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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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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05. 나라
衛之大亂者再 皆起於父子夫婦之際니라
나라의 대란大亂은 두 차례나 있었는데, 모두 부자父子, 부부夫婦의 사이에서 일어났다.
선공宣公영공靈公이 오로지 화단禍端을 일으키려고 한 것은 진실로 족히 말할 것이 못 되거니와, 급자急子수자壽子는 서로 앞다투어 죽었고, 장공莊公출공出公부자父子가 서로 공격하여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온 기간이 20여 년이나 되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賢愚之不同 至此哉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같지 않음이 이렇게까지 되었던가?
이나 하여 以重父之過하니 可以爲廉矣 未得爲仁也니라
그러나 급자急子수자壽子는 의리를 중시하였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나라의 태백太伯(泰伯)이 되지 못하고 신생申生를 답습하여 자기 아버지의 과실을 가중시켰으니, 청렴한 사람은 될 수 있으나 한 사람은 될 수 없었다.
昔者 孔子之門人季路高柴 皆事出公이니라
옛날에 공자孔子의 문인인 계로季路(子路)와 고시高柴는 모두 출공出公(衛輒)을 섬겼다.
孔子自陳反於衛하신대 子路問曰 衛君待子而爲政하시나니 子將奚先이시릿가 孔子曰 必也正名乎인저
공자孔子께서 나라로부터 나라에 돌아오시니, 자로子路가 묻기를 “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기다려 정치를 맡기려고 하시니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라고 하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명분을 먼저 바로잡겠다.
名不正이면 則言不順하고 言不順이면 則事不成하고 事不成이면 則禮樂不興하고 禮樂不興이면 則刑罰不中하고 刑罰不中이면 則民無所措手足이니라
명분이 바로 서지 못하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흥기되지 못하고, 예악이 흥기되지 못하면 형벌이 바르게 적용되지 못하며, 형벌이 바르게 적용되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명분이 서면 반드시 말을 할 수 있고, 말을 하면 반드시 그대로 시행할 수 있으니, 군자는 말을 함에 있어서 구차할 것이 없을 뿐이니라.”고 하셨다.
嗚呼
아!
衛之名 於是可謂不正矣니라
나라의 명분이 이때에 바로 서지 못했다고 할 수 있도다.
靈公黜其子而子其孫하고 出公不父其父而禰其祖하니 人道絶矣니라
영공靈公은 아들을 내쫓고 손자를 아들로 여겼고, 출공出公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고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겼으니, 인륜人倫의 도덕이 절단된 것이다.
孔子於是焉而欲正之신댄 何爲而可
공자孔子께서 이때에 명분을 바로 세우려고 하셨다면 어떻게 했어야 옳았겠는가?
영공靈公이 죽자 나라 사람들은 공자公子 을 세우려 하다가 이 마땅치 않자 을 임금으로 세웠다.
使輒而知禮인댄 必辭하고 辭而不獲인댄 必逃하며 輒逃而郢立이면 則名正矣리니라
가사 를 알았다면 반드시 사양을 했을 것이고 사양해도 안 되면 반드시 도망을 갔을 것이며, 이 도망가고 이 임금으로 즉위했다면 명분이 바로 섰을 것이다.
雖以拒蒯聵라도 可也니라
비록 괴외蒯聵를 막았더라도 괜찮았을 것이다.
雖然이나 孔子爲政 豈將廢輒而立郢耶
비록 그렇지만 공자孔子께서 정치를 하심에 어찌 장차 을 폐하고 을 세우시겠는가?
其亦將敎輒避位而納蒯聵耳니라
또한 장차 으로 하여금 임금의 지위를 피하게 하고 괴외蒯聵를 들여앉히는 정도였을 것이다.
蒯聵得罪於父하여 生不養하고 死不喪이니라
괴외蒯聵는 아버지에게 죄를 얻어 살아서는 봉양하지 못하고 죽어서는 거상하지 못하였다.
이나 於其入也 春秋書曰 이라하니
그러나 그가 나라에 들어온 것에 대하여 《춘추春秋》에서는 “나라 조앙趙鞅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나라 세자世子 괴외蒯聵 지방에 들여보냈다.”라고 적었다.
세자世子가 아닌데도 세자世子라고 이름을 한 것은 그 아들이 나라에 임금이 되었으므로 그는 세자世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若輒避位而納其父 是世子爲君也어늘 而名有不正乎
만일 이 임금의 지위를 피하고 그 아버지를 들여보냈다면 이 세자世子가 자연히 임금이 되는 것이니, 명분이 바로 서지 않았겠는가?
名正而衛定矣리니라
명분이 바로 서면 나라가 안정되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 衛나라에 처음 봉해진 君主는 周 武王의 아우 康叔이며, 뒤에 秦나라에 멸망되었다.
이 글은 《古史》 卷14 〈衛康叔世家 제7〉에서 篇名으로 취하였다.
역주2 宣公靈公……固無足言者 : 宣公은 衛 桓公의 아우이고, 靈公은 衛 襄公의 아들이다. 《詩經》에 의하면 宣公은 자기 아들 伋의 妻를 빼앗아 자기 妻로 삼았다고 한다.
역주3 急子壽子 爭相爲死 : ‘急子’가 《史記》에는 ‘伋子’로 되어 있으니, 곧 子伋이다. 《史記》 〈衛康叔世家〉에 “宣公이 夫人 夷姜을 사랑하였고, 夷姜이 아들 伋을 낳으니 太子로 삼았다.”고 하였다. 壽子는 子壽로 太子의 異母弟이다.
