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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3)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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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去佛老니라
본론구양자歐陽子본론本論 以生死二端으로 作波瀾이니라
하고 將有以正之 必有以柔之니이다
納之於正하되 而無傷其心하고 去其邪僻하되 而無絶其不忍之意니이다
有所矯拂天下하여 大變其俗이나 而天下不知其爲變也니이다
釋然而順하고 油然而化하고 無所齟齬하여 而天下遂至於大正矣니이다
蓋天下之民 邪淫不法하여 紛亂而至於不可告語者 非今世而然也니이다
夫古者三代之民 耕田而後食其粟하고 蠶繅而後衣其帛이니이다
欲享其利而勤其力하고 欲獲其報而厚其施하며 欲求父子之親하여 則盡心於慈孝之道하고 欲求兄弟之和하여 則致力於之節하고 欲求夫婦之相安 朋友之相信하여 亦莫不務其所以致之之術이니이다
民各致其生하여 無望於僥倖之福하고 而力行於可信之事하니 凡其所以養生求福之道 如此其精也니이다
至其不幸而死 其親戚子弟 又爲之死喪祭祀 歲時伏臘之制하여 以報其先祖之恩하고 而可安䘏孝子之意者 甚具而有法이니이다
籩豆簠簋飮食酒醴之薦 而大者於廟하고 而小者於寢하며 薦新時祭 春秋不闕이니이다
民終三年之憂하고 而又有終身不絶之恩愛하여 惨然若其父祖之居於其前而享其報也니이다
至於後世則不然이니이다
民怠於自修하여 而其所以養生求福之道 皆歸於鬼神冥寞之間하고 不知先王祭祀之禮하여 而其所以追養其先祖之意 皆入於佛老虛誕之說이니이다
是以 하여 縱橫放肆하며 其尊貴富盛 擬於王者하고 而其徒黨遍於天下니이다
其宮室棟宇衣服飮食 常侈於天下之民이나 而中國之人 明哲禮義之士 亦未嘗以爲怪하고 幸而其間 有疑怪不信之心이나 則又安視而不能去니이다
此其故何也잇고 彼能執天下之權하여 而吾無以當之 是以 若此不可制也니이다
蓋天下之君子 嘗欲去之하고언만 去之不久 而還復其故니이다
其根之入於民者甚深하고 而其道之悅於民者甚佞이니이다
天下之民 以爲養生報死 皆出於此어늘 吾未有以易之하여 而遂絶其敎하며 欲納之於正하되 而傷其心하고 欲去其邪僻하되 而絶其不忍之意니이다
民之從之也甚難이니이다
聞之曰 이라하니 作乎此者 必有以動乎彼也리니이다
夫天下之民 非有所悅乎佛老之道하고 而悅乎養生報死之術이니이다
今能使之得其所以悅之之實하고 而去其所以悅之之名이면 則天下何病而不從이리잇가
蓋先王之敎民 養生有方하고 而報死有禮니이다
凡國之賞罰黜陟 各當其實하고 貧富貴賤 皆出於其人之所當然이니이다
力田而多收하고 畏法而無罪하고 行立而名聲發하고 德成而爵祿至니이다
天下之人 皆知其所以獲福之因이니 無惑於鬼神이니이다
而其祭祀之禮 所以仁其祖宗而慰其子孫之意者 非有鹵莽不詳之意也니이다
孝子慈孫 有所歸心하여於佛老니이다
臣愚以爲 嚴賞罰하고 勅官吏하고 明好惡하고 愼取予하고 不赦有罪하여 使佛老之福으로 不得苟且而惑其生하고 因天下之爵秩하여 建宗廟하고 嚴祭祀하고하여 有以大塞人子之意하여 使佛老之報 不得乘隙而制其死니이다
한당시대漢唐之際 嘗有行此者矣 而佛老之說未去니이다
嘗有去者矣하니 是以 其道牢固而不可去하고 旣去而復反其舊니이다
今者國家 幸而欲減損其徒하니 日朘月削하여 將至於亡이리니이다
이나 臣愚恐天下尙猶有不忍之心이니 天下有不忍之心이면 則其勢不可以久去니이다
臣欲奪之 而有以予之하고 正之 而有以柔之하여 使天下無憾於見奪하고 而日安其新이니 此聖人所以變天下之術歟인저
당형천唐荊川曰 此等文體 在論與奏議之間이니라


03. 백성을 위하는 정치에 대한 책문策文 3
불로佛老(佛敎와 도교道敎)를 제거할 것에 대한 논술이다.
