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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3)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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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文不著意하고 而援隱者之言하여 論身與性似入解니라
昔予遊여산廬山 見隱者焉이러니 爲予言
性猶日也 身猶月也라하니라
予疑而詰之한대 則曰
人始有性而已 性之所寓爲身이니라
天始有日而已 日之所寓爲月이니라
日出於東이니 方其出也 萬物賴焉이니라
有目者以視하고 有手者以執하고 有足者以履하며 至於山石草木 亦非日不遂니라
及其入也 天下黯然하여 無物不廢이나 日則未始有變也니라
惟其所寓 則有盈闕이니 一盈一闕者 月也니라
惟性亦然하여 出生入死 出而生者 未嘗增也 入而死者 未嘗耗也 性一而已니라
惟其所寓 則有生死 一生一死者 身也니라
雖有生死 然而하니 未嘗息也니라
身與月皆然하니 古之治術者知之니라
日出於 謂之命이요 月之所在 謂之身이니라
日入地中 雖未嘗變이나 而不爲世用이니라
復出於東然後 物無不覩 非命而何
月不自明이요 由日以爲明이니라
以日之遠近으로 爲月之盈闕이니 非身而何
此術也 而合於道니라
世之治術者 知其說이나 不知其所以說也라하니라
予異其言而志之久矣니라
築室於斯하고 闢其東南爲小軒하니 之前廓然無障하여 幾與天際니라
每月之望 開戶以須月之至하고 月入吾軒이면 則吾坐於軒上하여 與之徘徊而不去니라
一夕擧酒延客하여 道隱者之語하니 客漫不喩曰 吾嘗治術矣 初不聞是說也라하니라
予爲之反復其理하니 客徐悟曰 唯唯라하니라
因志其言于壁하노라


06. 대월헌待月軒에 대한 기문
문장에 집착하지 않고 은자隱者의 말을 원용해서 몸과 을 논하여 해석한 쪽으로 들어간 것 같다.
옛날 내가 여산廬山에서 노닐 때에 은자隱者를 만나보았더니, 그는 나를 위하여 ‘성명性命’의 이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은 해와 같은 것이고, 몸[身]은 달과 같은 것이니라.”
내가 의심이 나서 힐문詰問하였더니,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에겐 처음에 만 있을 뿐이고, 이 붙은 바가 몸이 되느니라.
하늘엔 처음에 해만 있을 뿐이고, 해가 붙은 바가 달이 되느니라.
해는 동쪽에서 나오는데, 해가 나올 때에는 만물이 해의 덕을 입느니라.
눈을 가진 자는 해 때문에 사물을 보게 되고, 손을 가진 자는 해 때문에 물건을 가지게 되고, 발을 가진 자는 해 때문에 땅을 밟게 되며, 산과 돌과 풀과 나무도 해가 아니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느니라.
해가 땅속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천하가 깜깜하여 폐해지지 않는 사물이 없지만, 해는 처음부터 변함이 있지 않느니라.
오직 해에 의지하는 바에만 영만盈滿궐결闕缺이 있으니, 한 번 영만盈滿하고 한 번 궐결闕缺하는 것은 달이니라.
도 그리하여 숨을 쉬면 살고 숨을 거두면 죽지만, 숨을 쉬고 사는 경우도 증가되는 것이 있지 않고, 숨을 거두고 죽는 경우도 감손되는 것이 있지 않으니, 은 하나일 뿐이니라.
오직 에 의지하는 바에만 삶과 죽음이 있으니, 한 번 살고 한 번 죽는 것은 몸이니라.
비록 삶과 죽음이 있지만, 여기에서 죽고 저기에서 태어나니, 멈추지 않느니라.
몸과 달이 다 그러하니, 옛날 술법術法을 다스리는 자는 이것을 알았느니라.
그러므로 해가 묘시卯時에 나옴은 ‘’이라 이르고, 달이 있는 바는 ‘몸’이라 이르느니라.
해가 땅속에 들어갔을 때에는 비록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상에서 이용하는 바가 되지는 못하느니라.