宣公이 태자 伋을 齊나라로 사신 보내면서 그에게 白旄와 使節을 지급하고는, 국경에 있는 强盜에게 “白旄와 使節을 가진 사람을 보거든 잡아 죽이라.”고 몰래 알렸다. 子壽는 그 말을 듣고 子伋에게 가지 말도록 적극 권하였으나 子伋은 듣지 않았다. 子壽는 白旄와 使節을 몰래 훔쳐 가지고 먼저 국경에 이르러서 피살되었다. 뒤이어 子伋이 국경에 이르러서 말하기를 “응당 죽일 사람은 바로 나다.”라고 하니 강도는 또 太子 伋을 잡아 죽였다고 한다.
역주4 莊公出公……不以爲恥 : 《史記》 〈衛康叔世家〉, 《春秋戰國異辭》 등에 자세한 내용이 보인다.
衛 靈公의 太子 蒯聵가 靈公의 夫人 南子를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宋나라로 달아났다. 靈公이 죽으니 蒯聵의 아들 輒이 즉위하여 出公이 되었다. 出公 12년에 蒯聵가 기회를 타서 衛나라로 들어오니 出公은 魯나라로 달아났고, 蒯聵가 즉위하여 莊公이 되었다.
晉나라의 趙簡子가 衛나라를 치자, 衛나라에서는 莊公을 쫓아내고 公子 班師(襄公의 손자)를 세워 임금으로 삼았고, 齊나라가 衛나라를 쳐서 班師를 사로잡고 다시 公子 起(靈公의 아들)를 세워 임금으로 삼았으며, 뒤에 出公이 齊나라로부터 衛나라에 들어와 다시 임금이 되었으니, 그 사이 父子가 서로 공격한 연한이 20여 년이 되었다고 한다.
역주5 急壽勇於義……而蹈申生之禍 : 吳 太伯(泰伯)은 周 太王의 長子인데, 太王이 만년에 少子 季歷에게 왕위를 전하려고 하자, 太白은 왕위계승을 둘러싼 분쟁을 피하기 위하여 아우 仲雍과 함께 일부 周나라 사람을 거느리고 江南으로 도피해 가서 그곳에서 추대를 받아 君長이 되었다고 한다.
申生은 춘추시대 晉 獻公의 太子로 孝行에 뛰어났다. 獻公의 총애를 받은 驪姬가 자기 아들 奚齊를 嗣君(嗣王)으로 삼기 위하여 申生을 무고하자 獻公이 그를 죽이려고 하니, 公子 重耳가 그에게 피신하게 하였으나 그는 “천하에 어찌 아버지 없는 나라가 있겠는가?”라고 하며 피신하지 않고 자살하였다고 한다.
역주6 孔子自陳反於衛……無所苟而已矣 : 《論語》 〈子路〉에 “子路가 말하기를 ‘衛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기다려 정치를 맡기려고 하시니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라고 하니,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명분을 먼저 바로잡겠다.’라고 하셨다.
子路가 말하기를 ‘겨우 이것이군이요, 선생님께서는 사정을 너무도 모르십니다.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야비하구나, 由여! 군자는 잘 모르는 일은 그대로 놓아두는 법이다. 명분이 바로 서지 못하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흥기되지 못하고, 예악이 흥기되지 못하면 형벌이 바르게 적용되지 못하며, 형벌이 바르게 적용되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명분이 서면 반드시 말을 할 수 있고, 말을 하면 반드시 그대로 시행할 수 있으니, 군자는 말을 함에 있어서 구차할 것이 없을 뿐이니라.’고 했다.[子路曰 衛君 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子路曰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子曰 野哉 由也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란 내용이 보인다.
역주7 靈公之死也……則衛人立輒 : 《史記》 〈衛康叔世家〉에 “郢은 靈公의 少子로 자는 子南이다. 靈公이 太子가 달아난 것을 원망하며 郢에게 이르기를 ‘내 장차 너를 세워 後嗣로 삼으려 한다.’고 하니, 郢이 대답하기를 ‘저는 德이 부족하므로 社稷을 욕되게 할 수 없으니 임금께서는 다시 도모하소서.’라고 하였고, 여름에 靈公이 죽자, 夫人이 아들 郢에게 명하여 太子가 되게 하면서 ‘이는 靈公의 命이다.’라고 하니, 郢은 말하기를 ‘망명한 太子 蒯聵의 아들 輒이 있으니,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衛나라에서는 輒을 임금으로 삼았으니, 이가 바로 出公이다.”라고 하였다.
역주8 晉趙鞅帥師 納衛世子蒯聵于戚 : 《春秋》 哀公 2년에 보인다. 《春秋左氏傳》에는 ‘世子’를 ‘太子’로 적고 있다.
역주9 非世子而以世子名之……成其爲世子也 : 《五經正義》에서는 “世子란 아버지가 생존했을 때의 명칭인데, 蒯聵는 아버지가 이미 죽었는데도 ‘世子’라고 칭한 것은 晉나라 사람이 蒯聵를 들여보낼 때에 ‘世子’라고 고했기 때문이니, 이가 바로 世子임을 말하여 마땅히 임금이 되어야 함을 보인 것이다.[世子者 父在之名 蒯聵父旣死矣 而稱世子者 晉人納之以世子告 言是正世子 以示宜爲君也]”라고 하였는데, 蘇轍은 이와 달리 보고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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