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蘇轍(3)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남강군南康軍직절당直節堂에 대한 기문
文亦淺이나이나 自是風人之旨니라
은 천박하지만, 풍인風人(詩人)의 뜻이 담겨 있다.
南康太守之東 有堂曰直節이니 니라
남강군태수南康軍太守청사廳事 동쪽에 이 있어 ‘직절直節’이라 명명하였으니, 조청대부朝請大夫 서군徐君 망성望聖이 지은 것이다.
庭有八杉하니 長短鉅細若一하고 直如引繩하여而後 枝葉附之니라
뜰에 여덟 그루의 나무가 있으니, 장단長短거세鉅細가 한결같고, 곧기가 마치 드리워놓은 노끈과 같은데, 높이가 3이나 올라가야 가지와 잎이 붙었다.
岌然如揭하고 하며 凜然如公卿大夫高冠長劒立於王庭하여 有不可犯之色이니라
높기는 마치 태상太常를 걸 것 같고 승로반承露盤의 기둥을 세울 것 같으며, 늠름하기는 마치 공경대부公卿大夫고관高冠장검長劒왕정王庭에 세워놓은 것과 같아서 범접할 수 없는 기색을 가졌다.
이 처음에는 남강군南康軍 육조六曹이속吏屬이 거처하는 곳이었다.
杉之陰 府史之所蹲伏이요 而簿書之所塡委 莫知貴也니라
나무의 그늘은 부사府史가 휴식하는 곳이나, 부서簿書가 쌓이는 곳으로 제공했을 뿐이니, 귀한 줄을 알지 못하였다.
君見而憐之하여 作堂而以直節命焉하니라
서군徐君이 그것을 보고 가련히 여겨 을 지어서 ‘직절直節’로 명명하였다.
夫物之生 未有不直者也니라
만물이 생겨날 때에는 곧지 않은 것이 없다.
不幸而風雨撓之하고 巖石軋之然後 委曲隨物하여 不能自保 雖竹箭之良 松栢之堅이라도 皆不免於此니라
불행하게도 풍우風雨가 뒤흔들고 암석巖石이 짓누른 연후에 구부러진 것이 물체에 따라붙어서 스스로 보전할 수 없으니, 비록 죽전竹箭의 우수한 성품과 송백松栢의 견고한 체질도 모두 구부러지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
惟杉能遂其性하여 不扶而直이니라
오직 나무만이 그 본성을 완수하여 붙들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
其生能傲氷雪하고 而死能利棟宇者 與竹栢同이나 而以直過之니라
살 경우는 능히 빙설氷雪을 능멸하고 죽을 경우는 능히 동우棟宇를 이롭게 하는 것이 대나무나 잣나무와 같지만, 곧은 것은 훨씬 낫다.
나무에 비할 대상을〉 사람에게서 구한다면 아마 이른바 ‘문왕文王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흥기하는 자’일 것이다.
徐君溫良汎愛하니 所居以하니라
서군徐君은 온화하고 선량한 성품으로 널리 사랑을 베풀었으니, 그가 사는 고을에서 순리循吏로 칭하였다.
不爲皦察之政이나 而行不失於直이니라
지나치게 살피는 정사를 하지 않았으나 행실은 정직함을 잃지 않았다.
觀其所說이면 而其爲人可得也니라
말해놓는 것을 살펴보면 그 사람됨을 파악할 수 있다.
詩曰 로다하니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두 을 가지신지라, 이러므로 자손이 그를 이었도다.”라고 하였다.
堂成 君以客飮於堂上이니라
이 낙성됨에 서군徐君 위에서 빈객賓客에게 주연酒宴을 베풀었다.
客醉而歌曰 吾欲爲曲이나 爲曲必屈이리니 曲可爲乎
빈객賓客이 취해서 노래를 부르기를 “내가 굽게 하려고 하나 굽으면 반드시 굽힐 것이니 굽게 할 수 있겠는가?
吾欲爲直이나 爲直必折이리니 直可爲乎
내가 곧게 하려고 하나 곧으면 반드시 꺾어질 것이니 곧게 할 수 있겠는가?