다시 동쪽에서 나온 연후에 만물이 보지 않음이 없으니, 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달은 스스로 밝지 못하고 해로 말미암아 밝게 되느니라.
해의 원근遠近으로써 달이 영궐盈闕을 하니, 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술법은 에 합하느니라.
세상에서 술법을 다스리는 자는 그 말은 알지만, 그 말을 하는 까닭은 알지 못하느니라.”
나는 그 말을 특이하게 여겨 기록해둔 지 오래였다.
여기에 집을 짓고 그 동남쪽을 터서 헌함軒檻을 만드니, 헌함軒檻의 앞이 막힘없이 툭 틔어서 거의 하늘과 끝을 같이하였다.
매월 보름이면 문을 열고 달이 뜨기를 기다렸고, 달이 나의 헌함軒檻에 비치면 나는 헌함軒檻 위에 앉아서 달과 함께 배회하고 떠나지 않았다.
하루 저녁에는 술자리를 마련하고 손님을 맞이하여 은자隱者의 말을 설명하였더니, 손님은 알아듣지 못하고 “나는 일찍이 술법을 다스렸으나 당초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소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반복해서 그 이치를 설명하였더니, 손님은 서서히 깨닫고는 “맞아, 맞아.”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말을 벽에 적어두노라.


역주
역주1 待月軒記 : 〈待月軒記〉는 아마 만년의 작품인 것 같으나 정확한 연대는 상고할 수 없다. 宋代 吳泳이 편찬한 《鶴林集》에 “欒城(蘇轍)이 만년에 〈待月軒記〉를 지어 스스로 이치를 최고로 본 것처럼 여겼지만, 文公(朱熹)만은 ‘그 軒은 바로 人身, 月은 바로 人性에 비유한 것은 밖에서 빌려서 안에 합치시킴을 면치 못했다.’고 했다.[欒城晩年 作待月軒記 自以爲見理最高 而文公獨謂 其軒是人身 月是人性 未免假外而合內]”란 말이 보인다.
역주2 性命之理 : ‘性命’은 《周易》 乾卦 彖傳에 “乾道가 變化함에 각각 性命을 바르게 한다.[乾道變化 各正性命]”라 보이는데, ‘性命’에 대하여 朱子는 그 本義에서 “만물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을 ‘性’이라 하고, 하늘이 〈만물에〉 부여하는 것을 ‘命’이라 한다.[物所受爲性 天所賦爲命]”고 정의하였고, 《中庸》 제1장에 “하늘이 명령한 것을 ‘性’이라 이른다.[天命之謂性]” 하였는데, 朱子는 그 註에서 “命은 令과 같으며, 性은 곧 理이다. 하늘이 陰陽과 五行으로 萬物을 化生함에 氣로써 형체를 이루고, 理를 또한 부여하니, 命令함과 같다. 이에 사람과 만물이 태어남에 각각 그 부여한 理를 얻어서 健順(陽德‧陰德)과 五常(仁義禮智信)의 德으로 삼으니, 이른바 ‘性’이다.[命猶令也 性卽理也 天以陰陽五行 化生萬物 氣以成形而理亦賦焉 猶命令也 於是 人物之生 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性也]”라고 풀이하였다.
孟子가 최초로 ‘性’과 ‘命’의 관계를 제시하여 《孟子》 〈盡心 上〉에서 “그 마음을 간직하고 그 性을 기름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고, 요절과 장수에 관심 갖지 않고 오직 몸을 닦아 천명을 기다림은 命을 순하게 받으려는 것이다.[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殀壽不貳 修身以俟之 所以立命也]”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性命關係는 東漢의 王充과 荀悅, 北宋의 張載 등을 거치면서 사상체계를 이루는 하나의 命題가 되었다.
역주3 死此生彼 : 저본에는 ‘此生彼’로 되어 있는데, 宋代 魏齊賢이 편찬 《五百家播芳大全文粹》에 의하여 ‘死此生彼’로 바꾸었다.
역주4 : 곧 卯時. 옛날에는 12地支로 시간을 계산하였으니, 卯時는 5시에서 7시까지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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