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由所托諷富公處는 全在任人與篇末萬全之過四字하다
轍
은 西蜀之人
으로 二十有二
에 幸得天子
之爵
하니 饑寒窮困之憂
가 不至於心
이니이다
하고 其所任職
은 不過簿書米鹽之間
하여 而且未獲從事以得自盡
이니 方其閒居
에 不勝思慮之多
이니이다
不忍自棄
하여 以爲
라하니 而轍
이 不於其强壯閒暇之時
에 早有所
하여 以自致其志
면 而復何事
잇가
恭惟天子設
하여 將以待天下豪俊
之人
이시니 是以
로 轍不自量
하고 而自與於此
니이다
蓋
는 上自
以來
로 以至於今世
히 其所
이 亦已略備矣
나 而猶有所不釋於心
이니이다
是故
로 以
之恢廓慢易
로 而足以呑項氏之彊
하고 之寬厚長者
로 而足以服天下之姦詐
니이다
至於武帝
하여는 力有餘
하고 聰明睿智 過於高文
이나
竊惟 當今天下之人
에 其所謂有才而可大用者
는 非
而誰
잇가
推之公卿之間而最爲有功
하고 하고 하니 是三者
는 亦非明公而誰
잇가
古之聖人
은 로되 而望夫百世之後
에 以爲明主賢君者
는 蓋亦如是而可也
니이다
下而求之郡縣之吏면 則曰 非我能이라하고 上而求之朝廷百官이면 則曰 非我責이라하나이다
昔者에 秦越人이 以醫聞天下하니 天下之人은 皆以越人爲命이니이다
越人不在면 則有病而死者는 莫不自以爲吾病之非眞病이요 而死之非眞死也니이다
他日에 有病者焉하여 遇越人而屬之曰 吾捐身以予子하리니 子自爲子之才治之하고 而無爲我治之也하라하니 越人曰 嗟夫라
急治之면 則傷子之四肢하고 而緩治之면 則勞苦而不肯去니라
夫傷子之四肢而後에 可以除子之病이면 則天下以我爲不工하고 而病之不去면 則天下以我爲非醫리라
今子는 守法密微而用意於萬全者니 則是子猶知醫之醫而已니라하나이다
天下之事는 急之則喪하고 緩之則得이나 而過緩則無及이니이다
孔子曰 道之難行也
를 我知之矣
로니 는 過之
하고 不肖者
는 일새니라하시니이다
夫天下
於不知
요 而又有知而過之者
하니 則是道之果難行也
니이다
昔者
엔 世之賢人
이 患夫世之愛其爵祿
하되 而
니이다
도 亦不敢自愛
하고 叫號紛呶
하여 以攻訐其上之短
이니이다
是二者는 可謂賢於天下之士矣로되 而猶未免爲不知니이다
何者
오 不知自安其身之爲安天下之人
이요 自重其發之爲重
之勢
하고 而輕用之於尋常之事
니 則是猶匹夫之亮耳
니이다
伏自明公執政이 於今五年이언마는 天下不聞慷慨激烈之名하고 而日聞敦厚之聲이니이다
曹公이 與袁紹相持久而不決하고 以問賈詡하니 詡曰 公은 明勝紹하고 勇勝紹하고 用人勝紹하고 決機勝紹니이다
紹兵이 百倍於公이로되 公畫地而與之相守半年이나 而紹不得戰하니 則公之勝形을 已可見矣언마는
자유子由가 부공富公을 풍자한 부분은 모두 ‘임인任人’과 편말篇末의 ‘만전지과萬全之過’란 네 글자에 있다.
철轍은 서촉西蜀 사람으로서 행년行年 22세에 다행히 천자天子의 일명一命 관작官爵을 얻었으니, 기한饑寒과 궁곤窮困의 걱정이 마음에 이르지 않습니다.
몸에도 또한 역역力役 노고勞苦의 걱정이 없고, 맡은 직무는 부서簿書와 미염米鹽을 관리하는 일에 불과하여, 힘을 써서 재능을 다할 길이 없으니, 한가하게 있음에 수많은 사려思慮가 떠오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차마 포기할 수 없어 생각하기를 ‘천자天子께서 관혜寬惠한 마음으로 천하 사람들이 기탄없이 바른말을 하게 하신다는데, 철轍이 강장强壯하고 한가閒暇할 때에 일찍이 건의하여 스스로 그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면 다시 무슨 일을 하겠는가’라고 여겼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천자天子께서 제책과制策科를 설시하여 천하天下의 호준豪俊하고 괴뢰魁礨한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시니, 이 때문에 철轍은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 스스로 여기에 참여하였습니다.
제왕帝王이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일은, 위로 삼왕三王으로부터 금세今世에 이르기까지 그에 대한 논술論述이 이미 약간은 구비되어 있지만, 오히려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옛날의 제왕帝王은 어찌 꼭 재주가 많아서 스스로 나라를 다스렸겠습니까?
다스림에는 요령이 있고, 왕위에 있으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한漢나라 고황제高皇帝의 관홍대량寬弘大量과 경만무례輕慢無禮로 항씨項氏(項籍)처럼 강한 자를 집어삼키기에 충분하였고, 한漢나라 문황제文皇帝의 인덕자혜仁德慈惠와 관후장자寬厚長者로 천하天下의 간사姦詐한 자들을 복종시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능력 있는 인재를 임용하고 그 인재는 즐거운 마음으로 임용에 응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공이 이루어졌습니다.