有如此杉 特立不倚하여 散柯布葉하니 安而不危乎
이와 같은 나무 우뚝 서서 가지를 퍼뜨리고 잎을 펼쳤으니 안정하여 위험하지 않겠는가?
淸風吹衣하고 飛雪滿庭 顔色不變이면 君來燕嬉乎
맑은 바람 옷을 스치고 날아 내린 눈 뜰에 가득할 때 안색이 변하지 않으면 그대는 와서 연희燕嬉하려는가?
封植灌漑하여 剪伐不至 杉不自知 而人是依乎
봉식封植하고 관개灌漑하여 자르거나 베지 않으면 나무는 몰라도 사람은 이에 의지하겠는가?
廬山之民 升堂見杉하여 懷思其人 其無已乎아하고 歌闋而罷하니라
여산廬山의 백성들 이 에 올라 나무를 보고 그 사람 사모함을 마지않겠는가?”라고 하고 노래가 끝나자 주연을 파하였다.
역주
역주1 南康直節堂記 : 《欒城集》에는 이 글 뒤에 ‘元豐 八年(1085)正月十四日 眉山蘇轍記’가 있어 저작연대를 알 수 있게 하였다. 南康은 곧 南康軍이다. 宋代 제도에서 軍과 州는 같이 썼다. 당시 蘇轍이 그 兄 蘇軾에게 연루되어 筠州에 貶謫되었으니, 筠州는 비록 江南西路에 속하나 南康軍과 서로 이웃하였다. ‘直節堂’은 堂 앞에 곧은 杉나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짓게 된 것이다.
역주2 廳事 : 정사를 처리하는 곳이다.
역주3 朝請大夫徐君望聖之所作也 : 朝請大夫는 文散官 이름이다. 宋나라 때에 從5品이었다. 徐君은 이름은 師回, 자는 望聖, 蘇州 사람이다. 元豐 연간에 知南康軍으로 있었는데, 耿介하고 條理가 있었으므로 官事가 번거롭지 않고도 다스려졌다고 한다.
역주4 三尋 : 1尋이 8尺이니, 3尋은 24尺이다.
역주5 太常之旗 : 古代의 旗 이름이다.
역주6 如建承露之莖 : 承露는 承露盤이다. 漢 武帝가 神仙을 좋아했기 때문에 오래 살기 위하여 承露盤을 제작해서 甘露를 받아 服食했다고 한다.
역주7 堂始爲軍六曹吏所居 : 軍은 南康軍을 가리킨다. 六曹는 唐代에 비로소 各 州에 分設하여 州內의 각종 사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六曹는 倉曹, 戶曹, 兵曹, 法曹, 士曹 등이다. 또한 ‘六司’라고도 칭한다.
역주8 求之於人 蓋所謂不待文王而興者耶 :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품행과 세력으로 공을 이루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孟子》 〈盡心 上〉에 “文王을 기다린 뒤에 흥기하는 자는 凡民(일반 백성)이니, 豪傑의 선비로 말하면 비록 文王 같은 聖君이 없더라도 오히려 흥기한다.[待文王而後 興者 凡民也 若夫豪傑之士 雖無文王 猶興]”라고 하였다.
역주9 循吏 : 이치를 따르고 법을 지키는 관리를 말한다.
역주10 惟其有之 是以似之 : 《詩經》 〈小雅 裳裳者華〉에 보이는데, 鄭箋에서 “우리 先人은 이 두 德(陽道와 陰道)을 가지셨다. 그러므로 先王이 世祿을 하게 해서 자손이 그를 이었도다.[維我先人 有是二德 故先王使之世祿 子孫嗣之]”라고 풀이하였다.
역주11 : 張伯行은 《唐宋八大家文鈔》에서 “ ‘直節’ 두 글자에는 자못 佳致가 있다. 선비가 능히 直節을 스스로 가졌으면 세상에 표현하지 못할 자가 없다. 어찌 특히 이 杉나무만 그러하랴?[直節兩字頗有佳致 士能以直節自持 未有不表現於世者也 豈特玆杉也歟]”라고 비평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