구양자歐陽子(歐陽修)의 〈본론本論〉에 근거를 두고 구상해 온 것인데, 두 가지를 가지고 파란을 일으켰다.
성인聖人은 장차 모종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모종의 것을 주고, 장차 모종의 것을 교정矯正하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모종의 것으로 회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도에 몰아넣되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그 사벽邪僻을 제거하되 그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잘라버리지 않았습니다.
천하를 바로잡고 그 풍속을 크게 변화시켰으나 천하 사람들은 그 변화된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의심 없이 따르고 태연히 변화하고 어긋나는 바가 없어서 천하가 드디어 대정무사大正無邪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천하의 백성들이 사음邪淫으로 불법을 자행하여 분란紛亂한 정도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은 지금 세상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옛날 삼대三代의 백성들은 밭을 간 뒤에 거기서 생산된 곡식을 먹고, 누에고치를 켠 뒤에 그것으로 짜낸 비단옷을 입었습니다.
이익을 누리려고 노력을 하고, 보답을 받으려고 후하게 베풀었으며, 부자간의 친애親愛를 구하기 위하여 자효慈孝의 도리에 마음을 다하고, 형제간의 화목을 구하기 위하여 장제長悌의 예절에 힘을 다하고, 부부간의 안락과 친구간의 신의를 구하기 위하여 또한 그것을 이루는 방법에 힘쓰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각각 삶을 영위하여 요행한 복을 바라지 않고 믿을 만한 일을 힘써 행하였으니, 무릇 그들이 삶을 보양하고 복을 구했던 방법은 이와 같이 정결하였습니다.
불행하게 죽음에 이르면 그 친척과 자제들이 또 상례喪禮를 치르고 제사를 지내고 세시歲時복랍伏臘에 차례를 올리는 예제를 마련하여 그 선조先祖의 은혜를 갚았고, 효자孝子의 마음을 위안시킬 수 있는 것도 아주 잘 갖추어져 법제화되어 있습니다.
변두籩豆, 보궤簠簋, 음식飮食, 주례酒醴를 올리는 것을, 큰 제사 때는 사당에서 올리고, 작은 제사 때는 침실에서 올리며, 새로운 음식을 올리고 때에 따라 지내는 제사를 춘추로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삼년상을 마치고 또 종신토록 끊지 못할 은애恩愛을 가져 참연惨然한 마음으로 마치 그 부조父祖가 앞에 앉아서 그 보답으로 차린 제사음식을 흠향하시는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후세에 와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백성들은 스스로 몸을 닦는 일에 나태하여 그 삶을 보양하고 복을 구하는 방법을 모두 귀신鬼神명계冥界에 돌려버리고, 선왕先王이 마련한 상기喪紀제사祭祀를 알지 못하여 그 선조先祖를 추모하고 봉양하는 뜻을 모두 불로佛老허탄虛誕에 맡겨버립니다.
이러므로 사이四夷중국中國에 난무하여 종횡縱橫하고 방사放肆하며 그 존귀尊貴하고 부성富盛함이 왕자王者에 비견되고 그 도당徒黨이 천하에 널려 있습니다.
그들의 궁실宮室, 동우棟宇, 의복衣服, 음식飮食 등이 항상 천하의 인민보다 호사스럽지만 중국 사람은 명철明哲하고 예의禮義를 지키는 선비들까지도 그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않고, 다행히 그 사이에 의괴疑怪하여 불신한 마음을 갖는 자가 있더라도 또한 태연스럽게 보고 능히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저들은 능히 천하에서 ‘양생보사養生報死’하는 권리를 가져서 우리가 그들을 당할 수 없으니, 이러므로 이와 같은 행위를 제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개 천하의 군자君子들은 일찍부터 불로佛老를 제거하려고 하였고, 또한 이미 제거한 적도 있었지만, 제거된 지 오래지 않아서 도로 그 전의 상태로 회복되었습니다.