무제武帝에 이르러서는 재력材力이 남아돌고 총명聰明‧예지睿智가 고황제高皇帝와 문황제文皇帝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웅재雄才와 대략大略을 가지고〉 천하를 다스렸지만 항상 좌절을 당해 공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현능賢能한 인재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천자天子의 책임 역시 현능賢能한 인재를 임용하는 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지금 천하 사람 중에 이른바 ‘재능이 있어서 중용重用할 수 있는 분’은 명공明公이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공경公卿 중에 있어서는 최고로 공功을 세웠고, 사민士民 위에 있을 때에는 최고로 덕德을 쌓았고, 명성名聲이 이적夷狄의 지역에 전파될 정도로 최고로 용기가 있었으니, 이 세 가지 역시 명공明公이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명공明公이 실제로 재상宰相이 되셨으니, 우리 임금님은 임금이 할 일을 이미 다하신 것입니다.
옛날 성인聖人은 두 손을 마주잡고 아무 하는 일이 없었지만, 백세百世 뒤에 명주현군明主賢君이 되기를 희망하는 분은 역시 이와 같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하天下가 아직 다스려지지 못하고 있으니, 과연 누구의 책임입니까?
아래로 군현郡縣의 관리에게 추구하면 “우리는 능력이 없다.”라고 하고, 위로 조정백관朝廷百官에게 추구하면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명공明公은 지금 재상宰相의 자리에 계시는데, 그 책임을 장차 어떻게 피하시겠습니까?
또한 일찍이 진월인秦越人의 일로 명공明公에게 설명한 자가 있었습니까?
옛날에 진월인秦越人이 의술이 고명하다고 이름이 천하天下에 알려지니, 천하天下 사람들은 모두 월인越人으로 생명을 삼았습니다.
월인越人이 없으면 병病에 걸려 죽은 자가 ‘나의 병은 진짜 병이 아니고 나의 죽음은 진짜 죽음이 아니다.’라고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후일에 병이 있는 자가 월인越人을 만나서 부탁하기를 “내 몸을 자네에게 바칠 것이니 자네는 자네의 재능을 가지고 병을 다스리고, 나를 위해서 병을 다스리지 말게나.”라고 하니, 월인越人이 말하기를 “아!
당신의 병은 비록 죽을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낫게 하기가 어렵다.
급하게 다스리면 당신의 사지四肢를 손상하고 느슨하게 다스리면 공연히 수고만 하지 병은 잘 제거되지 않는다.
내가 병病을 제거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를 두려워한다.
당신의 사지四肢를 손상시킨 뒤에 당신의 병病을 제거한다면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정교하지 못하다고 할 것이고, 병病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천하天下 사람들이 나를 의원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나의 마음에서 교전을 벌여 해결이 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그 사람을 만나보았더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은 의도醫道에 정통한 정식 의원醫員만 알고, 정식 의원醫員이 아닌 의원醫員은 알지 못하는군.
지금 정식 의원醫員이 아닌 의원醫員은 이것저것 고려하지 않고 모험을 해가며 병을 다스린다.
그런데 지금 자네는 법을 면밀하게 지키고 만전萬全을 기하니, 자네는 의도醫道에 정통한 의원醫員만 알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천하天下의 모든 일은 급하면 상실하게 되고 느슨하면 얻게 되나, 지나치게 느슨하면 한 가지 일도 이루지 못합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도道가 행해지기 어려운 이유를 내가 아노니, 아는 사람은 지나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천하天下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병폐로 여기고, 또 알면서 지나친 자가 있으니, 이래서 도道가 종시 행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옛날에는 세상의 현인賢人이 세상에서 작록爵祿을 애호하되 차마 자기 몸으로 간난艱難을 겪지 않는 것을 병폐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위에 있는 사람은 분연奮然히 일어나 자신을 고석顧惜하지 않은 채 천하의 공리公利를 취하고 자신의 이익은 잊었습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도 감히 자신을 아끼지 않은 채 큰소리치며 윗사람의 단점을 들추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천하의 선비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으나 오히려 알지 못한 것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바로 천하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고, 자신의 행동을 자중하는 것이 바로 군자의 처신을 신중하게 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가벼이 사소한 일에 신경을 썼으니, 이는 무식한 사람이나 인정할 일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명공明公께서 집정執政하신 지 지금 5년이 되었건만, 천하天下에 강개慷慨하고 격렬激烈하시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고, 날마다 돈후敦厚하고 관대寬大하시다는 명성만 들립니다.
생각건대, 명공明公께서도 그것을 아실 것이니, 오히려 월인越人의 병폐가 있는 것입니다.
철轍이 《삼국지三國志》를 읽을 때에 다음과 같은 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조공曹公(曹操)이 원소袁紹와 서로 버티면서 판가름이 나지 않으므로 그 대책을 가후賈詡에게 물으니, 가후賈詡가 말하기를 “공公은 총명도 원소袁紹보다 낫고, 용맹도 원소袁紹보다 낫고, 인재등용도 원소袁紹보다 낫고, 기회포착도 원소袁紹보다 낫습니다.
원소袁紹의 군사가 공公보다 백 배나 되는데도 공公이 땅을 그어 경계를 정하고 서로 지킨 지 반년이나 되었건만 원소袁紹는 싸움을 하지 않으니, 공公의 승형勝形을 이미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래도록 판가름이 나지 않으니, 생각건대, 만전을 원하는 탓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일은 같지 않으나 그 뜻은 서로 같습니다.
지금 천하 사람들이 머리를 들고 명공明公을 바라보는 것도 어찌 또한 이 같은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명공明公께서 그 말뜻을 대충 생각하시면 응당 천하天下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풀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