에서는 王道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점을 말하고, 中幅에서는 王道가 이루어지기 쉬운 점을 말하고, 末幅에서는 王道가 이루어지기 쉬운 문제가 아래에 있고 위에 있지 않다고 끝을 맺었다. 전편을 크게 세 문단으로 이루었으니, 이것이 바로 크게 문맥을 개진하고 크게 문맥을 합친 곳이다.
前幅과 中幅에서는 王道의 成否가 다만 백성의 力田과 孝悌 廉恥에 달려 있음을 말하고, 後幅에서는 백성에게 力田과 孝悌 廉恥를 하도록 요구하려면 三老와 嗇夫를 설치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음을 말하였다. 전편은 두 개의 뜻으로 일을 관철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골자를 이룬 부분이다.
前幅에서 한 문단을 일으켜 王道가 백성을 교화하는 깊이를 말하고, 따라서 곧 이어받아 한 문단을 쏟아내 古者와 今世로 각각 한 문단씩 나누고 네 문단을 만들어서 적어 내려왔다.
中幅에서는 王道가 쉽게 이루어짐을 논한 다음, 두 번 詩의 내용을 인용하고 또 백성의 성질을 가지고 증거를 댔으며, 세 문단을 만들어서 적어 내려왔다.
後幅에서는 王道가 이루어짐이 아래에 달려 있고 위에 달려 있지 않음을 말하였으며, 朝廷의 한 문단과 長吏의 한 문단을 쓸어버리고 三老와 嗇夫를 등장시켜 또한 세 문단으로 만들어 적어 내려왔으니, 이것이 바로 곡절을 이룬 부분이다.[此篇三大段讀 前幅是言王道之難成 中幅是言王道之易成 末幅結出王道易成之故 在下不在上 通篇作三大段 是其大開大合處 前幅中幅是說王道之成否 只在民之力田 與孝悌廉恥 後幅是說要民力田 與孝悌廉恥 莫若制三老嗇夫 通篇兩意貫事 是其骨子處 前幅一起說王道化民之深 隨卽承寫一段 分寫古者今世一段 作四段寫來 中幅論王道易成 兩引詩言 又以民性爲証 作三段寫來 後幅說王道之成 在下不在上 掃去一段朝廷 一段長吏 逼出三老嗇夫 亦作三段寫來 是其曲折處]”라고 비평하였다.
張伯行은 《唐宋八大家文鈔》에서 “王道의 근본은 力田과 孝悌에서 시작되니, 백성이 力田과 孝悌를 하게 하려는 책임은 위에 있는 사람이 鼓舞시켜 백성으로 하여금 이를 즐기게 해야 함을 논하였으니, 議論이 극히 醇正하다. 〈《詩經》의〉 詩를 인용하여 力田을 즐길 수 있음을 밝혔다. 맑고 깊은 經術에 의미가 심장하고 전편의 문법이 잘 펼쳐져 있으니, 더욱 熟誦할 만한 문장이다.[論王道之本 始于力田孝悌 而欲民之力田孝悌 在上之人 有以鼓舞之 使之其爲此之樂 議論俱極醇正 引詩以明力田之可樂 湛深經術 意味深長 而通篇文法舒展 尤可資熟誦]”라고 비평하였다.
姚鼐는 “중간에서 〈《詩經》의〉 詩를 인용한 1段의 文字는 매우 아름다우나 후반부에서 ‘백성들이 어울려서 경쟁해야 한다.’는 논술은 그다지 연결‧관통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子由의 정신이 모자란 부분이다.[中間引詩一段文字甚佳 而于後半民所與競議 不甚聯貫 是子由精神短處]”라고 비평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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