그 뿌리가 백성들에게 몹시 깊이 파고들었고, 그 가 백성들을 몹시 미혹하여 기쁘게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군자君子들은 불로佛老가 백성들에게 파고든 원인을 알아내거나 백성들이 불로佛老를 좋아하는 풍속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하였으니, 이러므로 끝내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습니다.
천하의 백성들은 ‘양생보사養生報死’하는 방법이 모두 불로佛老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기거늘, 우리는 변개하여 그 교리를 잘라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갖지도 못하였으며, 정도正道에 몰아넣으려고 하되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사벽邪僻을 제거하려고 하되 그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잘라버립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따라오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듣건대 “냇물이 마르면 골짝이 텅 비고, 언덕이 무너지면 연못이 메워진다.”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진작시키면 반드시 저기에서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천하의 백성들은 진심으로 불로佛老의 교리를 좋아하거나 양생보사養生報死하는 방법을 좋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그들로 하여금 참으로 좋아할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을 터득하게 하고 공연히 좋아하는 형식적인 이름을 버리게 한다면, 천하 사람들이 무엇이 고달파서 따르지 않겠습니까?
대개 선왕先王이 백성을 가르침은 양생養生하는 데에 방법이 있고 보사報死하는 데에 예절이 있었습니다.
무릇 나라의 상벌賞罰출척黜陟은 각각 그 실정에 맞게 시행하였고, 빈부貧富귀천貴賤은 모두 그 사람의 〈근태勤怠 여하에 따라〉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 주어졌습니다.
농사에 힘쓰면 수확이 많고, 법을 두려워하면 죄가 없고, 행실이 확립되면 명성名聲이 발휘되고, 이 이루지면 작록爵祿이 이르렀습니다.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복을 획득하는 원인을 알았으니, 그러므로 귀신鬼神에게 미혹되지 않았습니다.
제사祭祀조종祖宗에게 인애仁愛를 베풀고 그 자손子孫을 위로하기 위한 의미를 가진 것이고, 거칠어 상밀詳密하지 못한 뜻을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효자孝子자손慈孫이 마음을 귀착시킬 바가 있어서 불로佛老을 일삼지 않았습니다.
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상벌賞罰을 엄격히 하고, 관리官吏를 단속하고, 호오好惡를 투명하게 하고, 취여取予를 신중하게 하고, 범죄자를 사면하지 아니함으로써 불로佛老이 구차하게 그 살아 있는 사람을 미혹할 수 없게 하고, 천하의 작질爵秩에 따라 종묘宗廟를 세우고, 제사祭祀를 엄숙하게 지내고, 시축尸祝을 세워 인자人子의 마음을 만족시킴으로써 불로佛老의 보답이 틈을 타서 그 죽어간 사람을 제어할 수 없게 했으면 합니다.
대개 한당시대漢唐時代에 일찍이 이런 일을 행한 적이 있었으나 불로佛老이 제거되지 못하였습니다.
일찍이 제거된 적도 있었지만, 상벌賞罰이 상밀하지 못하고 제사祭祀가 근엄하지 못하였으니, 이러므로 불로佛老가 견고하여 제거할 수 없었고, 이미 제거되었다가 다시 예전 상태로 회복되었습니다.
지금 국가에서 다행히 그 무리를 줄이려고 하니, 날로 줄어들고 달로 삭감되어 장차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 어리석은 생각은 천하 사람들이 오히려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질까 두려우니, 천하 사람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 형세는 오래 제거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은 모종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면 모종의 것을 먼저 주고, 모종의 것을 교정하려고 하면 모종의 것으로 회유하여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빼앗기는 데 유감이 없고 날로 그 새로운 것을 편안하게 여기도록 하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성인聖人이 천하를 변화시켰던 방법입니다.
당형천唐荊川은 말하기를 “이와 같은 문체文體주의奏議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民政策 三 : 《欒城應詔集》에는 篇首에 ‘臣聞’ 2字가 있다.
역주2 聖人……必有以予之 : 여기서는 佛老의 교리를 박탈하려고 하면, 먼저 儒家의 교리를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한 말이다.
역주3 長悌 : 어른을 섬기고 아우와 우애하는 일을 가리킨다.
역주4 喪紀 : 喪事로 곧 喪葬의 일을 가리킨다. 《禮記》 〈文王世子〉에 “喪紀는 服의 輕重으로 차서를 정한다.[喪紀 以服之輕重爲序]”고 하고, 그 注에 “紀는 事다.”라고 하였다.
역주5 四夷之敎 交於中國 : 佛敎가 印度에서 왔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6 養生報死 : 살아 있는 사람을 보양하고 죽어간 사람을 보답하는 일을 가리킨다.
역주7 亦旣去矣 : 宋代 이전에 몇 차례 실시한 滅佛運動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北魏의 道武帝, 北周의 武帝, 唐代의 武宗이 모두 불교의 금지에 힘써 僧侶를 還俗시켰으니, 史家는 이를 ‘三武滅佛’이라 칭하고, 佛家에서는 ‘三武之難’이라 칭하였다.
역주8 世之君子……終不能服天下之意 : 佛敎를 멸망시키려는 자들이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원인을 규명하여 그 증세에 대해 약처방은 하지 않고, 단지 강제로 조처하여 사람들이 불교를 좋아하는 풍속만을 고치려고 하였기 때문에, 천하 사람들을 심복시킬 수 없었음을 이르는 말이다.
역주9 川竭而谷虛 丘夷而淵實 : 《文子》에 있는 말인데, ‘淵實’이 《文子》에는 ‘泉塞’으로 되어 있다.
역주10 無事 : 侍奉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역주11 尸祝 : 尸는 神主, 祝은 大祝(祝官)을 가리킨다.
역주12 賞罰不詳 祭祀不謹 : 佛老가 민중을 미혹시키는 것에 대하여 賞罰이 신중하지 못하고, 祖宗의 은혜를 追念하기 위하여 祭禮를 집행하는 것이 嚴謹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주13 <주석명/> : 張伯行은 《唐宋八大家文鈔》에서 “관직에 있는 이가 백성을 교화함에 그 도리를 잃자, 佛老의 敎가 그 빈틈을 타고 들어왔다. 三代의 왕성할 때에는 백성들의 ‘養生報死’하는 것이 그 당연한 도리를 다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비록 佛老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佛老의 敎가 행해지게 된 것은 先王의 道가 쇠퇴했기 때문이다. ‘진실로 先王의 道를 닦아서 저들(佛老)이 구차하게 살아 있는 사람을 미혹시킬 수 없게 하고, 틈을 타서 그 죽어간 사람을 제어할 수 없게 한다면, 佛老의 敎는 물리치지 않아도 저절로 제거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지당하여 바꿀 수 없는 論이다.
蘇氏의 學이 晩年에 모두 佛老에 빠져들었는데, 그 글이 이와 같으니, 그것은 아마 나이가 젊고 기운이 왕성하여 異端에 미혹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또한 制科에 應試하는 글은 다만 議論이 좋은 것을 취하고 마음은 꼭 그렇지 못한 것이었을까?[在官之化民也 失其道 而佛老之敎 乘虛而入 若三代盛時 民所以養生報死者 莫不盡其當然之道 雖有佛老 豈得而入乎 故佛老之敎行 由先王之道廢也 誠使修明先王之道 使彼不得苟且而惑其生 不得乘隙而制其死 則佛老之敎 不待辟而自袪矣 此至當不易之論也 蘇氏之學 晩年皆入于佛老 而其文如此 豈年壯氣盛 不爲異端所惑而然歟 抑亦制科應試之文 但取議論好而心未必然耶]”라고 비평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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